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구정 때 보고 오랜만에 보는 아들과, 연락도 없이 데려온 친구까지 반갑게 맞아주셨다. 보충수업이 끝난 뒤, 남은 방학을 고향에서 보내려 먼저 내려와 있던 동생도 며칠만에 보니 반가웠다. 동생은 물론 나보다 홍빈을 더 반겼지만.

"어, 선생님! 어떻게 형이랑 같이 오세요?"
"버스에서 만났어."

홍빈이 대답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말했다. 동생은 신발을 치우고 현관 한쪽에 자전거 두 개를 나란히 세우는 걸 도와주었다.

"와, 자전거도 같은 거네?"
"그러니까, 완전 신기하지?"

먼저 집 안으로 들여보낸 홍빈은 거실 한 가운데 서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나도 서둘러 거실로 들어왔다.

"내 방은 이쪽이야."

오랜만에 와보는 방이지만 엄마가 청소한 덕분인지 꽤나 깔끔했다. 다행이다. 어질러져 있었으면 홍빈이에게 정말 창피했을 거다. 홍빈은 가방을 한쪽에 내려놓았다.

"난 오늘 명우랑 잘 테니까, 너 여기서 편하게 자."
"같이 자도 될 거 같은데?"

아, 저런 말을 진짜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듣는 나는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진단 말이다.

"그래도, 침대도 좁고, 요도 없고..."
"남자끼리 뭐 어때?"

너랑 그렇게 가까이에서 자다간 내가 심장이 터져 죽을 거야, 란 말은 차마 못 하고, 그냥 너 편하게 자라고, 란 말로 얼버무리고 나왔다. 엄마는 저녁상을 차리고 있었다. 일부러 그렇게 시간을 맞춰 버스를 예약했었다.

"찬식아, 명우 선생님도 빨리 나오라고 해. 국 식겠다."
"엄마, 홍빈이 나랑 동갑이야. 그냥 말 편하게 해도 돼."
"그래도, 명우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인데 어떻게 그래?"

식탁을 보니 온갖 맛있는 음식으로 상다리가 휘어질 것 같다. 오랜만에 엄마 음식을 먹는 거라, 신이 나서 홍빈이를 불러왔다. 퇴근이 늦는 아빠를 빼고 넷이 둘러앉아 먹기 시작했다. 홍빈은 어른들과 있을 때는 그 시크함을 내려놓는지, 엄마랑 편하게 대화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어? 같이 자전거 여행하러 같은 날 출발하고, 그것도 여기 순천에 같이 오고, 말야."
"아... 제가 서울 출신이라 지방을 잘 몰라서요. 명우가 고향이 순천이라고 해서, 그게 기억에 남았나 봐요."
"그럼 우리 찬식이랑 같이 다니면 되겠네."

아무 생각 없이 국을 떠 먹던 난 켁켁거렸다. 동생이 등을 쳐줬다.

"그런데 저 이런 여행이 처음이라..."
"우리 찬식이도 그래. 애가 너무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서 어쩔 수 없이 허락은 해 줬는데, 혼자 자전거 타고 여행이라니, 너무 위험하잖아. 둘이 같이 다니면 나도 걱정 덜고 좋을 것 같은데..."
"아으, 케헥, 엄마, 그래도 홍빈이도 계획이라는 게 있을 거고."
"왜, 뭐 특별히 생각해 둔 게 있어?"
"아뇨. 그냥 쉬엄쉬엄 가려고요, 바닷가 따라서. 그래서 한 2주 정도로 계획 잡고 내려왔어요."
"어머, 어머, 웬일이야. 우리 찬식이도 그렇게 여행하고 싶다고 그러던데. 둘이 너무 잘 맞네."

그렇게, 졸지에, 홍빈이와 둘이서 2주 동안 자전거 여행을 가게 되었다. 엄마의 어떻게든 아들을 혼자 보내지 않으려는 의지에, 결국 홍빈과 내가 진 것이다. 2주 동안 홍빈과 단둘이 여행이라니... 운명의 장난인가?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리는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챙겨 집을 나섰다. 자기 계획이 따로 있었을 텐데도, 홍빈은 나를 배려해서 내가 짠 계획표를 보여주니 그렇게 하자고 말해주었다. 나와 같이 가게 되어서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얼굴 표정을 보고는 잘 모르겠어서, 솔직히 좀 걱정이 되었다. 하도 우리 엄마가 같이 가달라고 부탁하셔서, 어쩔 수 없이 나와 같이 온 것 같아 좀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부모님께 큰소리 뻥뻥 쳤었지만, 혼자 하는 여행이 좀 무서웠던 것도 사실이어서, 홍빈과 같이 가게 된 게 고마웠다. 그리고... 이건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지만, 좋아하는 홍빈과 단둘이 하는 여행이 꼭 무슨 밀월여행 같아서, 참 많이 설렜다.

2주 동안에 500킬로미터가 좀 안 되는 거리를 자전거로 여행하는 건 별로 힘든 거리는 아니다. 특히,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고, 자주 멀리까지 타러 나가는 내겐 진짜 쉬엄쉬엄 다닐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홍빈은 자전거 타는 게 별로 익숙하지 않은지, 첫날부터 힘들어했다. 둘째 날엔 다리가 너무 아픈지 이를 악물고 타는 게 보일 정도였다. 왜 그런데 굳이 자전거 여행을 왔지? 차라리 그냥 배낭여행을 가지... 힘들어 하는 홍빈이 안쓰러워서, 결국 홍빈이 몰래 최대한 자전거 타기 쉬운 길로 경로를 수정했다. 그래도, 그 덕분에 좀 더 천천히 달리고, 더 오래 쉬고, 하면서 주변 경치도 둘러보고, 같이 얘기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경치 좋은 시골길을 만나면 상쾌한 공기와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일부러 더 천천히 달리기도 했다.

저녁 때가 되면 가까운 곳의 민박집을 검색해 밤을 묵었다. 솔직히, 홍빈과 같은 방을 쓰는 건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첫날엔 방 두 개를 달라고 했었다. 그런데 홍빈이 날 슬쩍 보더니 "남자끼리 뭐 어때? 친구잖아"하는 거였다. 거기다 대고 내가 자다가 널 덮칠까 봐 겁나서 그런다, 란 말을 어떻게 하겠냐고... 홍빈이가 은근 고집이 세서, 방을 같이 써야 돈도 아끼고 하지 않겠냐고 그러는데, 결국 설득 당했다.

첫날 묵은 허름한 민박집은 방도 작고 어두운데, 밤에 바람이 세게 불어 여기저기 덜컹거려서 너무 무서웠다. 귀신을 무서워하지는 않지만,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뭔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를 무서워하는 터라, 한밤중까지 잠도 못 자고 뒤척거렸다. 결국 홍빈이 요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게 깔았던 내 요를 홍빈 옆으로 밀고 가 잠든 홍빈의 손을 꼳 붙잡고 잠들었다. 아침에 깨어나보니 바로 코앞에 홍빈이 얼굴이 있었다. 너무 놀라, 정말 엑소시스트에서 나오는 여자애처럼 뒤로 기어 도망갔다. 홍빈이가 자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 모습을 봤다면 없던 정도 떨어졌을 거다.

그 다음부터는, 별다른 상의 없이 당연하게 방을 하나 빌렸다. 나중에는 요를 나란히 깔고 자도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그만큼 친해진 것 같아 좋았다. 그리고, 홍빈이가 그만큼 나를 친구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서, 좀 슬프기도 했다.








둘이 하는 여행의 좋은 점은, 아무래도 단둘이 계속 함께 지내니까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홍빈을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기 때문에, 왠지 앞에만 서면 떨리고, 자꾸 말실수할까 봐 걱정되고, 해서 집에서 마주쳤을 때 몇 번 말 섞은 게 다였다. 그래도 한 번, 명우가 학교에서 늦게 오는 바람에, 먼저 와서 기다리던 홍빈과 얘기를 나누다 둘이 동갑인 걸 알게 되어서 우연찮게 말을 놨었다. 그래도 딱히 친하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첫날 아침, 둘이 같이 순천 집을 나섰을 때에는, 아직은 약간의 서먹함과 어색함도 있었다. 하지만 하루종일 같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거나 하면서, 아니면 잠시 쉴 때 나누는 몇 마디 대화에서, 점점 그 어색함이 사라졌다.

문제는, 그만큼 더 잘 알게 되면서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거다. 처음엔 시크하고 무뚝뚝해서 다가가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가끔 다정하게 대해줄 때가 있다. 매일같이 함께 있으니 그게 더 도드라졌다. 쉬려고 잠시 길가에 앉으면 날 좀 더 그늘지는 곳에 앉도록 한다던가, 가방을 뒤적거려서 뭐 하나 보면 내가 좋아하는 젤리를 꺼내 준다던가, 하는 식으로 날 챙겨주는데, 그게 너무 좋았다. 하루에도 열두 번도 넘게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렇게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서울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좀 더 느리게, 느리게 페달을 밟고 싶었다. 점점 자전거 타는 게 익숙해지는 홍빈이가, 그래서 더 빨리 달리게 되는 게 야속할 지경이었다. 둘이 온전히 함께 할 수 있는 2주가 끝나가는 게 너무 아쉬웠다. 홍빈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난 지나가는 1분, 1초가 아까웠다.

하지만... 내 맘이야 어떻든... 시간은 흘러 마지막 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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