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은 잠시 잘못 들었나 고민한다.

"네가 천사라고?"
"응."

남자는 마치 천사가 신문배달원 같은 흔한 직업인 양 대답한다. 진영은 잠시 말을 잃는다. 그렇게, 거실에는 정적이 흐른다.

"미... 미친 거 아냐?"

드디어 진영이 입을 열었다. 남자는 다시 으쓱한다.

"뭐가?"
"네, 네가 어떻게 천사야?"
"왜, 내가 천사면 안 돼?"
"너, 사람이잖아. 그때 피도 났고."
"그거야 지금은 이 체를 입고 있으니까."

하나도 이해가 안 되는 말을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하고 있다. 진영이 멍하게 있자 뭐 그런 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귀찮은 듯 설명해 준다.

"천사는 몸이 없어. 그냥 영인체이지. 그래서 지상에서 활동하려면 체를 입어야 돼. 뭐, 굳이 따지자면 아이언맨 수트같은 거라고 할까?"

자기가 천사라고 하는 이 남자는, 아이언맨 수트 얘기를 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놀라고, 당황하고, 황당해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럼 넌 왜 지상에 왔는데?"
"일하러."
"무슨 일?"
"뭐, 여러가지."

자꾸 대답을 대충 하고 있다. 진영은 이 남자가 미쳤는지, 자기가 미쳤는지 이제 모르겠다.

"그리고, 나도 그 일 중 하나야?"
"응."
"무슨 일인데?"

남자는 다시 한숨을 쉰다.

"처음부터 얘기해줄게. 미리 말하지만, 무지 길고 복잡한 얘기니까 잘 들어. 두 번은 말 안 한다."
"알았어."

남자는 잠시 침묵한다. 할 말을 정리하는 것 같아 진영 역시 조용히 있는다. 남자가 드디어 입을 연다.

"모든 사람이, 쉽게 말하면 계좌를 하나씩 갖고 있어. 지상에 살면서 좋은 일을 하면 그 계좌에 돈을 입금하고, 나쁜 일을 하면 돈을 인출하고, 이런 식으로. 나중에 죽으면 그 결과에 따라서 천국, 아니면 지옥을 가는 거지. 돈이 얼마나 모였냐에 따라서 천국에서도 좋은 집에서 살거나, 그저 그런 곳에서 살거나, 하고, 지옥도 마찬가지로, 뭐 좀 불편한 데서 살거나, 불구덩이에서 영원히 불타거나, 하는 거고."

너무 놀라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니까 오히려 놀랍지 않다.

"천사들이 하는 일은 여럿인데, 그 중 하나가 그 계좌 관리야. 그래서, 누가 죽으면, 그걸 보고 갈 데를 정해주는 거지. 그리고, 지옥에 가면 그걸로 끝이지만, 천국으로 가는 사람들은 모은 돈이 얼마냐에 따라서 그걸 마음대로 쓸 수 있어."
"뭐, 집 얻는다며?"

남자가 말을 끊은 진영이 짜증나는지 잠시 노려본다.

"무슨 천국에서 월세 낼 일 있냐? 그 모은 돈을 기준으로 어디서 살지가 정해지지, 그 돈을 쓰는 건 아냐. 그걸 쓰는 건, 여러 방법이 있어. 그리고, 그걸 도와주는 게 천사들이야. 그 돈을 쓰는 방법이 여러가지니까, 그에 따르는 다른 직업군이 있어. 영어가 만국공통어라서 천국에서도 대부분 영어로 하니까, 영어로 표현하자면, 천사들의 직업은 크게 Manager, Messenger, Rewarder 그리고 Avenger, 이렇게 넷으로 구분돼."

아는 영어가 나와 진영은 반가워 말했다.

"아, 그 영화 어벤져 같은 거야?"

남자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번역하자면 관리자, 전달자, 보답자, 그리고 복수자, 이렇게 넷이야. 관리하는 천사들은 아까 말한 대로 계좌도 관리하고, 천국에 사는 사람들도 편히 잘 살 수 있도록 돌봐주고, 하는 게 일이고. 나머지 세 직업은 사람들이 지상에서 모은 돈을 쓰는 걸 도와줘."

이걸 믿어야 될지, 말아야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흥미로운 이야기다.

"전달자는 천국에 사는 사람들의 소식을 지상에 사는 사람들에게 꿈, 등을 통해 전해줘. 그건 돈이 얼마 안 드니까 돈을 조금 모았어도 그렇게 소식을 보낼 수 있어. 보답자들이 하는 일은 좀 더 많은 돈이 필요한데, 천국에 사는 사람들이 지상에 사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걸 도와줘. 천사는 인간의 삶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는 없지만, 의뢰가 들어왔을 때는 규칙을 따라 조금은 관여할 수 있어. 예를 들어 사고가 날 걸 피하게 해 준다든가, 하는 거. 사고 자체를 막을 순 없지만, 그 사고가 나는 시점에 그 사람이 다른 데 가게 한다던가, 해서."

뭔가 굉장히 체계적이다. 진영은 자기도 모르게 남자의 얘기에 빠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복수자. 이게 제일 비싸. 웬만큼 모아서는 할 수 없어. 그래서 의뢰도 그렇게 많지가 않아. 예를 들어 평생을 착하게 살았는데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그 살인자가 잡히지 않고 버젓이 살아간다, 하면 복수자에게 의뢰할 수 있어. 그러면 그 의뢰를 받은 천사는 우선 그 살인자가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지상에 내려와 증거 등을 모아서, 결국 그 사람이 잡히도록 해. 하지만 증거가 부족하거나, 법의 심판이 너무 미흡하면 좀 더 직접적으로 나서서, 의뢰인이 원하는 만큼 그 사람의 인생을 망가트려줘."

순간 소름이 끼친다. 진영은 앞의 남자를 살펴본다.

"그럼, 넌..."
"복수자야."
"혹시... 누가 나한테..."
"누가 너한테 복수하고 싶어하는데 잘도 내가 너한테 이런 얘기를 다 해주겠다?"

아... 생각해 보니 그렇다. 그래도... 궁금하다.

"그럼 왜 내 파일을 갖고 있는데?"
"아이씨, 이 동네 담당 보답자가 후임도 안 정하고 은퇴해 버려서 여기 다른 의뢰 받고 온 내가 너까지 떠맡은 거야. 난 복수자인데, 누가 너 잘 살도록 돌봐주라고 의뢰해서, 팔자에도 없는 보답자 일을 하고 있는 거다, 알겠냐?"

남자가 갑자기 짜증을 낸다. 진영은 잠시 남자의 말을 곱씹는다.

"그럼... 네가 내 수호천사야?"

말하는 진영도 오글거리지만, 남자가 대놓고 헛구역질을 한다.

"절대로 그 말 하지 마. 아이씨, 짜증나."

하지만 진영은 궁금한 게 너무 많아 남자의 리액션은 개의치 않는다.

"그럼 누가 나 돌봐달라고 의뢰한 거야?"
"그건 말할 수 없어. 의뢰인과 나 사이의 비밀이야."
"나 아까 계약서도 사인했잖아."
"그거야 이런 얘기만 해준다는 거지. 의뢰인과의 계약은 어느 누구한테도 발설할 수 없어."

그쪽으로는 더 이상 말을 안 해줄 것 같아서 진영은 다른 걸 묻는다.

"그래서 나 그렇게 쫓아다닌 거야?"
"그래."
"그래서 우리 옆집으로 이사왔고."
"응."
"그럼 다른 사람들은 왜 다 널 옛날부터 안 것처럼 행동해?"
"기억 조작."

이제는 무슨 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기억 조작?"
"그래. 천사들이 의뢰를 받아 지상에 내려왔을 때, 갑자기 나타나서 튀거나 하면 안 되니까, 늘 여기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주변 사람들의 기억을 조작해."
"그럼 왜 난 그게 안 된 건데?"

남자가 잠시 머뭇거린다.

"나도 몰라, 너같은 놈은 처음이라. 특이체질인가 보지."

진영은 잠시 남자를 바라본다.

"이거 다 거짓말이지?"
"뭐?"
"너 이거 다 지어낸 얘기지?"
"그래, 내가 할 일도 더럽게 없어서 이런 삼류 소설을 쓰고 앉아 있다, 됐냐?"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사실인 것 같기도 하지만... 이런 얘기를 어떻게 믿으라는 건지...

"너 진짜 천사 맞아?"
"아이씨, 지금까지 내 얘기 안 들었냐?"
"그런데 말도 험하고, 성질도 더럽고, 천사가 그래도 돼?"
"내가 전에 사람이었어서 그런다. 별걸 다 따지고 있어."

밝혀지는 새로운 사실에 진영의 귀가 쫑긋한다.

"뭐야, 사람이 천사가 되는 거야?"
"하... 이런 거까지 설명해야 되나... 귀찮아 죽겠네."
"제발, 얘기 하는 김에 다 해주면 안 돼?"

진영이 예전에 경비 아저씨에게 써먹었던 장화신은 고양이 눈을 한다. 남자는 진영을 잠시 쳐다본다.

"눈 치워라."
"아이씨."

남자는 목이 마른 듯 일어나 키친으로 간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돌아온다.

"원래 천사들은 위의 큰 보스가 다 만들었어."
"큰 보스?"
"아, 왜, 그, 창조자."
"그럼 그렇게 말하지 웬 큰 보스?"
"아, 난 무교라... 종교적인 지칭은 별로."

천사가 무교라니... 할 말이 없다. 동우는 말을 이어간다.

"어쨌든, 그런데 천사들간에 전쟁도 있었고, 타락한 천사들도 있고, 해서 그 수가 계속 줄었단 말야. 하지만 사람들 수는 가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그래서 업무량이 너무 늘어서 결국 시위를 했어."
"천사들이 시위를 했다고?"

오늘 들은 얘기 중에 제일 안 믿긴다. 남자는 다시 진영을 무시한다.

"결국 큰 보스에게서 허락을 받아 천국과 지옥의 경계에 사는 사람들을 스카웃하게 되었어."
"그게 무슨 말이야?"

남자는 귀찮다는 듯이 인상을 쓰며 설명해준다.

"아까 말했듯이 계좌가 플러스나 마이너스가 됐을 때,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가잖아. 그런데 이도저도 아닌 영혼들이 있어. 어렸을 때 죽거나, 아니면 인생을 그렇게 살아서 계좌에 딱 0원이 있는 영혼들. 그런 영혼들은 천국으로 가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지옥으로 가기도 그래. 벌을 받기도, 상을 받기도 애매하니까. 그래서 그 경계선에서 살아. 그런 영혼들 중에 하고 싶어하는 영들을 천사로 스카웃하는 거야."

신기하다.

"그럼, 너도 그렇게 스카웃 된 거야?"
"응."
"와, 죽어서 영원히 천사가 된다니... 대단하다."

남자는 뜬금없이 다시 짜증을 낸다.

"무슨 영원히 천사를 해? 300년 일하고 은퇴할 거야."
"300년?"
"응. 원래는 500년이었는데, 노조에서 협상해서 내렸어."
"농담하는 거지?"

남자는 진지한 얼굴이다.

"천사들이 노조가 있다고?"
"뭐, 엘더들은 처음부터 천사였으니까 평생직업이지만, 우리같이 사람이 스카웃 된 경우엔 작업환경 등이 중요하니까. 그런 것도 있어야지."
"네가 아까부터 말한 엘더도 천사야?"
"응. 엘더는 원래 처음부터 천사로 창조된 천사들. 내 엘더는 날 스카웃 한 천사야. 나 전에 일하던 천사가 300년 채우고 은퇴했거든."

점점 얘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 천사들 얘기가 동화같지 않고 현대소설 같다.

"그럼 은퇴하고 뭐 해?"
"선택을 할 수 있어. 300년 동안 일한 공으로 천국의 꽤 좋은 곳에 가서 살거나, 아님 다시 지상에서 인간으로 태어나 두 번째 삶을 살거나."
"와, 그런 것도 돼?"
"플러스 마이너스 없이 그 결과가 0인 삶을 살았으니까. 원하면 두 번째 기회를 받는 거지.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하는 천사는 별로 없어."
"왜?"

남자는 자꾸 당연한 질문을 한다는 듯이 진영을 쳐다본다.

"다시 살아서 잘 산다는 보장이 없잖아. 그러다 아예 지옥으로 갈 수도 있고. 그리고 300년이나 휴가 없이 일했는데 다시 지상에서 치열하게 살고 싶지도 않을 거고."
"그럼 너도 그렇게 은퇴해서 천국 가서 살 거야?"
"아니."

바로 하는 대답에 궁금해진다.

"왜?"
"천사가 되면 인간이었던 때의 기억이 없어져. 그래서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무조건 다시 태어날 거야, 란 생각을 처음부터 하고 있었던 걸 보면, 뭐, 이유가 있겠지. 어차피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면 천사 때 기억도 없어지니까, 300년 일한 것도 기억 못 할 거고."

남자가 이제 대놓고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켠다. 나가라는 말 같아서 진영은 일어선다.

"너, 이거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정확히 어떻게 끔찍하게 죽는데?"
"아, 너 말고, 네 얘기를 들은 사람이 끔찍하게 죽어."

진영의 눈이 놀라 커다래진다. 남자는 어깨를 으쓱한다.

"농담이야."
"에이씨, 지금까지 이상한 얘기만 잔뜩 해 주고 그런 농담을 하는 게 어딨어?"

진영은 화를 내며 밖으로 향한다. 문 앞에 서서, 다시 돌아본다.

"그런데 너 몇 살이야?"
"뭐?"
"몇 살이냐고."
"천사가 나이가 어디 있어?"
"300년 일한다며."
"일 시작한 지 21년 됐다, 됐냐?"
"아, 동갑이네."

남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니, 그냥. 생각해 보니까 네가 천사인데, 반말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런데 넌 친구니까 계속 반말해도 되지?"
"그러던가."

남자는 이제 상대하지 않겠다는 듯 타블렛 PC를 들고 뭔가를 찾는다. 왠지 약오른다.

"야."
"아, 또 왜?"
"네 이름이 뭐야?"
"신동우."
"그게 진짜 이름이야?"

남자는 잠시 진영을 쳐다본다.

"이 체의 이름이야."
"진짜 이름은 알려줄 수 없어?"
"응."
"왜?"
"나 전에 은퇴한 천사의 이름을 물려받았거든. 그래서 기분 나빠서 안 써."
"흠..."
"안 가냐?"

진영은 문의 손잡이에 손을 얹는다.

"동우야."
"또, 뭐, 뭐!"
"내일부터 나 안 따라다니면 어떻게 날 보호할 거야? 너 내 수호천사잖아."
"아이씨, 내가 그 말 하지 말랬잖아!"

짜증내는 동우를 뒤로하고 진영은 웃으며 동우의 집을 나선다. 사실, 방금 동우와 나눈 대화가, 그리고 이 집 안에서 본 여러 이상한 현상들이 하나도 믿기지 않고, 자신이 미쳤거나 동우가 미쳤거나 아니면 세상이 미쳤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지금 웃음이 나는 건, 수호천사란 말에 손발이 오글거려하는 동우가 그래도 자신의 수호천사라면, 이제 더 이상은 혼자가 아닌 것 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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