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홍빈은 혼자 눈을 떴다. 찬식은 방으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서둘러 씻고 간단한 아침을 먹고 교실에 가니, 찬식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홍빈을 보자마자 손부터 내밀었다.


"숙제."


아오, 정말. 약간 치밀어오르는 걸 참으며 홍빈은 약속대로 충신들 중 한 명의 숙제를 찬식에게 가져다 주었다.


"넌 안 베껴?"


열심히 베끼던 찬식이 물었다. 그제서야 찬식에게 공책을 건네고 옆에 서서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난 그런 거 안 해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하거든?"

"잘났다."


다시 홍빈에게 신경끄고 열심히 베끼고 있는 찬식에 괜히 약이 올랐다. 손을 내밀어 초커를 만지작거렸다.


"여기에 목줄 달면, 개처럼 끌고 다닐 수 있나?"

"한 번 해 보든지."


찬식이 무심한 말투로 대꾸했다.


"네가 내 개새끼라고 모두에게 다 알리고 싶어서 말야."

"그럼 방송을 하든지."


도발에 넘어오지 않자, 홍빈은 이번에는 찬식의 귀를 만지작거렸다.


"너 어제 숙제해야 한다고 그렇게 난리치더니 이렇게 베껴도 돼?"

"해서 내기만 하면 되잖아."

"난 무슨 또 범생이라고."

"우리 사촌형 이름 하나로 여기 왔는데, 형 이름에 먹칠 하면 안 되잖아."


계속 무심하게 대답하던 찬식이 고개를 들어 홍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응?"

"개새끼한테 물리고 싶지 않으면 손 치워라."


바로 귀에서 손을 떼고 웃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역시, 개새끼란 말에 기분이 나빴던 거다. 뭘 해도 무심한 녀석인 줄 알았는데, 신경을 건드렸다는 생각에, 기분이 좀 좋아졌다.










점심 시간이 되자, 홍빈이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채 말하기도 전에 찬식이 사라졌다. 식당에 갔으려니, 하고 서둘러 갔는데,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는지 애들을 시켜 한참을 찾았다. 곧, 반 애들 중 한 명한테 3학년 알파 선배의 호출을 받고 불려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제 찬식에게서 들은 말이 기억났다. 오메가라면, 깔고 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말. 설마 싶었지만 다시 애들을 풀어 찾으라고 시켰다. 그리고 나서도, 결국 기다리지 못하고, 홍빈도 직접 찾아나섰다. 


하지만, 결국 점심 시간이 다 가도록 찾지 못하고, 수업종이 쳤다. 교실에 돌아오니, 찬식은 벌써 돌아와 있었다. 약간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순간 열이 받았다. 수업하러 들어오는 선생을 무시한 채, 찬식의 자리로 가 손목을 잡고 끌고 나왔다. 찬식은 별 말 없이 따라나왔다. 단둘이 얘기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양호실로 들어가, 양호선생을 내쫓고 문을 안에서 잠갔다. 찬식은, 계속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그러는 홍빈을 쳐다보고 있었다. 홍빈이 돌아서자,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셔츠 단추를 푸르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야?"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찬식의 손이 멈췄다.


"하고 싶어서 끌고 온 거 아니야?"

"아이씨, 너는!"


당장이라도 찬식의 얼굴에 주먹을 날릴 것 같아, 잠시 심호흡을 했다.


"그거 아니면 뭐든 나중에 해. 나 수업 들어가야 돼."


옆을 지나쳐 가려는 찬식을 다시 밀어 간이침대에 앉혔다.


"너, 점심시간에 어디 갔었어?"

"3학년 선배한테 불려갔어."

"잤냐?"

"응."


뭐라도 부수고 싶어서 양호선생 책상 위에 있는 램프를 바닥에 던졌다. 찬식은 그런 홍빈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감정변화가 없는 그 표정에, 더 화가 났다. 찬식의 앞에 와 서서 그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넌 어떻게 그렇게 쉽냐? 자자고 그러면, 다 자는 거야?"

"그래야 편하니까."

"뭐?"


찬식은 여전히 별 감정 없는 얼굴로 말했다.


"오메가란 그런 거야. 내가 반항하면 뭐? 내가 저항하면 뭐? 어차피 나만 피보고 나만 힘들고, 결국 변하는 건 없어."

"그게 무슨..."


찬식은 이해가 안 된다는 홍빈의 표정에 여전히 감정이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나 좋다고 쫓아다니던 옆반 알파한테 결국 당해서 선생한테 갔거든? 뭐랬는지 알아? 거짓말하지 말라고, 알파가 뭐가 아쉬워서 너같은 오메가한테 목매냐고, 네가 꼬리친 거 아니냐고 그러더라. 난 저항하다 맞아서 얼굴에 멍이 들고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도. 그리고, 결국 내가 강제전학 갔어. 새로 간 학교에서도 비슷한 일 있었고, 비슷하게 처리됐고, 또 딴 데로 보내졌고. 어차피 내 편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차라리 대라면 대주고, 다리 벌리고, 그러는 게 편해."


홍빈의 손이 떨렸다. 다시 책상 위에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던졌다. 도대체 뭐가 더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찬식의 저 감정 없는 표정과 말투인지, 아니면 찬식이 그런 마음인지도 모르고 어제 방에 와서 옷부터 벗던 찬식을 재밌다고 생각한 자신인지. 하지만, 여기서 동정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리고, 이미, 관심이 생겼다. 아니, 관심 정도가 아니다. 소유욕이다. 이 녀석을 갖고 싶어졌다.


어느 정도 흥분이 가라앉자, 다시 찬식의 앞에 와 섰다.


"그래서, 여기서도 그럴 거야?"


홍빈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무섭지 않은지, 찬식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 학교에서는 더 그래야지. 절대로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을 거니까. 절대로 강제전학 가지 않을 거야. 죽은 듯이 학교 다니다가, 졸업할 거야. 안 그러면, 사촌형을 볼 면목이 없어."

"넌 내 개새끼잖아."


홍빈의 말에 찬식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뭐?"

"그러니까, 이제 다른 사람들하고 그러지 말라고. 넌 내꺼니까."

"그래서 화가 난 거야? 내가 너 아닌 사람하고 자서?"

"그래. 내 개새끼가 다른 사람 손 타는 거, 싫어."


찬식이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네가 관리를 잘해야지."

"뭐?"


이번에는 찬식의 말에 홍빈이 어이가 없었다.


"내가 개새끼고, 네가 내 주인이면, 네가 다른 사람이 나 못 데려가게 관리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런데,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홍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부터 내가 너 관리 잘 할게."

"그럼, 된 거지?"


찬식이 다시 일어섰다. 홍빈이 다시 찬식을 밀어 앉혔다. 그리고, 찬식의 양 옆에 손을 짚고 기대어, 찬식과 눈높이를 맞춰 찬식의 눈을 깊게 쳐다보았다.


"너, 또 한번 이런 일 있으면, 나 진짜 가만 안 있는다."

"그럼 그만큼 네가 나 관리 잘 해야겠네."


찬식은 다시 어깨를 으쓱하며 홍빈을 밀치고 다시 일어섰다. 이번에는 찬식이 가게 내버려두었다. 양호선생이 돌아오고, 부서진 물건들을 보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한 마음에 지갑에서 돈을 꺼내 좀 쥐어주고 나왔다.


그날 바로 찬식을 홍빈의 방으로 데려왔다. 교실에서도 찬식의 자리를 홍빈의 옆으로 옮겼다. 점심 시간에 학생 식당에서도 찬식과 나란히 앉아 점심을 먹었다. 곧, 학생들은 깨달았다. 공 찬식을 건드리는 건, 이 홍빈을 건드리는 것이라고. 더 이상 찬식을 호출하는 사람은 없었다. 찬식을 호출했던 3학년 선배는 두려움에 떨다가 결국 전학을 갔다. 


그렇게, 모든 학생들이 찬식이 홍빈의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 맞게 대우했다. 더 이상 수군거리는 것도, 오메가라 손가락질하는 것도, 없어졌다. 왕의 권위에 맞설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딱 한 사람 빼고.










"윽."


홍빈이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삼켰다. 찬식이 밟고 있던 홍빈의 발을 아예 짓뭉개버릴 듯, 더 세게 밟고 비볐다. 홍빈이 손을 들어 항복한다는 표시를 하자, 발을 떼었다. 홍빈은 좀 억울했다. 수업 시간에 찬식의 발을 끌어다 자기 발 사이에 끼우고 장난 좀 친 것 가지고. 발에 멍이 시퍼렇게 들었다. 그 후로, 다시는 수업 시간에 건들지 않았다.


애들하고 같이 거실에 모여 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옆에 앉아 있는 찬식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귀밑을 지분거렸다. 찬식이 갑자기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던졌다. 애들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홍빈 만큼은 아니었다.


"왜,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냐? 아예, 얘네 앞에서 해."


결국 다른 애들을 쫓아냈다. 그 후로, 다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지분거리지 않았다.


밤에, 책상에 앉아 숙제를 하고 있는 찬식 옆에서 자꾸 알짱거렸다. 아예 의자에 앉은 찬식을 앞으로 밀고, 그 뒤에 끼어들어가 앉아 찬식의 허리에 한 팔을 두르고 다른 손으로 셔츠 단추를 풀렀다. 드러난 어깨를 깨물고, 핥았다. 계속 참으며 숙제를 하던 찬식이 결국 펜을 책상 위에 던졌다.


"그래, 네 맘대로 해. 남이야 성적 떨어져서 학교 짤리든 말든."


이미 반쯤 벗겨진 셔츠를 벗어 바닥에 던지고, 바지와 속옷까지 벗어던지더니 침대에 누워 이제는 익숙한 그 자세를 잡고 홍빈을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찬식이 저 내가 대주고 만다, 라는 자세를 잡는 걸 싫어하게 된 홍빈이 결국 안 그러겠다고 했다. 그 후로, 찬식이 숙제를 하는 동안에는 옆에 가만히 앉아 기다렸다. 그게 너무 지루해서, 결국 같이 앉아 숙제를 했다. 그래야 시간이 좀 더 빨리 가니까.


홍빈이 그래도 찬식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들은 이유는, 나중에 그에 대한 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교실에서 건들지 않으면, 쉬는 시간에 좀 으슥한 곳에 가서 입술을 겹치면 군말 않고 바로 입술을 열고 받아주었다. 다른 애들 앞에서 지분거리지 않으면, 애들이 간 후에 스스로 홍빈의 옷을 벗겨주고, 소파에서 바로 안게 해주었다. 숙제를 끝낼 때까지 기다리면, 침대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홍빈의 무릎 위에 올라와, 목에 팔을 감고 먼저 입맞춰 주었다. 홍빈이 같이 숙제를 하면, 으레 먼저 끝내는 찬식이, 홍빈이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기가 먼저 홍빈을 침대로 끌고 갔다. 그런 날은, 웬만한 걸 다 받아주었다.


그러다 보니, 홍빈 역시 찬식 만큼 착실한 학생이 되어갔다. 찬식이 절대로 빠지지 않으니까, 홍빈 역시 야자를 빠지지 않았고, 시험이 있으면 공부가 끝날 때까지 만지지 못하게 하니까, 할 일 없는 홍빈이 찬식 옆에 앉아 덩달아 공부했고, 그러다 보니 아버지가 조작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성적이 올라갔다. 그래서, 아버지도, 다른 선생들도, 둘의 관계를 눈감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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