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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진영] Deep in the Woods 3 - End

#신영 #신우 #진영 #Alternate Universe (AU) #Fantasy

아침 일찍 일어난 시누는 오늘도 진을 만나러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오늘은 숲 한켠에 숨어 있는 가을에만 피는 늦장미를 따다 줄까, 생각하며 집을 나서는데,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도 거기 가요?"

돌아보니 챈시다. 시누의 집 나무줄기에 기대 서 있다. 속으로는 놀랐지만 엘프 특유의 평정심을 유지하며 되물었다.

"어디?"
"그 나무 정령 있는 곳."

이번에는 놀란 걸 숨기지 못하고 챈시에게 성큼 다가갔다.

"네가 어떻게 알아, 내가 그곳에 가는 걸."
"따라가 봤으니까요. 사냥 대회 다음날."

남의 사생활을 함부로 엿본 주제에,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다.

"네가 무슨 권리로?"
"솔직히 말하면 여름 내내 매일 어딘가로 없어지길래, 이번 사냥대회를 위해 특훈을 하느라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냥대회 때 오지 않았잖아요, 시누가. 그래서, 궁금해졌어요. 도대체 뭐가 그렇게 중요하길래 얼마 전까지 목숨걸던 사냥대회까지 빠졌는지."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닌 것 같은데?"

평생 이렇게 화가 났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엘프의 평정심이고 뭐고, 한 대 패주고 싶다. 챈시는 어깨를 으쓱했다.

"거기는 저도 활 만들 나뭇가지를 구하러 몇 번 갔던 주목나무 숲이에요. 그 앞에 은사시나무 숲이 있는 것도 알았구요. 하지만 나무 정령은 처음 봤어요. 이 숲의 정령들은 대부분 오래 전에 잠들었다고 들었는데, 젊은 정령인가 봐요."

이번엔 화를 주체 못하고 또 한 걸음, 챈시에게 다가갔다. 챈시는 코앞의 시누의 얼굴을 보면서도 표정 변화가 없다.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신경 꺼."

낮은 목소리로 경고한 뒤, 뒤돌아서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늘은 마을 사냥을 가는 날이에요. 그 나무 정령을 좋아하는 건 알겠지만, 마을의 일까지 빠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누는 어쨌든 마을의 일원이잖아요."

아, 벌써 날짜가 그렇게 지났나? 그러고 보니, 오늘 늦장미를 꺾으러 갈 생각이었지. 이제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겨울이 오기 전에, 마을에서는 겨울 동안 먹을 고기와 입을 털옷을 마련하기 위해 며칠간 사냥을 나간다. 챈시 말대로 이건 빠질 수 없는 거다. 하지만, 챈시의 저 말은 그냥 못 넘어가겠다.

"내가 그 나무 정령을 좋아한다니, 그게 무슨..."
"그럼 아니에요?"

갑작스런 돌직구에 할 말이 없다.

"지난 몇 달 동안 매일 보러 가지 않았어요? 좋아하지 않으면, 왜 매일 만나러 가요?"

저 건방진 놈의 입을 다물게 하고 싶은데, 뭐라고 대답해야 될지 모르겠다. 정말, 왜 그동안 매일 만나러 간 거지? 처음에는 늘 혼자 있는 진이 불쌍해서였다. 시누의 얼굴만 보면 너무 반가워하는 게,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는지 보이는 것 같아 하루라도 안 가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불쌍해서, 필요 이상으로 움직이기 싫어하는 시누가 숲 이곳저곳을 누비며 진이 보지 못했을만한 꽃들과 나뭇잎, 과일 등을 모아 가져다 줬던 걸까?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어쩌면, 오늘 진을 보러 갈 수 없다는 게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챈시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채, 다시 집으로 들어가 활을 하나 놓고 나왔다. 손에 활을 하나만 들고 있으니, 뭔가 허전했다.








며칠간의 사냥 끝에, 마을의 엘프들이 겨우내 필요한 식량과 털가죽을 충분히 모았다. 그동안 진을 가르쳐 줄 때 빼고는 활쏘기 연습에 좀 소홀해서, 예전보다는 조금 둔해졌지만, 시누 역시 사냥에서 큰 활약을 했다. 할 만큼 했다는 생각에, 시누는 이제 마음 편히 진을 다시 만나러 갈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뻤다. 사실, 사냥 하는 내내 진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려 놓칠 뻔한 사슴과 멧돼지가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다행히 몇십 년 동안 해온 활쏘기가 이제는 습관이 되어, 몸이 먼저 반응해 그렇게 큰 실수는 하지 않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점심을 챙기고 활과 화살을 챙겨 집을 나섰다. 이번에는 아무 방해도 없이 마을에서 나올 수 있었다. 며칠 전 늦장미를 꺾어다주려 한 생각이 나서, 좀 돌아가는 길이지만 늦장미 넝쿨이 우거진 곳에 들렀다. 슬프게도 그 며칠 사이에 꽃이 다 저버렸다.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아직 피어있는 붉은 장미를 한 송이 찾았다. 장미를 꺾어 소중히 손에 들고, 다시 은사시나무 숲으로 향했다.

그런데 늘 강가에서 맞아주던 진이 보이지 않는다. 강을 건너와 은사시나무 숲으로 들어왔지만, 역시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진인데,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혹시... 설마... 잠든 건가? 며칠 동안 아무도 만나지 못해, 너무 외로워져서 다른 나무 정령들처럼 잠든 거면 어떡하지? 시누는 가슴이 철렁했다.

"진! 진! 어디있어?"

한참을 불러도 나타나지 않았다. 하염없이 기다리던 시누는 결국, 진이 오지 않는구나, 싶어 진의 나무의 갈라진 나뭇가지 사이에 장미꽃을 꽂아놓았다.

"네가 그렇게 궁금해 하던 장미야. 예쁘지?"

꽃을 놓고 돌아서려던 시누는, 잠시 망설이다 나무를 보며 말을 꺼냈다.

"미안해. 내가 며칠 안 와서 쓸쓸했지? 마을에서 사냥을 나갔었어. 어젯밤 늦게 마을로 돌아와서, 오늘 최대한 빨리 온다고 온 건데... 그래도, 미안해."

진의 나무를 한 번 손으로 쓸어주고, 다시 돌아섰다.

"미리 말해주지."

옆에 진이 갑자기 나타났다. 손에는 시누가 가져온 장미를 들고 있다.

"미안, 몰랐어. 알았으면 말해줬을 거야."
"다시는 안 올 줄 알았어..."

진이 떨리는 손으로 장미꽃을 어루만졌다.

"내가 어떻게 널 보러 안 와. 정말 미안해. 내가 미리..."
"며칠을 안 와서 걱정했어. 다시는 못 볼까 봐..."

장미 위로 눈물이 한 방울 톡, 하고 떨어졌다. 시누는 저도 모르게 진에게 다가가 품에 안았다.

"미안해.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야. 울지 마."

진이 시누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어깨가 젖어가는 게 느껴졌다.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단번에 정리가 되었다.

진의 양쪽 어깨를 잡고, 품에서 떼어내었다. 여전히 흐르는 눈물을 엄지로 닦아주고,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진의 눈이 놀라움에 커졌다.

"방금 그거 뭐야?"
"내 마음의 표시."
"무슨 뜻인데?"
"네가 내게 제일 소중하다는 뜻이야."

잠시 시누를 올려다보던 진이 시누의 가슴에 손을 얹고 발끝으로 서서 시누의 입술에 쪽, 하고 입맞췄다. 시누가 진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미소지었다. 진도 눈물에 젖은 얼굴로 마주 미소지었다.

"나도 네가 제일 소중해."

진의 눈길이 시누의 얼굴에서 손에 잡고 있던 장미로 내려갔다.

"아, 꽃이 다 눌려버렸어."

아까 시누가 너무 꽉 안아 그렇게 된 것 같다.

"너무 예쁜 꽃이였는데..."
"내년에 또 갖다 줄게."
"정말?"
"응. 그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네가 좋아하는 예쁜 꽃들을 매일매일 갖다줄게."

다시 예쁜 미소를 짓는 얼굴을 내려다보며 이번에는 제대로 입을 맞췄다. 진을 품에 가두며 더 깊게, 더 큰 마음을 담아 키스했다. 입술을 떼자 진이 숨을 가쁘게 쉬었다.

"이건 무슨 뜻인 거야?"
"나중에 알려 줄게."

어차피, 둘에게는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있으니까. 천천히, 차근차근, 진에게 알려줄 것이다. 그 키스의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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