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 궁금한 게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엘프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진이 눈을 떴을 땐, 맞은편의 주목나무 숲에도, 옆의 다른 숲에도, 정령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막 겨우 깨어난 진에 비해 그들은 이미 나이가 많은 정령이었고, 언제부턴가 하나씩, 하나씩 잠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꽤 오랬동안 혼자였다고. 시누 역시 진 외에는 정령을 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면, 다른 정령들은 진짜 다 잠이 든 걸지도... 진은 가끔 지나가는 엘프들을 보긴 했지만, 무서워서 일부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랬던 진이 왜 시누 앞에 나타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누는 무섭지 않은지, 계속 옆에 앉아 재잘댄다.

진의 과거 얘기를 듣다가, 진이 혼자라는 사실에 너무 슬픈 표정을 지어서, 시누는 서둘러 말을 돌렸다.

"너 우드 엘프가 뭔지는 알아?"
"너."

진이 신기한 듯 시누의 뾰족한 귀 끝을 만져본다. 그게 얼마나 실례인지 몰라서 하는 행동이라, 내버려둔다. 귀 옆의 빨간 머리카락도 살짝 만진다.

"머리색 예뻐."
"우드 엘프는 원래 머리색이 다 나뭇잎 색이야. 이건 단풍나무 잎 색이야."
"단풍나무...는 어떻게 생겼어?"

나무의 정령이라 나무에게서 멀리 떨어지질 못하는 진은 고작 둘이 지금 앉아있는 강가까지만 올 수 있는 것 같다. 이 좁은 곳에 발이 묶인 채 영원히 지내야 한다니... 안쓰럽다. 그래서 진에게 마을에 대해, 사냥에 대해, 다가오는 대회에 대해 이것저것 들려 준다. 눈을 빛내며 듣던 진이 한참 듣다 묻는다.

"그런데, 활이 뭐야?"

아무리 말로 설명해 줘도, 이건 도저히 제대로 설명이 안 된다. 결국,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연못을 돌아 강을 건너 주목나무 숲에 들어갔다. 쓸만한 나뭇가지를 잘라 들고 나왔다. 나오는 길에, 화살로 만들 곧은 나뭇가지와, 깃털 대신 쓸만한 잎도 몇 장 모았다.

다시 또 한참을 돌아 다시 진이 있는 곳까지 돌아왔다. 진짜, 누가 시켰으면 절대로 그렇게 멀리, 그리고 빠르게 갔다오지 않았을 거다. 진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며 나뭇가지를 다듬고, 양 끝에 홈을 파 줄을 맨다. 좀 투박한 활이 만들어졌다. 진이 신기해하며 시위를 튕기며 노는 동안, 시누는 주워온 나뭇가지를 다듬고, 얇고 긴 구멍을 한쪽 끝에 뚫고 잎을 잘라 그 구멍에 끼워 역시 투박한 화살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끝을 사냥칼로 날카롭게 다듬었다.

너무 조잡한 활과 화살이라 진 앞에서 실력발휘를 할 수 없는 걸 슬퍼하며 활 쏘는 시범을 보인다. 그래도 급하게 만든 것치고는 화살이 꽤 멀리 날아간다. 진이 처음 보는 모습에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와, 진짜 너무 신기해."

몇 번이고 또 해달라는 말에 한참을 그렇게 활을 쏜 시누는, 그래도 여전히 신기해하는 진에게 불쑥 말을 건넸다.

"너도 배우고 싶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이는 진을 보고, 말을 잘 꺼냈다 생각했다. 다음 날 다시 오기로 약속을 하고 시누는 마을로 향했다.








한참을 헤매다 드디어 마을로 돌아온 시누는, 내일 일찍 출발하려 빨리 잠자리에 들었다. 아직 새벽이 어슴푸레 밝아올 시간, 일어나 활 두 개와 화살통, 그리고 점심을 챙겨 집을 나섰다. 서둘러 걸어서, 조금 늦은 아침에 강가에 다다랐다. 진은 이미 강가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햇빛에 검은 머리가 더욱 짙은 초록빛을 띠었다.

은사시나무에 과녁을 걸어놓고 연습하자고 했다가 나무를 다치게 할 생각이냐며 진에게 제대로 혼나고, 결국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 투박한 과녁을 만들어 강가에 세웠다. 진에게 열심히 자세 잡는 법, 활을 잡는 법 등을 설명하고 시범을 여러 번 보였으나 계속 틀린다. 결국, 시누는 진영의 자세를 일일이 고쳐주고, 등 뒤에 서서 양 팔로 감싼 모양을 하고 활 잡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눈앞에 보이는 검은 머리와 하얀 목에 자꾸 시선이 고정된다. 억지로 시선을 떼고, 앞의 과녁에 집중하려 애썼다.

가르쳐 주니 곧잘 따라한다. 가끔, 과녁을 맞출 때도 있다. 하지만, 전혀 엉뚱한 데로 날아가는 게 더 많다.

"손에 힘이 없나?"

중얼거리며 시누가 진의 손을 양손에 잡아 살펴보았다. 손가락도 가늘고, 그러고 보니 팔도 가늘고, 몸 자체도 가늘다. 원래 정령들은 다 그런가?

"뭐, 뭐야."

진이 시누의 손에서 손을 빼내었다. 얼굴이 붉어졌다. 덩달아 시누도 왠지 부끄러워졌다.

"아니, 난, 그냥..."

대답하며 땅을 내려다보는데, 그림자가 짧게 지는 걸 보니 점심 시간인 것 같다. 화제를 바꾸려 말을 꺼냈다.

"점심 먹을래? 네 것도 싸왔어."
"점심?"
"응. 배고프지 않아?"
"배가... 고프다니?"

배가 고프지 않다니... 시누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우선은 강가 풀밭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진도 옆에 따라 앉았다. 시누는 나뭇잎에 싸온 훈제된 사슴고기를 꺼냈다. 진은 신기한 듯 구경했다.

"정말 안 먹을래?"
"그런 거 먹어본 적 없어."
"그럼 나무 정령은 뭐 먹어?"

시누가 한 입 베어먹으며 물었다. 생각해 보니, 우드 엘프인데, 나무 정령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

"내 나무가 뿌리로 물이랑 영양소 다 끌어올리고, 나뭇잎으로 광합성하고, 그게 다 내가 먹는 거지, 뭐. 내가 나무고, 나무가 나니까."
"그럼 넌 어떻게 지금 그 모습인 거야?"
"흠..."

진 역시 잘은 모르는지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그냥, 보통 때는, 아니면 잘 때는, 나무에 깃들어 있어. 하지만, 모습을 드러내고 싶으면, 이렇게 나타나고."
"그래도 만져지잖아."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뻗어 진의 손을 잡았다. 진은 다시 얼굴을 붉혔지만, 이번엔 손을 빼내지 않았다. 오히려 시누가 당황해 손을 놓았다.

"이런 모습이고 싶을 때는, 마음 먹으면 그렇게 돼. 아니면, 아무 형체 없이 있고 싶으면, 그렇게 할 수도 있고."

그렇게 말하며 반투명해진다. 시누가 다시 손을 뻗으니, 손이 그냥 지나친다. 조금, 무섭다.

"아, 아까처럼 해주면 안 돼?"

진이 다시 처음 모습으로 돌아왔다.

"응, 이게 제일 좋은 거 같아."

시누의 말에 진이 미소지었다. 시누도 마주 웃어주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왠지 좀 나른해져 계속 강가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몇 마디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한다.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고 싶어, 시누가 일어섰다.

"가는 거야?"

진이 서운한 듯 물어본다. 시누는 고개를 끄덕였다. 풀죽어 고개를 숙이는 진에 서둘러 덧붙였다.

"내일 다시 올게."

그렇게, 결국 진의 미소로 배웅받으며 집으로 향했다.








그날 이후, 시누는 매일 진을 보러 갔다. 혼자 너무 쓸쓸해 하니까, 하루라도 가지 않으면 괜히 미안하다. 가서 활쏘기도 가르쳐주고, 시누도 가끔 연습을 했다. 하지만, 활쏘기가 삶의 전부였던 예전과는 뭔가 다르다. 활쏘기 연습도 재미있지만, 진과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게 더 즐겁다.

은사시나무 숲을 떠난 적이 없는 진이기에, 이 드넓은 숲에 대해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다. 그래서, 가끔 시누는 일부러 다른 곳을 들려, 진이 본 적 없는 나뭇잎을 줍거나, 꽃을 따다 갖다 주었다. 진은 괜히 자기 때문에 꽃을 꺾은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하지만, 어차피 꽃은 질 거고, 진은 예쁜 걸 좋아하니까, 시누는 별 죄책감 없이 한아름씩 따다 주기도 했다.

어느덧, 꽃이 지는 계절이 오고, 이번에는 진이 본 적 없는 과일들을 찾아다 보여 주었다. 진의 은사시나무 숲 주위에는 과일나무가 전혀 없다. 한참 떨어진 곳에 밤나무가 있지만, 그건 가을에야 제대로 익을 테니까. 대신, 바로리에게 일일이 물어본 후, 전혀 가본 적 없는 곳까지 돌아다니며 색다른 과일을 모아 진에게 갖다주었다. 모든 게 신기한 진은 그런 걸 볼 때마다 눈을 빛내며 기뻐했고, 귀찮은 건 딱 질색인 시누였지만, 그런 진의 표정을 보기 위해 더 멀리, 더 멀리 가서 새로운 걸 구해 왔다.

그러던 어느날, 역시 진과 하루를 보내고 돌아왔는데, 마을이 텅 비어 있었다.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주변을 돌아보는데, 멀리서 함성 소리가 들렸다. 마침 누군가가 돌아오길래,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다. 그 엘프는 오히려 시누를 보고 놀란 듯했다.

"시누, 여기에서 뭐 하는 거예요? 오늘 사냥대회잖아요."

사냥대회!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럼 저 함성 소리는 우승자가 정해졌다는 건가? 나무 밑이 시끄러워졌다. 내려다보니, 마을 엘프들이 노래를 부르며 돌아오고 있다. 시누의 마을에서 우승자가 나왔다는 뜻이다. 누구인지 짐작이 갔다.

엘프들이 밧줄 사다리와 밧줄을 타고 나무 위로 올라왔다. 엘프들은 각자 자기의 나무에 집을 짓고 살지만, 한 가운데의 가장 큰 나무와 그 주변 나무들 사이에는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발판이 넓게 펼쳐져 있다. 이곳이 시누의 마을의 광장이다. 마을 엘프들 모두 광장에 모였다. 시누도 한쪽에 섰다. 족장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대화를 하던 엘프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올해 사냥대회 우승자인 챈시 그공! 우리 마을을 빛낸 그 공을 높이 치하하는 바, 앞으로 나와 왕관을 받으라."

챈시가 크게 미소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챈시의 머리에 나뭇잎 왕관이 놓여졌다. 자랑스러운 얼굴로 엘프들을 둘러보던 챈시의 눈이 시누와 마주쳤다. 챈시는 마을 엘프들의 축하를 받으며 시누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사냥할 때 입는 복장이 아닌 시누를 보자 챈시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시누, 오늘 안 온 거예요?"
"아, 다른 일이 있어서."
"사냥대회보다 중요한 일이 뭐가 있다고?"

챈시의 얼굴이 점점 더 굳어진다. 시누는 서둘러 다른 말을 꺼냈다.

"축하해, 챈시. 드디어 우승을 하는 구나."
"당신이 없는 대회에서 한 우승이 무슨 소용이야? 당신이 없어 이긴 거라고 다 생각할 텐데."

이를 악물고 말하는 챈시에 시누는 왠지 미안해졌다. 그래서, 최대한 위로하려 노력했다.

"그렇지 않아. 다 너를 축하해 주고 있잖아."
"난 당신이 오늘 분명 왔을 거라고, 그런데 아무것도 잡지 못해 앞으로 나서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우승자의 자리를 자랑스럽게 받았는데, 이제 이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

챈시의 손이 왕관 쪽으로 향한다. 당장이라도 벗어던질 기세다. 시누가 그 손을 잡았다.

"난 오늘 갔어도 집중 못하고 다른 데 한눈 팔다가 너한테 졌을 거야. 그러니까, 네가 진정한 우승자야."

챈시는 여전히 못 믿겠다는 표정이다. 뭘 더 말해 봐야 소용없을 것 같아서, 시누는 챈시의 어깨를 툭, 쳐 주고 집으로 향했다.

"도대체 그 다른 일이 뭐예요? 뭐가 그렇게 중요한 건데요? 시누!"

챈시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며 집에 들어섰다. 사냥대회에서 우승을 하지 못하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게 불과 몇 달 전이었다. 그런데, 오늘이 사냥대회인 것도 잊어버렸고, 결국 다른 엘프가 우승한 걸 알게 되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평생을 활쏘기에 목숨 걸었던 시누였기에, 그런 스스로가 낯설다. 하지만, 사냥대회의 우승이 진을 하루 혼자 두는 것보다 가치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전혀 후회가 되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잠이 들기 전, 시누의 마지막 생각은, 내일은 진을 위해 옆 마을의 산딸기 덤불 숲에서 산딸기를 잔뜩 따다 보여줘야지, 였다.






이슬실비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