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AM: 동우

뭔가 입술에 감촉이 느껴져 동우는 잠에서 깬다. 정신이 드니 가슴이 좀 답답하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앞을 보니, 진영이 가슴 위에 올라타 입술을 할짝, 할짝거리며 핥고 있다. 갑자기 잠이 확 깨,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 바람에 뒤로 쓰러질 뻔한 진영이 삐친 듯 하악거리며 목덜미를 살짝 물고 간다. 그나마 예전처럼 제대로 무는 게 아니라 피는 나지 않는다. 동우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화장실에 씻으러 들어간다.

한달 전, 진영이 사라졌었다. 늘 하는 것처럼 며칠씩 나갔다가 돌아오는 게 아니라, 아예 한참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일주일쯤 전의 어느 날 아침, 깨어보니 진영이 옆에 누워 자고 있었다. 그것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몸에 여기저기 새로 생긴 흉터가 남아 있었다. 뭔가 어디에서 험한 일을 당한 것 같아 걱정됐지만, 그래도 무사히 돌아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잠에서 깬 진영은 오랜만에 봐 반가운지 그때부터 동우에게서 떨어지질 않는다. 처음에 비해 애교가 많이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혹시 발정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치댄다. 덕분에 동우는 이제 매일매일이 무섭다. 눈을 뜨기가 무섭게 입술이나 목 등을 핥고 있고, 일하려 책상에 앉으면 무릎 위로 올라와 얼굴을 가슴에 부비고 꼬리로 손목을 감아온다. 동우가 저 꼬리에 약한 걸 아무래도 아는 것 같다. 안아서 침대에나 쿠션에 내려놓으면, 삐쳤는지 여기저기 문다. 다행히 이제 할퀴지는 않아서, 피를 보는 일은 거의 없다. 고양이가 이렇게 손 많이 가는 동물인지 몰랐다.






11 AM: 진영

아이씨, 저 차려줘도 못 먹는 새끼. 뭘 어떻게 더 해야 되지? 이런 일은 처음이라 난감하다. 진영은 쿠션에 누워 반투명 스크린 너머로 보이는 동우의 얼굴을 지켜본다. 치대도 보고, 핥아도 보고, 생각나는 건 다 해봤는데도 꿈쩍을 안 한다. 게다가 아까 검색하는 걸 보니 고양이 발정기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저 멍청한 놈은 진영이 그냥 고양이가 아니라 하이브리드라는 걸 깨닫지 못 하나 보다. 하이브리드는 발정기라는 게 없는데, 어차피 저 녀석은 모르니까 그런 척하고 한 번 덮쳐 봐? 하는 생각까지 해 본다.

한 달 전, 결국 보스가 숨어있는 곳을 알아냈다. 어디 태평양의 조그마한 섬에 숨어 살고 있었다. 그곳에 가는데만 며칠이 걸렸고, 섬을 둘러싸고 있는 경호원들과 조직원들을 다 처리하는 데 며칠이 더 걸렸다. 결국, 보스까지 사냥하는 데 성공했다. 셋 다 그 과정에서 많이 다쳤지만 어쨌든 살아남았다. 이로써, 셋의 복수는 끝났다.

아직 남아있는 조직원들을 처리할까, 했지만 어차피 그들은 셋의 정체를 모른다. 그 비밀을 아는 사람들은 다 죽였다. 어떻게 한 조직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지 결국 아무도 모른다. 이제, 셋은 자유다. 차니와 로로는 당장 하이브리드의 상징인 초커를 벗어버리고, 보스처럼 어디 멀리 조그마한 섬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쓰고도 아직 돈이 많이 남아있으니까, 어디 조그만 섬을 사서 셋이 살면 되지 않겠냐고. 그러니, 진영에게도 같이 가자고. 하지만, 막상 그렇게 영영 떠나려니, 동우가 너무 눈에 밟혔다. 일반 하이브리드인 척 사는 게 결코 쉽지 않았지만, 동우를 안 보고 살 자신은 없었다. 결국, 진영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돌아오긴 했는데, 동우 저 한없이 착한 호구 새끼는 뭘 차려줘도 먹는 법이 없다. 그냥 스킨쉽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진영을 데리고 살면서 그 전에도 빠듯했던 생활비가 이제 한참 모자라, 저축한 돈까지 거의 다 써버린 걸 알게 되었다. 머리를 굴리던 진영은, 어디서 주워온 것처럼 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물어다 동우 앞으로 가져와 봤다. 칭찬해 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런 거 가져오는 거 아니라고 혼내고, 경찰서에 갖다주었다. 정정당당히 진영의 돈으로 산 목걸인데, 아깝다. 그나저나, 이 방법이 통하지 않았으니, 어찌해야 한다... 어디 사돈의 팔촌이 죽으면서 유산을 물려줬다고 해야 하나? 이 녀석이 이렇게까지 착할 줄은 몰랐던 진영은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3 PM: 동우

고른 숨소리가 들려 곁눈질로 내려보니, 진영이 잠들어 있다. 점심 먹고 난 후, 일을 하려 책상 앞에 앉았는데 계속 무릎 위로 올라오길래, 동우는 몇 번 침대에 데려다 놓다가, 결국 포기하고 무릎 위에 앉아 있도록 내버려두었다. 얼굴, 목, 귀를 할짝거리던 녀석은, 동우가 상대해주지 않자 다시 삐쳐서 이번엔 좀 세게 목을 물더니 가슴에 얼굴을 기대고 잠들어버렸나 보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고양이는 주인이 일을 하면 귀찮게 구는 게 습성이 있는 것 같다. 깨지 않게 조심히 침대에 눕히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 가뜩이나 요즘 생활비가 모자라,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8 PM: 진영

동우가 시켜주는 목욕은 늘 기분이 좋다. 진영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머리를 감겨주는 동우의 손을 느낀다. 귀에 물이나 거품이 들어가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하고 있다. 그래도 가끔 자기도 모르게 귀가 움찔거린다. 그럴 때마다 동우는 괜찮다며 달래 준다.

원래 찝찝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매일매일 씻는 진영이었는데, 동우가 인터넷에서 고양이는 한 달에 한 번 목욕시키는 거라고 배워서 처음엔 제대로 씻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동우 몰래 목욕하다가 들킬까 봐 그럴 수도 없었다. 결국, 진영이 툭하면 욕조에 들어가 나오질 않자, 그제서야 씻고 싶은 거냐며 목욕을 시켜주기 시작했다. 처음엔 좀 수치스럽고 창피했다. 다 벗고 동우 앞에 서 있으려니, 왠지 부끄러웠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손길이 기분좋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매일 목욕 시간이 기다려진다. 동우가 별다른 생각 없이, 꼼꼼히 구석구석 씻겨주니까, 그 다정한 손길을 오래 느낄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가끔 좀 마음이 간질간질해지고 위험할 때가 있다. 오늘도 그랬다. 그래서 진영은 자기도 모르게 거품이 가득 묻은 몸으로 동우에게 매달렸다. 거품에, 물에 젖어 동우가 결국 화났나 보다. 아무 말 없이 진영을 타월로 잘 말려준 뒤, 옷까지 다 입힌 후 말도 없이 나가버렸다. 진영은 약간 기가 죽어서 침대에 웅크리고 누웠다.

다행히 동우는 곧 돌아왔다. 주머니에서 뭘 주섬주섬 꺼내더니, 진영을 일으켜 앉히고 옆에 앉았다.

"진영아. 자, 착하지. 이거 먹자."

뭔데? 싶어 보니 고양이 발정기 때 먹이는 약이다. 이 새끼가 정말! 이건 "야옹아"라고 부르는 것보다 더 치욕스럽다. 결국, 저도 모르게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아이씨, 나 고양이 아니라고!"

동우의 눈이 동그래졌다. 입이 저도 모르게 벌어졌다. 이런. 일쳤다.








9 PM: 동우

동우는 이제 대놓고 사람처럼 침대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진영을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진영의 말을 요약하자면, 만들어질 때 뭔가 실수로 뇌 성장억제제가 제대로 투여되지 않았는지 언제부턴가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런 자신이 혼란스럽고, 그것 때문에 방황하느라 며칠씩 없어지고, 다른 하이브리드와 싸우고, 해서 상처를 만들어 왔다고 했다. 지난번에 데려온 하이브리드들도, 자기와 비슷해서 도와준 거라고 했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냥, 뭔가, 생각보다 더 안쓰러운 생물이다.







9 PM: 진영

진영은 동우의 눈치를 본다. 이 한없이 착한 놈에게 진영이 킬러로 만들어졌고, 지금까지 수백 명을 죽였다고 말하면 놀라 까무러칠 것 같아서, 적당히 둘러대었다. 사실, 하이브리드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놈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진영이 한 변명이 말도 안 되는 말인데 그걸 또 믿는다. 그리고, 얘기를 다 끝낸 진영의 머리를 전보다 더 다정하게 쓰다듬어 준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다."

그 말이 뭐라고 진영은 눈물이 날 것 같아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동우의 다음 말에 심장이 쿵, 한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혹시, 쫓아내기라도 할 건가? 싶어 걱정이 돼 동우를 올려다본다.

"넌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어?"

잠시 말문이 막힌다. 지금까지 정체를 아는 인간들도 이렇게 진영에게 의사를 물어본 적이 없었다. 늘 명령을 내리거나, 혼내는 말뿐이었다. 그래서 뭐라 대답할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이 너에 대해 알면 안 될 것 같아. 네가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알아보려고, 널 괴롭히고 힘들게 할거야. 그러니까,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하자. 알았지?"

아, 역시 끝까지 좋은 놈이다. 그래서, 진영이 마음을 준 거다. 하지만, 절대로 먼저 말로 표현하지는 않을 거다. 아주 진영에게 절절 매게 만들어버릴 거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 착한 성격을 이용해보기로 한다.

"그나저나, 이 방이 너무 좁은데, 같이 살기 불편하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며 방을 둘러보는 동우의 옆에 바짝 다가가 앉는다. 동우가 멈칫한다.

"나, 지금 너무 아파."

진영은 최대한 불쌍하게 말해본다. 동우가 걱정스런 눈으로 쳐다보며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왜? 어디가 아픈데?"

아, 이 말을 입 밖으로 내긴 너무 쪽팔리지만, 이 착한 놈을 낚을 유일한 방법이다.

"나, 지금 발정기라 온몸이 아파."

동우의 입이 다시 벌어진다. 이마에 댔던 손을 뗀다.

"아, 아까 그 약이..."
"그거 고양이 거잖아. 안 들어."
"그래? 그럼 어떡해야 하지?"

좀 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더 바짝 다가간다.

"나, 안 아프게 해주면 안 돼?"

당장 내일 아침에라도 오늘을 떠올려보면 이불킥을 수도 없이 할 것 같다. 하지만 진영은 동우가 귀여운 것에 약한 걸 차니와 로로를 통해 배웠기 때문에, 장화신은 고양이 눈을 하고 최대한 귀여운 척 올려다 본다.

"어, 어떻게..."

동우의 얼굴이 벌개지고 있다. 꼬리로 손목을 감는다. 이제 눈에 보이게 움찔한다. 가까이 다가가 입술을 할짝 핥는다.

"기분 좋게 해 줘."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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