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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진영] Man-eater 1

#신영 #신우 #진영 #Alternate Universe (AU) #Drama

거의 5년만에 제대로 된 휴가를 내고 해외여행을 다녀온 동우는, 출근하는 길이 기자들로 꽉 막힌 것을 보고 또 뭔가 사건이 일어났다, 짐작했다. 강력계 형사로 잔뼈가 굵은 지 벌써 5년이다. 이제 이런 것만 보면, 어디 또 꽤 시끄러운 살인사건이 일어났겠거니, 한다. 하지만 이렇게 기자들이 많이 몰린 건 처음 본다. 그만큼 대단한 사람이 죽었거나, 그만큼 끔찍하게 죽었거나, 둘 중 하나다.

기자를 사이를 뚫고 경찰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동우가 속한 강력 2팀이 있는 3층까지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절대 필요 이상으로 움직이지 않는 동우여서, 웬만하면 계단은 쓰지 않는다. 한참만에야 강력 1, 2팀이 같이 쓰는 사무실에 들어섰다. 신기하게도 아무도 없다. 다들 어디 간 거지? 뭔가, 진짜 큰 사건이 일어났나?

"선배! 왜 이제야 와요!"

2팀에 얼마 전 들어온 파릇파릇한 막내, 이 순경이 뛰어 들어온다. 입이 근질근질하다는 표정이다.

"왜, 무슨 일인데?"
"전화도 꺼놓고! 우리 어제부터 완전 난리났는데!"
"그러니까 뭐냐고."
"살인사건이요!"

동우는 이 순경을 잠시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야, 우리가 살인사건 한두 개 다뤄?"
"이건 완전 드라마라니까요!"
"뜸 들이지 말고 말해, 그럼."
"자백을 했어요!"

하여튼, 녀석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야, 누가 죽었는데 누가 죽였다고 자백을 했는지 똑바로 말 안 해?"
"왜, 그 반도체 회사, 유명한 거! 거기 회장이 어제 오후 죽었는데, 바로 그 사람이 와서 자기가 죽였다고 자백했어요."
"그 사람이 누군데?"
"그 회장 애인."

애인? 그러니까, 뭐, 늙은이 옆에 붙어 있던 꽃뱀이란 말이겠지?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이 난리야?"
"그 애인이, 남자예요!"
"뭐?"

아... 왜 이제야 이렇게 기자가 몰렸는지 알겠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중소기업보다는 큰 회사 회장이 남자 애인이라... 그것도 자기가 죽였다고 자기 발로 와서 자백을 했다니. 진짜 드라마가 따로 없다.

"우리 팀이 맡은 거야?"
"네, 우리가 제일 먼저 현장에 나갔거든요."

이 순경은 아주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이다. 하긴, 강력 2팀에 들어와서 한 거라고는 서류 정리와 복사본 만들기, 커피 뽑아오기랑 청소, 그런 것밖에 없었으니, 이렇게라도 일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면야, 뭐.

"그럼, 어디 네가 말하는 그 남자 애인 구경이나 가 볼까?"
"아, 그런데 선배, 조심하세요."

발걸음을 옮기는 동우 옆을 따라오며 이 순경을 소곤거린다.

"뭘?"
"그 남자, 완전 남자 홀리는 선수래요. 지 선배도 그 사람 진술서 받으려고 같이 있었는데, 조금 있다가 도저히 더 같이 못 있겠다고 도망나왔어요."
"에이, 설마."
"장난 아니라니까요."

지 선배는 2팀에서도 제일 우악스럽고 감수성은 쥐똥만큼도 없기로 유명한 아저씨인데, 무슨 남자랑 같이 있었다고 그런 일이... 하여튼, 이 순경은 경찰치고는 너무 상상력이 풍부하다.

하지만 이 순경이 한 게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취조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팀장이 멀리서 동우를 보고 반가워했다.

"아, 신 형사야, 너 마침 잘 왔다. 네가 좀 들어가라."
"왜요? 자백 했다면서요? 그냥 진술만 받아적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아, 그게 안 되니까 이러지! 지 형사 이 새끼는 더 있다가는 마누라고 뭐고 덮쳐버릴 거 같다고 도망나왔고, 김 형사 이 머저리는 저 놈 얼굴에 정신 팔려서 하는 말을 하나도 못 받아적겠단다. 그나마 주 형사라도 있었으면 걔 시키겠는데, 하필 이런 때 진급해서 다른 데 갈 게 뭐야? 그러니까 네가 제발 좀 들어가라. 너 어제까지 여자친구랑 여행 갔다왔다며. 너는 홀리지는 않겠지."

누가 형사 아니랄까 봐 동우가 말도 안 하고 갔는데 사생활을 다 꿰뚫고 있다. 그나저나, 점점 더 궁금해졌다. 도대체 뭘 어떻게 생겨먹은 남자길래 유부남인 2팀 선배들이 다 저 모양인지.

"팀장님은요? 팀장님도 그래요?"
"야, 말도 마라. 우리 마누라보다 백 배, 천 배는 더 예뻐."
"형수님 들으면 아주 맞아죽을 소리를..."
"그래도 사실이야. 솔직히 우리 딸내미보다도 훨씬 예뻐."
"지영이가 퍽이나 좋아하겠네요, 아빠가 그런 소리 하고 다니는 거."
"너도 저기 들어가서 멀쩡하게 나오나, 내가 두고 본다."
"아, 저 아직 사건 기록도..."

뭐라 더 말하기도 전에 팀장이 취조실 문을 열고 동우를 밀어넣었다. 출근하던 모습 그대로였던 동우는 짜증을 내며 메고 있던 가방을 한쪽에 던져 놓고 그 위에 자켓까지 벗어 던졌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벌써 취조실에 용의자를 데려다 놓았다 보다.

"아, 미안합니다. 내가 좀 정신이 없어서..."

인사하며 그 앞에 앉아 얼굴을 보는데, 순간 말문이 막혔다. 지금까지 들은 얘기가 얼추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남자보다 얼굴선이 곱다. 피부가 하얗고 좋다. 어제 자백하러 들어왔다고 했으니, 밤을 유치장에서 보냈을 텐데, 수염도 자라지 않았다. 옆으로 찢어진 눈이 뇌쇄적이다. 입술이 뭔가 바른 것 같지 않은데도 붉다. 짓는 표정이 퇴폐적이다. 목도 가늘고, 몸도 가늘고, 손가락 역시 가늘고 길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색기가 줄줄 흐른다. 어느 것 하나, 남자에게 해당되는 설명이 아닌데도, 분명 남자다.

그래. 남자다. 그러니까, 이상한 생각이 드는 게 더 이상한 거다. 동우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잡고, 용의자 앞의 랩탑을 열었다. 랩탑 너머로 남자의 시선이 느껴졌다.

"내가 요 며칠 어디 갔다 와서, 잠깐 사건 기록 좀 볼게요."

일부러 앞의 남자에게 신경을 끄려 노력하며 로그인을 하고 사건 기록을 훑기 시작했다.

뭐, 별다른 얘기는 없다. 119 전화를 받고 출동했을 때, 72세의 회장은 이미 죽어 있었고, 시체와 같이 있던 사람이 경찰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본인이 죽였다고 자백을 했단다. 부검 결과 독살로 판명됐고, 용의자의 진술서만 받으면 바로 검찰에 넘길 수 있을 만큼 깔끔한 사건이다.

지금까지 선배들이 쓴 진술서를 읽어보았다. 형편없다. 정말, 저 남자에게 홀린 건지, 뭐 하나 제대로 해 놓지를 않았다. 하는 말 받아적는 게 뭐가 어렵다고,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건지. 결국, 동우는 다시 처음부터 쓰기로 했다.

"벌써 여러 번 한 것 같은데 미안합니다. 뭐가 잘 정리가 안 되어 있네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네, 상관없어요."

남자가 동우를 지그시 쳐다본다. 동우는 일부러 시선을 내려 피하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름?"
"정진영."
"생년월일?"
"91년 11월 18일."

동우와 동갑이다. 더 어릴 줄 알았는데. 그렇게 진영에 대한 기본사항을 채운 뒤, 본격적인 질문으로 넘어갔다.

"박 회장과의 관계는?"

진영이 잠시 멈칫했다.

"도... 동거인."

뭐, 애인이나 동거인이나. 동우는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건 당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시죠."

진영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 말을 시작했다.

"오후 네 시쯤, 늘 같이 차를 마시는데, 그날 차에 독을 탔습니다. 회장님은 아무런 의심 없이 차를 마시고, 바로 의자에서 쓰러지시고, 경련하신 다음 돌아가셨어요. 전 독을 탄 차를 다 화장실에 버리고, 119에 전화했어요."

사람을 죽인 얘기를 아무런 감정 없이, 대사를 읊듯 말한다.

"어떤 독이었죠?"
"처... 청산가리요."
"왜 죽였죠?"
"얼마 전, 회장님께서 유언장을 수정하셨다는 걸 알았어요. 전재산을 제게 남겼다고. 그래서 범행을 결심했습니다."

여전히 외운 대사를 말하는 투다. 동우는 증거 기록 파일을 열어, 증거물 중 박 회장의 유언장 스캔본을 찾았다. 보니 진영의 말대로 전재산을 진영에게 남겼다.

"그럼 돈이 탐나서 죽였다는 거군요?"
"네? 네."
"그러면 왜 굳이 자백을?"

진영이 다시 망설였다.

"막상 일을 저지르고 나니, 후회가 되서, 무서워져서... 도저히 그렇게 살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분명 진영의 얼굴은 진심으로 슬퍼 보이는데, 왠지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다 대본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뭐, 일단은 알겠습니다. 진술서는 이 정도면 된 것 같군요."
"이제 끝난 건가요?"

진영이 한시름 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게 제일 이상하다.

"아뇨. 지금 하신 말씀 중 확인할 게 좀 있어서요."
"네?"
"아, 뭐, 별다른 건 아니고, 그래도 확인은 해 봐야 하니까요."
"제가 자백했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다 끝난 거 아닌가요?"

동우는 잠시 진영을 관찰했다. 너무 수상쩍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가 켕긴다.

"제가 좀 꼼꼼한 성격이라..."

랩탑을 닫고 일어나 자켓을 입었다.

"제발, 저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그러지 않아주시면 안 될까요?"

진영의 말에 동우는 다시 돌아서서 진영을 내려다보았다. 진영이 간절한 눈길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얘긴지..."
"제가 죽였어요. 정말이에요. 그러니까, 그냥 그걸로 끝내면 안 되겠냐구요."

그런 식으로 눈물까지 그렁그렁해 가며 말하는데, 퍽이나 여기서 그만두겠다. 정말, 해도해도 너무 수상쩍다. 아무리 봐도, 연기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동우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감을 제일 믿어왔다.

"그쪽이 뭐라고 하던, 확실한 게 좋으니까요."

뭔가 더 말하려는 진영을 무시하며 동우는 가방을 들고 취조실에서 나왔다. 그 앞에서 기다리던 팀장이 바로 동우를 끌고 옆 취조실로 데려갔다.

"그래, 어떻디?"
"뭐가 어때요, 그냥 남자던데."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단 말야?"
"선배들이 요즘 너무 굶은 거 아니에요?"
"이 새끼 말하는 뽄새 하고는!"

팀장에게 뒤통수를 맞고 동우가 욱했다.

"그래봤자 지 말대로라면 살인자 새낀데, 거기에 꼴리는 선배들이 더 이상하거든요?"
"아, 이 새끼가 정말..."
"그나저나, 진술서 받고, 다 저장해서 올렸는데..."
"그래? 그럼 됐다. 빨리 이거 검찰에 넘기자. 쟤 우리 유치장에 오래 둬봤자 괜히 안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아."
"그런데 뭔가 이상해요."
"아, 또 뭐가!"

원래 뭔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면 끝까지 파서 밝혀야 직성이 풀리는 동우의 성격을 2팀원들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너무 꼼꼼해 일을 만들어 하는 성격이고, 제발 그만 하라고 말려도 소용이 없어서 5년 동안 휴가 한 번 제대로 가지도 못했던 거다.

"아무리 봐도 연기 같단 말이죠."
"야, 자백했잖아. 그냥 그걸로 넘어가자, 쫌!"
"이상하단 말이에요. 꼭 다 준비한 대사처럼 말을 해요."
"내가 들어갔을 땐 그런 느낌 없었는데..."
"남자새끼한테 홀려서 그런 거 알아차릴 정신머리나 있었겠어요?"
"아, 이 싸가지 없는 새끼."

다시 한 번 뒤통수를 맞았지만, 이번엔 좀 덜 억울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우선 주변인들 좀 만나고,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고, 그럴 시간을 좀 주세요."
"신 형사야! 동우야! 제발, 그냥 한 번 넘어가면 안 되겠냐?"
"너무 찜찜하단 말이에요. 다른 사람 때문에 뒤집어 쓰려고 그러는 거면, 진짜 살인자 놓치는 거잖아요. 저 그 꼴 못 봐요."
"너도 그 놈한테 홀려서 이러는 거지? 괜히 어떻게든 트집 잡아서 감옥 안 보내려고?"

동우는 팀장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팀장님이랑 선배들하고는 다르게 전 전혀 굶주리지 않아서요. 저딴 놈한테 홀릴 일 없는데요?"
"아오, 저 재수없는 새끼."

뒤통수로 날아오는 손을 덩치에 비해 잽싸게 피했다.

"그러니까 저 시간 조금만 주세요. 진짜 저 놈이 한 짓이면, 바로 밝혀지겠죠."
"하여튼, 저 새끼 없는 일까지 만들어요."

결국 포기한 팀장을 뒤로 하고, 동우는 취조실에서 나왔다. 핸드폰으로 로그인을 하고 조사 기록을 열었다. 오늘, 바쁜 하루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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