협박범이 동우의 집 주소를 알아냈다는 사실에 동우의 불안감이 급속도로 커졌다. 이제 전혀 다른 차원의 두려움이 밀려오는지, 동우는 경찰이 다녀간 후, 자고 가겠다는 진영의 말에 군말없이 이불을 꺼내주었다. 사실 말이 자고 간다는 거였지, 진영은 혹시 몰라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아무리 진영이 강철체력이라도, 이틀 연속 거의 밤을 새자 역시 몸에 무리가 갔다. 게다가, 그런 일이 있었으니 극단의 단장도, 매니저도, 비상이 걸려서, 결국 동우에게 24시간 경호를 붙이기로 했다.


객석에서 화살을 던진 거로 보아 단원 중 한 명이 아닐 거라는 확신이 있었지만, 이미 라커룸 안에까지 들어왔던 놈이 무슨 짓을 또 할지 몰라서 뮤지컬 연습과 리허설 중에도 진영이 거의 그림자처럼 동우를 따라다녔다. 그날 밤은 클럽에도 가지 않고 바로 집으로 갔다. 동우가 집에 무사히 들어간 후에야 진영은 다른 경호원과 교대를 했고, 집으로 가자마자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바로 회복된 모습으로 다시 복귀했다.


경찰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동우의 집 주변과 공연장 건물 등의 순찰을 더 강화했다. 다행히, 며칠 동안은 아무런 편지도 오지 않았고, 다른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어서, 진영은 늘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가뜩이나 공연 준비로 바쁜데, 이 일로 경찰이 들락날락하고, 동우는 툭하면 자리를 비워야 하니 제대로 연습이나 리허설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선배들 중 한 명이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보이콧하는 수가 있다고 협박했고, 그깟 편지와 화살이 뭐라고 그렇게 다들 호들갑이냐는 말에, 다른 배우들도 선배의 편을 들었다. 물론 매니저와 단장은 동우의 편을 들었고, 그렇게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두 번째 공연을 했다.


이번에는 진영이 무대 옆 숨겨진 공간에서 객석을 지켜보았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고, 어찌어찌 두 번째 공연은 무사히 마쳤지만 그 후 분위기는 더욱더 살벌해져 있었다. 결국 단장이 분위기를 좀 풀어보려 법인카드를 꺼냈고, 그 카드를 받아들며 아까 그 선배가 동우는 룸에서 여자나 불러 술 마시는 걸 좋아하니 그런 데 가게 두고 우리들끼리 뒤풀이 하자, 는 말로 다른 배우들을 데리고 나갔다. 한쪽에서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서 있던 동우는 매니저에게 차키를 빼앗아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렇게 위험한 때에 단독행동이라니, 아무리 기분이 안 좋아도 그렇지... 혀를 차며 진영이 동우의 뒤를 따라나섰다. 이미 동우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어디로 갔을지 짐작이 가 진영은 택시를 잡아타고 클럽으로 향했다. 역시, 동우는 늘 빌리는 룸의 늘 앉는 자리에 앉아있었다. 평소와 다른 건, 동우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양주병과 잔으로 보아, 한 모금도 채 마시지 않은 것 같은데, 동우는 벌써 취해 있었다.


진영을 보자 반가운 듯 웃어보이며 눈을 게슴츠레 뜨고 가까이 오라 손짓한 동우는, 몇 번 헛손질을 하며 진영에게 술은 따라주었다. 진영이 다 마실 때까지 계속 마시라며 권하던 동우는, 진영이 빈 잔을 내려놓은 후에야 베시시 웃었다.


"어떻게 그만큼 마시고 멀쩡하지? 난 벌써 취했는데..."

"그래도 취한 건 아니 다행이네요."


진영의 조금은 띠꺼운 말투에 동우는 눈이 안 보이게 웃었다.


"취한 건지 알죠. 이렇게 기분이 엿같은데 기분이 좋으니까. 뭐든 다 엎어버리고 싶은데 막 날아갈 것 같이 기분이 좋아요. 그럼 취한 거죠."


잘 돌아가지 않는 혀로 더듬거리며 하는 말에, 진영은 마음 한켠이 조금 쓰렸다. 동우가 다시 한 잔을 따라주었다. 흘리는 게 더 많은 데도, 진영의 도움을 거절하는 동우에 진영은 도와주려 내밀었던 손을 거뒀다. 동우는 주정하듯 말했다.


"난요, 외로운 게 진짜 싫어요. 혼자 있는 것도 진짜 싫고, 미움 받는 것도 진짜 싫어요. 그런데 다 나만 미워해. 다 나 따 시키고. 나랑 놀아주지도 않고. 난 혼자인 게 너무 싫은데."


거의 아이처럼 투정부리듯 하는 말에, 진영은 저도 모르게 동우의 옆으로 좀 더 다가가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나마 이런 데 와서 여자들한테 비싼 술 사주면 다정한 말을 들을 수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계속 여기로 오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이런 데 온다고 또 뭐라고 그러네? 그럼 나보고 뭐 어떡하라고. 혼자 있는 건 죽어도 싫은데."


나중에는 거의 울먹거리듯 하는 말에, 진영은 토닥이던 손을 멈추고 동우의 등을 쓸어주었다. 왜 그렇게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진영 역시 외로운 건 싫어하는 사람이라, 그 혼자 있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이 너무나도 와닿았다.


잠시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가리고 있던 동우가 진영의 손길이 그제서야 느껴졌는지, 고개를 들고 진영을 바라보았다.


"뭐예요, 작업 거는 거예요?"


진영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가만 보니 은근 바라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작업 거는 거."


동우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 건가?"

"농담을 그렇게 받으면 내가 뭐가 돼요?"


진영의 말에 동우는 다시 눈이 안 보이게 베시시 웃었다.


"농담이에요? 에이, 괜히 설렜네."


전혀 종잡을 수 없는 이 술취한 남자를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될 것 같아서, 진영은 일어서며 동우를 잡아 일으켰다.


"그만 집에 가요."

"집? 집에 가기 싫은데..."


칭얼거리는 동우를 달래가며 진영은 동우를 부축해 밖으로 나왔다. 발렛파킹했던 차를 지하주차장에서 가져왔고, 진영은 대리기사를 불렀다. 진영은 거의 정신을 못 차리는 동우를 뒷좌석에 태우고 옆에 앉았다. 동우가 바로 쓰러지듯 진영의 어깨에 기대 잠이 들어서, 그 상태 그대로 대리기사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잠든 동우가 깰세라 조심히 운전해달라 대리기사에게 요청한 후, 진영은 어깨에 얹은 동우의 머리를 좀 더 편안히 베게 해 주고, 자신은 조금 불편한 그 자세로 동우의 집까지 갔다. 주차장에 도착한 후 동우를 깨워, 아직도 조금은 비틀거리는 동우를 차에서 내리게 해 부축을 하고 아파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덩치에 키에, 동우가 조금 많이 버거웠고, 진영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거의 매달리다시피 한 동우가 점점 더 무거워졌지만, 진영은 오늘 오죽하면 그럴까 싶어 별다른 말 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겨우 동우의 층에서 내려 문으로 다가가는데, 그제서야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다시 잠든 동우를 흔들어 깨웠고, 동우는 문에 기댄 채 도어락을 열고 비밀번호를 누르려 했다. 그 순간, 문이 안쪽에서 확 열렸다. 문에 기대 서 있던 동우는 바닥에 나동그라졌고, 문 앞에 서 있던 진영은 아파트에서 나오는 남자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건지, 남자는 놀라 한순간 얼어붙더니 진영을 밀치고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바닥에 나뒹굴고 있던 동우를 보지 못하고 동우의 다리에 걸려 넘어졌고, 역시 한순간 굳어버렸던 진영은 남자가 다시 일어서기 전에 몸을 날려 남자를 덥쳤다. 동우보다 키도, 덩치도 큰 사람이었고, 팔다리를 휘두르며 발악을 했지만, 진영의 주먹 한 방에 바로 입술이 터졌고, 무자비한 힘으로 남자를 바닥에 엎드리게 해 양쪽 팔을 비틀어 포박하자, 남자는 결국 포기했다.


남자의 양쪽 팔을 한 손으로 잡은 채 등을 무릎으로 누르고, 진영은 동우에게 빨리 경찰에 연락하라고 했다. 한쪽에서 둘의 거의 일방적인 몸싸움을 이해 못 하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동우는 그제서야 정신이 든 듯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끊고, 거의 존경에 가까운 눈으로 쳐다보는 동우의 시선이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진영은 몸을 좀 숙여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려 했다. 복도가 너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자, 동우가 일어서서 움직여 복도의 센서등을 켰고, 남자의 얼굴이 확연히 드러났다. 동우는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선배!"


그러고 보니 낯이 좀 익다 싶었다. 진영은 오늘 하루 종일 동우의 속을 긁었던 그 선배 배우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협박편지 보낸 게 당신이었어?"


진영의 말에 남자는 이를 갈았다.


"내가, 내가 극단에서 몇 년을 있었는 줄 알아? 자그마치 십 년이야. 그런데 저 새끼가 내 자릴 뺏었어! 다음 주연 자리는 나한테 주기로 단장하고 다 얘기가 돼 있었는데! 저 새끼가 내 십 년을 다 물거품으로 만들었단 말야!"


남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증오가 거의 손에 만져질 듯이 느껴져서, 동우는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복도 벽에 기대 앉았다. 진영은 남자가 다시 몸부림을 치자 더 세게 팔을 움켜쥐고, 무릎으로 등을 아프게 찍었다.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려고 해?"

"그런 거 아냐! 그냥... 저 새끼가 무대에서 실수하게 만들려고... 계속 편지 보내고, 화살 보내고 하면서 불안정하게 만들면 무대에서 무너질 것 같아서... 그럼 나한테도 기회가 올 테니까. 내가 저딴 새끼를 왜 죽여서 내 인생을 망쳐? 그냥... 그냥... 기회를..."


아파서 그러는지,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어서 미안해서 그러는지,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져 갔다. 진영은 갑자기 의문점이 들었다.


"도대체 화살은 왜 보낸 거야, 살해 협박이 아닌 거면?"

"저 새끼가 처음 예능에서 이름 알린 게 그 양궁 대회인가, 뭔가였잖아. 그거 원래 나한테 들어온 프로그램이었는데, 단장이 저 새끼를 대신 내보냈잖아! 그때부터 저 새끼 인생은 탄탄대로였고, 내 인생은 내리막길이었어. 그 잘난 화살로 저 새끼 인생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어서..."


진영은 여자에게서 들었던 얘기를 다시 기억해냈다. 그 대회에서 동우가 우승을 해서, 이름을 제대로 알렸다고 했었다. 이 남자가 대신 나갔어도 그랬을까? 며칠 동안 보아온 동우는 연습벌레에, 노력파였다. 이 남자도 그렇게 연습하고 노력해서 우승을 했을까? 결국, 다 변명이고, 다 누군가 원망할 사람이 필요한 거였던 거지, 동우의 잘못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 객석에서 무대로 화살을 던지게 한 것도, 당신인 걸 모르게 하려는 속임수였어? 뭐, 다른 사람이라도 시킨 거야?"


남자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동우만 계속 죽어라 노려보았다. 진영은 자신이 한 말이 맞아서 그런다고 생각해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고, 경찰이 드디어 도착하자 경찰에게 남자를 넘겼다. 여전히 사색이 된 얼굴의 동우를 일으켜, 같이 경찰서로 가 진술을 해야한다 말하려는데, 동우가 갑자기 진영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쓰러지듯 기댔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으며, 진영은 동우의 등에 팔을 두르고, 한참을 토닥여 주었다.









동우와 진영은 아침이 밝아오는 시간에 경찰서에서 나왔다. 선배의 진술로 오늘, 아니, 어젯밤에 대해 알고 나오는 길이었다. 선배는 전날 일부러 동우를 도발했고,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회식을 가 일부러 다 취하게 만든 다음, 몰래 빠져나와 다른 단원을 통해 알게 된 비밀번호로 동우의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가 집 안에 화살을 놓고 나오려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동우를 제대로 흔들어 놓아서, 다음 날 공연을 망치게 만들려는 수작이었다. 동우가 그 클럽에 가면 거의 아침까지 놀다 오는 걸 아니까, 집이 빈 시간에 잠시 들러 들키지 않게 화살만 놓고 나올 생각이었는데, 나오다 딱 둘과 마주친 거였다. 


모든 걸 알게 되자 왠지 허탈해진 둘은, 긴장도 풀리고 잠도 못 자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진영은 착잡한 표정으로 이제야 겨우 진정이 된 동우를 올려다보았다.


"미안해요. 그런 얄팍한 속임수에 속아서 단원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하다니, 이건 내 실수예요."


잠을 못 자 열이 나는 눈을 비비던 동우가 손사레를 쳤다.


"누구보다 단원들을 믿은 건 나예요. 진영 씨가 결국 선배를 잡았잖아요. 미안할 게 뭐가 있어요?"

"그래도, 좀 더 깊게 생각했더라면 그 사람인 걸 깨달았을 텐데..."

"진영 씨는 내 경호원이지, 형사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나 훌륭히 지켜냈잖아요."


동우의 말에 진영은 피곤한 얼굴로 미소지었다. 동우는 그런 진영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나야말로 미안해요."

"뭐가요?"

"계속 헛소리 한 거요. 진영 씨 경호원 진짜 완전 잘 어울려요. 아까 선배랑 싸울 때 정말 멋있었어요."


계속 신경 쓰지 않는 척했어도 동우가 그동안 했던 말이 생각보다 마음에 걸렸었는지, 동우의 저 말이 너무 기뻤다. 진영은 충혈된 눈을 손으로 누르며 슬쩍 지어지는 미소를 감췄다. 손으로 가려진 진영의 얼굴을 바라보다, 동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제 의뢰는 끝난 거네요."

"그러게요."

"그럼 이제 볼 일 없네요. 아쉽네..."


진영은 다시 동우를 올려다보았다. 동우는 멋쩍은지 헛기침을 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진영은 따라 내려가며 툭 내뱉듯 말했다.


"뭐예요, 내가 그동안 고생한 게 있는데 밥 한 번 안 살 거예요?"


앞서 걷던 동우가 멈춰서서 진영을 돌아보았다. 진영은 서둘러 덧붙였다.


"그리고, 이건 작업 거는 거 맞아요."


동우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를 보며, 진영 역시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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