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숲속, 높이가 100 미터가 넘는 삼나무들이 우거진 곳에 우드 엘프들의 마을이 있다. 엘프들은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숲의 가디언이다. 혹시나 길을 잃은 인간이 엘프 마을의 바로 밑에 와도, 아니, 바로 밑에서 올려다보아도, 엘프 마을은 나뭇가지와 잎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엘프들은 본인들의 존재 자체를 숨긴 채, 숲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어느날 아침, 시누는 활쏘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바로 어제 새로 만든 긴 활을 들고 나와, 자세를 잡고 섰다. 챙, 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날아갔다. 그리고, 겨누던 앵두를 살짝 비켜갔다. 시누는 입술을 깨물었다. 시누의 마을에서 가장 활을 잘 쏘기로 유명한 시누다. 벌써 몇십 년째 마을간의 사냥대회에서 우승을 놓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요즘들어 계속 화살이 조금씩 비켜간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요즘들어, 왠지 집중이 안 된다.

시누의 마을의 엘프들은 대부분 레인저이다. 레인저는 수색과 정찰이 그 특기이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발이 빠르고 움직임이 조용하다. 하지만 시누의 경우에는, 우드 엘프치고 덩치가 크고, 움직임이 느리고, 발이 무겁기 때문에 레인저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일찌감치 레인저를 포기하고, 아처로 전향해 활쏘기만 주야장천 팠다. 그 결과, 그가 처음으로 참가한 마을 사냥에서 수레 가득 멧돼지와 곰, 사슴 등을 잡아왔다. 레인저가 되지 못한 시누를 비웃던 다른 엘프들은 단번에 그를 칭송하게 되었다. 그렇게, 마을에서 인정 받는 엘프가 되었다.

그런데... 요즘 왜 이러는 거지? 시누가 앵두를 노려봤다. 그때, 옆에서 챙, 하는 소리와 함께 시누가 겨누던 바로 그 앵두가 뚫린 채로 떨어졌다. 시누는 옆을 쳐다보았다. 챈시다. 시누는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챈시는 빙긋 웃으며 자신과 시누의 화살을 주우러 달려갔다. 저 어린 놈의 엘프가, 몇 년이나 어린 게 까분다. 게다가, 레인저인 주제에 최근 활쏘기에 빠져, 무서운 기세로 실력이 늘고 있다. 실제로, 지난 사냥대회에서 저 녀석이 100미터 거리에서 멧돼지의 눈에 화살을 정확히 맞추는 걸 보고는 속으로 많이 놀랐었다. 시력이 인간보다 몇 배가 좋은 엘프들이지만, 좋은 시력만으로 활을 잘 쏘는 건 아니니까. 레인저가 아처보다 활을 더 잘 쏘는 건 무슨 상황인 거냐고!

걸음도 토끼처럼 가볍고 빠른 녀석이 순식간에 화살을 주워왔다. 시누의 화살은 멀쩡한데, 챈시의 화살 끝엔 앵두물이 조금 들어 붉은 빛을 띈다. 금속을 쓰지 않는 엘프들이라, 화살촉 대신 나무화살의 끝을 날카롭게 다듬어 쓴다. 일부러 시누에게 보란 듯이 화살의 붉은 끝 부분을 눈앞에서 흔들며 화살통에 다시 담는다.

"시누, 그러다 올해 대회에서 나한테 지면 어쩌려고 그래요?"

시누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숨기며 겉으로 눈웃음지었다.

"하하하, 새로 만든 활이 영, 느낌이 아니네."

어색하게 말하며 괜히 손에 쥔 활의 시위를 튕겨본다. 한참이나 어린 저 녀석이 작년 대회에서 치고 올라왔었다. 하마터면 1등 자리를 넘겨줄 뻔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경험 부족 때문이었는지, 마지막에 녀석은 연거푸 실수를 하며 바로 눈앞에 있는 멧돼지를 놓쳤고, 그 멧돼지를 잡은 시누가 결국 우승을 했다. 딴 건 몰라도, 저 녀석에게만은 지고 싶지 않다. 올해 사냥대회에서 우승을 하지 못한다면, 다시는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을 것 같다. 그 정도로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시위를 몇 번 튕기던 시누는 손에 들고 있던 활을 이미 쌓여가고 있는 옆의 활 무더기 위에 던져놓고, 새로운 활의 재료를 구하기 위해 주목나무 숲으로 향했다. 뒤에 남은 챈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시누가 던져놓은 활을 집어들고, 등 뒤에 메고 있던 화살통에서 아까의 화살을 꺼내 다시 한 번 겨눴다. 화살은 아직도 나뭇가지에 달려 있는, 아까 떨어진 앵두의 꼭지를 정확히 맞췄다. 챈시는 쓴웃음을 지었다.

"차라리 활을 새로 만들 시간에 연습을 더 하지..."

시누에게 버려진 활 무더기 위에 방금 쓴 활을 던져 놓고, 챈시는 다시 자신의 활로 연습을 시작했다.








시누는 발걸음을 빨리 했다. 벌써 활을 몇 개나 새로 만들었는데도 계속 화살이 조금씩 비켜간다. 이건, 분명 활의 문제다. 아니면 화살이 조금 이상하거나. 아니면, 재료로 쓰는 주목나뭇가지가 영 아니었거나. 결국, 시누는 늘 가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주목나무 숲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며칠 전 시누가 예뻐하는 다른 어린 엘프인 바로리가 알려준 곳이다. 바로리는 우드 엘프 중에서도 몸집이 작고 다람쥐처럼 나무를 잘 타서, 다른 어떤 엘프보다 훌륭한 레인저이며, 이 넓은 숲에 안 가본 데가 없다. 그래서 뭐가 어디 있는지 제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바로리와는 반대로 다니는 곳 말고는 절대 다른 곳을 가지 않는 시누는, 처음 와보는 길이라 불안하다. 게다가, 중간중간에 큰 산짐승들의 흔적이 보인다. 시누는 홧김에 활을 버리고 온 걸 후회했다. 아처가 활을 놓고 오다니, 최악의 실수다. 가져온 무기라고는 사냥칼과 긴 단검 뿐이다. 만약 칼을 써야 할 상황이 온다면, 움직임이 느린 시누는 칼을 제대로 휘둘러 보기도 전에 죽은 목숨일 것이다.

그냥 돌아갈까, 생각하는데 바로 뒤에서 뭔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사람의 발소리가 아니다. 뭔가, 엄청나게 큰 동물이다. 시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넓은 어깨 때문에 좁은 산길에서 자꾸 여기저기 나뭇가지에 걸린다. 게다가 발까지 무거워서, 결국 시누가 밟은 작은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에 그 동물이 시누의 존재를 알아버렸다. 그 동물이 따라오는 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렸다. 시누는 산길을 포기하고 무작정 나무들 사이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시누가 덩치가 커도, 뒤에서 따라오는 동물은 더 클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겨우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틈새로 달리고, 또 달렸다.

평생 그렇게 달려본 적 없는 시누가 옆구리가 당길 때까지 한참을 달렸을 때, 겨우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멈췄다. 한숨 돌리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여기가 어딘지 전혀 모르겠다. 바로리는 여기가 어딘지 단번에 알 테지만, 시누는 자신의 마을과 주목나무 숲, 사냥터, 그리고 화살의 재료인 깃털을 주우러 가끔 가는 백조들이 사는 호수 외에는 거의 가지도 않는다. 결국, 이 넓은 숲에서 길을 잃었다는 뜻이다.

한참을 뛰었더니 목이 마르다. 이 주변에 강이나 작은 샘이라도 어디 있지 않으려나? 마음을 가라앉히고 귀를 기울이는데, 어딘가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물소리의 정체를 찾아 길 없는 숲속을 정처 없이 걷는데,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며 조그마한 계곡이 나왔다. 한쪽에는 작은 폭포가 깊고 맑은 작은 연못에 떨어지고 있다. 시누는 우선 너무 목이 말라 물부터 마셨다. 시원하고 달았다. 갈증을 해소한 후에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누의 키 정도 높이밖에 되지 않는 절벽에서 폭포가 떨어진다. 연못 주변에는 바위와 작은 모래사장이 있고, 그 주변에 초록색 풀이 탐스럽게 자란다. 작은 덤불들과 나무들이 이 조그만 폭포를 지나가는 이들의 눈에서 숨겨준다. 폭포 양옆에는 절벽의 바위가 계단처럼 쌓여 있다. 호기심이 일어 그 위로 올라갔다. 위에 다다르자 탁 트인 곳이 나타났다.

폭포가 되어 떨어지기 전, 강물이 흐른다. 그 양 옆에 나무가 우거져 있다. 강의 왼쪽에는 주목나무가, 오른쪽에는 은사시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바로리가 말해준 주목나무 숲이 바로 여긴가 보다. 결국, 시누는 한 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를 한참을 돌아서 온 것 같다. 강가는 폭신한 풀밭이고, 시원한 바람이 머리를 간지럽힌다. 기분 좋은 곳이다.

주목나무 숲에 가려면 강을 지나야 한다. 그리 넓거나 깊지 않지만, 폭포 바로 앞이라 물결이 세다. 결국, 밑으로 내려가 연못을 돌아 반대편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돌아가는 게 귀찮아진 시누는 잠시 강가에 앉아 쉬기로 했다. 하지만 햇빛이 따갑다. 결국, 옆의 은사시나무 숲 안으로 들어갔다.

막상 가까이에서 나무를 보니 너무 아름답다. 이 넓은 숲속에 이런 아름다운 나무들이 숨어 있었다니. 하얀 나무들이 곧게 자라고 있다. 그 중, 특히 예쁘게 자라는 나무가 눈에 띄였다. 시누는 처음 보는 하얀 나무가 신기해 그 날씬한 나무줄기를 손으로 쓸어보았다. 왠지 촉감도 좋아서, 아무 생각 없이 계속 쓰다듬었다.

"뭐, 뭘 계속 만지는 거야!"

바로 옆에서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그리고... 잠시 숨이 멈춰졌다.

피부는 하얀데 입술이 붉다. 머리가 검은색이다. 입고 있는 옷은 은사시나무 잎을 엮어 만든 듯, 연한 초록색이다. 딱히 드레스라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셔츠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소매 없는 옷 덕분에 드러나는 팔과, 옷자락 밑에 드러나는 다리 역시 하얗다. 얼굴 역시 하얗지만, 왠지 모르게 얼굴을 붉히고 있다. 아름다운 사람이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은 아니다. 그러면, 정체가 뭐지?

"빨리 손 안 떼?"

그제서야 아직도 나무에 손을 대고 있다는 걸 깨달은 시누는 황급히 손을 거뒀다. 그러고 보니, 방금 쓰다듬던 나무와 닮았다.

"너, 이 나무의 정령이구나?"

흰 맨발을 옮겨 햇빛 아래에 선다. 검은 머리가 햇빛이 비치자 초록빛을 띤다. 하얀 피부가 눈이 부실 지경이다.

"내 숲에는 어느 누구도 온 적이 없는데, 넌 누구야?"

이제는 경계를 하기보다는 호기심이 더 큰 듯, 정령이 물어본다.

"시누. 우드 엘프 아처."

딱히 뭘 해야 될지 몰라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정령은 그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의미를 모른다. 시누는 손을 거뒀다.

"난... 진이야."

잠시 망설이다 대답한 정령은, 다시 망설이다 시누에게 손을 내민다. 방금 시누의 행동이 인사의 표시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시누는 그 손을 잡아 흔들었다. 진은 놀란 눈으로 시누를 올려다보았다.

"반갑다는 인사야. 반가워, 진."
"나... 나도 반가워, 시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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