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 앞에 선 진영이 핸드폰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이번 MT 때문에 과 단톡방에 난 싸움 구경 중이다. 흥미진진한 눈으로 과대표와 다른 몇 명의 번개같이 올라오는 톡을 읽던 진영은 옆의 움직임이 느껴져 아무 생각 없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갑자기 누군가 목덜미를 잡아 뒤로 끌어당겼고, 진영의 코앞을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간다. 깜짝 놀라 올려다보니 아직 빨간 불이다. 아까의 기척은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었나 보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뒤를 돌아 인사를 한다.

"아, 감사합니..."
"제대로 안 보고 다녀?"

인사를 끝내기도 전에 퉁명한 말이 나온다. 진영은 뚱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웬 반말? 고마웠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진영이 뭐라 더 할 새도 없이 남자는 진영의 목덜미를 놓고 한 걸음 떨어진다. 마치 방금 일어난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그리고 진영을 철저히 무시한다.

진영은 왠지 자존심이 상해 앞으로 시선을 돌린다. 때마침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고, 진영은 서둘러 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아까 그 남자가 계속 따라오고 있다. 이게 혹시, 말로만 듣던? 하지만 진영은 남잔데, 남자가 남자를 스토킹하는 일도 있나? 그리고 이런 벌건 대낮에? 저도 모르게 진영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그런데, 흘깃 뒤를 보니 남자 역시 계속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오고 있다. 이제는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아파트 입구까지 거의 뛰다시피 간 진영은 결국 입구에서 뒤돌아 아직도 따라오는 남자의 앞에 서서 따진다.

"뭐, 뭐에요? 왜 따라와요?"

남자는 오히려 진영을 이상한 듯 내려다본다.

"뭔 헛소리야?"
"아까부터 나 따라왔잖아요!"
"나 갈길 가는 거거든?"
"아니 그런데 왜 아까부터 반말이야?"

나이차이도 얼마 안 나 보이는데 계속 짧은 말에 이제 화가 난다. 남자는 그런 진영을 옆으로 밀치며 아파트 단지로 들어선다.

"아이씨, 뭐야."

이제 진영이 남자를 따라가는 모양새다. 남자는 아파트 건물 앞에서 갑자기 우뚝 선다. 뒤에 따라가던 진영도 멈춰섰다.

"너야말로 나 왜 따라와?"
"나도 여기 살거든?"

진영이 발끈하자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진영도 따라 들어간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진영은 다시 곁눈질로 남자를 올려다본다.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얼굴인데...

엘리베이터가 오고, 남자는 먼저 타고 7을 누른다. 진영은 멈칫했다가 남자가 뭐하냐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따라 탄다. 엘리베이터는 7층에 다다른다. 남자는 먼저 내려 진영의 집 맞은편의 도어락을 열고 비밀번호를 누른다. 그리고, 뒤도 안 돌아보고 들어간다.

잠시 그런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진영은 자신의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옆집에 이사온다는 얘기를 못 들었는데? 도대체 저 남자는 언제 이사 온 거지? 궁금하다. 어쨌든, 수상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수상하다. 옆집 남자가 너무 수상하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분명 진영은 저 남자를 처음 본다. 그 전에 누가 그 집에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어제 처음 봤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나올 때도 마주쳤고, 아까 학교 가는 버스에 타는데 진영을 따라 탔다. 따라다니는 건가? 도대체 뭐지? 또 같은 곳에서 내린다. 학교에서 본 기억이 없는데, 학교까지 따라왔다. 이제 무섭기까지 하다. 그리고... 진영의 강의실에 같이 들어간다. 맹세코 저 남자를 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강의실에 있는 사람들은 남자를 오래된 친구인 마냥 반긴다.

"어, 동우야."
"응."
"어제 수업 말야..."

분명 동우라는 저 남자는 어제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저 남자가 왔다고 믿는다. 진영은 무슨 이상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옆에 앉은 학생에게 말을 건다.

"저 사람 말야."
"뭐, 동우?"
"그래... 저 사람 어제 수업 왔었어?"
"응. 본 거 같은데."
"전공 수업에서?"
"우리 같은 과잖아. 넌 동기 얼굴도 모르냐?"

분명히 저 남자는 동기가 아니란 말이다. 어제 횡단보도에서 만나기 전에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도대체 이게 뭐지? 혹시... 몰래카메라?

하지만 이게 영화 트루먼 쇼가 아닌 이상, 진영 하나를 속이려 이렇게까지 할까? 이제 머리가 다 아파온다.








남자는 진영이 듣는 수업을 다 같이 듣고, 같은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이제 그러는 그가 놀랍지도 않아, 통로 건너편에 앉은 남자를 대놓고 쳐다보고 있다. 남자는 진영을 대놓고 무시한다. 하루종일 학교에서 봤으니, 아는 체를 할 만도 한데, 철저하게 무시한다. 결국, 진영은 생각을 포기한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자, 남자는 진영을 무시하고 먼저 건물 쪽으로 향한다. 진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경비실 쪽으로 향한다. 경비 아저씨가 작은 텔레비전으로 뭔가를 보고 있다.

"저, 아저씨."
"응? 아, 응, 저, 200..."
"네, 저 202동 701호 사는데요, 혹시, 우리 집 맞은편에 사는 사람, 언제 이사 왔는지 아세요?"

경비 아저씨는 머리를 긁는다.

"202동 701호 맞은편이면, 702호인데... 최근에 누구 이사온 적 없는데?"
"네? 없어요?"

그럼 저 남자는 뭐지? 빈집에 몰래 숨어들어 사는 사람인가?

"그럼 빈집이에요?"
"뭐? 아니. 잠깐만..."

경비 아저씨가 뭔가를 뒤적거린다.

"그 집에 누가 산 지 몇 년 됐는데? 남자 혼자 산다던가?"
"혹시... 이름도 알 수 있어요?"

이제 진영을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본다.

"저, 수상한 사람인 것 같아서 그래요. 그냥, 좀 알려주시면 안 돼요?"

안 되는 걸 뻔히 알면서 묻는다. 경비 아저씨는 진영의 장화신은 고양이같은 눈을 보며 잠시 망설인다.

"이름이 신동우라지, 아마?"

아저씨를 위해 미소를 띠고 있던 진영의 얼굴이 굳는다. 소름이 끼쳤다. 아까 그 남자, 동우라고 한 것 같은데... 도대체, 어제 나타난 이 남자를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다 알고 있고, 기록엔 몇 년 동안 진영의 옆집에 살았다고 되어 있는 거지? 진영은 저 아파트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서, 하다못해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도 대충 다 아는데... 도저히 모르겠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남자는 매일같이 진영과 함께 집을 나서고, 매일 같은 강의를 듣고, 매일 같이 돌아왔다. 혹시라도 진영이 어디 술자리라도 갈라치면, 어김없이 그곳에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과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니까, 남자가 끼는 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지난주까지만 해도 본 적이 없는 남자를, 다들 1학년 때부터 알고 지낸 것처럼 친하게 구니, 그게 너무 이상했다.

더 이상한 건, 진영이 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 다들 오히려 진영을 이상하다는 듯이 보는 거다. 마치 진영도 저 남자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처럼. 꿈이라기엔, 이런 상황이 지금 일주일 넘게 계속되고 있다. 혹시 매트릭스에 빠진 건가, 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날, 진영은 집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이혼한 후 둘 다 바로 재혼했다. 아버지는 지금의 아내와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장기 해외출장을 가서 진영은 혼자 살고 있다. 아버지가 등록금도 대 주고, 용돈도 넉넉하게 줘서, 딱히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도 없다. 재혼한 어머니 역시 넘칠 만큼 용돈을 보내준다. 어떻게든 사랑을 돈으로만 표현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진영은 늘 이렇게 집에서 게임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게임을 한 판 끝내고, 목이 말라 방에서 나와 냉장고로 향했다. 물을 꺼내 한 모금 마시는데, 밖에서 뭔가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에서 뭔가가 떨어진 것처럼. 진영은 무슨 일인가 싶어 현관 앞으로 갔다. 문을 열려는데, 앞에서 뭔가가 걸린다. 내려다보니 옆집 남자가 쓰러져 있다.

"어, 야, 괜찮아?"

남자를 부축해 일으키는데, 남자의 옆구리에서 뭔가가 묻어나온다. 자꾸 꺼지는 자동 센서등 때문에 손을 흔들었다. 갑자기 들어온 등불에 손에 묻은 피가 보인다.

"어, 피... 피..."

진영은 당황하며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비틀거리면서도 진영을 밀치고 문에 기대 힘겹게 도어락을 열고 들어갔다. 피를 흘리는 남자가 걱정이 된 진영은, 잠시 망설이다 결국 문이 닫히기 전에 발을 끼워 넣어, 남자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남자는 거실 한가운데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서 있었다.

"119를..."

말을 꺼내던 진영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남자의 몸에서 빛 방울들이 일렁이더니, 갑자기 하얀 빛이 남자의 몸에서 사방으로 퍼졌다. 너무 눈이 부셔 진영은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런데, 뭔가 갑자기 방이 더 밝아졌다. 궁금함에 손가락을 벌려 보는데, 남자의 등에서 순식간에 뭔가가 나왔다. 날개다. 눈처럼 새하얀 날개가 등 뒤에서 솟아나더니, 갑자기 쫙 펴쳐졌다. 길이가 2미터는 넘을 것 같이 길다. 폭은 더 넓다. 그런 날개가 펼쳐지니, 거실 한쪽을 꽉 채웠다. 남자의 머리가 하얀색으로 변했다. 새하얀 날개와, 새하얀 머리, 새하얀 빛 때문에 남자의 집 거실은 온통 하얀 빛으로 꽉 찼다. 진영은 다시 손으로 눈을 가렸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갑자기 앞이 깜깜해졌다. 조심스레 손을 내리고 보니, 거실은 다시 어둠에 휩싸여 있다. 그리고, 남자는 거실 한가운데에 쓰러져 있었다. 진영은 남자에게 달려갔다. 머리가 검은색이다. 아까처럼 빛이 나고 있지도 않다. 날개도 없다. 그냥 보통 사람이다. 그럼, 방금 진영이 본 건 뭐였을까? 꿈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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