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컷! 아, 쫌! 다정한 눈으로!"

찬식이 이 감독의 눈치를 보고 다시 홍빈을 최대한 다정한 눈으로 쳐다본다. 홍빈 역시 경직되는 입꼬리를 풀며 웃어보이려 노력한다.

"컷! 너네 보톡스 맞았냐? 왜 얼굴 근육이 움직이질 않아! 다시, 레디, 액션!"

하지만 다음 시도도 역시 실패다. 이 감독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다. 지금 똑같은 장면을 무려 7시간째 촬영하고 있다. 화낼 만도 하다. 다른 스태프들도 웃음을 잃은 지 오래다.

결국 이 감독이 "이럴 거면 때려쳐!"라고 소리지르며 자리를 뜬다. 다른 스태프들의 눈길도 곱지 않다. 찬식과 홍빈은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서로를 다정하게,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웃어주기가 너무 힘들다. 차라리 능지처참되는 연기를 더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그 날은 그렇게 촬영이 끝났다. 찬식과 홍빈은 죄지은 사람들처럼 연신 사과를 하며 촬영장을 떠났다. 하지만, 다음 날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람좋기로 소문난 이 감독이 결국 또 "다 때려치워!"라고 소리지르며 박차고 나가고, 스태프들은 둘을 죽일 듯이 노려본다. 이러다, 촬영장에서 진짜로 살인이라도 날 것 같다.

촬영 3일째, 똑같은 일이 또 벌어지자 이 감독이 제대로 열받았다. 지금까지 찍은 거 다 버리고 영화를 뒤집어엎는다는 걸 주변 스태프들이 말린다. 결국, 홍빈과 데뷔 초부터 함께 해 찬식과 홍빈의 사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매니저가 이 감독에게 모든 걸 털어놓는다. 왜 이제야 이런 얘기를 하냐고, 아니, 그러든 말든, 설사 부모를 죽인 원수 지간이라도 연기자들이 이렇게 프로페셔널하지 않게 해도 되냐고 소리치는 이 감독에게 뭐라 할 말이 없다.

혼자 화내고 소리지르고 난리를 친 뒤, 조금 마음을 가라앉힌 이 감독은, 그래도 영화를 엎을 수는 없어서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들어가."

이 감독의 무서운 말투에 찬식과 홍빈은 어두운 방 안에 들어간다. 호텔 방치고는 작고 허름하고, 침대도 작은 것 하나밖에 없다. 취사가 가능한지, 한 쪽에 싱크대와 냉장고, 전자렌지와 핫플레이트가 있다.

"얘네 뒤져서, 바깥이랑 연락될 만한 거 다 뺏어."

둘의 매니저 역시 가라앉은 이 감독의 목소리에 아무 불평 없이 핸드폰, 등을 뺏는다.

"이 방에 TV도 안 나오고, 읽을 것도 대본밖에 없고, 시간 때울 만한 건 아무것도 없어. 둘이 먹고 자는 데 필요한 건 다 미리 넣어놨으니까, 이 방에서 지지고 볶든 서로 죽고 죽이든, 어떻게든 둘이 해결 봐. 촬영 제대로 할 수 있을 때까지 여기서 못 나올 줄 알아."
"네?"
"예? 감독님, 그래도..."

이 감독이 험악한 눈으로 둘을 노려본다. 둘보다 한참이나 작은 이 감독이지만,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

"이미 둘 회사와도 얘기 된 거니까, 토 달지 마. 아니면, 영화 때려치던가."

둘 다 조용해진다. 지난 5개월 동안 액션스쿨에, 연기수업에, 밤늦은 시간까지 계속된 촬영에, 이제 거의 영화의 80% 정도를 찍었는데 이제와 그만두기는 너무 억울하다. 게다가, 처음 걱정했던 게 무색할 만큼, 영화 대본이 너무 괜찮게 나와서, 이걸 관두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

조용해진 둘을 보며 이 감독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진다.

"그럼, 너네 덕분에 우린 강제 휴가니까, 재밌게 놀다가 오마. 이 문은 내가 잠그고 가서 일주일 후에나 와서 열어줄 테니, 그 때 되도록이면 살아서 보자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남기고, 이 감독은 두 매니저를 방에서 쫓아내고 문을 잠근다. 어디에서 이런 곳을 구했는지, 도어락 안 달린 곳을 찾기가 어려웠을 텐데도, 열쇠로 잠기는 문이라 안에서 열 수 없다. 둘은, 그렇게, 졸지에, 일주일 동안 동거를 하게 되었다.







짜증이 차오른다. 이게 다 저 녀석 때문이다. 저 녀석만 이 영화를 안 했으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다. 둘 다 같은 생각을 하며 서로 노려본다. 보는 눈도 없겠다,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가감없이 표현하고 있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으면, 벌써 둘 다 열두 번은 더 죽었을 거다.

잠시 말없이 서서 서로를 노려보던 둘은 곧 포기를 하고 방을 둘러본다. 진짜, 너무 좁은 방이다. 너무 어두워 커튼을 걷는데, 하다못해 베란다도 없다. 조그만 창문이 하나 있을 뿐이다. 정말, 서로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화장실로 도망가기엔, 화장실 역시 너무 비좁고, 완전 옛날식으로 변기 하나와 세면대로 꽉 찬다. 샤워를 하려면 몸을 구겨넣어 샤워기를 한 쪽에 걸어놓고 해야 한다. 진짜, 이 감독이 방 하나는 제대로 골랐다.

찬식이 커튼을 걷고 살펴보는 동안 화장실을 둘러본 홍빈은 곧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좁은 방에서 바로 둘이 마주친다. 방 자체도 너무 작아서, 침대와 서랍장, 작은 테이블과 의자 두 개 등으로 꽉 차 있다. 거기다 아까 매니저들이 가져온 둘의 수트케이스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공간밖에 없다. 당연히 둘 다 서로 비켜줄 마음이 없다.

다시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던 둘은 결국 이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리에 놀란다.

"꼬르르르르르르르륵~"

좁은 방 안에 소리가 울려퍼진다. 갑자기 홍빈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찬식은 얼굴이 새빨개졌다. 홍빈은 침대에 누워 거의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다. 찬식은 쪽팔려 죽을 것 같다. 결국 찬식이 소리지른다.

"아이씨, 그만 웃어!"
"하하... 그렇게... 하... 크게... 나는 소리... 하하... 처음이야..."

숨도 못 쉴 정도로 웃던 홍빈이 숨을 몰아쉬며 말한다. 너무 웃어 배가 아프다. 찬식을 보아온 몇 년 동안 볼 때마다 선배랍시고 늘 무게를 잡거나, 시크한 듯 깔아보거나 했었는데, 이건 너무 인간적인 거 아니냔 말이다. 얼굴이 빨개져 어쩔 줄 몰라하는 찬식이 조금은 귀여워 보이기까지 한다.

찬식은 찬식대로 이 자리에서 영영 꺼져버리고 싶다. 이 무슨 쪽팔리는 상황이냔 말이다. 방금 전까지 서로 죽일 듯이 노려보며 대치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트콤이 되어버렸다. 얼굴이 불타오른다.

결국, 웃다 지친 홍빈은 눈물을 훔치며 일어난다.

"점심 안 먹었어?"

홍빈의 갑작스런 태세전환에 찬식은 약간 얼떨떨하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대답한다.

"일어나자마자 여기 끌려왔는데 뭘 어떻게 먹어?"
"그럼, 뭐, 사람을 가둬놓고 굶기진 않을 테니까 뭐라도 있겠지."

동상처럼 방 한가운데 굳어있는 찬식을 밀치고 홍빈은 싱크대로 가 냉장고와 찬장을 훑어본다. 둘 다 요리는 영 젬병인 걸 아는 매니저들이 다 라면과 햇반 등, 인스턴트 음식으로 채워놨다. 아마도 둘을 데려오기 전, 서둘러 채워 놓았는지 별게 없다. 갑자기 짜증이 밀려온다.

찬식은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다시 방을 둘러보지만, 전화가 없다. 배달 음식을 시킬 수 없다는 말이다. 하긴, 시킬 수 있어도 문을 열 수가 없으니, 있어봤자다. 즉, 둘이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는 거다. 역시나 짜증이 솟는다.

결국, 둘은 햇반에 3분 카레를 전자렌지에 데워, 마트에서 사온 김치와 함께 허접한 점심을 먹었다. 둘 다 마른 체형에 비해 많이 먹고, 먹는 것 자체를 즐기기 때문에, 굶어죽기 전에 어떻게든 이 방을 탈출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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