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이번에 사장 비서실에 새로 뽑힌 비서가, 그것도 남자가, 사장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그래서 사장이 옆에 두고 싶어 자격 미달인데도 직접 비서실에 채용한 거라고. 가뜩이나 낙하산 채용으로 비서실에서 미움을 받고 있던 진영은, 졸지에 온 회사 사람들에게 사장의 애인으로 낙인이 찍혔다.

하지만... 회사를 관둘 수가 없었다. 통장 잔고는 간당간당하고, 학자금 대출에, 뭐에, 당장 집세를 낼 돈도 없어서... 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동우를 어릴 때 배신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 때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한없이 착하고 귀여웠던 동우가, 지금 저렇게 된 데에는 진영의 어머니가 퍼트린 그 소문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진영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우습겠지만, 동우가 좀 위태로워 보였다. 진영을 괴롭히고 싶어서 옆에 둔 거라면,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거다. 그런데 왜 이런 제 살 깎아먹기를 하고 있는지를 모르겠다. 사장이 남자 애인이 있다는 소문은 사장에게 더 큰 타격을 입히지 않나? 동우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어렸을 때 어머니의 강압에 의해 그랬던 것처럼, 동우를 그냥 모른 체할 수가 없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진영은 다음 날 출근을 했다. 그리고, 대놓고 눈치를 주는 선배들에게 일을 배워갔다. 어딜 가나 회사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안 들리는 척했다. 점심도 회사 식당에서 꿋꿋이 먹었다. 그리고, 어른인 자기도 이렇게 힘든데, 아직 어린 나이인 초등학교 4학년 때 이런 일을 겪은 동우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했다.

월요일 오후에 해외 출장을 가 며칠이나 보이지 않던 동우가, 금요일이 되어서야 나타났다. 진영을 보고는 약간 놀라는 듯했지만, 별 말 없이 지나쳤다. 그리고, 그날 하루종일 철저히 무시했다. 다음주 월요일도, 화요일도, 수요일도, 그렇게 계속 동우가 진영을 대놓고 무시하자, 다시 소문이 돌았다. 둘 사이가 심상치 않다고. 싸운 거 아니냐고. 참, 회사 일도 바쁠 텐데, 할 일도 없는지 다들 만나기만 하면 동우와 진영 얘기였다.

목요일 오후, 점심을 먹고 양치를 끝내고 온 진영이 본인 자리에서 파일 정리를 하고 있을 때, 인터폰이 울렸다. 옆의 비서가 받았다. 동우가 진영을 호출한 거였다.

진영은 심호흡을 하며 사장실 문에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지난 주 월요일과 비슷한 포즈로 동우가 서류를 읽고 있었다. 이번에도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앉으라 손짓했다. 진영은 지난번과 같은 자리에 앉았다. 데자뷰같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번에는 진영이 제대로 자켓까지 챙겨입고 왔다는 것 정도?

서류를 다 읽은 동우가 폴더를 내려놓고, 시계를 확인했다. 그리고 진영을 쳐다봤다.

"벗어."
"뭐?"
"자켓, 벗으라고."

진영이 동우를 쳐다보았다.

"왜 그래야 되는데?"

저도 모르게 반말이 나왔다.

"지난번 그런 일을 당했는데도 아직 여기 있는 걸 보면, 더 해도 괜찮다는 말 아냐? 적어도 난 그렇게 받아들였는데?"

어릴 때는 참 예쁘게도 웃던 애가 지금은 비릿한 웃음밖에 짓지를 않는다.

"난..."
"지금 벗던가, 아님 내 눈앞에서 사라지던가."

감정 없이 말하는 동우를 보며 진영이 자켓 단추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여전히 망설여졌다.

"내가 벗겨줘?"

결국 자켓을 벗어 한쪽에 단정히 놨다.

"이리 와."

다시 시계를 확인하고 동우는 자기 옆자리를 툭, 쳤다. 진영은 말없이 일어나 동우의 옆에 가 앉았다. 동우가 진영의 넥타이를 지난번처럼 거칠게 풀었다. 셔츠의 깃을 잡아당겼다. 단추가 또 몇 개 날아갔다. 진영은 그러는 동우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 눈빛이 신경쓰이지도 않는지, 동우는 셔츠 깃을 벌려 지난번 자기가 물었던 곳을 확인했다. 아직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걸 보는 동우의 얼굴에 차가운 웃음이 서렸다.

다시 한 번 손목의 시계를 확인하고, 동우는 본인의 자켓을 벗어 옆에 던져놓았다. 진영의 바지 버클에 손을 댔다. 이것까지는 생각 못 한 진영이 동우의 손을 저지하려 잡았다.

"놔."

어릴 때 지은 죄가 아무리 커도, 이렇게까지 벌을 받아야 하는 일인가? 진영에게 어머니의 죄값까지 치르게 하려는 건가? 생각하는데 이미 손은 동우의 손을 놓고 있다. 동우가 진영의 바지 단추를 푸르고 셔츠단을 끌어냈다. 진영을 밀어 소파 위에 눕히고, 그 위에 누웠다. 한 손으로는 진영의 한쪽 어깨를 잡아누르고, 다른 손을 속옷 안으로 넣어 엉덩이를 움켜잡았다. 진영이 다시 반항하려 하자 목에 얼굴을 묻고 지난번 그 자리를 다시 물었다. 너무 세게 물어서 진영이 다시 "억", 하는 신음소리를 내었다. 이번에는 벌어진 셔츠 깃 사이로 입술을 미끄러트려 쇄골로 내려가 깨물고, 빨아들였다. 하지만... 욕정이 담긴 움직임이 아니다. 천천히, 계산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다음 순간 진영은 왜 그러는지 알았다.

손님이 오면 바로 들여보내라는 지시가 있었는지, 문이 열리고 웬 남자가 들어왔다.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에 남자는 순간 굳었다. 동우는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들고, 남자를 쳐다보았다.

"구경 났어요?"

남자가 어쩔 줄 몰라한다.

"나가서 기다리시죠, 아직 끝나려면 멀었는데."

남자는 서둘러 나갔다. 문이 닫히고, 동우는 몸을 일으켜 일어나 앉았다. 벗어놓은 자켓을 다시 걸친다. 진영은 그런 동우를 올려다보았다.

"뭐, 일어나고 싶으면 일어나든지."

동우가 다시 아까 읽고 내려놓은 결재서류 밑의 다른 서류를 꺼내 읽기 시작한다. 진영은 방금 상황이 들어왔던 남자를 위한 연출 상황임을 깨달았다. 이용 당했다는 사실보다, 이런 상황을 계속 만들어 내는 동우가 이해가 안 된다.

"이건, 누구에게 주는 벌이야?"
"뭐?"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꾸한다.

"지난번 그 일은 내게 주는 벌이었다고 쳐. 이건 누구에게 주는 벌이야?"
"벌?"

동우는 코웃음친다.

"뭐, 굳이 따지자면, 어떻게 해서든 부잣집에 딸을 팔아버리려는 아버지에게 주는 벌이라고 할까?"

뭐가 그리 웃긴지 그렇게 혼자 웃는다. 전혀 즐거워 보이지 않는 웃음을.

20분이 지난 후에야 사장실을 나설 수 있었다. 그동안, 동우가 서류를 읽는 것만 지켜봤다. 이것 역시 그 남자를 위한 연출임을 알았기에, 진영은 별다른 말 없이 그렇게 앉아 있었다. 나중에서야 그 남자가 동우의 약혼녀의 아버지라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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