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괴로운 데이트코스를 짜기 위해 귀찮음을 무릅쓰고 인터넷으로 검색까지 해가며 준비를 했다. 드디어, 모든 준비가 끝나고, 홍빈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초 울리기도 전에 녀석이 전화를 받았다.

"뭐야, 빨리도 연락했네. 그렇게 내가 빨리 보고 싶었어?"

아, 저 자식 진짜 지난번부터 헛소리는. 사뿐히 무시해주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너 담주 공강 언제야?"
"수요일."

어? 나도 공강 수요일인데. 웬일로 맞았대. 주말엔 알바 때문에 바빠서 알바를 빠지면서까지 홍빈이 저 자식을 괴롭히러 가야하나 생각했는데, 다행히 그럴 필요 없겠다.

"그럼 담주 수요일에 만나."
"좋아. 어디서?"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아침 7시에."

녀석이 좀 놀란 눈치다.

"뭘 그리 일찍 만나?"
"내가 거금 30만 원을 들여 네 하루를 산 거잖아. 전혀 빠른 것 같지 않은데?"
"나랑 하루 종일 있고 싶어서 그래?"

또 다시 헛소리를 하며 웃는 녀석을 다시 무시해주고, 할 말만 했다.

"늦지 마라. 버스표 예약했으니까."
"고속버스 터미널이면, 어디 멀리 가는 거야? 단둘이?"

저 자식의 저 웃음소리가 너무 거슬린다. 아, 짜증나는 자식.

"끊는다."
"기대할게, 우리 데이트."
"아이씨, 그 말 좀 하지 말라고!"
"그럼 데이트를 데이트라고 하지 뭐라고 하냐?"

녀석이 웃으며 저딴 소리를 내뱉고는, 내가 끊기 전에 먼저 끊었다. 아, 정말 짜증나는 자식. 뭐,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아침 7시, 밤 늦게까지 게임하느라 몇 시간 못 잤지만 홍빈이 녀석에게 복수할 생각에 칼같이 맞춰 나왔다. 그런데... 이 녀석이 보이질 않는다. 사람 피말리려고 그러나? 버스시간 다 돼 가는데, 오지를 않는다.

결국,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녀석 때문에 뛰어서 겨우 올라탔다. 내가 저 녀석하고 사이좋게 같이 앉아갈 것도 아니라서, 일부러 양쪽 창가에 자리를 예매했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너무나 당연하게 내 옆에 앉았다.

"아, 뭐야. 네 자리로 가."
"데이트하는데 따로 앉는 사람들이 어딨냐?"

내가 밀어내도 꿋꿋하게 옆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 쫌, 네 자리로 가라고."
"네 옆이 내 자리 아냐?"

아오 진짜, 저 자식 일부러 나 열받게 하려고 저러는 거다. 계속 싱글거리는 게 밉상이지만, 뭐, 네 그 웃음이 얼마나 갈지 두고 보자.

"그런데 이거 어디로 가는 버스야?"
"충주. 나 잘 거니까 말시키지 마."
"충주에 왜 가는데?"

묻는 녀석을 무시하며 대놓고 녀석에게 등을 돌리고 창가에 머리를 대고 잠을 청했다. 아침이라 그런지 좀 쌀쌀하다. 그래도 봄인데 히터를 더 세게 틀어달라기도 애매하고, 원래 내가 추위를 잘 타서 나 혼자만 추운 건가, 싶기도 해서 팔짱을 끼고 최대한 몸을 움츠리고 잠이 들었다.








깨어나 보니 왠지 꽤 따뜻했다. 뭐지? 싶어 눈을 떠 보니 뭔가 몸을 덮고 있다.

"이게 뭐야?"

잠결에 비몽사몽 그걸 잡아 눈앞으로 가져오려는데 갑자기 옆에서 확 채갔다.

"깼으면 일어나. 도착했어."

뭐였지? 옆을 올려다보니 홍빈이가 자켓을 입으며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에이 설마, 저 나쁜 놈이 자기 자켓을 벗어 덮어 줬을라고. 그런데 갑자기 확 추위가 느껴진다. 나도 서둘러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터미널에서 내려 바로 저장해둔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곧 출발한다는 답이 왔다.

"뭐 할 건데?"

녀석이 옆에서 자꾸 귀찮게 물어서, 결국 대답해주었다.

"짚라인."
"뭐?"
"왜, 그 줄 타고 내려가는 거 있잖아. 그거 탈 거야."

녀석이 잠시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 내가 너 높은 데 무서워하는 거 까먹었을까 봐?

"무슨 데이트에 짚라인을 타?"

이제 녀석이 쓰는 저 단어에 조금은 면역이 생긴 듯, 소름이 좀 덜 돋는다.

"야, 검색해 봐. 짚라인 타러 커... 아무튼, 그런 사람들도 많이 오거든?"

그런데 녀석의 입에서 생각 못 했던 말이 나온다.

"너 고소공포증 있잖아."

응? 그걸 기억하고 있었어? 뭐, 내가 아무리 고소공포증이 있어도 저 자식을 괴롭히기 위해서는 그까짓 것쯤은 참을 수 있다. 나만큼 저 녀석도 무서워 할 거라는 걸 아니까.

고등학교 때, 녀석이 하도 괴롭히니까 나중에는 학교 건물 옥상으로 도망갔었다. 솔직히 너무 무서웠는데, 그래도 옥상은 원래 학생들 출입 금지라, 몰래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녀석이 어떻게 알고 거기까지 쫓아왔다. 내가 그래도 무서워서 옥상 끝까지는 가지 못하고 문 바로 옆에 앉아 있었는데, 문이 열리고 녀석이 나타났다. 놀란 마음에 벌떡 일어나 옥상 한쪽 끝까지 도망갔었다. 그런데... 정작 바로 옆에 몇 층 아래가 보이니까 너무 무서워서 다리가 풀렸다. 풀썩 주저앉은 내 곁으로 녀석이 다가왔다. 그런데, 표정이 이상했다.

"야, 빨리 이쪽으로 와."

그때 알았다. 저 녀석도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걸. 그래서 난 무서워서 몸이 덜덜 떨리는데도 그 자리에 다시 서서 버텼다.

"나 여기 있을 거니까 너나 내려가."

그때, 맨날 깐족거리고 날 괴롭히던 녀석이 처음으로 화내는 모습을 보았다.

"넌 차라리 여기 있는 게 낫다는 거야? 그렇게 무서워 벌벌 떨면서?"

그렇게 흥분하는 녀석을 보며 확신했다. 저 녀석, 무서워서 저러는 거라고. 그래서 바들바들 떨면서도 그 자리를 꿋꿋이 지켰다. 녀석이 먼저 포기할 때까지.

"그래, 그럼 계속 거기에 있어라."

녀석이 내려간 한참 다음에야 떨리는 발을 겨우 옮겨 다시 문 옆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결국 녀석보다 더 무서운 역사쌤 때문에 교실로 돌아갔을 때, 녀석은 날 완전히 무시했다. 그날부터 내가 전학 갈 때까지 쭉. 분명, 내가 저 녀석이 무서워 하는 걸 봐서 창피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짜 무섭다는 짚라인을 일부러 고른 거다. 저 녀석, 진짜 무서움에 떠는 걸 내가 꼭 보려고. 녀석을 먼저 태워 내려보내고, 난 도저히 못 타겠다고 하고 차 타고 내려오면 되니까. 역시 완벽한 계획이다.

밴이 도착하고, 홍빈이와 같이 올라탔다. 녀석은 말이 없다. 그래, 너 무서워서 쫄은 거 내가 다 안다. 사무실에 들려 안전 교육 등을 받고, 장비를 착용하고, 다시 밴에 올라 이번에는 산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높이 올라간다. 이거 정말, 완전 높은 거 아냐? 그래도, 타지는 않을 거니까... 하지만 손에서는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녀석은 아까부터 자꾸 내 눈치만 본다. 흥, 네가 그렇게 쫄아 있어도 절대로 그만하자는 소리는 안 할 거다.

그렇게 거의 산꼭대기에 도착하니, 벌써부터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아... 정말... 저 녀석 괴롭히려다 내가 죽겠다. 게다가, 눈앞에는 몇 층 정도의 높이의 나무로 지어진, 왠지 허술해 보이는 구조물이 있다. 저길 올라가라니. 죽을 것 같다. 홍빈이 저 자식은 완전 멀쩡하게 올라가고 있다. 속으로는 무서우면서, 안 그런 척은. 그렇게 올라가다... 계단에서 다리가 풀려 넘어졌다. 녀석이 뒤돌아 본다. 아, 쪽팔리다.

"야, 괜찮아?"

당연히 안 괜찮지. 그래도 손을 내미는 녀석을 무시하며 혼자 힘으로 일어났다. 그런데... 머리가 다 어질거린다. 숨이 가빠온다. 여기가 너무 높아서, 공기가 모자라나? 왜 이리 숨이 안 쉬어지지? 그래도, 조금만 더 참고, 녀석을 먼저 보내고...

"먼저 탈 사람, 가위바위보로 정하자."

어? 녀석의 제안에 놀랐다. 원래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어디가서 가위바위보는 절대로 지지 않으니까.

"뭐, 그러든지."

겉으로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졌다. 이런 미친.

"야, 삼, 삼세판 해."
"뭐, 그러든지."

내가 한 말을 고대로 돌려주며 녀석이 사악한 웃음을 짓는다. 뭔가, 불길하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지, 그렇게, 세 번을 내리 졌다. 이게 아닌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여기서 내가 안 한다고 버티면 저 녀석도 안 한다고 그러겠지? 여기까지 왔는데, 그것도 엄청 돈 많이 주고, 이제 와 포기할 수는 없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내, 내가 먼저 가면, 너도 뒤따라 오는 거지?"
"당연하지."

전혀 믿기지는 않았지만 먼저 안전문 앞에 섰다. 아, 정말 심장이 벌렁거리고 숨이 딸려 죽을 것 같다.

"못 하겠으면, 그냥 차 타고 내려가자."

걱정하는 말투지만 저건 그냥 저 녀석의 깐족거림이다. 절대로 저 녀석이 이기게 둘 수는 없다. 그렇게, 눈을 꼭 감고, 발을 뗐다.

으악, 너무 높고, 너무 빠르고, 게다가 어느새 몸이 돌려져 뒤로 내려가고 있어서 더 무섭고, 여러가지로 안 좋다. 그래도 저 녀석이 타고 내려오는지 보려고 억지로 눈을 떠 앞을 보았다. 그런데... 경치가 너무 예쁘다. 잠시 무서움도 잊고 사방에 보이는 파란 하늘과 밑에 보이는 초록색 나무들을 구경했다. 아, 그렇게 무서워서 떨었던 것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결국, 무사히 도착했다.

막상 도착하니 다시 걱정이 되었다. 저 녀석, 혹시 내 원래 계획대로 차 타고 내려가는 거 아냐? 그때 윙,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이 도착했다. 생각보다는 멀쩡해 보인다. 무서워서 질질 짜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야, 이거 완전 재밌다."

녀석, 센 척은. 나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고 싶었지만, 약간 몸이 떨려 옆의 난간을 꼭 잡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녀석이 옆에서 계속 재밌었다며, 경치가 좋았다며, 떠든다. 일부러 무서웠던 거 티 안 내려고 그러는 거 다 안다. 하지만, 녀석이 이어서 하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녀석을 돌아보았다.

"전에 제주도 여행갔을 때 한 번 타 봤는데, 여기가 더 재밌는 것 같아."

뭐? 타 봤다고? 그러고 보니, 저 녀석 왜 저리 멀쩡해?

"안 무서웠어?"
"뭐, 조금? 그래도 무서운 것보단 재밌는 게 더 크지 않아?"

이런 미친. 3년 사이에 고소공포증을 극복하기라도 했나? 첫 번째 계획은 실패다. 그래도 뭐, 이제 겨우 점심시간이니까. 점심 먹을 생각을 하니, 아침 일찍 일어나느라 아무것도 못 먹어서 배가 너무 고프다. 녀석도 마찬가지인지, 땅바닥에 드디어 발을 디뎌 속으로 기뻐하는 날 쳐다보며 물어봤다.

"그래서, 점심은 뭐 먹을 거야?"
"뭐 간단한 거로 때우고..."
"안 돼. 여기서 좀 가면 떡갈비 완전 맛있는 데 있다는데, 거기로 가."

뭐야, 언제 검색해 본 거야? 서울에서 오는 버스 안에서 찾아본 건가? 그런데... 떡갈비라니, 막상 들으니 갑자기 먹고 싶다. 하지만, 처음 쓴 30만 원에 오늘 짚라인에 쓴 돈까지, 이따가 오후에 이것저것 하려면 아무래도 떡갈비는 무리다. 아... 하지만 떡갈비 먹고 싶다.

"재밌는 거 태워줬으니, 점심은 내가 살게."

뭐야,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거야? 하지만, 뭐, 사준다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으니까. 녀석의 제안에 냉큼 오케이 하고 떡갈비를 먹으러 갔다. 완전 맛있었다. 그렇게, 마지막에 커피까지 한 잔씩 마시고, 내가 준비한 두 번째 지옥의 코스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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