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계획이었다, 첫 키스를 암흑카페에서 하는 건. 만날 때마다 관심없는 명품가방 얘기에, 화장품 얘기에, 5분만 같이 있어도 짜증나는 여자애였지만, 모태솔로란 꼬리표를 떼고 싶어서 만나는 애였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진도 빼서, 친구들에게서 뭔 일만 있으면 "모쏠인 넌 몰라도 돼", 혹은 "키스도 한 번 못 해본 놈이 뭘 안다고 끼어들어?" 란 얘기들이 다시는 안 나오게 만들겠다, 다짐했다. 처음이라 어설프거나 좀 버벅대도, 어두워서, 거리 계산을 잘못해서, 하는 변명거리라도 있으니까. 단지 그런 이유로 찬식은 암흑카페에 전화를 걸어 자리를 예약했다.

하지만... 정말 이렇게 어두울 줄은 몰랐다. 그래도 형체는 희미하게 보이겠지, 라고 생각한 게 무색하게 진짜 칠흑같은 어둠이다. 바로 앞에 여자애가 앉아서 재잘대고 있는데,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온다. 언제 어디서 뭔가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이런 어둠을 가장 싫어하는 찬식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 정하고 온 목표가 있으니까, 그것 때문에 이 비싼 카페에 굳이 온 거니까, 참아야 된다. 그 생각 하나로 버텼다.

그런 와중에 처음 키스란 걸 하려니, 점점 긴장감에 몸이 다 떨린다. 식은땀이 흐르고, 손에 땀이 흥건하다. 이러다간 뭘 제대로 해 보기도 전에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아서, 잠깐 화장실을 간다고 하고 도망쳐 나왔다. 도망쳐 나왔다...라고 하기엔 우스운 게 웨이터를 불러 그 사람의 안내를 받아 거북이 걸음으로 간 거였다. 하지만 생판 모르는 남인 웨이터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찬식은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누군가 찬식 외에 이 공간에 있다는 걸 확인해서 너무 감사했다.

드디어 화장실에 들어가 불을 켜니 살 것 같았다. 찬식은 땀으로 젖은 손을 닦고, 방금 먹은 돈까스가 마음에 걸려 입 안을 헹구고, 잠시 심호흡을 한 후 나왔다. 다시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웨이터가 안내해준다. 자리로 돌아가 여자애 쪽에 앉았다. 옆에 인기척이 느껴져 좀 더 다가갔다. 미리 준비해 온 말을 꺼낸다.

"우리 아직... 몇 번 만나지 않아서... 이런 말 하긴 쑥스럽지만... 내가 널 정말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

손을 더듬어 여자애의 손을 찾았다. 그런데 여자 손이 이렇게 큰가? 어둠 속에서는 크기, 이런 게 가늠이 잘 안 된다더니, 괜히 크게 느껴지나 보다. 한 손으로 여자애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 허공을 더듬어 얼굴을 찾았다. 얘가 앉은키가 이렇게 컸었나? 싶지만 역시 어둠 속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여자애의 얼굴을 잡고 입술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다가갔다. 생각보다 부드럽지 않다. 처음 하는 키스라 찬식은 상상했던 거랑은 원래 다르겠지, 하고 생각한다. 솔직히 키스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론상으론 아는데, 입술을 댄 이후엔 뭘 해야 할지 좀 막막하다.

그 때 여자애의 혀가 입술을 가르고 들어왔다. 그리고, 놀란 찬식이 뒤로 물러나려 하자 손으로 단단히 뒤통수를 고정하고 제대로 혀를 감아온다. 무슨 여자애가 이렇게 적극적이야? 키스가 처음인 찬식은 어안이 벙벙하다. 원래 키스가 이런 거였어? 이렇게 숨 막히고 머릿속이 온통 하얘지는 그런 거야? 입술부터 시작해서 온몸이 녹아내릴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 누가 와서 앉으며 찬식과 부딪혔다.

"어? 뭐야?"

여자애 목소리다. 그럼 지금 찬식의 입 안을 헤집고 있는 이 혀의 주인은 누구야? 놀란 찬식이 있는 힘껏 상대방을 밀어냈다. 아까와는 다르게 순순히 손을 놔주었다. 이 상황을 모르는 여자애가 물어본다.

"누구세요? 여기 제 자리예요."
"나... 나야."

찬식이 약간 헐떡이며 대답했다. 아직도 숨이 가쁘다. 머릿속이 엉망이다.

"찬식이야? 왜 내 쪽에 앉아 있어?"
"너... 넌 어디 갔다 왔어?"
"나? 나 화장실. 너 가고 나도 손 씻으러 바로 갔었어."

여자애에게서 페퍼민트 향이 난다. 여자애도 뭔가 기대하고 가글이라도 하고 왔나 보다. 하지만 찬식은 지금 아무런 정신도 없다. 최대한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다.

"나가자."
"뭐? 아직 디저트도 안 먹었는데?"
"나가자고!"

약간 짜증내며 말하는 찬식에 여자애가 입을 다문다. 그렇게, 둘은 냉랭한 분위기 속에 카페에서 나와 문 앞에서 헤어졌다. 찬식은 다시 밝은 곳으로 나온 기쁨도 느껴지질 않는다.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생각이란 걸 하고 싶다.

"야."

몇 번 들리는 소리에 뒤돌아 본다. 왠지 낯익은 남자다. 학교에서 오다가다 본 것도 같다.

"나 불렀어?"
"그래. 너, 책임져야 할 거 아냐?"
"뭐?"

뭔 뚱딴지 같은 소리?

"네가 방금 나한테 고백하고, 키스까지 했는데, 책임져야지."
"뭐? 무슨 말도 안..."
"방금 암흑 카페에서. 나한테 고백하고 키스한 거, 너잖아."

무슨 저런 얘기를 저렇게 크게 말하는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둘을 쳐다본다.

"조, 조용히 해. 무슨 자랑이라고 그렇게 크게..."
"네가 내 순결을 뺏었으니 책임져야지, 안 그래?"

이번엔 더 크게 말한다. 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이 키득거린다. 몇은 손가락질을 한다. 얼굴에 피가 쏠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찬식이 남자의 손목을 잡고 암흑카페가 자리한 건물 옆, 조금은 으슥한 골목으로 끌고 간다. 남자는 순순히 따라온다.

"누... 누가 봐도 실수였던 게 뻔하잖아? 그렇게 어두운 데서, 사람을 착각해서..."
"가만히 잘 있던 사람한테 고백하고, 키스하고, 그것도 내 첫 키스를 가져가 놓고, 이러면 곤란하지."
"아니... 내가..."
"아니면 지나가는 사람 잡고 물어 봐? 이 상황에 누가 더 억울한지?"

이 뻔뻔한 녀석은 그러고도 남을 것 같다.

"너... 도대체 누구야?"
"이홍빈. 너랑 같은 학교 법학과 1학년."

역시 같은 학교가 맞았다. 동기이기도 하다.

"너 나 알아?"
"응."
"어... 어떻게?"
"방금 나한테 고백하고 키스한..."
"으악, 알았어. 제발, 그 얘긴 좀..."

홍빈이 어깨를 으쓱한다. 그제서야 지금까지 홍빈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는 걸 알고 황급히 놓는다.

"그... 그래서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우선 당장은... 아까 하던 거 마저 하고 싶은데?"
"뭐?"
"하다가 말아서... 그런 마음을 들게 했으니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아오, 이 녀석은 책임이란 단어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여러가지로 이상한 놈이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리 둘 다 남잔데..."
"아까 키스할 땐 전혀 상관 안 하더니..."
"그... 그거야, 아까는 어두워서 다른 사람인 줄 착각하고..."
"그거야 네 사정이고. 당한 내가 피해자잖아. 보상을 해야지."

법학과라더니 저런 식으로 따질 줄이야... 엄밀히 말하면 찬식이 잘못한 건 맞는 것 같다. 아무리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였어도 이런 치명적인 실수를...

"아니면, 길가는 사람 잡고 물어보던가."

정말로 다시 환한 거리로 나가려 한다. 얼굴의 철판이 아이언맨 수준이다.

"아... 알았어. 하면 될 거 아냐."

뭐 이런 거지같은 상황이 있어? 첫 키스는 남자랑, 그것도 저런 이상한 놈이랑 실수로 하고, 협박 당해 두 번째 키스까지 당하게 생겼다. 뭔가 억울하다. 하지만, 도저히 저 녀석이랑은 말싸움을 해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찬식이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홍빈은 성큼 다가왔다.

"뭐, 뭐야, 여기서 하겠다는 거야?"
"응."
"사... 사람들이 보잖아! 옆에가 바로 큰 길인데."
"그래서?"

찬식의 생각이 틀렸다. 아이언맨이 울고갈 정도의 두꺼움이다, 이 녀석 얼굴의 철판은.

찬식이 뭐라 더 말할 새도 없이 다시 한 걸음 앞으로 온 홍빈이 한 손으로는 찬식의 허리를, 한 손으로는 뒤통수를 잡고 끌어당긴다. 아무리 밤이라지만, 바로 옆이 큰 길인데, 그런 건 전혀 신경도 안 쓴다. 그리고 바로 입술을 겹친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한 것 같다. 순결, 첫 키스 운운하더니, 이 녀석, 너무 능숙하잖아? 처음 하는 사람이 뭘 이렇게 사람 혼을 뺄 정도로 잘하냔 말이다. 몸이 흐물흐물해져서,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한참 후에야 입술을 뗀 홍빈이 약간 몽롱한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는 찬식을 내려다본다. 찬식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다.

"이, 이제 됐지?"

홍빈을 밀쳐낸다. 역시, 아까처럼 순순히 한 걸음 물러선다. 하지만, 입을 열자 다른 말이 나온다.

"충분한 보상이 된 것 같지 않아."
"뭐?"
"아까 갑자기, 그것도 어두운 데서 남자한테 고백 받고 키스 당한 내 심리적 피해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된 것 같지 않다고."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아무리 생각해도 찬식은 억울하다. 한 번 한 실수의 대가가 이렇게 큰 거였어?

"그게 무슨..."
"내가 피해자잖아. 피해자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보상해 줘야 할 거 아냐?"

아까부터 생각했지만, 절대로 말빨로는 못 이긴다.

"원하는 게 뭐야?"
"뭐... 우선은 고민을 해 봐야 할 것 같아,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홍빈이 먼저 한 걸음 옮긴다. 그리고 찬식을 돌아본다.

"안 따라와?"
"나랑 같이 술을 마시겠다고?"
"응. 당연히 네가 살 거고. 내가 피해자니까."

'책임'과 '피해자'란 단어를 살면서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을 정도로 이골나게 들은 것 같다.

"도대체 왜 내가 너랑 술을 마시냐고!"
"그야, 도망가면 안 되니까."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이번엔 홍빈이 찬식의 손목을 잡고 끌고 간다. 찬식은 이제 거의 체념하고 있다.

"너, 내가 누군지 알기는 하냐?"
"응. 넌 가해자, 난 피해..."
"아이씨, 알았어, 그만해!"








한 시간 전:

"야, 정말 고맙다."
"너, 나 이거 걸리면 짤리는 거 알지?"
"안 걸리게 할게. 걱정마."
"하... 그래, 누구 찾는 거야?"
"공찬식. 걔 테이블로만 안내해 주면 돼."
"아이, 진짜... 이래도 되나?"
"내가 나중에 풀코스로 쏠게."
"안 그러기만 해 봐."
"고마워, 빚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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