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은 피곤한 얼굴로 경찰서를 나섰다. 성공적인 첫 공연을 축하하는 뒤풀이 자리에 있어야 할 동우 역시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그 뒤를 따라나왔다. 둘은 말없이 차에 올라 매니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당신 제정신이야?"


갑자기 내뱉어진 말에 진영은 놀란 얼굴로 동우를 쳐다보았다. 경호를 받는 와중에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 화가 날 만도 하지만, 그래도 먼저 객석에 가 있으라고 한 동우가 저렇게까지 말을 할 건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어쩌자고 그 미친놈을 따라가? 진짜 위험한 놈이면 어쩌려고?"


화내는 이유가 어찌 이상하다 싶었지만, 진영은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다.


"진짜 위험한 놈이면 화살을 던지지 않고 쐈겠죠. 내가 조금만 더 빨리 따라갔으면 잡았을 텐데..."

"당신은 내 경호원이잖아. 그런 상황에서는 무대 위로 몸을 던져 날 보호해야 하는 거 아냐? 나쁜 놈 잡으러 따라갈 게 아니라?"


그것 때문에 화가 난 거였나? 진영은 역시 침착한 목소리로 설명을 했다.


"그 상황에서 동우 씨에게 더 이상의 위험은 없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잡아야 위협이 없어지는 거잖아요.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잡으려 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당신이 경찰이야? 당신한테는 내가 우선시되야 하는 거 아냐? 당신 말대로 그놈이 화살을 던진 게 아니라 쏘기라도 했어 봐. 그래도 나 죽게 내버려두고 그놈 쫓아갔을 거야?"


진영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경호원이라도 날아오는 화살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참에 그놈을 잡아 이 상황을 끝낼 수 있다면 의뢰인한테는 그게 가장 좋은 일 아닌가? 하지만 진영이 반박하기 전에 매니저가 차에 올라탔고, 동우는 여전히 화난 표정으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첫 공연의 긴장도 풀렸겠다, 그런 일까지 있었으니 오늘은 집에 가겠지, 생각했는데 동우는 다시 클럽에 들렸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매니저는 클럽까지 둘은 데려다주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버렸다. 어제와 같은 룸에 자리를 잡은 동우는 다시 술을 시켰다. 하지만, 여자들을 데려오겠다는 웨이터를 손짓으로 내보내고, 문 옆에 서 있는 진영을 쳐다보았다.


"와서 한 잔 해요."


그나마 화가 좀 풀린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진영은 고개를 저었다.


"근무 중에 술은..."

"한두 잔 정도는 괜찮잖아요? 술 잘 마시게 생겼는데..."


술 잘 마시게 생긴 건 또 뭐야? 사실 술을 잘 마시지만, 그 말이 썩 기분이 좋은 건 아니여서 진영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사양하겠습니다."


동우는 잠시 진영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나 술 못 마시는데 이거 아까워서 그래요."

"술도 못 마시면서 왜 시켰는데요?"

"클럽에서 술밖에 시킬 게 더 있나."

"그럼 어제처럼 여자들이라도 부르세요."

"오늘은 정신없이 시끄러운 걸 못 참을 것 같아서요."


진영은 동우를 관찰하듯 살펴보았다. 역시, 오늘 있었던 일 때문에 불안해서 혼자 있어야 하는 집에 가기 싫어 습관처럼 오는 이곳에 들른 건가 보다. 그래도 오늘은 같이 술을 마시자고 하는 걸 보니, 어제보다는 좀 더 진영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생긴 건가? 잠시 머뭇거리다 진영은 동우와 좀 떨어진 자리에 가 앉았다.


"한 잔만 마실게요, 그럼."


동우는 슬쩍 웃으며 양주를 따라주었다. 진영이 한 모금 마시자, 과일 안주 접시를 진영 쪽으로 밀어주었다. 


정작 이렇게 마주보고 앉아 있으려니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진영은 다시 양주를 한 모금 마시다가 동우의 질문에 켁켁거렸다.


"오늘 나 멋있었죠?"


겨우 사레들린 걸 해결한 후, 진영은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동우를 쳐다보았다.


"그게 그렇게 중요해요?"

"네."

"멋있었어요."


진영의 말에 동우는 슬쩍 웃었다. 이왕 얘기해 주는 거, 더 칭찬해주자 싶어서 진영은 말을 이었다.


"무대에 정말 잘 어울리는 사람이에요."


동우의 미소가 더 밝아졌다.


"전 무대에 서는 거 정말 너무 좋아요. 예능 이런 건 솔직히 체질에 잘 안 맞아요. 그냥 무대에만 계속 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밝은 미소 뒤에 조금의 씁쓸함이 느껴져서, 진영은 다시 양주를 한 모금 마시다 동우를 쳐다보았다. 진영의 눈길을 느낀 건지, 동우가 다시 미소지어 보였다.


"진영 씨는 왜 경호원 일을 해요?"


자주 받는 질문에 늘상 하는 대답을 했다.


"다른 사람을 지키는 건 멋있는 일이잖아요."


단번에 대답한 진영에 동우는 한쪽 눈썹을 올렸다. 진영은 왠지 저도 모르게 좀 더 솔직히 말했다.


"그냥 그 사람 자체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행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잖아요.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지켜주는 일이 제게 행복을 주는 것 같아요."


동우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래도... 왠지 어울리지 않잖아요."

"어울리지 않아요?"


이번에는 진영이 눈썹을 올렸다.


"아, 뭐, 수트는 잘 어울리고, 경호원이라는 직업 자체가 멋있는 건 맞는데, 우리 둘이 같이 있으면 왠지 내가 진영 씨를 지켜줘야 할 것 같지 않아요? 외모상으로 보면."

"겉으로 보이는 게 중요한가 봐요, 동우 씨는."


진영의 말에 동우는 잠시 멈칫했다.


"사람 속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그러니 결국 겉으로만 판단하는 게 맞지 않나?"


이번에는 진영이 멈칫했다. 그 여자에게서 들은 얘기가 생각나서였다. 하루아침에 친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인기가 많아질수록 주변 사람들은 없어진 동우가 좀 시니컬한 건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괜히 분위기가 좀 더 심각해지는 것 같아 진영은 말을 돌렸다.


"그래도 이제 내가 못 미덥거나 그런 건 아니죠?"

"아, 못 미더운 게 아니라... 그게, 뭐랄까, 진영 씨는 얼굴도 예쁘장하고 몸도 여리여리하고, 이런 위험천만한 일보다는 좀 쉽고, 편하고, 안전한 일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에요."


저 말에 어디가 나쁜 뜻이 없다는 건지, 진영은 속으로 갑자기 좀 많이 짜증이 올라왔다. 이 일을 몇 년째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대부분 동우처럼 생각했더라도 저렇게 돌직구로 말을 꺼낸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경호원으로서의 진영의 컴플렉스를 한꺼번에 다 건드리다니... 그래도, 정말 악의는 없어 보여서 진영은 짜증을 내려다 참았다.


"그냥 일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거 아니에요. 저도 나름 사명감을 갖고 하는 일이니까. 그러는 동우 씨야말로 방송에 출연하는 게 더 쉽게 돈 버는 일 아니에요? 그래도 무대를 더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비슷한 거죠, 저도."


동우는 진영의 말에 눈이 조금 커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그런 말을 들으니 좀 이해가 되네요. 오늘 나는 나 몰라라 내버려두고 무턱대고 그 미친놈을 따라나간 것도."


또 시작이구나, 생각하며 진영은 한숨을 쉬고 잔을 마저 비웠다. 동우가 한 잔 더 따르려 하자 진영은 손으로 막았다.


"이제 그만 마실래요."

"왜요, 이거 맛있다고 하던데? 난 한 모금 마시고 바로 다 토해버려서 맛이 잘 기억 안 나지만..."


저도 모르게 슬쩍 웃음이 났지만, 진영은 겉으로는 꾹 참으며 정색했다.


"어쨌든 아직 저 근무 중이에요. 술 취해서 동우 씨 경호 제대로 못 하면 어떡해요?"

"한 잔 더 마신다고 취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데..."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진영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동우가 양주병을 내려놓았다.


"그럼 그만 집으로 가요."


벌써 늦은 밤이지만, 그래도 어제보다는 이른 귀가에 진영은 단번에 일어섰다. 취하지 않았어도 술 마신 사람에게 운전을 시킬 수 없다는 이유로 동우가 운전석에 앉고, 진영은 어제 일이 생각나 뒷자석에 앉으려다 그래도 그렇게 유치해질 수는 없다는 생각에 보조석에 앉았다. 동우가 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방금 한 대화 때문인지, 동우의 아파트로 가는 내내 둘 다 별말 없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고, 같이 엘리베이터에 오른 후에야 진영이 입을 열었다.


"원하시면 오늘 밤 여기에서 자고 갈게요."


동우가 곁눈질로 슬쩍 보더니,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오늘 나 보고 마음이 바뀐 거죠?"

"네?"


무슨 헛소리를 하나, 싶어 쳐다보자, 동우가 짐짓 진지한 표정을 했다.


"오늘 나 무대에서 보고 반한 거 아니냐구요."


진영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한참 웃는 동안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둘 다 내렸다. 동우가 여전히 심각한 척을 하며 한쪽 눈썹을 올렸다.


"뭐야, 작업 건 거 아니에요?"

"절대로 아니거든요."


진영은 슬쩍 웃으며 아파트 문 앞까지 먼저 걸어갔다. 동우 역시 아까 대화가 마음에 걸렸던 건지, 되도 않는 농담을 던지는 걸 알아서 그렇게 대답한 건데, 동우의 표정이 바뀌는 것을 보고 농담이 점점 진담이 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왜? 내가 어디가 어때서?"

"내 취향 아니라고 했잖아요."

"도대체 내가 왜 취향이 아니에요? 난 거의 모든 사람의 취향인데?"


정말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진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못 박듯 말했다.


"내가 안기엔 동우 씨가 너무 커서요."


어제 본 그 벙찐 표정의 동우를 보며, 진영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그리고 다시 진지하게 말했다.


"그래서, 어떡할까요? 저 갈까요, 아님 오늘 여기에서 자고 갈까요?"

"그냥 가봐요."


삐친 듯 말을 툭 던지고 동우는 문 바로 앞에 서서 도어락 키패드를 열려다, 발에 뭔가 걸리는지 밑을 내려다보았다. 진영은 고개를 숙인 동우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오늘 그런 일이 있었는데..."


갑자기 동우의 손이 아프게 진영의 팔을 잡아왔다. 진영은 놀라 동우를 올려다보고, 여전히 발 밑을 보는 동우의 시선을 따라 바닥을 쳐다보았다. 동우의 아파트 문 앞에 접힌 종이가 끼워진 화살이 놓여 있었다. 진영의 팔을 여전히 아프게 잡고 있는 동우의 손이 떨려서, 진영은 저도 모르게 그 손 위로 자신의 손을 올려 꽉 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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