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궁금한 게 너무 많은 진영은 다음 날 다시 동우의 집을 찾아갔다. 뭐, 바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지만. 하지만 아무리 벨을 눌러도 대답이 없었다. 혹시, 얘기해 주는 게 귀찮아서 안 열어주는 건가? 생각했지만, 며칠을 기다려도 들어오거나 나가는 소리가 없는 걸로 보아 어디를 간 듯 했다. 지난번에 다쳐 돌아온 게 떠올라서, 왜 그랬는지, 어떻게 상처가 나았는지 기회 있을 때 물어볼 걸, 후회했다.

다시 월요일이 되고, 진영은 학교에 가기 전 거의 버릇처럼 동우의 집 벨을 눌렀지만, 역시 답이 없었다. 포기하고 결국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학교에 가는 버스에 올라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죽이고 있는데, 다시 톡이 요란하다. 보니 이번엔 과대표가 과회비를 갖고 다른 애들하고 싸우고 있다. 싸움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진영은 하마터면 정류장을 지나칠 뻔했다. 서둘러 일어나 다시 출발하는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한테 세워달라고 소리쳐, 간신히 내렸다. 하지만, 버스가 인도에서 조금 떨어진 후여서, 발을 디딛는 순간, 인도가 아닌 허공에 떴다. 그리고 버스에서 결국 떨어졌다.

아픈 것보다도 쪽팔림에 벌떡 일어나는데, 바로 다시 주저앉았다. 다리가 너무 아프다. 쪽팔린 것보다 더 아프다. 결국, 진영은 병원에 실려갔다. 오른쪽 다리 뼈에 금이 가 있었다.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병원건물을 나오는데, 눈앞에 어이없다는 표정의 동우가 서 있다. 그래도 반가워 진영은 미소지어 보였다. 동우의 표정이 바뀌질 않는다.

"뭘 잘했다고 쪼개냐?"
"아이씨, 천사라면서 말도 참 험하게 한다. 그게 다친 사람한테 할 소리야?"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런다. 뭐, 버스에서 톡으로 싸움구경하다 정류장 놓칠 뻔해서 서둘러 내리다 버스에서 떨어졌다고?"

너무 자세히 아니까 놀랍다. 진영은 약간 소름이 돋았다.

"너,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내가 너에 대해 모르는 게 있을 것 같아?"

말은 퉁명스럽게 하지만 어느새 옆으로 와 부축해준다. 바빠 죽겠는데 졸지에 환자 수발까지 들게 생겼다며 투덜거린다. 몇 걸음 안 가 처음 보는 차 앞에 섰다. 동우가 진영을 부축해 뒷좌석에 태웠다. 꼼꼼히 안전벨트도 매준다.

"웬 차야?"
"샀어."
"와, 너 부자야?"
"아니, 이거 법카로."

법카가 뭔지 고민하는데 동우가 어느새 운전자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 있다.

"법카가 뭐야?"
"법인카드."
"그게 뭔데?"
"지상에서 의뢰받은 일 할 때 쓰는 공금이 들어 있는 계좌에 연계된 카드."

이젠 저런 얘기가 놀랍지 않으니, 정말 미쳤나 보다.

"천사들이 돈도 있어?"
"우린 뭐 땅 파서 장사하냐? 집 빌리고, 차 사고, 옷 사고, 밥 먹고, 하는데 다 돈 들어."
"그 돈은 어디서 나는데?"
"뭐, 대부분의 경우엔 나쁜 놈들이 숨겨놓은 비자금 계좌, 이런 거. 어차피 죽으면 그거 다 무용지물이잖아. 그렇게 주인 없는 계좌에서 돈 털어와. 듣기론 먼 옛날엔 해적들이 숨겨놓은 보물, 이런 거 죽은 후에 우리가 가져다 썼다고 하고. 가끔 좋은 사람들이 죽으면서 기부도 하고."

뭔가 신기한 세상이다. 동우 얘기를 들어보면 천사들이나 사람들이나 다 사는 건 비슷한 것 같다.

얘기하는 사이에 벌써 아파트에 도착해 동우의 부축을 받으며 집에 들어왔다. 소파에 앉아 한숨을 쉰다.

"으아, 힘들다."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녀."

돌아오자마자 또 구박이다.

"야, 내가 한 번 그런 거 가지고..."
"한 번?"

동우가 갑자기 허공에서 뭔가 꺼내는 시늉을 한다. 갑자기 동우 손에 타블렛 PC가 있다.

"와, 뭐야, 그거 어떻게 갑자기 나왔어?"
"아, 이거? 이거 스티브 잡스가 천국와서 만든 거야."
"정말?"
"아니, 농담이야."

아, 짜증난다. 진지한 표정으로 그런 농담 하지 말란 말이다. 진영이 뭐라고 한소리 해주려 하는데, 동우가 벌써 뭔가를 스크롤다운하고 있다.

"8살 때, 꽃이 예쁘다고 위만 보고 걷다가 인도에서 넘어져 무릎 깨지고 3바늘 꿰맸고, 11살 때 옆집 강아지 구경하다가 계단에서 굴러서 손목 삐었고..."
"뭐야, 뭐 읽는 거야?"

동우는 갑자기 진영을 보며 피식한다.

"너, 15살 때 야동보다가 엄마한테 걸려서 호들갑 떨다가 책상에 머리 찧어서 병원 갔냐?"
"으악, 뭘 그런 거까지 아는 거야?"

진영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동우는 타블렛 PC를 돌려 진영에게 보여준다. 뭔가 빼곡하게 써 있는 파일이다.

"여기 네 인생 기록이 다 적혀 있는데, 네가 언제 어디서 뭘 어떻게 했는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다 알 수 있는데, 어디 약을 팔아."
"그걸 왜 보고 있는데!"
"내가 너에 대해 모르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보여주려고. 그러니까 나한테 거짓말 할 생각 말라고."

진영에 대해 모든 걸 알 수 있다니. 그것도 저렇게 빼곡하게 적혀진 파일을 읽어서. 소름이 돋는다.

"그... 그런 거 본인 동의 없이 막 읽어도 돼? 아무리 네가 천사라도..."
"천사라고 아무나 읽을 수 있는 거 아냐. 지금은 내가 네 보호자니까, 이런 기록도 다 액세스 할 수 있는 거지."

조금 전까지는 화나고 쪽팔려 죽을 것 같았는데, 갑자기 심장이 요란스레 뛴다.

"네가 내 보호자야?"
"뭐, 지금 네 옆에 나밖에 없으니까. 무슨 애가 눈을 잠시 떼면 어딜 다치고 그러냐.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혼났는지 알아? 애 잘 돌보라고 의뢰 했는데 다치게 내버려 뒀다고."
"누구한테?"
"뭐, 그건 알 거 없고. 그래서 다시 전처럼 너랑 다시 같이 다니기로 했어. 아, 지금 의뢰받은 사건에 할 일이 천진데, 하..."

동우가 다시 짜증냈지만 진영은 상관 않았다. 누군가 옆에서 돌봐주고, 함께 있어준다니. 생각만 해도 기뻤다. 그런데 동우가 의뢰받은 사건 얘기를 하니 지난번에 다쳐 온 게 생각났다.

"너 전에 다쳤었잖아. 그때 상처 어떻게 없앴어?"
"능력으로. 왜, 너도 해 줘?"

별일 아니라는 것 같은 말투에 진영이 놀란다.

"나도 돼?"
"나 드디어 제대로 충전하고 와서, 지금 해줄 수 있어. 뼈 금간 거 붙이는 게 칼로 찔린 상처 고치는 것보다는 쉬우니까. 아까 타블렛 PC 공중에서 꺼낸 것도 능력 써서 한 거거든. 해 줄까?"

당장 다리가 나을 수 있다니, 솔깃했다. 하지만, 다리가 나으면 동우가 같이 안 다녀줄지도 모른다. 차라리 아픈 게 낫다.

"아냐, 그냥 정상적으로 낫게 할래."
"능력 써도 정상적으로 나아."
"그래도, 좀 무서워. 그냥 이렇게 있을래."

동우는 상관 없다는 듯 어깨를 다시 으쓱하고 타블렛 PC로 눈길을 돌렸다.

"뭐야, 너 계속 내 기록 읽는 거면 읽지마."
"내 할 일 하는 거거든? 나도 바쁜 몸이야."

동우는 진영 옆에 털썩 주저앉아 뭔가를 써넣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야?"
"반성문 써."
"왜?"
"너 다쳤으니까."
"정말?"
"아니, 농담이야."

아우 진짜. 얼굴 표정 한 번 안 바뀌고, 웃지도 않으면서 농담한다. 한 대 때리고 싶다.

"그래서, 뭐하는 건데?"
"보고서."
"진짜로?"
"응. 노친네가 나 계속 보고 있는 것 같아도, 노친네 밑에 천사가 몇백 명이나 있는데. 정식 보고서 써야 돼."
"나에 관한 거야?"
"응."

궁금해서 훔쳐보는데 다 영어다. 아, 영어울렁증이 도진다.

진영은 다시 눈길을 동우에게로 돌린다. 불편한지 자켓을 벗어던지고 셔츠 단추까지 한두 개 풀고, 편한 자세로 보고서를 쓰고 있다. 이 집에 진영 외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게 참 오랜만이여서, 왠지 좀 더 따뜻한 것 같다. 이 느낌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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