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빈은 몇 시간째 짓는 억지 웃음에 얼굴 근육이 마비가 될 것 같았다. 하필 여대 옆의 베이커리라 손님이 대부분 여대생인데, 거기에다 홍빈이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잘생긴 알바생에 대한 소문이 퍼져 손님이 몇 배가 늘었다. 정말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이곳에 언더커버로 취직한 형사인 홍빈에게는.

얼마 전, 홍빈이 속한 경찰서 관할구역에서 고등학생 한 명이 헤로인 중독으로 죽었다. 일진에, 꽤나 놀던 날라리였기 때문에, 그렇게 큰 사회적 파장은 없었다. 문제는, 학생의 소지품에서 발견된 소량의 헤로인이 굉장히 질이 나쁜 중국산이고, 양을 늘리려 그런 건지 LSD까지 섞여 있었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학생이 속한 일진 그룹 중, 대부분이 같은 약에 중독돼 있었고, 이 약이 어떻게 홍빈의 동네에 들어온 건지는 모르지만, 어린 학생들, 특히 일진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고등학생들이 마약이라니, 미국 드라마도 아니고. 홍빈이 속한 강력 3팀은 바로 수사에 들어갔다. 우선, 어디에서 이 마약을 공급받는지 알아야 했다. 몇몇 학생들을 추궁해서 딜러를 찾았고, 그 딜러를 통해서 다른 딜러를, 이렇게 점점 거슬러 올라가 이 베이커리까지 왔다. 하지만, 이곳에서 모든 단서가 끊겼다. 보기에는 그냥 보통 베이커리 같아 보이는 곳이었다.

그래서, 결국 팀의 막내 홍빈이 이 베이커리에서 언더커버로 일하게 되었다. 경찰대를 다닐 때부터 그렇게 원하던 강력계에 올해 드디어 발령받았다. 그런데, 올해 무슨 마가 꼈는지, 몇 년 조용하던 동네가 홍빈이 오자마자 연쇄살인범에, 혼자 사는 여자들을 겨냥한 성범죄자까지, 한꺼번에 여러 일이 터졌었다. 3팀의 선배들은 우스갯소리로 홍빈이 오고 나서 사건이 터지기 시작했다고 농담했지만, 정작 홍빈은 진짜 자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었다. 그래서 이 마약사건은 어떻게든 빨리, 잘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사건 해결을 위해, 정말 체질에 안 맞지만, 베이커리에 알바생으로 잠입했다. 잘생기고 어려보이는 얼굴 덕에, 옆 동네의 대학교 학생인 척하며 꽤 쉽게 베이커리에 취직했다.

슬프게도, 홍빈의 잘생긴 얼굴이 발목을 잡았다. 홍빈은 원래 주방보조로 취직할 생각이었다. 창고, 이런 곳을 쉽게 출입할 수 있도록. 하지만 홍빈은 뽑히자마자 바로 카운터로 가게 되었다. 그러기를 며칠, 아직도 제대로 뭘 한 번 파보지도 못하고, 빵만 팔고 있다. 정말 짜증난다.

더 짜증나는 건, 같이 알바하는 저 녀석, 공찬식이다. 홍빈이 일을 시작한 다음날 새로운 알바생으로 왔다. 역시 얼굴 때문에 뽑힌 것 같은데, 저 녀석 때문에 손님이 더 늘었다. 베이커리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정말, 이곳에 오는 여대생들이 살이 쪄 가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다. 빵을 내놓으면 순식간에 동이 난다. 게다가, 저 녀석은 강아지 같은 웃음을 지으며 잘도 애교까지 부려가며 계산을 해 준다. 당연히 손님이 더 늘 수밖에 없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정말 빵만 팔러 여기 온 것 같다. 연쇄살인범을 쫓아 며칠 밤 잠복근무한 것보다 더 피곤하다. 쉴 새 없이 새로 구운 빵을 진열하고, 밀려드는 손님들 계산을 도와주고, 그러다 보면 녹초가 된다. 당연히 쉬는 시간이나 손님이 뜸할 때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려고 했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선배 형사들은, 네가 형사보다는 베이커리 알바생이 더 맞나 보다, 라며 농담인 듯 구박을 했다. 며칠째 아무런 성과 없이 빵만 팔고 있으니, 그런 구박을 받아도 싸다.

그러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여대의 개교기념일에 비가 억수로 퍼붓는 날, 손님이 거의 오지 않았다. 늘 다른 일이 있다며 자리를 비우는 사장은 오늘도 가게에 없어서, 가게에는 홍빈과 찬식, 다른 알바생 둘, 그리고 뒤쪽에서 빵을 굽는 제빵사와 주방보조 둘만이 남아있었다. 지금이 기회였다.

화장실을 간다고 하고 몰래 직원휴게실에 들어가 제빵사의 사물함을 열었다. 그가 건망증이 심해 툭하면 잠그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제빵사의 윗옷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역시, 잠금 패턴도 설정하지 않았다. 핸드폰을 뒤져 가게의 모든 도어락의 비밀번호가 적힌 메모를 찾았다. 사장이 게을러서, 항상 제빵사가 먼저 와 빵을 굽기 시작하기 때문에 그가 모든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건망증 때문에 그걸 다 이 메모에 저장해 놨다는 걸 주방보조들의 대화를 몰래 듣다가 알게 되었었다. 홍빈은 자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다시 원위치에 놓았다. 불과 몇 분만에 다시 카운터 뒤로 돌아왔다.

사장이 너네 알아서 손님 없는 것 같으면 퇴근해, 라고 하고 갔기 때문에, 곧이어 제빵사와 보조들도 퇴근을 했다. 홍빈과 다른 알바생들도 곧 가게를 정리하고, 알람을 작동시키고, 휴게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 헤어졌다.








몇 시간 뒤, 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 홍빈은 가게로 돌아왔다. 사실, 밤에 다시 오는 게 좀 위험할 것 같아서 그러기 싫었다. 차라리 낮에는 뭐 가지러 온 게 있다, 혹은 심부름 왔다, 하며 경비한테 얘기라도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난 며칠을 겪어본 지금, 도저히 그럴 시간이 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정말 화장실 가는 것도 참아가며 카운터에서 자리를 지키거나, 빵을 다시 진열하거나, 해야 됐었다. 결국,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다.

그래도 나름 가게를 파악하면서 이곳저곳 틈틈이 뒤져보았다. 그 결과, 가게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장부터 시작해서 제빵사, 알바생들, 주방보조들 소지품까지 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뒤졌는데도, 뭐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마지막으로 남은 지하창고에 가 볼 생각이었다. 베이커리가 위치한 건물 지하에 빵을 만들 때 쓰는 재료가 대형냉장고에, 그리고 실온에 저장되어 있다는 걸 첫날 들어 알고 있었다. 진짜, 이 베이커리가 마약을 공급하는 장소라면, 아마도 그곳에서 뭐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야간경비가 매 시간마다 순찰을 도는 걸 알기 때문에, 일부러 이 시간에 왔다. 건물 자체는 밤에도 열려 있어서 별 무리 없이 들어왔고, 경비가 위층을 도는 동안 지하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어차피, 경비실을 지키는 다른 경비는 졸고 있을 테고, CCTV도 녹화가 안 되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조심하며 계단으로 내려갔다. 역시, 별 무리 없이 창고에 다다랐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알람조차 없다. 핸드폰의 불빛을 이용해 주변을 둘러봤다. 어차피 불을 켜도 불빛이 새나갈 것 같지는 않지만, 혹시 모르니까.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는데, 갑자기 도어락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홍빈은 핸드폰의 후레쉬를 끄고, 한쪽으로 몸을 숨겼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그 사람 역시 핸드폰 후레쉬를 켰다. 그 불빛에 얼굴이 보였다. 공찬식이었다.

처음 든 생각은 혹시 저자가 마약밀매에 관련되어 있나? 였다. 하지만 찬식은 홍빈보다 늦게 이 가게에 들어왔다. 그럼, 이 한밤중에 뭔가 훔치러 왔나? 그것도 말이 안 된다. 여기에 있는 거라곤 베이킹 재료 뿐이다. 다시 처음 든 생각에 무게가 실렸다. 뭔가를 아니까 한밤중에 이곳에 들어왔겠지. 혹시, 여기에 마약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알고, 가지러 온 건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잡아 추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까 홍빈과 마찬가지로 핸드폰 불빛으로 주변을 비추며 돌아보는 찬식의 뒤로 몰래 다가가, 한 팔로는 몸에 둘러 팔을 고정시키고, 다른 팔로 목을 졸랐다. 찬식의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졌다.

"너, 정체가 뭐야?"

찬식이 버둥거리다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에 갑자기 몸부림을 멈췄다. 홍빈은 목에 감은 팔에 힘을 풀었다. 찬식이 콜록거렸다. 홍빈은 다시 물었다.

"이 시간에 여기 왜 왔어?"
"그러는 넌? 너 이 홍빈이지?"

목소리로 단번에 알다니, 아무리 같이 일해도 친하지 않아서 말을 몇 번 섞어본 게 다인데.

"너야말로 여기 왜 왔냐고."
"이거 풀고 얘기해."
"내가 잘도 풀어주겠다."
"아이씨, 풀어줘야 내 신분증이라도 보여주지."

찬식의 말에 팔을 좀 더 풀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찬식이 몸을 비틀어 빠져나가, 홍빈에게 헤드락을 걸었다. 상황이 정반대가 됐다.

"너는 정체가 뭐냐, 이홍빈?"

목을 죄는 팔을 풀으려 손에 힘을 주고 찬식의 팔을 잡아당겼다. 조금 느슨해졌다. 이번에는 홍빈이 콜록거렸다.

"너, 너 먼저 말해!"
"지금 네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다시 목을 감고 있는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찬식의 발을 세게 밟고, 겨우 그 팔에서 풀려나왔다. 홍빈은 목을 손으로 감싸며 켈록거렸고, 찬식은 아픈 발을 잡으며 신음했다. 이러다가는 밤 샐 것 같다. 홍빈은 혹시 몰라 가져온 총을 자켓 안의 홀스터에서 꺼내 찬식에게 겨눴다. 그리고, 역시 같은 생각이었던 찬식의 총구를 쳐다보았다.

"너, 진짜로 정체가 뭐냐?"

한국 같은 나라에서 총을 갖고 있다니, 이쪽, 아니면 저쪽 세계의 사람이란 뜻이다. 하지만, 찬식에게서 나쁜 놈의 느낌은 나지 않는다. 결국 한참 그렇게 대치하다, 이제 곧 있으면 다시 올 경비가 생각나, 홍빈이 먼저 총을 거두고 찬식이 의심하지 않도록 천천히, 주머니에 손을 넣어 신분증을 꺼냈다.

"나, 이 동네 관할 경찰서 강력 3팀 소속 이홍빈 경위다. 넌 뭐야?"

찬식 역시 총을 다시 발목 홀스터에 넣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신분증을 꺼냈다.

"서울지검 마약수사과 소속 공찬식 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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