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매니저에게 시간을 확인해 아침 10시쯤 동우의 집으로 온 진영은, 은근슬쩍 계속 눈치를 보는 동우를 의식하며 괜히 말했다, 생각했다. 가뜩이나 진영의 외모 때문에 불만이 많은데, 이제 게이인 것까지 말했으니 진영을 자를 이유를 하나 더 준 셈이었으니까.


그러나 동우는 경호원을 바꿔달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니, 진영에게 고개를 까딱해 보인 후 한 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호모포비아라도 있나, 싶었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아서, 진영은 매니저에게 받은 그날 스케줄을 핸드폰에 저장했다. 역시, 거의 쉴 틈 없이 계속 왔다갔다 해야 하는 스케줄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공연 첫날이기도 해서, 사람이 그렇게 많은 곳에서 무대에 서는 의뢰인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좀 고심해 봐야 했다.


잠시 후, 둘은 차 뒷자석에 나란히 올라탔다. 앞에서 운전하고 있는 매니저를 무시하며, 동우는 진영에게 등을 돌린 채 핸드폰을 꺼냈다. 진짜 호모포비아인가?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 진영은 갑자기 다리를 툭 치는 동우의 손에 옆을 쳐다보았다. 동우가 앞의 매니저에게 보이지 않게 핸드폰을 낮게 진영 쪽으로 내밀고 있었다. 진영은 핸드폰 액정을 읽었다.


'왜 내가 취향이 아니에요? 내가 뭐 어때서?'


갑자기 웃음이 터져 진영은 황급히 웃음을 삼켰다. 그냥 물어봐도 될 것 같은데, 매니저에게 들킬까 봐 그러는 건가? 이미 에이전시에서도 공공연히 커밍아웃한 진영인데, 아우팅 시킬까 봐 그러는 건가? 진영은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글자를 입력해 동우 쪽으로 내밀었다.


'작고 귀여운 사람이 내 취향이라서요.'


물론 사실은 아니었고, 굳이 따지자면 동우야말로 취향에 가까웠지만, 괜히 겁을 줄 필요는 없으니까. 잠시 후, 동우가 다시 핸드폰을 내밀었다.


'나 팬들이 귀엽다고 자주 그러는데...'


다시 웃음을 삼키며 진영은 핸드폰으로 뭔가를 두드리다, 매니저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진영 씨, 경찰에서 연락왔어요."


동우도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매니저를 쳐다보았다. 진영은 괜히 어색해져서 서둘러 입을 열었다.


"네? 뭐래요?"

"늘 똑같은 말이죠. 지문도 뭣도 없고, 그냥 조심하라고."

"그 화살 어디서 샀는지 알아볼 수 없대요?"

"그게... 쏜 것도 아니고, 그냥 꽂아놓은 걸로 인력 낭비할 수 없다고..."


진영은 혀를 찼다. 한국 경찰은 살해 위협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뭐, 그런 이유로 진영 같은 사람이 밥벌이를 하는 거였겠지만.


"다른 단원들한테는 물어보셨어요, 수상한 사람 못 봤는지?"

"다들 모른다고만... 어제 밤 늦게 리허설이 끝나서 다들 피곤한 데다, 누가 먼저 발견하기 전에는 동우 사물함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었나 봐요. 건물도 잠궈놓지를 않으니까 아무나 들어올 수 있고, 주변에 CCTV 이런 것도 없고... 하... 걱정이네요."

"그러게요."


진영은 옆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동우를 살폈다. 역시 걱정이 되는 거겠지, 싶어 안쓰러워지려 하는데, 동우가 다시 핸드폰을 내밀었다.


'나 정도면 멋있고 귀엽지 않아요? 나 얼마 전에 어떤 잡지에서 같이 휴가 가고 싶은 남자 9위로 뽑혔는데.'


걱정이 된 게 아니라 그거 쓰느라 그렇게 한참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거였나 보다. 진영은 고개를 저으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걱정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다행이었지만, 너무 위기 의식이 없는 건 전혀 좋은 게 아닌데... 어제, 아니 오늘 아침에는 혼자 집에 들어가는 것도 무서워하더니, 왜 저렇게 지금은 전혀 상관없는 생뚱맞은 일에 신경을 쓰는지, 다른 이유로 동우가 슬슬 걱정되었다.










공연 시간이 다가오자, 여러 가지 이유로 진영은 짜증이 치밀기 시작했다. 우선, 동우가 차에서 내린 후 핸드폰에 글을 써서 보여주는 걸 할 수 없게 되자, 매니저에게 진영의 연락처를 알아내 계속 톡으로 자신을 어필하고 있었다. 진짜 딴 건 몰라도 자기애는 정말 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사실 네가 내 취향에 꽤 가까운데, 괜히 덮치기라도 할까 봐 불안해할 것 같아 아니라고 거짓말했다, 라고 하기도 뭣해서, 아까부터는 계속 오는 동우의 톡을 무시하고 있었다.


게다가, 오늘이 공연 첫날이다 보니 다들 예민해져 있는데다, 드레스 리허설 중간 중간 화보 촬영이며 뭐며 자리를 비워야 하는 동우 때문에, 무대 뒤는 거의 살얼음판이었다. 괜히 덩달아 다른 배우들의 눈치를 보게 된 진영은, 밀착 경호는 커녕 나중에는 걸리적거린다며 한쪽에 짜져 있으라는 말까지 들었다. 물론, 동우가 아닌 선배 배우한테 들은 말이었고, 전날부터 그깟 편지 몇 장에 경호원까지 고용하며 유난을 떤다고 대놓고 욕하던 선배였기에 신경은 쓰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히 나중에 안 좋은 소리가 나올까 봐 진영은 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매니저가 왜 동우의 인기가 아이돌급이라고 했는지 오늘 뼈저리게 알았다. 공연이 시작되기 몇 시간 전부터 건물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동우가 나타나자 사진 찍고 동영상 찍고 하던 사람들은 최대한 가까이 다가오려고 힘으로 밀어붙였고, 매니저와 진영 둘이서 그런 사람들을 겨우 막아냈다. 문제는, 팬들이라는 저 사람들 중 그 협박범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거였다. 팬들 대부분은 여자였지만, 협박범이 남자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스케줄 때문에 계속 이동할 때마다 몰려드는 사람들을 저지하느라, 나중에는 체력 좋은 진영도 지쳐가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사람들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하며 그 중 수상해 보이는 사람이 없는지 살펴보기까지 해야 해서,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되었다. 드디어 공연을 하러 다시 공연장 건물로 돌아왔을 땐, 진짜 어디 한쪽에 짜져서 쉬고 싶었다.


그래서 분장을 마친 동우가 한쪽 벽에 기대 서서 주위를 지켜보던 진영에게 다가오는 게 보이자,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아올랐다.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고... 이제 동우의 자기 자랑을 들어주는 것도 한계였다.


하지만 동우는 말없이 손에 들고 있는 뭔가를 내밀었다.


"뭐예요?"

"티켓이요. 진짜 어렵게 구한 거예요."


진영은 받지 않고 동우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오늘 무대, 객석에서 제대로 보라구요."

"전 동우 씨 경호하는 게 임무인데..."

"공연 중 무대 뒤에는 전쟁터예요. 진영 씨가 그런 곳에서 계속 나 따라다니면, 나 정말 협박범이 아니라 선배들 손에 죽어요. 차라리 객석에서 누구 수상한 사람 없나 살펴보는 게 더 나을 거예요."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진영은 여전히 머뭇거렸다. 동우가 진영의 손을 끌어다 티켓을 쥐어주었다.


"그리고, 객석에서 무대 제대로 보면서, 내가 얼마나 멋있는지 두 눈 크게 뜨고 잘 봐요."


진영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동우는 이름이 불리어 서둘러 뛰어갔다. 진영은 잠시 손에 들린 티켓을 쳐다보았다. 단원들에게 미움 받는 걸 알고 있는 동우에게, 사실 그 중 하나가 협박범일 수도 있다, 그래서 무대 뒤에서 따라다니는 거다, 란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동우가 저렇게 위기 의식 없이 무대를 준비할 수 있는 건, 그래도 단원들은 아닐 거라는 확고한 믿음 때문일 텐데, 그걸 깰 수는 없었다.


그리고 동우가 그렇게 믿으니, 우선은 동우 말대로 객석에서 다른 사람들을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괜히 공연 첫날 무대 뒤에서 걸리적거려 동우만 더 미움받게 하는 것보다야 그게 낫겠지. 그리고, 만에 하나 단원 중 한 명이 협박범이라 해도, 다들 이렇게 바쁘고 긴장되는 날 무슨 일을 벌이지는 않겠지, 란 생각에 진영은 객석으로 향했다.


티켓을 구하기 어려웠다는 말이 빈말은 아니었는지, 무대와 꽤 가까운 자리였다. 객석을 살펴보려면 이렇게 무대와 가까운 자리보다는 좀 더 뒤쪽이 나았을 텐데, 진짜 얼마나 멋있는지 보여주려고 일부러 이런 자리를 구한 건가, 란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주변에는 대부분 여자들이어서, 왠지 주변에서 힐끗거리는 것 같아 더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되자, 다른 생각을 다 잊어버렸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는지, 무대 위의 동우는 정말 멋있었다. 혼자만 다른 조명을 받는 것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왜 동우가 우연히 맡게 된 주연 자리를 그 후 놓치지 않는지 깨달아지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경력이란 걸 무시 못 하는지 약간 어설픈 느낌도 없지 않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을 정도로 역할에 몰입해 연기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빨려들어갔다.


그래서 인터미션이 되어서야 진영은 왜 자신이 객석에 앉기로 했는지를 기억해냈다. 조금 죄책감을 느끼며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하지만 도대체 누가 수상해 보이는지, 누구를 신경 써서 봐야 하는지, 구별해낼 수가 없었다. 다들 평범해 보였고, 그냥 보통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 협박편지를 보낼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다시 공연이 시작되고, 또다시 공연에 빠져 보고 있던 진영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사람들이 일어서지 않아 혼자 일어섰다가 뻘줌해하며 다시 앉았다. 무대에 배우들이 다시 들어오고, 여러 넘버를 다시 불렀다. 객석에서는 대부분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환호와 박수 속에 여러 넘버를 부른 후, 배우들이 다시 모여 인사를 하는데, 객석에서 무대 쪽으로 꽃 등을 던지는 게 보였다.


이런 공연을 처음 본 진영은 모든 게 신기하고 재밌어서, 잠시 임무도 잊은 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뭔가가 날아서 동우의 발치에 떨어졌다. 동우가 내려다 본 후 미소짓고 있던 얼굴이 굳었고, 같은 순간 그 물건을 본 진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물건이 날아온 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카메라로 무대를 찍고 있던 사람들은 불평했지만, 미처 사과할 새도 없이 진영은 사람들을 헤치며 최대한 빨리 앞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공연장에서 밖으로 뛰어나갔을 때, 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진영은 한참을 그 주변을 찾아다녔지만, 밖에서 기웃거리는 팬들 외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곧 사람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해 더 이상 누군가를 찾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진영은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동우의 발치로 화살을 던진 사람을 찾는 걸 포기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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