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 새벽이 다가오는 시간, 동우가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고 들어간다. 현관 앞에서 진영이 맞이한다.

"어서와."

동우는 진영을 쳐다보며 피곤한 얼굴로 웃어보인다.

"아, 너무 힘든 하루였어."

동우가 진영을 지나쳐 들어간다. 진영은 그런 동우를 쳐다본다.

"밥은 먹었어? 뭐 먹었어?"

자켓을 벗어던지고 책상 앞 의자에 풀썩 앉아버린 동우가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책상 위에 내던진다.

"몇 주를 고생해서 만든 프로그램에 심각한 오류가 있는 걸 오늘 저녁에서야 발견했어. 내가 쓴 코드도 아니고, 과장이 집어넣은 코드 때문에 생긴 오류인데 수습을 나보고 하라니, 그걸 일일이 확인하려면 며칠 밤을 새도 모자른다고."
"회사 일은 잘 돼가? 요즘 새로 하는 일이 뭐야?"

동우는 잠시 진영을 쳐다본다. 진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게다가 오늘 새로 들어온 프로젝트까지 내게 맡으라니, 아주 죽으라는 소리라고, 지금."
"난 오늘 집에서 텔레비젼을 봤어. 너무 재밌는 애니메이션이었는데, 나중에 너랑 같이 보고 싶어."

동우가 다시 진영을 오랫동안 쳐다본다. 안경을 떨리는 손으로 벗는다.

"당분간 집에도 못 들어올 것 같아. 솔직히 잠잘 시간도 없어. 가뜩이나 지난번 프로젝트 하면서 너무 무리해서 이번에 휴가 내기로 했는데, 그것도 물 건너 갔어."
"사실 다른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그건 혼자 보기는 너무 무서..."
"제발 위로의 말을 좀 하라고!"

동우가 손에 잡히는 대로 책상 위의 무선 스피커를 진영에게 던진다. 진영의 모습이 깜빡거린다. 스피커는 진영의 몸을 그대로 통과해 뒤의 벽에 부딪친다. 진영의 표정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다.

"...워서 그것도 너랑 볼 거야. 같이 봐 줄 거지?"

웃음지어 보이는 진영의 얼굴을 보며 동우는 책상 한쪽에 놓인 작은 상자의 버튼 중 하나를 누른다. 진영의 모습이 그대로 정지한다. 동우는 일어서서 진영의 홀로그램 옆으로 걸어온다. 천천히, 진영의 얼굴 가까이 손을 가져다 댄다. 만질 수 없다.

"미안해. 내가 아직 코딩을 다 끝낸 게 아니라서 그런 건데... 네 잘못이 아닌데..."

동우의 목소리가 떨린다. 17살의 모습 그대로인 홀로그램의 얼굴에 살며시 키스한다. 역시나, 만질 수는 없다.

동우가 비겁했기에 진영을 잃었다. 17살 때, 둘의 사이를 부모님께 들켰을 때, 어떻게든 맞서서 지켜야만 했다. 결국, 동우가 진영을 포기해서, 진영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그 생각 때문에, 동우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죄책감에 시달린다.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홀로그램을 끈다. 진영이 없어진 방 안이 조금 더 어둡다. 컴퓨터를 켜고, 홀로그램 프로그램의 코드를 연다. 동우가 직접 만든 프로그램이다. 독학해서 만들었고,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진영을 혼자서, 온전히 소유할 수 있다.

벗었던 안경을 다시 쓰고, 인터넷과 e-북을 찾아가며 필요한 코드를 만들어낸다. 끝이 없어 보이는 코드 사이로 새로운 코드를 써 넣는다. 한참 후에야 코딩을 끝내고, 다시 홀로그램 머신을 켠다. 진영이 다시 나타난다.

"진영아, 나 오늘 너무 힘들었어."

진영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드러난다.

"왜, 무슨 일 있었어? 나한테 다 말해 봐. 내가 힘낼 수 있게 꼭 안아줄게."

이제야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진영을 보며 동우는 미소짓는다. 하지만, 왠지 모를 공허함에 마음 한켠에서는 눈물이 차오른다.





이슬실비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