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은 저도 모르게 매니저가 했던 말이 생각나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이제 겨우 동우를 딱 하루 경호했는데, 오늘 본 사람들 중 대부분이 동우를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았다. 어느 누구 하나 동우에게 그 흔한 미소 한 번 지어주지 않았다. 열심히 리허설을 하는 동우를 쳐다보며, 진영은 옆으로 와 떠들고 있는 단장의 비서라는 여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극단의 현상황을 알고 싶어하는 진영에, 매니저가 여자를 불러준 거였고, 여자는 입이 근질근질했었는지 거의 숨도 쉬지 않으며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여자의 말에 따르면, 동우가 처음 극단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두루두루 다 친했다고 한다. 늘 열심히 연습하고 배우려는 모습에 특히 선배들한테 귀여움을 받았다고. 하지만, 동우가 들어온 지 채 일년도 되지 않아, 주인공 역을 맡았던 아이돌 가수의 갑작스런 하차로 며칠 후에는 올려야 되는 공연의 주인공 자리가 비어버렸고, 갑자기 새로 배우를 섭외하기에도 시간이 없어서, 앙상블이었던 동우가 그 역할을 맡게 됐다고 했다.

어차피 주인공으로 섭외된 연예인 네 명 중 한 명이 자리를 비운 거라, 동우는 다른 배우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시간의 공연을 몇 번만 하면 되었다. 그나마 이미지와 의상 등이 제일 잘 맞아 갑자기 주인공 역을 맡게 된 동우였지만, 늘 제일 먼저 나와 제일 마지막까지 연습하며 모든 넘버를 다 이미 외우고 있었고, 마치 늘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처음부터 너무 잘 했다고 했다. 나중에는 동우가 하는 회차가 전석 매진이 될 정도로 인기가 많아져서, 오히려 다른 배우의 공연까지 줄여가며 동우의 공연을 늘렸다고 했다.

그래도 그렇게 반짝하고 끝날 인기였는데, 그 후 동우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 제대로 이름을 알렸다고 했다. 무슨 연예인 양궁 대회 같은 거였는데, 거기에 나가 우승을 했다고 했다. 그 후, 인기가 더 많아졌고, 그만큼 팬 역시 많아지면서 다음 뮤지컬부터는 바로 주인공역으로 캐스팅됐다고 했다. 그 후로도 계속 주인공 역할을 맡으며 승승장구하게 되자, 결국 극단 안에서는 친구가 없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제일 큰 문제는, 극단 스태프의 태도였다. 동우가 잘 나가기 시작하자 작은 극단의 이름 역시 알려지기 시작했고, 동우의 유명세를 최대한 이용하려는 극단에서는 동우만 밀어주기 시작했다고 했다. 매니저는 아예 요즘 동우만 따라다니며 다른 단원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고, 웬만한 섭외 요청은 다 동우에게로 몰아주었다고. 사실 원래 대부분의 섭외가 동우에게 들어온 거였음에도 불구하고, 괜히 동우 때문에 예능이나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 것 같아 동우보다 선배인 다른 단원들이 괜히 동우를 더 미워하게 됐다고 했다.

동우를 경호하는 데 있어 간단한 백그라운드 스토리를 알고 싶었던 진영은,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극단 안부터 싫어하는 사람 천진데, 이 중 누가 한 명 마음 먹고 동우를 해코지하려 들면 너무 쉬울 테니까. 앞으로 더 신경써서 동우의 주변을 살펴야겠다 생각하며, 진영은 땀을 뻘뻘 흘리며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동우를 바라보았다.

차 안에서는 피곤에 쩔어 눈을 감자마자 자던 동우가 무대 위에서는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는지 거의 날아다니고 있었다. 오늘 하루 스케줄을 따라다니며 진영은 왜 동우가 그렇게 피곤해하는지 이해가 됐었다. 오늘 하루만 해도 예능 프로그램 녹화에, 다른 예능 프로그램 작가와 미팅에, 얼마 전 캐스팅 됐다던 드라마 대본 리딩에, 그 틈틈이 이번에 새로 올린다는 뮤지컬 연습에 리허설까지, 정말 차로 이동하는 시간 빼고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래도 저렇게 무대 위에 서 있는 모습이 행복해 보여서, 뮤지컬 배우가 천직이구나, 생각했다.

동우의 스케줄 때문에 밤 늦게까지 계속된 리허설이 끝나고, 작은 소리로 불평하는 사람들을 못 본 척하며 동우는 바로 씻으러 갔다. 샤워실에서 젖은 머리를 말리며 나오던 동우는,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던 진영을 보고 멈칫하더니, 바로 라커룸으로 향했다. 진영은 역시 몇 걸음 떨어져서 걸었다.

"여기에서까지 그렇게 따라다녀야 겠어요?"

조금 짜증을 내는 동우에 진영은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했다. 네가 하도 극단에서 미움을 받아서 그런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래도 의뢰인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분명 동우의 살인적인 스케줄을 일일이 따라다니다 진영이 먼저 지쳐버리면 다른 경호원으로 바꿔달라고 하려 했는데, 진영이 새벽이 다가오는 지금도 멀쩡해 보이니, 그것에 대한 짜증도 섞여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니까.

결국, 진영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밀착 경호해 달라고 매니저님이 의뢰하셨으니까요."
"그래도 언제까지 따라다니려는 거에요, 오늘 너무 피곤해서 신경쓰기..."

갑자기 동우가 걸음을 멈춰서 뒤따라 걷던 진영은 부딪힐 뻔 했다. 진영은 한 걸음 옆으로 움직여 동우가 갑자기 멈춘 이유를 찾아보았다. 동우의 시선을 따라가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동우의 사물함 구멍 사이로 뭔가 삐져나와 있었다. 다시 걸음을 떼려는 동우를 저지하며, 진영이 먼저 사물함 양 옆에 서서 구경하고 있는 다른 단원들을 무시하며 사물함으로 다가갔다. 역시, 화살이었다. 접힌 종이가 묶여 있는 화살이 사물함 구멍에 꽂혀 있었다. 화살을 그대로 둔 채 진영은 경찰에 전화를 했다. 전화를 끊고 돌아보는데, 동우의 얼굴에 두려운 표정이 서려 있었다. 이 곳까지 들어와 화살을 남기고 가다니, 이제 그 협박하는 사람이 정말 무서워지기 시작한 거였다. 그런 동우의 표정에, 진영은 처음으로 동우가 안쓰러워졌다.









하지만 몇 시간 뒤, 진영은 그 안쓰러웠던 마음이 싹 사라지고, 짜증만 가득 남아 있었다. 경찰이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경찰서까지 가서 진술서를 쓰고, 하며 새벽이 다가올 때까지 정신없이 왔다갔다 한 후, 분명 피곤에 쩔어 보이는 동우가 집으로 갈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동우는 어디 클럽으로 가 룸을 빌렸고, 곧 웨이터가 여자들을 방으로 데려왔다.


여전히 근무 중이라 문 옆에 서 있는 진영을 무시하며, 동우는 여자들과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아니, 여자들에게 술을 먹이기 시작했다. 동우는 술은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채, 점점 취해가는 여자들과 노닥거리고 있었다. 같은 자세로 세 시간째 서 있던 진영은, 짜증과 더불어 피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제 곧 있으면 해가 뜰 시간이었다. 낮에 계속 피곤한 얼굴로 틈만 나면 자던 동우가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사실 이해는 되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혼자 사는 집에 가는 게 무서울 것이다. 진영은 동우가 정 불안해 하면 오늘 밤 같이 있어주겠다, 얘기를 먼저 꺼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진영은 싹 무시한 채, 없는 사람인 듯 행동하며 여자들과 놀고 있는 동우를 보니, 진영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꼴이 되었다. 그리고, 여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걸 들어보니, 거의 매일 여기에 오는 것 같았다. 밤에 툭하면 이런 데 와서 새벽까지 놀다 가니, 낮에 그렇게 피곤해 죽으려고 하는 거지,란 생각에 일말의 동정심도 사라졌다.


결국, 클럽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서야 동우는 룸에서 나왔다. 동우는 말없이 진영에게 차키를 건네고 일부러 뒷자석에 앉았다. 몇 시간을 서 있기만 해서 다리가 아팠지만, 진영은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켰다.


"집 주소가..."

"내비에 있어요."


진영이 집으로 등록된 주소를 누르고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동우는 눈을 감았다. 잠들었다 생각했는데, 잠시 후 동우가 입을 열었다.


"짜증났죠, 일 하느라 같이 놀지도 못하고."

"아니요."


동우가 피식 웃었다.


"그래도 그렇게 예쁜 여자들이 즐비한데, 같이 껴서 놀고 싶지 않았어요?"

"전혀요."


동우가 다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지만, 진영은 무시하고 내비게이션에만 집중했다. 잠시 후 다시 동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체력은 좋네요, 생긴 거 답지 않게. 지금쯤 뻗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루 이틀 밤 새는 건 일도 아닙니다."

"그래요? 난 지금 피곤해 죽을 것 같은데."

"그럼 그런 데 가지 말고 집에 가서 쉬지 그랬어요?"


잠시의 침묵 후, 조용한 목소리가 나지막히 말했다.


"혼자 있기 싫으니까."

"혼자가 아니잖아요, 내가 있으니까. 원하시면 밤새 같이 있어드릴 수 있어요."


동우가 다시 피식거렸다.


"작업 거는 거에요?"


뜬금없는 말에 진영은 백미러로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동우를 쳐다보았다.


"그게 아니라, 제 일이잖아요, 밀착 경호가."

"그렇게 생겨서 그런 말 하지 마요. 누가 들으면 게이인 줄 알아요."


뭔가 험한 말이 나갈 것 같아서 진영은 입술을 꾹 다물고 열까지 셌다. 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제 외모에 불만이 많으신가 봐요."

"그냥, 경호원은 딱 어떻게 생겼을 거다, 그런 이미지가 있는데, 전혀 맞지 않으니까."

"경호는 외모로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가요? 난 경호원이 무섭게 생겨야 믿음이 가던데..."


백미러로 다시 입을 다물고 잠을 청하는 것 같은 동우를 째려보다 진영은 빨간 불에 차를 멈춰세웠다. 어떻게 저렇게 사람이 얄미울 수 있지? 편견만 가득차서, 틀에 박힌 게 아니면 안 된다는 건가? 정말, 짜증나는 사람이었다.


차는 곧 저장되어 있는 주소인 한 아파트에 도착했다. 진짜 잠든 것 같은 동우를 깨우기 싫어서 주차장 경비에게 어디로 가야하는지 물어본 진영은, 경비가 알려준 자리에 주차를 하고, 시동을 껐다. 여전히 그 자세 그대로인 동우를 백미러로 쳐다보다, 차에서 내려 뒷자석 문을 열고 동우를 흔들어 깨웠다.


"다 왔어요, 일어나요."


눈을 뜬 동우는 한참 진영을 올려보다, 누군지 기억이 났는지 다시 피식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둘은 나란히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내일, 아니, 오늘은 몇 시쯤 올까요?"


진영의 질문에 동우는 딴 말로 대답했다.


"진짜 안 피곤해요?"

"괜찮습니다."

"진짜 체력이 좋은 거에요, 아님 오기 때문에 그러는 거에요?"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고 동우를 빤히 쳐다보았다. 동우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뭐,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에요."


의뢰인만 아니면... 이란 생각을 하며, 진영은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먼저 올라탔다. 동우가 따라 올라탔다.


"그래서, 몇 시요?"


약간 퉁명스러운 질문에 동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매니저한테 물어봐요."


진짜, 의뢰인만 아니면... 속으로 이를 갈며 진영은 동우와 같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문 앞까지 무사히 데려다주는 게 철칙이니까. 동우는 문 앞에 다다라서도 잠시 머뭇거리는 듯했다. 역시, 혼자 있는 건 무서워서 그러는 거였다. 혹시 지금까지 계속 진영을 도발했던 게, 같이 있는 시간을 늘리려는 수작이었나? 그 생각에 진영은 마음이 조금 풀렸다. 그래서 다시 먼저 말을 꺼냈다.


"원하시면 자고 가도 되는데요."


한쪽 눈썹을 올리는 동우에 진영은 서둘러 덧붙였다.


"작업 거는 거 아닙니다."


그리고, 조금 뜸을 들이고 말을 이었다.


"게이인 건 맞지만."


동우의 눈이 놀라 커졌다. 벙찐 표정에 벌린 입이 조금 웃겨서, 진영은 폭탄 발언을 하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한참 후에야 동우가 정신을 차리고 말을 꺼냈다.


"진짜에요?"

"네."

"그럼 다른 의미로 위험한 거 아닌가, 내가?"


나름 어색한 상황을 무마하려 농담이라고 꺼낸 듯한 동우의 말에, 이번에는 진영이 피식 웃었다.


"게이는 아무 남자나 덮칠 것 같아요? 동우씨 전혀 제 취향 아닌데요?"


다시 아까 그 표정으로 입만 뻐끔거리던 동우는, 잠시 후 도어락의 키패드를 열고 비밀번호를 찍었다.


"그냥, 아침에 와요."


그 말과 함께 사라지는 동우를 쳐다보며 진영은 왠지 이겼다는 생각에 기분이 조금 더 풀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이슬실비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