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찬식! 정신 안 차려?"

두 자리 앞에 앉은 홍빈의 뒷모습을 넋놓고 보고 있던 찬식은, 선생님의 따끔한 목소리와 반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정신이 확 들었다. 그런 자기를 보는 시선들 사이에서 홍빈의 시선을 느끼고, 얼굴이 빨개졌다. 홍빈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정말 창피하다.

"빨리 나가서 문제 풀어."

어? 언제 수학 시간이 된 거지? 찬식은 화이트보드 앞으로 나갔다. 당연히 모르는 문제였다. 결국, 선생님한테 다시 혼나고 들어왔다. 이제 얼굴이 너무 빨개져서 터질 지경이다.

'그러니까, 왜 남자애한테 목매느라 수업 시간에 멍 때리고 있냐고!'

갑자기 찬식의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촌! 내가 수업시간에 말 걸지 말랬잖아?'
'네가 이 홍빈이만 쳐다보느라 수업에 집중을 못 하니까 그렇지.'
'그게 삼촌이랑 무슨 상관인데!'
'네가 불쌍해서 그런다, 됐냐?'
'그러는 삼촌은 5년째 쥐인 주제에.'
'햄스터거든, 이 멍청아!'
'어쨌든, 아직 수업 중이니까 그만 조용히 해.'
'수업은 무슨, 다시 이홍빈이 등짝만 쳐다보고 있을 거면서.'
'나 진짜 화낸다, 삼촌. 조용히 해.'
'그렇게 계속 쳐다보기만 하고 있으면 뭐가 되겠냐? 러브 포션이라도 쓰지 않는 한...'
"아 좀 조용히 하라고!"

순간 교실 안이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선생님이 돌아보았다. 얼굴이 너무 무섭다.

"공찬식, 지금 나보고 조용히 하랬냐?"

아, 최악이다.

"아... 저... 제가, 지금 깜빡 졸아서, 꿈을..."
"그러니까, 내 수업이 너무 지루해서 졸기까지 했다는 거냐? 나가."
"네? 선생님..."
"나가!"

결국, 수업 도중에 쫓겨났다. 홍빈이 쫓겨나는 찬식을 다시 힐끔 보는 걸 느꼈다. 진짜 너무 창피해 죽을 것 같다.

교실 밖에 서서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면서, 찬식은 속으로 집에 가면 삼촌한테 퍼부어줘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삼촌이 한 말이 갑자기 귀에 맴돌았다.

"러브 포션?"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찬식은 삼촌부터 찾았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보이질 않는다. 어디 숨었나 보다. 지금이 기회다.

찬식은 엄마의 서재에 들어가, 책상 가장 아래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책상에서 엄마의 레터 오프너를 집어, 서랍의 바닥 틈 사이로 끼워넣었다. 서랍의 바닥이 들려졌다. 그 밑에 숨겨져 있던 낡디 낡은 책을 꺼냈다.

"야, 네가 그걸 왜 꺼내! 누나 돌아왔을 때 제대로 혼나려고!"

책상을 보니 햄스터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앉아 찬식을 보고 있다.

"삼촌, 내가 학교에 있을 때 말 걸지 말랬잖아! 내가 오늘 얼마나 혼난 줄 알아?"
"그거야 네가 소리내서 말해서 그렇게 된 거지."
"삼촌이 먼저 말을 걸었잖아!"
"혼자 심심해서 그랬다. 됐냐?"
"그거 엄마가 응급 상황 때나 쓰라고 주고 간 주문이잖아! 삼촌이 그 쬐끄만한 손으로 전화를 못 거니까, 무슨 일 있으면 주문 써서 나 부르라고. 왜 자꾸 그거 써서 수업시간에 말 거는데?"
"그래, 나 햄스터라 손이 쬐끄만하다. 나 햄스터로 사는 데 네가 뭐 보태준 거 있냐?"

햄스터가 삐친 듯 돌아앉았다. 찬식은 찬식대로 짜증이 났다.

"무슨 삼촌이 이 따위야! 삼촌이면 나 도와주고, 돌봐줘야 하는 거 아냐?"
"너도 나처럼 햄스터 몸에  몇 년째 갇혀 있어봐라. 남 도와주고 싶나."
"엄마한테는 나 잘 돌본다고 한 주제에."
"그거야 이 저주를 풀 수 있는 사람이 한국엔 누나밖에 없으니까."

찬식의 엄마는 한국에 몇 없는 마녀다. 얼마 전, 엄마가 공부했던 외국 학교에서 엄마의 교수님이 연구를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다른 친척도 없고, 딱히 부탁할 곳도 없어서, 결국 엄마는 찬식을 햄스터에게 맡기고 떠났다. 햄스터는 찬식의 외삼촌으로, 저주를 받은 마법사다. 뭔가, 흑마법을 시도했다가 그 역효과로 저주에 걸렸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5년째 햄스터의 몸으로 남들 몰래 찬식의 집에서 살고 있다. 그 흑마법이 불법이었기 때문에, 마법협회에 걸리면 더 큰 벌을 받는다나, 뭐라나. 그래서 찬식의 엄마가 저주를 풀어주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뭘 해도 효과가 없어서, 이번에 모교에 간 김에 저주를 푸는 방법도 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갔었다.

하지만 찬식은 마법사가 아니었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아빠처럼 보통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떠한 마법도 구사할 수 없었다. 그냥,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그리고 학교 첫날 홍빈에게 한눈에 반해 두 달째 혼자 끙끙 앓고 있는 보통 고등학생이었다.

"너 도대체 그걸로 뭐 하려고 그래?"

햄스터가 책을 들고 거실로 향하는 찬식의 어깨로 뛰어올랐다.

"나 이걸로 러브 포션 만들어서 홍빈이한테 쓸 거야."
"너 미쳤어? 이건 마법사나 마녀밖에 만들 수 없는 거잖아."
"삼촌이 아까 홍빈이한테 쓰라고 그랬잖아."
"내가 언제?"
"아까 그랬잖아. 책만 따라하면 만들 수 있는 거 아냐?"
"그거야 나도 모르지."
"그럼 한 번 해보면 되겠네."

결국 이 사달이 난 게 본인 탓임을 깨닫고, 내가 혀 깨물고 죽어야 한다며 작은 손으로 볼을 잡고 괴로워하는 햄스터를 무시하며, 찬식은 책을 식탁 위에 놓고 안방으로 향했다. 잠시 후 나온 찬식의 손에는 엄마의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야, 너 설마."
"엄마가 마법 학교에서 전화 안 터진다고 놓고 가서 다행이다."

찬식은 엄마의 핸드폰을 켜고, 마법 사용자만 설치할 수 있는 번역앱을 찾았다. 고어로 써진 주문서를 찬식이 읽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찬식의 엄마도 고어를 못 읽어서, 번역앱을 쓰는 게 참 다행이었다.

번역앱으로 목차를 훑던 찬식이 드디어 러브 포션 레시피를 발견하고 책장을 넘겼다.

"어? 생각보다 복잡하네."
"당연하지. 사랑이란 게 얼마나 어렵고 복잡한 건데. 그걸 만들어내는 포션이 쉬울 거라고 생각한 거야?"
"그래도, 삼촌도 만들었었으니까 나도 만들 수 있겠지."
"내가? 내가 만든 거 어떻게 알아?"
"삼촌이 말해줬잖아, 나 어렸을 때. 그렇게 해서 좋아하는 여자애 꼬셨다고."

또 이놈의 입이 방정이라며, 찬식의 엄마가 돌아오면 저주를 풀어주기는 커녕 아예 쇠똥구리로 만들 거라며 햄스터가 다시 볼을 잡고 괴로워했다. 찬식은 번역앱을 이용해 재료와 레시피를 읽었다. 아무래도 매번 번역앱으로 찍어가며 읽는 게 번거로울 것 같아서, 가방을 열고 잡히는 대로 수학 공책을 꺼내 받아 적었다. 재료는 대충 엄마의 비밀 캐비넷에 있을 것 같다. 문제는, 홍빈의 머리카락이었다. 찬식의 머리카락과 홍빈의 머리카락을 엮어, 포션을 만들 때 넣으라고 되어 있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구하지?"
"그냥 가서 달라고 그래."
"내가 걔한테 가서 그걸 달랠 수 있었으면 이런 포션이 왜 필요하겠어? 뇌도 쥐 뇌가 된 거야?"
"아우씨, 한참 어린 게!"

햄스터가 화를 냈지만, 하나도 안 무섭다. 찬식은 공책에 적힌 레시피를 다시 꼼꼼히 읽어보았다. 아... 역시 홍빈의 머리카락이 제일 어려울 것 같다.








홍빈을 학교 밖에서는 만날 일이 없으니, 어떻게든 학교에 있는 동안에 홍빈의 머리카락을 손에 넣어야 한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내도, 아이디어가 없다. 아주 멍청하거나, 아주 웃긴 것밖에. 그렇지 않아도 툭하면 수업시간에 혼나고, 실수하고 하는데, 홍빈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겠냔 말이다.

아니, 아니지. 어차피 러브 포션을 쓰면 무조건 좋아하게 되는 거잖아? 지금이야 어떻든, 포션만 먹었다 하면 찬식이 과거에 아무리 멍청하고 우스운 행동을 했어도, 전혀 상관 안 할 거다. 우선은, 머리카락을 얻는 게 제일 중요하다.

망설이고 있는 찬식의 등을 떠미는 소식이 들려왔다. 엄마가 연구를 끝내고 며칠 후에 돌아온다는 연락이었다. 엄마가 돌아오면 포션이고 뭐고 다 끝나는 거다. 그래서, 눈 딱 감고, 큰 맘 먹고 저지르기로 했다.

체육 시간, 선생님이 귀찮았는지 공을 하나씩 던져주며 여자애들은 피구, 남자애들은 축구를 하라고 지시했다. 드디어, 찬식이 기다리던 기회가 온 거였다. 그렇게, 여자애들은 학교 실내체육관으로 가 피구를 시작하고, 남자애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심판마저 반 애들 중 한 명에게 맡기고 교무실로 돌아갔다. 얼마 전 한 소개팅에서 제대로 차였다더니, 삶의 의욕을 잃은 것 같다.

홍빈과 다른 팀이 된 찬식은 기회를 엿봤다. 드디어 홍빈에게 공이 가고, 찬식은 미친 듯이 뛰어서 홍빈을 태클했다. 그것도 머리끄댕이를 잡으면서. 둘이 같이 넘어졌다. 홍빈은 팔꿈치가, 찬식은 무릎이 땅바닥에 쓸려 옷이 찢어지고 피가 나기 시작했다. 홍빈이 먼저 일어섰다.

"야, 너 괜찮아?"

정작 태클 당한 건 자기면서 찬식에게 물어본다. 찬식은 손에 잡고 있는 홍빈의 머리카락을 놓칠 것 같아, 손에 더 꽉 쥐고, 다른 손으로 땅을 짚으며 일어나려 애썼다. 한 번에 못 일어나자, 홍빈이 찬식의 양쪽 옆구리를 잡아 일으켜 세워주었다.

"너 양호실 가야 될 거 같은데?"

걱정스러운 눈으로 찢어진 체육복 바지에 묻어나는 피를 쳐다본다. 자기도 팔꿈치가 다쳐서 체육복에 빨간 피가 스며들고 있으면서. 홍빈이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까 심장이 떨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계속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면 이상한 애라고 생각할 거다. 그래도, 포션만 먹이면 되니까... 그 생각에, 찬식은 대답도 안 하고 바로 학교 건물로 절뚝거리며 뛰어갔다. 뒤에 남은 홍빈은 황당한 표정이었다.








드디어 홍빈의 머리카락을 손에 넣은 찬식은, 집에 오자마자 포션을 만들기 시작했다. 엄마의 비밀 캐비넷에서 필요한 재료를 꺼냈다. 사실, 비밀 캐비넷이라고 하기도 웃긴 게, 그냥 키친의 찬장 중 하나다. 마법 재료가 들어있다 뿐이지, 특별하지 않다. 보호 주문 같은 것도 없다. 엄마가 절대로 찬식이 이런 일을 벌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테니까.

엄마의 포션 가마솥을 놓고, 레시피대로 재료를 넣었다. 포션은 재료를 넣을 때마다 책에서 말한 대로 색이 변하고, 부글부글 끓고, 했다. 다행이다. 포션은 보통 사람도 만들 수 있나 보다. 결국, 예쁜 라벤더색의 포션이 만들어졌다. 찬식은 뿌듯한 얼굴로 포션을 유리병에 담았다. 옆에서 구경하던 햄스터가 물었다.

"너, 그거 홍빈이한테 어떻게 먹일 건데?"

아... 산 넘어 산이다.








밤새 잠도 못 자며 고민을 하던 찬식은, 결국 퀭한 얼굴로 일어났다. 도대체, 친하지도 않고, 말도 몇 번 한 적 없는 애한테, 어떻게 이걸 먹이지? 게다가, 어제 태클까지 해서 팔꿈치에서 피까지 나게 했는데?

가만, 어제 일을 사과하면서 뭔가 먹을 걸 사서 주면 되지 않을까? 물론 홍빈이 앞에서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할 테지만, 이 포션을 어떻게든 먹여야 하니까. 하지만 빵에 발라 보니 라벤더색으로 변한다. 과자도 마찬가지다. 결국, 라벤더색이 묻힐 만한 음식에 넣어서 먹여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학교에 가는 내내, 수업 시간에도 내내, 마지막 수업종이 칠 때까지 찬식은 계속 고민, 또 고민했다. 그런데, 그 고민을 덜어준 건 다름 아닌 홍빈이었다. 하루 종일 찬식이 앉은 방향을 흘끔거리더니,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홍빈이 먼저 찬식에게 다가왔다.

"너, 어제 넘어진 데 괜찮아?"

홍빈에게 어떻게 포션을 먹여야 되는지 고민하다가 정작 홍빈이 오는 걸 못 본 찬식은, 바로 눈앞에서 들리는 홍빈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가방을 떨어트렸다. 가방 안에 있던 물건들이 흩어지고, 홍빈은 찬식을 도와 물건을 집어주었다. 그런데, 홍빈의 바로 옆에 수학 공책이 열린 채 떨어져 있었다. 저 안에 써 놓은 레시피를 찢어 버리는 걸 깜빡했는데, 홍빈이 보기라도 하면? 놀란 마음에 번개같은 속도로 기어가 공책을 집었다. 다행히 다른 페이지가 열려 있어서 안도감에 기뻐하며 일어서는데, 홍빈이 정말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방금 기어간 모습이 참... 생각해 보니 정말 볼썽사나웠을 것 같다. 하지만, 포션만 먹이면 다 괜찮아질 거니까.

아직까지도 홍빈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걸 그제서야 기억해 내고, 찬식이 겨우 입을 열었다.

"괜... 괜찮아."
"그래?"

돌아서려는 홍빈을 잡았다. 정말, 그 포션 하나만 생각하고 낸 용기였다.

"어... 어제, 나 때문에 넘어져서..."
"아,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그... 그래도 미안하니까... 뭐라도... 그..."
"응?"
"포ㅅ... 아니, 편의점 가서, 뭐라도 먹을래? 내가 살게."

바보 멍청인가? 포션이라고 할 뻔했다. 그래도 서둘러 말을 바꿨으니 다행이다.

홍빈은 놀란 눈으로 찬식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바로 웃어보였다.

"그래."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사서, 나란히 서서 라면이 익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포션을 어떻게 저 라면에 넣는다? 뭔가 또 엄청 이상한 짓을 해야만 할 것 같다. 결국,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아, 라면이 거의 다 익었을 때 찬식은 일부러 컵라면을 손에서 놓쳐서 바지에 쏟았다. 윽, 엄청 뜨거웠다.

"야, 괜찮아?"

정말, 저 포션만 아니면 홍빈이 찬식을 완전 진상이라고 생각할 거다. 홍빈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휴지가 보이지 않자 우선 편의점에서 하나 사오겠다며 카운터 쪽으로 갔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라면 뚜껑을 열고 포션을 쏟아부었다. 곧 홍빈이 물티슈를 사왔다.

"병원 가야 하는 거 아냐? 덴 거 같은데."
"아, 아니, 괜찮아. 그냥, 좀... 닦으면 돼."

물티슈를 써서 바지를 대충 닦고,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는 편의점 알바가 와서 바닥까지 청소했다. 그 와중에 라면은 이미 불어터졌다. 이번 계획은 완전 실패다.

하지만, 버릴 거라고 생각한 것과는 달리, 홍빈은 그 불어터진 라면을 다 먹었다. 국물까지.

"그거 다 식고 불어서 맛 없을 텐데..."
"그래도 사 준 건데 어떻게 버려?"

아... 더 좋아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홍빈이 너무 좋다. 빨리 저 포션의 효과가 나타났으면 좋겠다. 이렇게 진상 떤 모습을 홍빈이 빨리 잊어버리고, 찬식을 좋아하게 됐으면 좋겠다.







오늘은 체육수업도 없는 날이라, 갈아입을 옷이 없었다. 그래서, 편의점에서 나와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찬식이 계속 더러워진 바지를 신경쓰자, 홍빈이 갑자기 교복 자켓을 벗어 허리에 둘러 주었다.

"춥잖아."
"괜찮아."

자기 자켓으로 하겠다고 그래도 한사코 거절해서, 우선은 찬식의 집까지 그렇게 가고, 거기서 홍빈은 자켓을 돌려받아 본인의 집으로 가기로 했다. 찬식은 거리를 걸으며 홍빈을 흘깃거렸다. 봄이지만 요즘 꽃샘추위라 분명히 엄청 추울 텐데, 자켓을 벗어주었다. 약효가 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렇게 몇 분 더 걸어, 찬식의 아파트 건물 앞에 도착했다. 이제 괜찮다고 하는데도, 홍빈은 집 앞까지 가자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약효가 나타나기 시작한 게 아니라면, 저렇게까지 해 주지는 않았을 거다. 찬식은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찬식의 집 앞에 다다르고, 찬식은 홍빈의 자켓을 도로 건넸다. 홍빈이 자켓을 다시 입고, 잠시 찬식을 바라보았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홍빈에게 들릴 것 같다.

"너 귀여워."

으헉. 홍빈의 말에 숨이 턱 막혔다. 찬식은 얼굴이 빨개지는 게 느껴졌다.

"나랑 사귈래?"

입을 열면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아서, 찬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홍빈이 씩 웃었다. 너무 행복해 죽을 것만 같다.








찬식의 엄마가 무거운 트렁크를 거실에 내려놓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 찬이 어디갔어? 엄마가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지 남친이랑 놀러갔어."

테이블 위에 앉아 있던 햄스터가 누나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남친? 뭐야, 우리 아들 남친 생겼어?"
"어."
"누구? 설마... 이홍빈?"
"걔 말고 누가 있어."
"오호, 우리 아들 장하네. 그렇게 좋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어떻게 꼬셨대?"

햄스터는 말이 없다. 그 조그만 얼굴에 죄책감이 보인다. 찬식의 엄마는 햄스터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불어. 무슨 일 있었어?"
"말 못 해."
"좋은 말 할 때 불어, 똥파리로 만들기 전에."

똥파리라니... 쇠똥구리보다 더하다. 결국, 햄스터는 불었다.

"찬이가 누나 포션 책을 몰래 꺼내서 러브 포션을 만들었어."
"뭐? 말도 안 돼. 걔가 마법의 힘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만들어?"
"어? 그래도 다 레시피 대로 변하고, 녹고 하던데..."
"그거야 재료들이 화학작용 하는 거고. 거기에 마법의 힘이 들어가야 약효가 있지."
"그럼 찬이가 만든 건 뭐야?"
"그냥 예쁜 색의 물. 어떻게 보통 사람이 포션을 만들어? 그러면 개나 소나 다 만들게?"
"어? 그럼 어떻게 된 거지? 분명히 포션 든 라면을 먹고 이홍빈이 찬이한테 고백했다고 했는데?"








어두운 영화관 안, 홍빈과 찬식은 손을 잡고 영화를 보고 있다. 하지만, 둘 다 영화 스크린보다는 서로를 보기 더 바쁘다. 계속 곁눈질하며 서로의 얼굴을 보다가, 결국 눈이 마주쳤다. 홍빈이 찬식을 보고 씩 웃었다. 찬식의 심장이 떨린다. 홍빈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찬식은 눈을 감았다.

사실, 러브 포션을 써서 홍빈과 사귀게 된 게 죄책감이 든다. 속였다는 게 자꾸 마음을 무겁게 한다. 하지만... 홍빈이 너무 좋다. 이렇게라도 홍빈과 사귀게 되어서 너무 좋다.

홍빈 역시 기분이 좋다. 처음, 교실에서 봤을 때부터 귀엽다고 생각했다. 툭하면 수업 시간에 멍 때려서 혼나고, 수학 시간에 앞에 불려나가면 문제를 못 풀어서 강아지 같은 눈으로 선생님을 쳐다보는 게, 다 귀여웠다. 그리고, 자꾸 자기 앞에서 실수하는 찬식이 너무 귀여워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를 좋아해서 그러는 것 같았다. 체육시간에 아무 이유 없이 태클하고, 말만 걸면 얼굴 빨개지고, 가방 안에 든 물건 떨어졌다고 당황해서 기어다니며 줍고, 라면 쏟고, 그러는 게 다 홍빈을 좋아해서, 떨려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니 더 귀여워졌다. 그래서 고백했던 거다. 그렇게, 찬식과 사귀게 되어서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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