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PM: 동우

진영이 기지개를 켠다. 유연한 몸을 움직여 구석구석 스트레칭한다. 눈앞에 반투명 스크린을 띄워 놓고 소설을 교정하던 동우가 스크린 너머로 진영의 움직임을 본다.

"깼어?"

진영은 동우 쪽으로 돌아누워 보란 듯이 다시 기지개를 켠다.

"진영아, 간식 먹을래?"

머리카락 사이로 솟은 검은 귀가 간식이란 말에 쫑긋한다. 나른한 오후, 방 한쪽에 놓인 긴 쿠션 위에 누워 있던 진영이 긴 검은 꼬리를 살랑거리며 천천히 일어나 앉는다. 오른손으로 눈을 비비는데, 고양이가 세수하는 것 같다. 검은 초커를 한 목에서 가르릉 소리를 내며 일어나 네 발로 기어온다. 동우 앞에 다다른 진영은 동우가 내민 손에 머리를 부빈다. 손끝에 검은 털로 뒤덮인 귀가 만져진다. 털이 부드러워 만져보고 싶지만, 귀는 예민한 걸 아는 동우가 일부러 귀를 피해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뭐 먹을까? 마른 오징어 먹을까?"

마른 오징어란 말에 꼬리가 다시 살랑거린다. 진영이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다. 오징어를 작게 잘라 그릇에 놓아준다. 할짝, 할짝, 혀로 핥으며 먹는다. 그 모습이 귀엽다. 그리고 안쓰럽다. 불쌍한 생물이다.

간식을 다 먹고 진영이 다시 이제는 자신의 지정석이 된 쿠션으로 돌아가 누워 다시 낮잠을 청한다. 동우의 옥탑방에서 이 시간대에 햇볕이 제일 잘 드는 곳이다. 가끔, 꼬리만 살랑거릴 뿐, 빨리도 잠들었다. 고양이를 한 번도 키워본 적 없는 동우는, 고양이가 잠이 많은 동물인가 보다, 생각한다.

그릇을 치우고, 다시 스크린을 띄우고 하던 일을 계속하려 하지만, 곧 동우는 자기도 모르게 스크린 너머로 진영을 관찰하고 있다. 한쪽 팔을 베고 자는 건 사람 같은데, 목에서는 가르릉 하는 소리를 내고 있다. 기분이 좋을 때 내는 소리다. 동우는 그런 진영이 신기해서, 계속 바라보고 있다. 원래 고양이가 저러나, 궁금해한다.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진영은 고양이가 아니다.

Inter-specific Hybrid, 일명 종간 하이브리드를 만들어 내는 기술이 완성되고, 인간과 동물의 DNA 결합이 가능해지자, 곧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졌다. 인간의 몸에 동물의 특성을 가진 하이브리드가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 현재 하이브리드는 먼 과거의 반려견이나 반려묘처럼 흔해졌다. 처음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목적은 곧 변질돼, 이제는 다른 용도로 쓰인다. 쉽게 말해, 하이브리드는 조금은 값비싼 살아 있는 섹스토이인 것이다.

지금은 하이브리드를 더 귀엽게, 더 예쁘게, 만들어내는 기술만이 발달되고 있다. 난자와 정자를 사들여 수정시켜, 태아가 자라기 전에 동물의 DNA를 주입한다. 두 가지 DNA가 결합되는 과정에서, 최대한 예쁘고 귀여운 모습으로 만들려 DNA를 조작하고, 일부 특성을 없애고, 일부 특성을 살린다. 그렇게 만들어진 하이브리드의 태아는 인공자궁에서 성장촉진제를 맞아 급속도로 성장하고, 역시 태어난 후에도 성장촉진제로 인해 한 달만에 성체가 된다. 몸은 어른이지만, 뇌는 성장하지 않는다. 자아를 가진 하이브리드는 필요 없기 때문에, 뇌 성장억제제를 성장촉진제와 함께 투여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렇게 말 잘 듣는, 귀여운, 살아 숨쉬는 섹스토이가 만들어진다.

동우는 성격상 그런 걸 살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을 거다. 그저, 어느 날 밤, 편의점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어두운 골목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던 진영을 발견했다. 전 주인에게 매질을 당하고 버려졌는지,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숨을 쉬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처음엔 119를 불렀지만, 하이브리드는 인간이 아니라서 일반 병원에서 치료하지 않는다며 전화를 끊었다. 가까운 하이브리드 가게에 전화했더니, 그렇게 다쳤으면 폐기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결국, 동우는 진영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

심하게 낯을 가리고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해 집에서 소설 교정을 보는 일을 하는 동우는, 버는 돈에 걸맞게 낡디 낡은 오래된 집의 옥탑방에서 혼자 살고 있다. 요즘 세상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집이라니, 말 다한 거다. 그렇게, 축 늘어져있는 진영을 업고, 5층에 있는 옥탑방까지 겨우겨우 올라갔다. 진영을 침대에 눕히고, 너무 비싸서 잘 쓰지 않는 드론 배달로 약과 붕대 등을 주문했다. 상처를 치료하는 법을 몰라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며, 상처를 씻기고, 소독하고, 약을 발라 붕대를 감아줬다. 그리고, 이미 진영의 피로 붉게 물든 침대시트를 갈고, 다시 진영을 눕혔다.

치료하는 내내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아, 계속 숨을 쉬나 확인했다. 다행히 얕게 숨을 쉬고 있었다. 그렇게, 진영은 며칠을 앓고, 겨우 눈을 떴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면서 동우의 얼굴을 보자마자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하악거렸다. 위협하는 그 모습이 오히려 너무 안쓰럽고 불쌍해, 동우는 다정하게 말을 건네며 진영을 진정시켰다. 그렇게, 둘은 같이 살게 되었다.

처음엔 과연 둘이 살 수 있을까, 싶었다. 졸지에 진영에게 침대를 뺏기고 며칠을 방바닥에서 불편하게 잔 데다, 가까이 갈 때마다 진영에게 몇 번 할퀴어지고 물려 피까지 봤지만, 동우는 절대 화를 내지 않았다. 얼마나 인간에게 나쁜 일을 당했으면 저럴까, 싶어 더욱더 안쓰러워했을 뿐이다. 처음에는 동우를 볼 때마다 꼬리를 부풀리고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을 하던 진영은, 그래도 배가 고팠는지 결국 동우가 주는 죽을 할짝거리며 먹었다. 그렇게,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진영은 동우가 다정한 말과 함께 그릇에 담아주는 사료를 먹을 수 있을 만큼 나았다. 그리고, 가까이 가도 할퀴지 않을 만큼 경계심을 풀었다. 처음 며칠은 아무 생각 없이 진영에게 "야옹아"라고 불렀는데, 하루는 진영이 동우의 코앞까지 다가와 목을 들이밀었다. 왜 그러나, 싶어 목을 쓰다듬어주다 물렸다. 다시 목을 들이밀길래 자세히 보니, 초커에 '진영'이란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렇게 이름이 진영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진영의 지능이 고양이보다는 높다는 것도, 그리고 한 성깔 한다는 것까지도.

그러다 얼마 후, 아침에 깬 동우는 갑자기 하이브리드가 두 명 더 늘어 있어 놀랐다. 진영의 친구들인 것 같았는데, 이 두 명 역시 진영을 처음 봤을 때처럼 상처투성이었다. 동우는 진영을 발견한 때와 마찬가지로 둘을 치료해주었다. 아마도 진영이 데려온 것 같아서, 그만큼 동우를 믿는다는 얘기 같아서, 조금은 기분이 좋았다. 그 둘은 상처가 어느 정도 낫고, 다시 없어졌다. 어디 갔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봐도 대답할 수 없으니 답답했다. 부디 그 나쁜 주인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갔길 빌 뿐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진영과 더 가까워졌다. 이름을 부르면 다가와서 머리를 부빌 정도로 친해졌다. 그리고 동우가 불편한 방바닥에서 매일 밤 자다 결국 허리가 나가 불편한 자세로 걸어다니는 걸 보고, 진영이 그날 밤 팔을 물어 침대 쪽으로 끌어당겼다. 드디어, 동우는 침대에서 다시 잘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진영은 아직도 완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았는지, 그리 넓지 않은 침대 발치에 떨어질 듯 위태롭게, 최대한 동우에게서 멀리 떨어져 몸을 웅크리고 잤다. 그게 미안해 다시 방바닥으로 내려가니 물어 다시 끌어왔다. 동우는 도대체 이 생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그러기를 며칠 후, 진영은 동우 옆에서 편하게 잠들게 되었다. 경계심을 완전히 푼 것 같아, 동우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진영이 어떤 용도로 만들어졌는지 동우도 안다. 하지만, 진영에게 그런 짓을 할 생각은 절대 없다. 진영을 데려온 첫날, 젖은 타월로 상처를 씻어주려 그 하얀 몸에서 피를 닦아내었다. 솔직히 하이브리드는 처음 보는 거라, 그러면서 신기한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진영을 관찰했다. 보통 사람과 비슷하지만, 다른 건 사람 귀 대신 고양이 귀가 달렸고, 꼬리가 달렸다는 것 정도다. 이빨도 좀 더 날카롭고, 손톱도 날카롭지만 그건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어쨌든, 예쁘게 생긴 생물이다.

그렇게 관찰을 하면서, 빨간 상처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동시에 조금은 이상한 마음이 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꾹 눌러담았다. 그리고, 상처를 치료하고, 붕대를 감아주고, 우선은 자신의 셔츠를 하나 입혔는데, 헐렁한 셔츠 안에 드러나는 몸이 왠지 매혹스러워 눈을 꼭 감고 일부러 진영 쪽은 쳐다도 안 봤다. 그리고 다음 날, 바로 나가 하이브리드용 옷을 사왔다. 검은 꼬리와 귀, 그리고 초커를 보고 아무래도 검은색을 좋아할 것 같아 검은색으로만 몇 벌을 사와 바로 입혔다. 혹시라도 시험에 들지 않도록.

문제는, 가끔 진영이 시험에 들게 할 때가 있다. 진영은 가끔 며칠씩 없어질 때가 있다. 처음 그랬을 땐 놀랐는데, 검색해 보니 원래 고양이들이 그러기도 한다는 걸 알았다. 이틀 후, 진영은 언제 없어졌었냐는 듯이 다시 돌아와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어딜 나갔다 돌아온 날은, 다가와 부비적거리고, 무릎 위에 올라와 얼굴과 목을 핥고, 꼬리로 팔을 감고, 한다. 모르고 하는 일이니까 혼낼 수도 없고, 그냥 내버려 두긴 동우가 너무 힘들다. 그래서 그때마다 진영을 안아 내려놓고 화장실이나 밖으로 도망간다.

하지만 낮에는 도망이라도 갈 수 있지, 밤에 잘 때는 더 힘들다. 경계하며 발치에서 웅크리고 자던 건 이미 옛날 일이다. 이제 침대에 누우면, 당연하다는 듯이 와서 품으로 파고든다. 가끔 그 자세로 할짝, 할짝, 목이라도 핥을라치면, 진짜 그날은 도 닦는 심정으로 주기도문, 불경, 애국가까지 외운다. 처음부터 고양이 하나 키우는 거다, 라고 생각하고 집에 데려왔다. 절대로, 자신밖에 의지할 데 없는 저 가여운 생물을 건드리지 않을 거다. 그렇게, 매일매일 다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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