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AM: 진영

아오, 저 호구 새끼 정말, 잠을 늦게도 잔다. 일도 참 저같은 지루한 교정 일을 하는 것 같은데, 오늘이 마감일이라 늦게까지 일하고서야 잠들었다. 진영은 동우가 깊게 잠든 걸 확인하고 일어나서 몸을 제대로 스트레칭한다. 무릎으로 기어다녀야 되는 게 수치스럽지만, 그래도 저 호구가 사온 바지에 무릎패드가 달려 있어서 힘들진 않다. 근육 하나하나 다 스트레칭 해서 풀어주고, 손톱도 충분히 날카로운지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동우가 계속 잠들어 있는 걸 확인하고, 창문으로 빠져나간다.

동우 몰래 옥상 한쪽에 숨겨둔 검은 옷가지를 꺼내 입고, 검은 운동화를 신는다. 약간 헐렁한 바지가 꼬리를 감춰준다. 역시 검은 모자를 써서 귀를 가린다. 목폴라로 초커를 완전히 가린다. 혼자 다니는 하이브리드는 도망쳤을 확률이 높다. 그런 하이브리드를 잡으러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누가 잡으려고 하면 잡기 전에 죽이면 되지만, 귀찮으니까. 차라리 이렇게 다 숨기고 나가는 게 더 쉽다.

해가 뜨기 직전 돌아온 진영은, 피가 묻은 옷가지와 신발을 다시 옥상 한켠에 숨기고, 방으로 돌아간다.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을 보고 꼼꼼히 확인한다. 다행히 동우가 사 준 옷에는 피가 안 묻었다. 얼굴에 튄 피를 서둘러 닦아내고, 다시 조용히 방으로 돌아온다. 아직은 약간 날씨가 쌀쌀해서, 동우의 따뜻한 품에 파고든다. 몸이 곧 따뜻해지자 기분이 좋다. 이 호구 새끼, 그래도 쓸모가 많아,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목에서 가르릉 소리를 낸다. 포근한 동우의 품에 기대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하이브리드가 대중화되자, 한 어둠의 조직의 보스는 묘안을 떠올렸다. 조직이 점점 커지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던 보스는 바로 그 하이브리드로 본인의 경호원을 만들 생각을 한 것이다. 하이브리드는 어느 누구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으니까, 아무도 경계하지 않는다. 하이브리드를 몇이나 곁에 두고 있어도, 위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예, 하이브리드로, 경호원이 아닌 암살자를 만들면 어떨까, 싶었다. 보통 사람은 절대 갈 수 없는 곳까지 갈 수 있고, 절대 의심받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오랜 시간과 돈을 투자해 이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겼다.

비밀연구소를 만들고, 하이브리드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기존 하이브리드와는 다르게, 성장촉진제로 12살까지만 키우고, 뇌 성장억제제를 투여하지 않았다. 그렇게 자아를 가진 하이브리드를 만들어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이 불법이었다. 그래서 비밀리에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프로젝트가 끝난 뒤엔 연구소를 폐쇄하고 관련된 사람들을 다 죽여 입을 막았다. 조직 내에서도 이에 대해 아는 사람은 간부 몇 명뿐이었다. 실험 자체도 어렵고 위험해, 많은 실패가 있었고, 결국 단 세 명의 하이브리드만이 살아남았다. 그 중 첫번째 성공작인 진영이 리더로, 셋이 한 팀이 되었다. 나머지 둘은 차니와 로로. 최대한 위협이 되지 않는 동물들의 DNA와 결합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진영은 검은 봄베이 고양이, 차니는 흰 사모예드, 그리고 로로는 갈색 다람쥐의 하이브리드였다.

12살 때 연구소에서 보스의 집으로 옮겨진 셋은, 다른 조직원들의 눈을 피해 지하에서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킬러의 스킬 등은 물론, 위장할 수 있도록 보통 하이브리드인 척 연기하는 것까지 다 훈련받았다. 몇 년 뒤, 성체가 되자 바로 실전에 투입됐다. 그리고, 보스의 아이디어가 과연 묘안이라는 걸 바로 증명해냈다. 의뢰받은 일을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다 성공적으로 마쳤다. 어느 누구도 이 암살단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심지어, 진영이 암살한 사람 바로 옆에서 피를 뒤집어쓴 채로 발견됐을 때도, 어느 누구 하나 그가 암살자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범죄 현장이라며 쫓아냈다.

얼마 전, 셋은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할 거라던 옆 나라 대통령의 암살까지 성공했다. 덕분에, 그 위세는 더 대단해졌고, 보스는 돈방석에 앉았다. 자아를 가진 하이브리드로 살면서, 처음엔 본인들의 비정상적인 몸을 증오하고 비관했지만, 그 덕분에 다른 암살자는 할 수 없는 의뢰까지 성공시키자 점점 킬러로서의 긍지가 올라갔다. 킬러로서의 삶밖에 모르는 진영에게는, 다른 두 멤버와 그 긍지만이 삶의 전부였다. 하지만, 곧 그 긍지는 무참히 짓밟혔다.

아무리 모두가 무서움에 떠는 암살단이라도, 결국 보스의 아들에게는 섹스토이에 지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정체를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진영에게 눈독을 들이던 보스의 아들은, 결국, 아버지가 잠시 해외에 간 틈을 타, 진영을 방으로 불러들였다. 아무 의심없이 혼자 방에 들어선 진영은, 곧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인간에게는 무해하지만, 고양이 DNA를 가진 하이브리드에게는 치명적인 약을 공기에 섞어 흘려보냈던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팔다리가 묶여 있었고, 그렇게, 보통 하이브리드처럼, 자아 없는 장난감처럼, 보스의 아들에게 강제로 꿰뚫렸다. 마지막까지 이를 악물고 버틴 진영은 다시 정신을 놓기 전에 보스의 아들에게 약속했다. 넌 내 손으로 죽일 거라고. 그의 비웃는 얼굴을 보며 정신을 잃었다.

며칠 후에야 진영은 조각 조각 부서져버린 마음과 몸을 어느 정도 추스르고 일어날 수 있었다. 조직에 대한 충성심은 먼지처럼 흩어져 버리고, 진영은 복수심에 불타올랐다. 결국, 진영은 그가 한 약속을 지켰다. 보스의 아들의 방에 잠입해, 그를 난도질해 죽였다. 어차피 죽음을 각오하고 한 일이라, 그를 죽이자마자 발각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를 죽이고 난 후에도 집은 아직 조용했고, 희망이 생겼다. 그래서 탈출을 감행했다.

집을 나와 넓은 뒷마당을 가로지를 때 발각됐다. 그때부터 몰려오는 경호원과 조직원들을 죽이며 뒷문 쪽으로 나아갔다. 뒷문 바로 앞에서 차니와 로로와 맞닥뜨렸다. 보스에게서 진영을 죽이라는 명을 받았음에도, 결국 둘은 이미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진영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진영을 쫓아오는 조직원들을 막아주었다. 둘 덕분에, 진영은 뒷문 옆 골목까지 도망가, 때마침 지나가던 배달부의 오토바이를 빼앗아 타고 달아났다. 무작정 달리다, 어딘지 모를 곳에서 정신을 잃고 오토바이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동우의 집이었다.

처음 며칠은 동우가 원하는 게 있어 자기를 구해준 거라 생각해, 경계하고 위협했다. 게다가, 자아가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면 동우가 뭘 어떻게 할지 몰라, 그 와중에도 보통 하이브리드인 척 연기하는 걸 잊지 않았다. 하지만, 동우는 절대로 만지거나 필요 이상 가까이 오려고 하지 않았다. 동우는, 진영이 처음 만난 좋은 사람이었다. 매일매일 가까이 오면 물고 할퀴는 데도, 오히려 진영을 다독여주며 상처를 치료해줬다.

아직 상처가 너무 심해 음식을 겨우 넘길 때는 죽을 쒀 줬다. 하지만 나중에는 사료로 바뀌었다. 사료를 먹는 건 치욕스러웠지만, 그래도 아무리 자아가 있어도 몸은 하이브리드이니까,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하지만 절대로 참을 수 없는 건 동우가 매일 "야옹아"라 부르는 것이었다. 원래 차니와 로로와 같이 지니라는 이름을 받았었다. 다른 애들은 상관하지 않았지만, 진영은 그 애완동물같은 이름이 너무 수치스러워서, 스스로에게 좀 더 사람같은 진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초커에도 그렇게 새겼다. 그래서, 몸이 얼추 나았을 때 초커에 새겨진 이름을 동우 얼굴에 들이밀어 보여주고, 드디어 진영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상처가 어느 정도 나아, 제대로 움직이게 됐을 때, 동우가 잠든 밤에 몰래 나가 차니와 로로가 어떻게 됐는지 알아보러 갔다. 조직원 하나를 잡아 족쳐서 정보를 얻어냈다. 걱정했던 대로, 진영을 그냥 보내준 데다 도와주기까지 했다고, 둘은 감금되어 있었다. 물론 일개 조직원은 그들이 암살자인지는 몰랐다. 그냥, 보스의 집에 사는 세 하이브리드 중, 하나는 도망가고 둘은 감금돼, 심한 고문과 그 이상의 일까지 당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진영은 이성을 잃고 그 조직원의 목을 바로 그어버렸지만, 피를 보자 정신을 차렸다. 지난번처럼 아무 계획 없이 들어갔다가 셋 다 죽게 할 수는 없었다. 셋을 만드는 데 든 돈이 아까워서 나머지 둘을 안 죽였을 거란 생각에 비참했지만 희망이 생겼다. 보스는 어떻게든 비밀이 새어나가기 전에 진영을 잡으려 혈안이 되어 있을 거다. 그것도, 산 채로.

그래서 미끼를 던졌다. 바로 다음날, 사람처럼 행동하는 하이브리드가 어느 동네에서 돌아다닌다, 라는 소문을 퍼트렸다. 그 동네에 소문을 확인하러 오는 조직원 몇 명을 잡아 죽였다. 그리고, 그 동네를 원래 관리하는 조직의 조직원 역시 몇 명 잡아다 죽여, 마치 서로 싸우다 그렇게 된 것처럼 꾸몄다. 그렇게, 양쪽이 제대로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으며, 야금야금 양쪽을 죽여나가, 없는 구역 싸움을 만들어 내었다. 그러다, 진짜로 싸움이 벌어지고, 결국, 전쟁이 되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대부분의 조직원이 동원되고, 보스의 집은 거의 비었다. 보스 역시, 그쪽으로 가 있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진영은 남아있는 몇 명을 간단히 처리한 뒤 차니와 로로를 꺼내왔다. 이번에는 미리 철저한 계획을 짜고 간 거라,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둘을 미리 준비한 차에 태워 동우의 집까지 데려왔다.

아침에 깬 동우는 둘을 보고 놀랐지만, 진영이 예상한 대로 우선 치료부터 해 주었다. 역시, 좋은 사람이다. 그렇게 둘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고, 둘은 점점 기운을 차렸다. 그리고, 역시 복수심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평생을 몸바쳐 충성해 온 조직에 대한 배신감에 둘은 당장에라도 조직 전체를 쓸어버리고 싶어했지만, 역시 우선 몸이 낫고, 제대로 된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진영의 말에 좀 더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나면서, 점점 진영의 심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애들이 낫기 시작하면서, 점점 동우에게 애교를 부리기 시작한 거다. 원래 성격이 그런 로로와, 개의 DNA 때문에 치대는 게 일상인 차니가, 동우 옆에서 꼬리치고, 앵기고, 귀염 떨고 하는데, 저 호구 새끼는 또 좋다고 쓰다듬어 주고, 귀여워해주고 있는 거였다. 아무리 소중한 멤버들이라도 짜증이 났다. 주의를 주고 싶어도 너네 애교 부리지 마라, 라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 짜증이 나는지는 진영 자신도 잘 몰랐다.

결국,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주변 집들을 물색해서, 빈 집을 찾아 둘을 옮겨놓았다. 아무래도 하이브리드가 셋이나 한 집에, 그것도 동우의 작은 옥탑방에 사는 건 너무 이목을 끈다는 이유에서였다. 어차피 복수가 끝나면 다 이곳을 떠나, 멀리 가서 살 생각이기에, 지금 사는 곳은 중요하지 않았다.

주인이 여행을 가 잠시 비어있는 집에서, 일반 하이브리드인 척을 안 해도 되는 둘은 편하게 얘기하고, 먹고, 자고 했다. 하지만 진영은 같이 지내자는 말을 거절하고 동우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냥,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다음날, 동우는 갑자기 둘 다 없어져서 놀랐지만, 결국 자초지종을 알 방법이 없으니 포기하는 듯했다. 그저, 진영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친구들이 없어져서 외롭겠네, 한 마디 했을 뿐이다.

둘의 상처가 다 낫고, 셋은 조직을 완전히 쓸어버리려 사냥을 시작했다. 매일밤, 조직의 간부들을 하나씩 죽였다. 아침에 깰 때마다 하나씩 죽어 있으니, 보스와 다른 간부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셋을 어떻게든 찾으려고 해도, 하이브리드가 넘쳐나는 도시에서 등록도 되어 있지 않은 불법 하이브리드 셋을 찾을 방법이 없었다. 조직에서 배운 모든 스킬을 동원해, 셋은 절대로 발각되지 않으며 하나씩 사냥해 나갔다. 결국, 살아남은 몇 명은 숨어버렸다.

하지만, 그 정도는 이미 예상했던 터였다. 죽이기 전, 간부들에게 목숨값을 요구하고, 차명계좌와 해외계좌 등에서 돈을 인출해 모았다. 물론, 그 후엔 다 죽였다. 어차피 셋이 목숨걸고 암살 계약을 이행하며 벌어준 돈이라, 전혀 죄책감은 느끼지 않았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숨어 있는 놈들을 찾아,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물론, 전보다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지만, 그런 건 상관 없었다.

가짜 신분증과 여권을 만들고, 인간인 척하며 사람을 풀어 정보를 모았다. 어떤 때에는 해외까지 가야 되서, 며칠씩 집으로 돌아가지 못 할 때도 있었다. 이제 돈이 있으니까, 차니와 로로는 호텔을 전전하며 지내고 있었지만, 진영은 갈 수 있을 때마다 무조건 동우의 집으로 돌아갔다. 같은 곳에서 계속 지내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르지 않지만, 그래도 동우가 보고 싶었다. 특히, 특별히 힘들거나 어려운 사냥 후에는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빨리 동우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거였다.

오늘 밤은 다행히, 사냥하는 놈이 바로 옆 동네에 숨어서 곧바로 돌아올 수 있었다. 불쌍한 놈, 동우가 이 동네에 사는지 모르니까 이런 곳에 숨었겠지, 싶어 웃기기까지 했다. 그래도 오늘은 생각보다 좀 오래 걸렸다. 오늘 그 놈은 로로가 감금됐을 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놈이라, 좀 데리고 놀다 죽이고 싶어했다. 로로가 마음이 풀릴 때까지 좀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다행히 해뜨기 전에는 돌아왔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던 진영은, 동우의 팔을 끌어당겨 베고, 동우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그 품으로 더 파고들었다. 언제부턴가 동우의 품이 너무 따뜻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피비린내가 동우의 체취로 다 뒤덮여지는 느낌이 든다. 이제, 동우가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너무 기분이 좋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만지면 바로 죽여버렸을 텐데, 동우의 손길은 오히려 기다려진다. 그래서 애들이 그랬던 것처럼 동우에게 치대도 보고, 애교도 부려 봤는데, 그때마다 도망간다. 핥고 꼬리로 쓸고, 하면 얼굴이 빨개져 어쩔 줄 몰라한다. 하지만 절대로 뭘 해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호구 새끼일뿐만 아니라, 제 구실 못하는 놈인가, 걱정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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