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컷! 좋았어! 다들, 수고했어."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촬영이 끝났다. 영화의 마지막 신은 홍빈의 살인 장면이지만, 야외촬영을 먼저 한 터라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둘의 마지막 대화 신을 끝으로 촬영이 끝났다. 둘은, 제일 가까이에 있던 서로가 아니라 주변을 돌아다니며 다른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그 날 이후로, 서로에 대한 적대심은 없어졌지만, 그 자리를 왠지 모를 어색함이 채우고 있다.

결국, 그날 둘은 더 이상 연습을 하지 못했다. 홍빈의 스케줄을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어서 매니저가 감독의 양해를 구하고 데리러 온 거였다. 다행히 둘이 옷을 대충 챙겨입고 있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오해를 살 뻔했다. 결국, 둘의 감금이자 동거는 그렇게 3일만에 끝났다.

다시 촬영을 재개한 후, 둘은 모든 회상신을 NG 없이 완벽히 소화해냈다. 이 감독은 본인의 아이디어 덕분이라며, 진작에 둘을 가둬버릴 걸 그랬다며 좋아했고, 둘은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주변에서 몰입이 대단하다, 아이돌 출신이란 말도 이제 무색하다, 며 칭찬해 주었다. 베드신을 찍을 땐, 둘이 진짜 사랑하는 사이처럼 보인다고, 거의 연기신이 내린 것 같다고 칭찬이 끊이질 않았다. 이렇게까지 해 줄 줄은 몰랐다고, 정말 고맙다고 이 감독이 인사할 정도였다. 둘도 정말 역할에 몰입을 잘 했다고,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칭찬했다.

오히려 이제는 대치신을 찍을 때 좀 NG를 내 이 감독에게 다시 한소리를 들어야 했다. 초짜 연기자인 찬식을 배려해, 감정신이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해 야외촬영 등을 제외한 웬만한 장면들은 다 차례로 찍었었는데, 이렇게 둘이 친해져서 싸우는 연기가 어색해질 줄 알았다면 미리 몰아 찍을 걸 그랬다며 감독은 투덜거렸다. 그런데, 둘이 친해졌다고 하기가 좀 애매한 게, 카메라가 돌지 않을 때면 서로 눈도 못 마주치고 있다. 그리고, 뭔가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둘 사이에 뭔가 이상한 기류가 흐른다. 그 가까이만 가도 느껴지는 그 분위기에, 주변 사람들은 갸우뚱거린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이 아무 말도 안 하니, 뭐라 물어보기도 그렇다.

어쨌든, 그렇게 촬영을 무사히 마치고, 결국 마지막 날이 오고야 말았다. 아직 편집 등등으로 영화가 완성되려면 멀었지만, 이제 촬영장에서 만날 일은 없다. 그래서였다. 둘은, 다른 모든 스태프들과 연기자들에게 인사를 한 뒤, 실로 오랜만에 카메라 밖에서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보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수고했다, 찬식아."
"그래, 너도 수고했어."

그래, 마지막이어서 그랬다. 홍빈은 어색하게 말하고 돌아서려는 찬식을 갑자기 잡아당겨 끌어안았다. 주변에서 시끄럽게 뭐라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지만, 개의치 않고 잠시 그렇게 꼭 안아주었다. 망설이던 찬식도 팔을 허리에 두르고 마주 안았다. 진짜, 정말, 마지막이어서 그랬다. 다시는 마주칠 일이 없을 테니까.

영화가 처음인 두 사람은,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걸 전혀 몰랐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한 애틋한 포옹이 무색하게, 둘은 몇 달 뒤 거의 매일 붙어다니게 되었다. 제작발표회에, 인터뷰에, 시사회에, 무대인사까지, 매일매일 같이 해야 하는 스케줄이 넘쳐났다. 게다가, 영화 내용이 내용인지라, 아무래도 주인공인 둘이 친하게 보여야 하니까, 서로 보며 웃어주고 장난치고 농담하고, 거의 영화 대본에 [다정하게]라는 지문이 써 있는 것처럼 정말 다정한 모습을 연출해 냈다. 어떨 땐, 연기인지 진짜인지 본인들도 모를 정도였다.

영화는 성공적이었다. 반응도 호평 일색이었고, 몇 주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다들, 동성애 영화에서 이렇게 리얼한 러브신은 본 적이 없다며 감탄했다. 찬식은 은세현의 그림자를 벗고, 배우 공찬식으로 제대로 재기에 성공했다. 홍빈 역시, 주연급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차기작 시나리오가 쌓일 정도로 들어왔고, 커플 화보도 여러 개 찍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점점 같이 하는 스케줄이 하나 둘씩 끝나갈수록, 찬식과 홍빈은 왠지 좀 우울해졌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게 성공했는데, 훨씬 더 좋은 평가를 받고 훨씬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됐는데, 왜 기운이 빠지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런 마음이다. 둘이 마지막으로 한 스케줄은 한 여성 매거진의 커플화보였다. 이게 진짜 마지막이다, 싶어, 둘은 포토그래퍼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다정한 포즈들을 연출해 냈다. 장난이랍시고 볼에 뽀뽀까지 했다. 어차피, 마지막이니까, 그래, 마지막이니까 그런 거다.








그렇게,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제 진짜, 다시는 볼 일 없으니까, 정말 마지막이니까, 마음을 다잡고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해보려는데, 이번에는 영화 코멘터리를 녹음하러 오란다. 게다가, 일본과 대만, 등에서도 개봉이 확정 돼, 조만간 해외도 같이 한 번 돌아야 된단다. 이놈의 영화는 사람이 이제 진짜 마지막이다, 싶어 마음의 준비를 하고 떠나보낼 준비를 하면 이렇게 잡고 안 놔준다. 끈질기다.

결국, 그렇게 둘은 다시 녹음실에서 만났다. 이제 마지막이라고 슬퍼했다가 다시 만난다고 기뻐하고 떨려하기도 지친다. 눈 안 마주치고 어색해 하는게 이제 더 어색하다. 그래서, 코멘터리 녹음을 끝내고, 감독과 다른 배우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둘은 그냥 서로의 옆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에 만난 둘을 배려하는 듯, 감독과 다른 배우들은 둘을 내버려둔 채 자기들끼리 얘기하고 있다. 이 무슨, 헤어졌다 오랜만에 만나는 연인도 아니고, 정말 눈물겹게 고마운 배려다.

잠시 아무런 말 없이 서로의 잔에 소주를 채워주며 마시던 둘은 약간의 취기가 오르자 오랜만에 다시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본다. 홍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잘... 지냈어?"
"으아, 뭐하는 거야? 소름 돋게."

무게 잡은 홍빈이 무색하게 찬식이 팔을 벅벅 긁는다. 네가 그럼 그렇지, 싶지만 왠지 홍빈은 웃음이 난다.

"야, 사람이 좀 멋있게 말을 했으면 너도 좀 그렇게 받아줘야 하는 거 아냐?"
"네가 무슨 쌍팔년도 드라마처럼 대사를 완전 느끼하게 날리니까 그렇지."
"전혀 안 느끼했거든?"
"아오, 김치찌개 국물 먹고 싶어. 여기 김치찌개 안 되나?"

느끼함을 못 참겠다는 듯 찬식이 주위를 둘러보며 메뉴판을 찾는다. 슬프게도 없는 메뉴다. 안타까워하는 찬식을 보며 홍빈은 잠시 망설인다.

"그럼, 김치찌개에 소주 한 잔 더 할래?"
"어? 어디 맛있는 데 알아?"
"우리 집."

찬식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집으로 초대하는 의미를 알 것 같아 무섭다. 하지만, 우선은 웃어넘겨 본다.

"너 요리도 못 하면서 무슨..."
"그때 너랑 며칠 갇혀 있으면서 제대로 굶어 봐서, 또 한 번 그런 일 있으면 굶어죽고 싶지 않아서 요리 배우기 시작했어. 딴 건 몰라도 김치찌개는 진짜 맛있게 끓일 자신 있어."
"김치찌개는 김치가 생명이야. 정말 맛있는 김치가 있어야..."
"우리 엄마가 보내준 김치거든?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어."

자신의 말을 끊으며 대답하는 홍빈을 찬식은 다시 말없이 쳐다본다. 이제, 댈 핑계가 없다.

"그래서, 올 거야, 말 거야?"

이번엔 찬식이 잠시 망설인다. 홍빈은 그런 찬식을 기다려준다. 결국 찬식이 말한다.

"고기 넣어서 제대로 끓여줄 거야?"
"그래, 아낌 없이 넣어주마."

결국 둘은 이 감독과 다른 배우들에게 먼저 일어나겠다며 인사하고 가게를 나선다. 찬식의 매니저는 찬식을 내려놓고 어딘가로 가버렸고, 홍빈은 본인의 차를 가져왔었다. 대리를 부르고 둘은 나란히 홍빈의 차 뒷자석에 앉았다. 대리운전사가 신경쓰이지만, 어둠을 틈 타 홍빈은 손을 뻗어 찬식의 손을 잡는다. 찬식은 뿌리칠까, 생각하지만 이미 깍지를 껴 잡고 있다. 홍빈이 손을 더 꽉 잡으며 찬식을 보고 미소짓는다. 아무래도, 홍빈이 끓여주는 김치찌개를 오늘은 맛 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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