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둘은 다시 회의실에 모였다. 오후에 있었던 일은 약속이나 한 듯 둘 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뭔가 다른 뾰족한 수가 생각이 안 나, 결국 그날 밤 다시 창고를 조사하러 가기로 했다. 물론, 베이커리에 재료를 공급하는 모든 업체들까지 다 탈탈 털어봤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었다. 그냥, 정말 막막한데, 유일하게 창고 하나만 제대로 조사해 보지 않아서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싶은 실낱같은 희망 때문이었다.

창고에 들어가는 건 지난번처럼 어렵지 않았다. 둘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자정이 좀 넘어서 창고에 진입했다. 핸드폰 후레쉬로 여기저기를 비춰가며 샅샅이 뒤져봤지만, 의심쩍은 건 전혀 없다. 그건 대형냉장고 안도 마찬가지다. 베이커리에서 쓰지 않는 재료는 전혀 없다.

둘은 결국 창고에도 뭐가 없다고 결론내렸다. 허탈하다. 힘이 빠진다. 홍빈은 자기도 모르게 옆의 포대자루 위에 털썩, 앉았다. 하얀 가루가 날렸다.

"에이씨, 검은 옷 입고 왔는데!"

홍빈이 짜증내며 일어났다. 밀가루다. 하필 밀가루 위에 앉다니... 그런데... 포대자루 중 하나가 이상하다.

"야, 이리로 와 봐."

홍빈이 옆 선반에 놓인 재료 봉지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던 찬식을 불렀다. 찬식은 홍빈 옆으로 왔다.

"이 포대, 날짜 좀 봐봐."
"뭐?"

찬식의 핸드폰 후레쉬가 포대자루의 유통기한 날짜를 비췄다. 2007년이라고 되어 있다.

"뭐, 유통기한 지난 밀가루라고?"
"그게 아니라, 이거 옆에 있는 거 봐봐."
"이건 2016년까지네. 여기 관리 잘 못 하네."
"아오, 정말. 포대를 잘 보라고. 유통기한이 2017년이라고 되어 있는 포대랑, 2016년이라고 되어 있는 포대랑, 포장이 달라. 상표는 같거든? 그러니까, 2016년에서 2017년으로 넘어오면서 포장을 바꿨나 봐."
"그래서?"
"이 멍청아. 여기 2007년이라고 된 포대는 2017년 포장이잖아. 10년 전 포대자루가 왜 올해 바뀐 포장이냐고."

찬식이 다시 자세히 포대를 살펴봤다. 보니까, 2017년을 2007년으로 살짝 바꿔 놨다. 거의 티 안나게.

"아무 이유 없이 이렇게 해 놓지는 않았을 거 아냐."

찬식의 말에 홍빈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포대의 가장자리를 손가락 끝으로 더듬었다. 찬식이 더 잘 보이게 후레쉬를 비춰주었다. 한쪽 모서리에 뭔가가 잡혔다. 살짝 잡아당겼더니 포대가 스르르, 풀렸다. 안에는 그냥 밀가루만 있다.

"뭐야, 이게 다야?"
"잠깐만."

이번에는 찬식이 포대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밀가루 속에 손을 넣고 젓는데, 뭔가가 잡혔다. 집어올렸다. 뭔가 하얀 가루가 들어 있는 봉지다. 둘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찬식이 흥분을 가라앉히며 속삭였다.

"이거, 그거 맞지?"
"그래. 그거 너네가 찾는 거 맞아."

홍빈 대신 다른 곳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강한 손전등이 둘을 비췄다. 비추는 사람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손에 든 총은 너무나 잘 보인다.

"그거 내려놓고, 손 들고, 천천히 일어나, 둘 다."

손에 든 봉지를 떨구고 찬식이 손을 들며 일어났다. 홍빈 역시 손을 들고 일어섰다.

"이쪽으로 나와."

둘 다 천천히 창고 한 가운데로 걸어나왔다.

"손에 그거 뭐야, 핸드폰? 바닥에 떨기고, 이쪽으로 차 보내."

둘 다 한마디 말도 없이 명령에 따랐다. 목소리의 주인은 계속 총구로 두 사람을 겨누며 몸을 숙여 핸드폰을 주웠다. 그 사이에, 불빛에 그 사람 얼굴이 보였다. 홍빈이 갑자기 찬식의 뒤통수를 때렸다.

"아이씨, 내가 사장이랬지!"

찬식은 할 말이 없었다. 사장은 그러는 두 사람에 당황한 듯, 잠시 말이 없다가, 크게 웃었다.

"뭐, 이미 의심받고 있었다면 어쩔 수 없네."

순식간에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너네 정체가 뭐야? 경찰이야?"

둘 다 대답하지 않았다. 그걸로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어떻게 이 가게에 대해 알게 된 거지?"

여전히 말이 없다. 사장이 갑자기 주웠던 핸드폰을 둘 다 바닥에 내팽겨치고, 총으로 쐈다. 부서진 핸드폰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내가 인내심이 별로 없어서 말야. 사람이 질문을 하면 대답을 좀 하지?"

찬식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공항에서..."
"아, 그 머저리 같은 계집애. 욕심을 부려서... 그 년 때문에 2년 동안 잘 써먹던 수법이 드러나 버렸잖아. 뭐, 이제 별로 상관 없지만."

평소엔 약간 사람 좋아 보이던 사장이 아닌 것 같다. 완전 다른 인격이다.

"난 또, 지난번 애새끼 하나 죽은 거 때문에 그러는 줄 알았지."
"알고... 있었어?"

홍빈의 목소리 역시 차가워졌다.

"뭐... 그런 건 다 파악하고 있어야 되니까. 병신같은 게 사람 비즈니스를 망치려고..."
"사람이 하나 죽었는데, 뭐? 비즈니스?"
"걔 죽은 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홍빈은 점점 더 열이 받는다.

"당신이 유통한 그 쓰레기 마약 때문에 죽은 거잖아!"
"내가 마약 하라고 총이라도 디밀며 협박을 했나? 다 지들이 원해서 한 거고, 지들이 잘못해서 죽은 거야. 왜 내 탓을 하는지 모르겠네?"

약간은 웃음기를 담은 목소리에 홍빈은 너무 화가 나 미칠 것 같다. 입을 열어봤자 쌍욕밖에 안 나올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그나저나... 대단하신 분들이네. 나 하나 조사하겠다고 게이인 척하고 우리 가게에 취직한 거야? 그 드러운 짓까지 하면서?"

아주 둘을 갖고 놀고 있다. 홍빈은 이제 화를 억누르느라 손이 다 떨릴 지경이다. 옆의 찬식은 의외로 침착하다.

"우리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아... 아무래도 둘이 뭔가 수상쩍어서 말야. 혹시나 해서 센서를 달아놨지. 밤에 누가 가게나 창고 안에 들어오면 내 핸드폰에 바로 알림이 오도록."

잘 속여왔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찬식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치고는, 너무 멍청하잖아? 당신 이름으로 된 가게에서 마약을 유통하다니."
"누가 그래, 이게 내 이름이라고?"

사장이 아니라 홍빈과 찬식, 둘이 더 멍청했었다.

"그래도 이렇게 얼굴까지 팔려 가며..."
"내 얼굴 제대로 아는 사람은... 너네 둘 뿐인 것 같은데? 알바생들이야 나처럼 흔한 얼굴 기억도 못 할 테고, 어차피 지문도 없앴고 DNA 기록도 없고, 오늘 너네 둘 여기서 처리하고 없어지면 나 아무도 못 찾아."

저 말이 사실인 것 같아 더 당황스럽다. 그나저나, 공찬식 저 녀석은 뭐 이런 상황에서 말이 많아?

"내가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인데, 어차피 죽을 거니까 한 가지만 묻자. 아까, 이제 별로 상관없다고 한 말은 무슨 뜻이야?"
"뭐?"

사장이 갑작스런 찬식의 질문에 당황한 눈치다.

"아까, 밀반입하는 게 들켰지만 이제는 상관없다는 말이 뭐냐고. 어차피 여길 뜰 거라서 그러는 거야, 아니면 다른 뭔가가 있는 거야?"

이 상황에 뭐 저런 게 궁금해? 설마... 자백을 유도하고 있는 거야? 홍빈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찬식이 지금 어디 뭔가로 녹음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은 그냥 창고 조사를 온 건데, 어떻게 그런 준비까지 해 온 거지?

"아... 더 대단한 걸 준비하고 있지. 뭐, 너네가 알 필요는 없지만."

원래 저런 놈들은 자기들이 잘난 걸 어떻게든 자랑하고 싶어하는 놈들이다. 영화에서 악역이 저렇게 모노로그하다가 잡히는 게 다 이유가 있다. 좀 더 찔러보면 저것까지 불 것 같다. 그러면, 오늘 밤 홍빈이 잘못된다 해도 덜 억울할 것 같다.

"그래봤자 어디 시골 가서 다시 빵집 하나 차리겠지."
"그런 식으로 나 화나게 해서 다 불게 만들려는 거야?"

사장이 비웃는다. 홍빈의 도발은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찬식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목걸이야?"
"뭐?"
"사장실에 있던 그 목걸이. 그게 당신이 준비하고 있는 더 대단한 거냐고."
"그걸 봤단 말야? 생각보단 유능한 경찰인가 보네."

사장이 다시 비웃음을 담아 말한다. 하지만 목소리가 조금 달라졌다. 홍빈은 찬식의 말을 곱씹는다. 그때 본 목걸이... 뭔가 특이하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뭐였지?

"그거... 봤을 때 이상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그거 크리스탈이잖아."

크리스탈? 그게 뭐야? 홍빈의 혼란을 느꼈는지, 찬식이 이어 말했다.

"메스암페타민. 흔히 말하는 필로폰."

어? 미드에서 본 기억이 났다. 어디 교사가 직접 만들었던가?

"지난주부터 질 나쁜 크리스탈이 갑자기 대량으로 유통되기 시작했어. 그것도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그거, 당신이 하는 거지?"
"생각보다 머리가 나쁘지는 않은가 보네."

사장의 목소리에서 비웃음이 사라졌다.

"당신이 만들어내는 거야?"
"생각보다 만들기가 쉽더라고... 하지만 나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있지."
"누가..."

갑자기 창고 문이 열리고 누가 들어왔다. 천장의 전등불이 켜졌다. 어둠 속에 있던 세 사람은 눈이 부셔 눈을 깜빡였다.

"왜 이 한밤중에 불러내고 그래?"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본 찬식이 홍빈의 뒤통수를 갈겼다.

"내가 제빵사랬지!"

제빵사가 알루미늄 배트를 들고 문 옆 스위치 앞에 서 있다. 그의 뒤에 주방보조 둘 역시 같은 무기를 들고 서 있다. 이제 정말, 위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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