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하하하하. 드디어 내게 그 웬수, 이홍빈을 괴롭힐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내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를 지옥으로 만들었던 그 나쁜 놈에게 드디어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고등학교에 입학해 아빠의 전근으로 1학기 말, 순천에 이사갈 때까지, 이홍빈 이 나쁜 자식은 날 괴롭혔었다. 정말, 하루하루 너무 힘들었었다. 그 놈 때문에 친구도 사귈 수 없었고, 늘 그 녀석이 끌고 다니는 대로 끌려다녔었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날들이었다. 다시는 그 녀석을 안 봐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너무 기뻐 눈물이 다 났다.

그런데... 순천에 가서, 기껏 맘잡고 열심히 공부해 서울의 한 대학교에 붙었는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그 녀석과 딱 마주친 거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 그 녀석이 나를 향해 걸어오길래 도망쳤다. 뭘 또 얼마나 어떻게 괴롭히려고? 그날 이후, 그 녀석이 캠퍼스 저 멀리서 보이기만 해도 도망쳤다. 이런 내가 비겁하게 느껴졌지만, 내 대학교 1학년 1학기까지 그 녀석 때문에 망치기는 싫었다. 어떻게든 버티면, 그 녀석하고 마주치지 않고 이번 학기를 잘 마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갑자기 솔깃한 소식을 들었다. 바로... 홍빈이 녀석네 동아리에서 이번 축제 때 이벤트를 한다는 거다. 다름 아닌 일일 노예 경매. 무슨 불우이웃돕기를 하기 위한 모금이라나? 물론, 장난으로 붙인 이름이겠지만, 그래도 하루 동안 이홍빈 저 자식을 맘껏 부려먹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진짜, 녀석을 하루 동안 괴롭히고 괴롭히고 또 괴롭혀서, 내가 한 학기 동안 녀석에게 당한 설움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기회다. 그래서, 새로 나오는 아이폰을 사려고 열심히 알바해서 모으던 돈이었지만, 눈물을 삼키고 인출을 해, 녀석네 동아리 이벤트장으로 향했다.

참가비를 내고, 번호판을 받고,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학교에서 어떻게 허락을 받았는지 소강당에서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나 빼고 다 여자들이다. 뭐, 이번 경매에는 동아리 멤버들 중 남자들만 나온다고 했으니까, 아무래도 여자들이 더 많이 참여할 거라 이미 예상했었다. 나같이 복수를 하기 위해 온 게 아닌 이상, 굳이 돈을 주면서까지 다른 남자를 부려먹을 일이 딱히 있지는 않을 테니까.

내게 이 소식을 물어다 준 친구는 홍빈이와 같은 동아리 멤버인 순천 친구였다. 이번 이벤트에 1학년들 중 남학생들은 무조건 참여를 해야 한다고 해서, 그 녀석도 오늘 경매에서 팔려갈 몸이다. 불쌍한 녀석. 녀석을 찾아 둘러보는데,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무대 뒤에서 준비를 하고 있나 보다. 하지만 곧바로 오늘 경매되는 남학생들이 나와 무대 위에 나란히 서고, 내 시선은 저 죽일 놈의 웬수 홍빈이에게 고정되었다. 녀석은 가슴께에 번호표를 달고 따분하다는 듯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무대 아래에 모인 사람들을 내려다보던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 네가 놀랐겠지. 내가 너한테 복수하려고 여기까지 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테니까. 그런데, 다음 순간 녀석이 내게 웃음지어 보였다. 흥, 도발하겠다, 이거지? 기대해라, 이홍빈. 진짜 네게 지옥 같은 하루를 선사해 줄 테니까.

홍빈이를 노려보고 있는 내 시야에 뭔가 다른 움직임이 포착됐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 순천 친구였다. 녀석이 손짓으로 내 시선을 끈 후, 뒤를 가리켰다. 뭐지? 궁금해서 올려다보려는데, 갑자기 무대 위 조명이 꺼지고 대신 무대 한가운데에 핀조명이 켜졌다. MC가 경매가 시작됐음을 알렸고, 곧 첫 번째 참가자가 조명 아래에 섰다.

가나다 순서로 1학년들부터 시작하는지, 김 누구가 처음으로 나왔다. 여기저기 번호판이 올라가고 숫자가 불리고, 곧 낙찰돼 내려갔다. 그런 식으로, 한 명, 한 명의 차례가 지나, 드디어 이홍빈 저 웬수의 차례가 왔다. 녀석이 조명 아래에 서고, 만원부터 입찰이 시작됐다. 녀석이 꽤 인기가 좋은 건지, 그 전 사람들은 몇만 원에 팔렸는데, 녀석의 입찰가가 벌써 10만원을 넘었다. 아... 정말 돈이 아깝지만, 하루 동안 저 녀석을 원없이 괴롭힐 수 있는 이 기회를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

그래서, 누가 15만 원을 불렀을 때, 번호판을 들고 소리쳤다.

"20만 원!"

모두 내 쪽을 쳐다보았다. 여자들은 원인 모를 비명을 지르거나, 웃거나, 하며 날 쳐다보았다. 그래, 여자들만 참여하는 경매에 내가 와서 우습겠지. 하지만 당신들도 나 같은 원한이 있다면, 더한 것도 할 걸? 그래서 뻔뻔한 얼굴로 마주 쳐다봐 주었다.

"네, 20만 원! 20만 원 나왔습니다. 더 높게 입찰하실 분 있나요?"

그때, 옆의 한 여자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와 21만 원을 불렀다. 흠... 저 여자는 이홍빈이한테 무슨 원한이 있길래? 뭐, 나쁜 놈이니 여기저기 적을 많이 만들었나 보지. 자세한 사항은 관심 없다.

22만 원을 불렀다. 여자가 23만 원을 불렀다. 다시 내가 24만 원이라 하자, 여자가 25만 원까지 올라갔다. 주변 사람들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쳐다본다. 다시 내가 26만 원 하자 여자가 27만 원을 불렀다. 결국, 다시 결단을 내리고 30만 원을 외쳤다. 지갑 안을 살펴보던 여자가 포기를 한 듯 더 이상 입찰을 하지 않았다.

"네, 30만 원, 무려 30만 원의 입찰가! 더 입찰하실 분? 없나요? 없군요. 그럼 오늘 경매의 8번은 14번 번호판을 든 분께 입찰되었습니다. 8번과의 일일 데이트, 마음껏 즐기세요."

그래, 드디어... 뭐? 일일 데이트? 이 무슨? 주변의 여자들이 웃고 난리가 났다. 입찰 경쟁에서 진 여자는 나를 노려보더니 울음을 터뜨리고 뛰쳐나갔다. 이홍빈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무대에서 내려와 내 앞에 섰다.

"네가 나랑 이렇게까지 데이트를 하고 싶어할 줄은 몰랐다, 공찬식."

이런 미친. 녀석의 비웃는 얼굴 뒤로 오늘 이벤트 이름이 쓰여진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일일 데이트 경매라고 완전 크게 써 있다. 어쩐지 여자밖에 없더라. 아... 진짜 어디라도 숨고 싶다.








싱글거리는 녀석과 함께 우선은 행사장에서 나왔다. 주변의 키득거리는, 그리고 간간이 뜻 모를 비명을 지르는 여자들에게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었다. 녀석은 날 뒤따라 나오며 계속 깐족거렸다.

"그래서, 나랑 어떤 데이트를 하고 싶은 건데?"

아, 저 웃는 면상을 한 대 때려버리고 싶다.

"난, 난 일일 노예 경매인 줄 알고 온 거거든! 데이트는 무슨 얼어 죽을 데이트야!"

내가 더듬거리며 말하는데도 녀석은 여전히 빙글거린다.

"뭐, 그렇게 변명을 하고 싶다면... 믿어 줄게."

전혀 믿기지 않는다는 말투로 그렇게 말하면 퍽이나 고맙겠다, 이 나쁜 자식아. 아, 내 30만 원... 아, 내 새 아이폰...

"핸드폰 줘 봐."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내 앞에 녀석이 손을 내밀었다.

"왜?"
"전번을 교환해야 나중에 데이트 약속을 잡을 거 아냐?"
"아이씨, 그 단어 좀 그만 말해!"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은 녀석이 계속 데이트를 언제 해야 좋을지, 데이트를 어디로 가야 좋을지, 정해야 되지 않겠냐고 깐족거린다. 결국, 녀석의 입을 막기 위해 핸드폰을 넘겼다.

"그럼 시간 날 때 연락해. 데이트 기대할게. 아, 그리고 제대로 된 데이트코스 아니기만 해 봐, 데이트 폭력으로 신고할 거야."
"뭐 저런 미친 새끼가..."

마지막까지 재수 없는 말을 남기고 녀석은 내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유유히 행사장 안으로 사라졌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 다시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 순천 친구를 찾았다. 녀석 역시 경매가 끝났는지, 무대 밑 한쪽에 서 있었다.

"이 나쁜 자식아, 일일 노예 경매라며!"

얼굴을 보자마자 멱살은 잡은 내게 녀석은 미안한 듯 우물쭈물 말을 꺼냈다.

"진짜, 나도 오늘 와서 알았어. 노예란 단어가 정치적 올바름인가 뭔가에 어긋난다고, 학교 측에서 안 된다고 그래서 일일 데이트로 바뀌었다고. 그래서 너한테 전화하는데 전화도 꺼져 있고, 아까 내가 뒤에 현수막 보라고 가리켜도 넌 보지도 않고. 이건 진짜 내 탓이 아냐."

하... 정말... 미치겠다. 억울하고 허탈하다. 이제는 그냥 30만 원 날린 셈치고 이홍빈이 저 자식을 다시 학기말까지 무시하는 수밖에.

"그런데... 그래도 뭔가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녀석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풀고 돌아서려던 내게 녀석이 말했다.

"뭐?"
"아니, 너 이홍빈이 괴롭히고 싶다고 그랬잖아. 걔가 싫어할 만한 거 골라서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오호. 다시 귀가 솔깃했다. 그래, 어쨌든 내가 거금 30만 원으로 이홍빈 저 웬수의 하루를 샀으니까, 진짜 가기 싫어하는 곳만 가고, 하기 싫어하는 것만 시켜서 괴롭히면 되겠지. 음하하하하. 기대해라, 이홍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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