홧김에 바로 기숙사장을 시켜 찬식의 짐을 빼 어디 다른 방으로 보내버렸다.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던 찬식은, 기숙사에 돌아와 새로운 방으로 간 듯했다. 정말, 다시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화가 식자마자 보고 싶어 미치겠다는 거다. 어쩌자고 그런 짓을 했는지, 어쩌자고 그런 말을 했는지, 찬식이 틀린 얘기 한 게 아닌데, 정말 처음엔 개새끼 취급했고 심심한 마음에 새로운 놀거리로 오메가를 방으로 불렀던 건데, 뭘 잘했다고 화를 내고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그런 스스로가 죽일 만큼 싫었다. 찬식이 이제는 정말 홍빈을 평생 미워할 거다. 하지만, 미움 받아도 좋으니까, 싫어해도 좋으니까, 얼굴을 보고 싶다. 하지만, 지은 죄가 있어서, 얼굴을 보러 갈 수가 없다.


매일 그런 생각에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아버지가 뭐라든 수업도 안 가고, 홍빈은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다른 애들이 와서 문을 두드려도, 선생이 와서 나와보라고 해도, 다 무시하고 그렇게, 며칠을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찬식의 생각만 했다. 저지른 짓이 생각나, 먹은 것도 없는데 다시 토했다. 이러다 미쳐버릴 것 같아, 차라리 잘못했다고 싹싹 빌까, 생각하다가, 그래도 용서를 안 해주면? 이란 걱정에 다시 또 혼자 괴로워했다. 


그러기를 며칠, 결국, 정신을 놓았나 보다. 깨어나보니 양호실이었다. 링거를 맞고 있었다. 어질거리는 머리를 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간이침대 주변에 커튼이 쳐져 있어서, 주변에 누가 있는지 몰라 소리를 내 부르려는데, 갑자기 양호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 명이 소리를 낮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이야?"

"그렇다니까. 선배가 그러지 않아도 오메가 한 번 깔아보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선배 방으로 들어왔으니까. 요즘 매일 장난 아니래."

"미친 거 아냐? 그러다 이 홍빈한테 걸리면?"

"어차피 이 홍빈이 그 오메가 쫓아낸 거잖아. 버린 걸레, 누가 쓰던 말던."


홍빈은 떨리는 손으로 링거바늘을 잡아 뽑았다. 거칠게 뽑아낸 바늘 때문에 살이 찢어졌다. 걷은 소매가 상처에 닿아 빨간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커튼을 젖혔다. 옆 간이침대에서 몰래 핸드폰게임을 하던 남학생 둘이 고개를 들어 홍빈을 쳐다보았다. 얼굴이 순식간에 하얘졌다.


"어디야?"

"네?"

"찬식이 방, 어디냐고."


낮은 목소리로 묻는 홍빈이 무서웠는지, 둘은 바로 방 번호를 얘기했다. 홍빈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학교 건물에서 나와, 기숙사 건물로 뛰어갔다. 밖에가 어두운 걸로 보아, 이미 저녁인 듯 했다. 양호실의 그 둘은, 야자를 몰래 빠져나왔을 터였다. 그러면, 설마 홍빈이 불러도 야자를 빠지지 않던 찬식이 방이 아니라 교실에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잠시 머뭇거렸지만, 선배가 호출하자 바로 가던 찬식도 생각이 나서, 그냥 기숙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으로 3층까지 단숨에 올라가, 방문을 열었다. 잠겨 있었다.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문을 발로 찼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두 번만에 문이 열렸다. 방 안 한쪽 침대에 찬식이 누워 있고, 그 위에 다른 사람이 몸을 숙이고 있었다. 


순간, 눈에 빨간 필름이 씌인 것처럼, 다 벌겋게 보였다. 다음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 얼굴의 형태를 거의 알아볼 수 없는 선배가 누워 있고, 홍빈은 그 사람 위에 앉아 계속해서 멱살을 잡고 주먹질을 하고 있었고, 찬식은 뒤에서 홍빈을 잡고 말리고 있었다.


"그만해! 그러다 죽어!"

"죽여버릴 거야! 이 새끼 내가 죽여버릴 거라고!"

"이 홍빈!"


찬식이 홍빈의 허리를 잡아 일으켰다. 홍빈이 버둥거렸다.


"그러다 정말 죽는다고! 그만해."


홍빈이 갑자기 찬식의 팔을 풀고 찬식을 한쪽으로 밀쳤다.


"뭐야, 너? 그새 정이라도 들었냐?"


찬식이 한숨을 쉬었다.


"미친놈아. 저 새끼 죽던 말던 내가 무슨 상관이야? 네가 살인자 될까 봐 그런다, 됐냐?"


눈 앞에 붉은 필름이 스르르, 사라졌다. 찬식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고 다시 꼭지가 돌 뻔했지만, 그냥 풀어진 셔츠 단추를 채워주었다. 손에 난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찬식의 셔츠에 묻었지만, 둘 다 신경도 쓰지 않았다.


"우리 방으로 가자."


찬식에게 한소리 들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찬식은 의외로 순순히 따라왔다. 홍빈이 문가에 서서 피를 흘리며 신음을 하는 선배를 쳐다보았다.


"또 한번 얘한테 손대기만 해, 내가 너 죽여버리고 네 사돈의 팔촌까지 망하게 만들 거니까."


과연 그 상태로 그 협박을 알아들었을 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찬식의 손을 잡고 방으로 향했다.


방으로 돌아오자 찬식은 홍빈이 차마 다시는 볼 수 없어서 없앤 소파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않고, 구급상자를 찾아왔다. 바닥에 앉아 홍빈을 손짓해 옆에 앉게 한 뒤, 홍빈의 터진 주먹을 치료해주기 시작했다. 홍빈은 그런 찬식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멍청한 새끼. 방에서 쫓아냈으면 신경 끄고 살 것이지, 왜 거길 와?"

"잘못했어."


찬식이 잠시 홍빈을 올려다보고, 다시 상처를 소독했다. 아파서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홍빈은 입을 열어 말을 계속했다.


"찬아,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여긴 또 왜 이래?"


피가 묻은 소매를 걷고 홍빈이 바늘을 너무 세게 뽑아 찢어진 상처를 살펴보았다.


"링거바늘..."

"뭐야, 너 아팠어?"


그 목소리가 조금은 걱정하는 것 같아, 홍빈은 다시 말을 꺼냈다.


"찬아, 내가 진짜 염치 없는 거 아는데, 제발 나 좀 용서해 줘."


상처를 소독하고 반창고를 붙이는 내내, 찬식은 말이 없었다. 그렇게, 오른손과 왼팔의 상처를 다 치료하고, 찬식은 구급상자를 닫았다.


"나도 뭐 제대로 알고 한 건 아니라서, 불안하면 양호실 가."

"찬아.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또 똑같은 말을 하는 홍빈에, 찬식은 한숨을 쉬었다.


"너 지금 뭘 어쩌자는 거야?"

"응?"

"나한테서 원하는 게 뭐냐고."


찬식이 조금은 누그러진 것 같아, 찬식의 손을 끌어다 잡고 그 얼굴을 쳐다보았다.


"네가 날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


홍빈은 진지하게 한 말인데, 찬식은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웃는 찬식에 좀 더 용기를 내, 찬식의 손을 더 꽉, 잡았다. 상처가 벌어졌는지 반창고에 다시 피가 배어나왔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네 사촌형 좋아하는 거 뭐라고 안 할 테니까, 나도 조금은 좋아해 줘."


찬식이 잠시 홍빈을 쳐다보았다.


"멍청한 새끼."


저 말의 의미를 모르겠어서, 홍빈은 계속 찬식을 쳐다보았다.


"네가 나한테 그런 짓을 했는데도 내가 다시 여기 왔잖아. 그걸 보고도 몰라?"


찬식의 말에 홍빈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래도, 차마 찬식에게 더 다가가지는 못하고, 손을 끌어다 입맞췄다. 찬식이 그런 홍빈을 묘한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한숨을 쉬며 옆으로 가까이 와 앉았다. 괜찮다고 하는 것 같아서, 찬식을 품에 안았다.


"밥도 안 먹고 살았냐? 얼굴이 왜 그 따위야?"


타박하는 말과는 다르게 허리에 팔을 둘러주는 찬식이 고마워서, 더 세게 안았다.


"네가 곁에 없었으니까."

"지가 쫓아내 놓고는, 별..."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얄미운 건 얄미운 거라서, 조금 망설여졌지만, 저런 얄미운 말을 하는 입을 입술로 막았다. 찬식이 혀를 받아주어, 안도했다. 한참을 그렇게 찬식의 혀를 감고 빨다가, 입술을 떼고 귀밑에, 그리고 초커 바로 위의 뒷목에 입을 맞췄다.


"찬아."

"왜."


초커 밑에 혀를 넣어 핥았다.


"나한테도 기회를 줘."

"뭐?"

"널 가질 수 있는 기회."


찬식이 홍빈을 밀어냈다. 잠시, 그렇게 좀 떨어져 홍빈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마치 감정을 하는 눈빛 같아서, 홍빈은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너 하는 거 봐서."

"정말?"


단칼에 거절할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기뻤다. 찬식은 웃는 홍빈을 잠시 노려보았다. 바로 웃음을 거뒀다.


"너, 나 또 아프게 할 거야?"

"아니, 절대."

"나 개새끼 취급 할 거야?'

"절대로, 다시는 안 해."

"화난다고, 열받는다고, 사람 죽도록 패고 다닐 거야?"

"누가 널 건들면."


심문하듯 물어보던 찬식이 피식, 웃었다. 홍빈의 머리를 툭, 치고 일어섰다.


"뭐, 어떻게 될지는 두고 보자."

"언제까지?"


일어난 찬식을 다시 잡아끌어 앉혔다.


"언제까지 두고 볼 건데?"


찬식이 다시 홍빈을 감정하는 듯 쳐다보았다.


"너 데리고 다니기 쪽팔리지 않을 정도가 되면."

"그게 언젠데?"

"그걸 내가 알아? 너 하는 거에 달린 거지?"


찬식이 다시 일어섰다.


"왜, 어디 가는 거야?"

"씻으러. 찝찝해."


찬식이 옷을 하나씩 벗으며 화장실에 들어가는 걸 지켜보던 홍빈이 결국 따라 들어갔다.


"같이 씻자."

"아이씨, 너 내가 기껏 치료해줬는데, 상처에 물 들어가잖아."

"괜찮아, 같이 씻자."

"하... 좋은 말 할 때 나가라."

"찬아..."

"아오, 쫌!"

"알았어."


결국, 쫓겨난 홍빈은 닫힌 화장실 문 앞에서 생각했다. 뭔가, 지금 상황이 처음 예상했던 것과 많이 다른 것 같다고.










이슬실비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