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으슥한 골목으로 걸어 들어간다. 누가 보는지 확인한 후 검은 문에 노크를 한다. 문이 소리없이 열린다. 남자가 안으로 들어선다.

검은 문과는 반대로 남자가 들어간 공간은 형형색색의 태피스트리와 커튼 등으로 눈이 아플 정도의 색채감을 자랑한다. 언뜻 보면 천가게 같기도 하다.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방 한쪽에 자리한 카운터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향한다. 카운터 뒤에 걸려있는 커튼이 하늘거리고, 방 만큼이나 화려하고 밝은 색의 가운을 걸친 여자가 나온다.

"매직 엠포리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주문이나, 물약, 혹은 저주를 사러 오신 건가요?"

여자는 항상 하는 말인 듯 숨도 쉬지 않고 읊어낸다. 남자는 주위를 살피고, 다른 손님이 없는 걸 확인한 후 품에서 뭔가를 꺼낸다. 사람 모양의 인형이다.

"이 인형을 사람으로 만드는 주문을 사고 싶어요."

말을 꺼내는 남자의 목소리가 떨린다. 여자 역시 목소리를 낮춘다.

"손님, 인형을 애니메이트하는 주문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알아요. 그래서 여기로 온 거에요. 여기에선 충분한 액수를 지급하면 해준다고 들었어요."

여자는 잠시 망설인다. 남자는 절박하다.

"제발요, 오늘 하루만, 아니, 몇 시간만이라도 돼요."

여자는 남자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커튼 뒤로 다시 사라진다. 잠시 후, 여자는 다시 나타난다.

"마법사님께서 1시간짜리 주문을 만들어 주실 수 있다고 하네요. 그 이상은 재료가 없어요."
"네, 그거라도 좋아요. 제발, 꼭 해주세요."

남자는 주머니에서 돈주머니를 꺼내 카운터에 놓는다. 여자는 주머니를 열어 금화를 확인하고, 남자에게 따라오라 손짓한다. 길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 자주색 문 앞에 선 여자는 문을 열고 옆으로 비켜선다. 남자가 들어가고, 여자가 따라 들어온다. 자세히 보니 침실이다. 고급스러운 가구로 꾸며져 있지만, 남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그저 여자를 쳐다보고 있다. 여자는 남자의 키만큼 높이 솟아 있는 옷장 앞의 빈 공간을 가리킨다.

"인형을 저기에 놓고, 뒤로 물러서세요."

남자는 여자가 말한 위치에 인형을 놓고 멀찍이 선다. 여자는 다시 나간다. 곧, 여자는 손에 무언가를 들고 다시 들어온다. 남자는 긴장감에 몸을 떨고 있다. 여자는 손에 든 주문서를 들고 읽기 시작한다. 주문서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여자가 주문을 다 읽자, 주문서는 먼지가 되어 흩어지고, 옷장 앞의 공간만 안개로 감싸인다. 그 안개를 뚫고 한 남자가 걸어나온다.

"홍빈아!"

남자는 나타난 남자에게 달려가 안긴다. 홍빈은 남자를 마주 안아준다.

"찬아."

여자는 이미 방을 나간 후다.








침대에 누워 둘은 사랑을 나눈다. 1시간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다. 그래서 둘은, 서로의 몸을, 입술을, 끊임없이 탐한다. 둘 다 지칠 때까지 사랑한 후에야 나란히 누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찬식이 홍빈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사랑해."
"나도 사랑해."

홍빈 역시 찬식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찬식은 자신의 얼굴을 만지는 홍빈의 손을 잡아 키스를 한다.

"이렇게라도 널 만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
"나도 그래."
"널 볼 수 있다면,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홍빈은 찬식을 끌어다 품에 안는다.

"다들 날 미쳤다고 할 거야. 인형과 사랑에 빠져 불법 주문을 사러 여기까지 오다니. 그래도 상관없어."

홍빈은 대답 없이 찬식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인형과 사랑에 빠지는 건 너무 비참해. 늘 함께 있고 싶은데, 이렇게밖에 볼 수 없다니."
"미안해. 내가 인형이라서."
"아니야,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냐. 네가 인형이라서가 아니라, 너와 늘 함께 있을 수 없는 게 슬픈 거야. 널 사랑한 걸 후회 안 해. 널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했으니까."

홍빈은 찬식을 더 꽉 껴안아 준다. 찬식의 등 너머로 보이는 탁자에 놓인 모래시계의 모래가 얼마 남지 않았다. 곧 헤어져야 하는 걸 알기에, 다시 찬식의 입술에 입을 맞춘다. 찬식은 피곤해 잠이 오는지 목소리가 작아진다.

"널 만들어 준 마법사님께 감사해. 너와 함께하는 순간순간을 감사해. 널 사랑해."
"나도 사랑해."

홍빈의 말에 찬식은 홍빈의 품에서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리고, 사라진다. 찬식의 자리에 인형 하나가 남아 있다. 한쪽이 조금 그을려 있다. 홍빈은 조심스러운 손으로 인형을 쓰다듬는다.

"네가 사람이라 믿어야만 행복한데, 내가 널 위해 인형인 척 못 해 주겠어?"








한참을 그렇게 누워 있던 홍빈은 침대에서 일어나 가운을 걸친다. 옷장 문이 열리고, 옆방으로 통하는 통로를 지나 여자가 들어온다. 홍빈은 조심히 인형을 들어 여자가 내미는 나무상자 안에 놓는다.

"재료는 다 구했나?"

찬식과 있을 때와는 다르게, 홍빈의 목소리가 딱딱하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럼 바로 시작하지."
"마법사님, 오늘 쓴 주문을 만드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그렇게 무리를 하시면..."

여자는 홍빈의 싸늘한 표정에 입을 다문다. 하지만 인형을 보는 여자의 시선이 곱지 않다. 그걸 느꼈는지, 홍빈은 상자를 여자에게서 뺏어 들고 옷장 문을 통해 옆방으로 들어간다. 한쪽엔 물이 가득찬 큰 솥이 걸려 있고, 셀 수 없이 많은 유리병에 재료들이 담겨 있다. 그 외의 공간엔 마법 관련서들이 책장에, 책상 위에, 혹은 바닥 위에 쌓여 있다.

홍빈은 상자를 여전히 조심스러운 손으로 유일하게 빈 공간이 있는 책장에 놓고 솥으로 향한다. 이미 재료를 다 외우고 있는지, 옆에 펼쳐진 책을 보지도 않은 채 여러 유리병에서 재료를 꺼내 솥을 가득 채운 물에 넣는다. 물의 색이 녹색, 빨간색, 금색, 등으로 수시로 바뀐다. 마지막으로 홍빈은 옆 책상 위의 칼을 집어들어 오른손을 긋는다. 이미 수차례 한 일인지, 오른손은 흉터로 가득하다. 피가 물 위에 충분히 떨어졌을 때, 물의 색이 보라색으로 변한다. 옆에서 기다리던 여자가 천으로 손을 동여매준다.

홍빈은 여자는 개의치 않고 옆 책상에 칼을 놓고, 그 옆의 종이를 집어 솥 안으로 떨긴다. 종이는 물에 닿기 전, 공중에 떠 있다. 주문서에, 서서히 보라색 글씨가 새겨진다. 저 글씨는 밤새도록 새겨져, 아침 쯤에는 주문서가 완성되어 있을 거다. 그러면, 다시 찬식을 한 시간 동안 볼 수 있다. 우선 할 일을 다 끝낸 홍빈은, 탈진한 듯 비틀거린다. 여자가 재빠르게 홍빈을 부축해 옆 의자에 앉힌다. 주문서에 글자가 하나씩 새겨질 때마다, 솥의 물이 색을 잃고 좀 더 투명해진다.

홍빈은 너무 무리를 했는지 얼굴이 흙빛이다. 여자는 그런 홍빈을 보며 결국 다시 말을 토해낸다.

"마법사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 위험해요. 이렇게 수명을 깎아먹는 주문을..."
"오늘 그 아이가 나에게 뭐라고 한 줄 알아? '인형과 사랑에 빠지는 건 너무 비참해', 란 말을 하더군."

홍빈은 쓴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비참한 건, 자신을 사람이라 믿어야만 행복한 인형을 사랑하는 걸 거야."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에 만든 인형이었다. 우습게도, 인형을 애니메이트 하는 주문이 불법이 된 후, 갑자기 흥미가 생겼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이 방에서, 인형을 만들고 애니메이트 하는 주문서를 만들어,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찬식이 나타났다.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홍빈은 사랑에 빠졌다. 찬식도 그를 사랑했다. 하지만, 자신이 인형이란 사실을 알고 찬식은 불행해했다.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좌절했고,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었다. 그것도 모른 채 홍빈은 찬식을 영원히 애니메이트 할 수 있는 주문을 연구하고 있었다. 수명을 깎아넣어야 되는 주문이었지만, 찬식을 위해서라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 주문이 다 만들어지기 전에, 찬식은 결국 인형인 자신을 너무 증오하게 되어 스스로 몸에 불을 질렀다. 다행히 인형이 크게 다치기 전에 불을 껐지만, 그 인형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결국, 그 인형은 강한 주문을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한 시간짜리 주문만 쓸 수 있다. 이 주문을 만들 때에도 많은 재료와 홍빈의 피, 즉 수명이 필요하다. 매번 새로운 주문서를 만들어야 되서, 홍빈은 이미 많이 약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 주문 외에도, 찬식의 기억을 조작하는 주문까지 만들어야 한다. 찬식에게는 자신이 인형이라는 사실이 너무 끔찍하기 때문에, 그것을 잊고 자신이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기억을 조작해도, 찬식의 머릿속에는 몇개의 키워드가 자리잡고 있어서, 그것까지 지울 수가 없다. 그 키워드는 인형, 불법, 그리고 주문이다. 그래서, 찬식은 본인이 인형을 사랑한다고 믿고 있다. 더 강한 기억조작 주문을 만들어 그 키워드를 지워버리고 싶지만, 찬식의 인형이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매번, 이렇게, 찬식을 가게가 위치한 골목 앞에서 애니메이트 시키고, 이 상황극 아닌 상황극을 펼친다.

그래도, 홍빈은 찬식을 사랑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 이렇게, 주문을 완성한 후에만 만날 수 있어도, 그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 다행히 이번에는 재료를 빨리 구할 수 있어서, 내일이면 다시 찬식을 볼 수 있다. 홍빈은 마지막으로 상자 안에 담긴 인형을 다정한 손길로 쓰다듬고, 뚜껑을 덮은 후 비척거리며 다시 옷장문을 통해 침실로 들어간다.

여자는 그런 홍빈의 뒷모습을 애증 담긴 눈으로 쳐다본다. 인형을 사랑하는 남자보다 더 비참한 건, 인형을 사랑하는 남자를 사랑해서, 그 남자가 스스로 목숨을 깎아내는 걸 지켜보는 거다. 여자는 당장이라도 저 저주받은 인형을 불구덩이에 던져버리고 싶지만, 저 인형만이 홍빈이 살아가는 이유라는 걸 알기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홍빈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빨리 내일이 와서 찬식을 다시 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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