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ment No. 423: Day 1

몇 번 눈을 깜박인다. 곧 누워 있던 테이블에서 일어나 앉는다. 딱히 불편해 보이지 않는다.

동우는 그 앞에 서서 그의 눈이 자신을 주시할 때까지 기다린다.

"너의 이름은 JY-1118이란다. 너는 내가 개발한 새로운 안드로이드이다."
"안드로이드..."

처음 듣는 단어를 곱씹는다.

"날 부를 때는 박사님이라고 부르렴. 난 너를 진영이라고 부르겠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나서 갸우뚱한다. 왜 고개를 끄덕였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그래서 말을 한다.

"네, 박사님."
"잘했다."

동우는 진영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 못 하는 눈치다.

"내가 너를 만들었으니, 너는 내 말을 무조건 들어야 한다. 이건 네 주인으로서 내리는 명령이야. 알아들었니?"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실험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Experiment No. 423: Day 3

3일 동안 지내온 연구실 밖으로 처음 나가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본다. 그 눈길이 이해가 안 된다.

"네가 안드로이드라서 경계하는 거야. 신경 쓸 필요 없단다."
"네, 박사님."

동우의 뒤를 따라 여기저기 구경한다. 모든 게 다 처음보는 거라, 신기하다. 하지만 동우를 놓치면 길을 잃을까, 동우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동우에게만 의지하고, 동우에게만 기댄다. 그렇게 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다.



Experiment No. 423: Day 7

그림책을 보며 단어를 익힌다. 동우는 인내심 있게 가르쳐준다.

"이걸 보면 어떤 생각이 드니?"

꽃을 가리키며 묻는다.

"예쁜 것 같아요."
"그럼 어떤 감정이 느껴지니?"
"좋아요. 진짜를 한 번 보고 싶어요."
"그래, 넌 감정을 느끼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으니까, 이런 걸 보고 좋아할 거라 생각했어. 그럼, 언제 진짜를 보여줄게."
"네, 박사님."



Experiment No. 423: Day 11

동우의 손에서 빨간 피가 뚝, 뚝, 떨어진다. 깨어진 비커 조각에 벤 것이다. 진영은 어쩔 줄 몰라한다.

"괜찮아, 난 괜찮아."

오히려 다친 동우가 안심시켜준다.

손을 치료하고, 동우는 진영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많이 놀랐니?"
"네, 박사님."
"빨간 피가 무서웠나 보구나."
"네, 많이 무서웠어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넌 안드로이드니까, 넌 다쳐도 피가 나지 않는단다."
"네, 박사님."



Experiment No. 423: Day 17

이제 제법 동우의 심부름을 잘 하게 되었다. 오늘도 동우의 칭찬을 받고 기분이 좋다. 활짝 웃는 얼굴을 보며 동우도 웃어 준다.

"칭찬 받아 기분이 좋니?"
"네, 박사님."
"그래, 원래 칭찬 받으면 기분이 좋은 거지."
"그게 아니라..."

말끝을 흐린다. 동우가 궁금하다는 듯이 묻는다.

"그게 아니면?"
"박사님께 칭찬 받아 좋아요."

웃는 얼굴이 약간 붉어진 것도 같다.



Experiment No. 423: Day 20

동우와 같이 책을 읽고 있는데, 정작 책보다 동우에게 더 눈이 간다. 자꾸 그런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책이 재미없니?"

동우의 말에 화들짝 놀란다.

"아뇨, 재밌어요."
"거짓말도 하게 됐구나."

딱히 화내는 것 같지는 않다. 다행이다.

"이 두 사람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 같니?"

진영은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림책에는 두 사람이 그려져 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이마에 입울 맞춘다.

"모르겠어요."
"둘이 사랑해서 그러는 거란다."
"사랑...이요?"
"아, 사랑이란 말을 처음 들어봤겠구나. 많이 좋아하고, 많이 보고 싶고, 많이 생각나는 그런 마음이란다. 이해가 되니?"
"네, 박사님."

동우가 페이지를 넘긴 후에도 진영은 계속 사랑이란 단어를 중얼거린다.



Experiment No. 423: Day 24

잠에서 깨어나면 충전이 되어 있다. 충전하는 동안에는 잠시 꺼짐 모드가 되는데, 그게 꼭 자는 것과 같다. 약간, 스스로를 인간이라 상상한다. 인간이면, 박사님을 사랑해도 될 테니까. 사랑이라는 단어를 배운 뒤로, 그 단어와 박사님을 따로 생각할 수가 없다.

오늘따라 동우는 기분이 좋지 않다. 어떻게 해서든 기분을 풀어주고 싶은데, 진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가슴이 아프다. 감정을 느끼는 안드로이드라, 이럴 때 힘들다.

그래도, 다시 충전하기 전에 동우가 살짝 미소지어 준다. 그 미소에 기뻐하며, 다시 잠든다.



Experiment No. 423: Day 27

동우와 같이 외출을 한다. 그래봤자 연구소 앞 뜰이지만, 어쨌든 같이 나와 기분이 좋다. 그냥, 같이 있기만 해도 좋다.

잠시 걷다가 다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웬 나이든 여자가 둘의 앞을 막아선다.

"네 놈이 신 박사야?"

여자의 목소리가 분노로 가득차 있다. 동우는 말없이 여자를 본다. 진영은 당황해 어쩔 줄 몰라한다.

"네 놈이 내 아들을 병신으로 만들었어! 무슨 실험을 한다고 애를 데려가놓고,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병신을 만들어놨어! 어쩔 거야, 어떻게 할 거야! 내 아들 살려내!"

거의 울부짖으며 여자가 동우에게 매달린다. 동우는 차가운 표정으로 내려보다 그 손을 떼어놓는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저희 연구소에서는 동의 없이는 어떤 실험도 실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만 돌아가시죠."

동우는 진영의 팔을 잡아 끈다.

"내 아들을 네가 망쳐놨어. 죽여버릴 거야!"

갑자기 뭔가 번쩍한다. 진영은 두 번 생각할 새도 없이 동우의 앞을 막아선다. 뭔가 배를 찔렀다. 아프다.

"진영아!"

동우가 다급하게 소리친다. 진영은 동우의 품으로 쓰러진다.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주변에 사람들이 몰린다.

"괜찮아요, 박사님. 전 안드로이드니까, 다쳐도 괜찮아요."
"미안하다. 넌 안드로이드가 아냐."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간다. 손을 뻗어 배를 만져본다. 빨간 피가 묻어나온다.

"박사님, 이게 뭐죠? 전 안드로이드인데, 왜 피가 나오죠?"
"정말 미안하다."

시야가 흐릿해진다. 눈이 감긴다. 마지막 힘을 짜내 말을 해본다.

"사랑해요, 박사님."

동우가 들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동우가 이마에 입을 맞춰준다. 사랑받았다. 그게 너무 행복한데, 마지막으로 본 동우의 표정이 슬퍼보여, 조금은 울고 싶다.



Experiment No. 423: Day 28

"그래도 꽤 성공적인 실험 아닙니까, 박사님. 실험체는 죽는 순간까지도 본인을 안드로이드라고 믿고 있었으니, 박사님의 세뇌 프로그램은 완전한 성공입니다."
"세뇌 프로그램이란 말은 기분 나쁩니다."
"아, 죄송합니다. 전 사업하는 사람이지, 이런 어려운 건 잘 몰라서요. 그냥 제가 쉽게 말하는 겁니다."
"뭐, 상관 없습니다. 하지만, 성공이라고 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목표했던 한 달을 채우지 못 했으니, 다음 실험을 바로 해 볼까 합니다."
"네, 당연히 그래야죠. 박사님께서 완벽주의자인 걸 제가 제일 잘 아는데. 걱정마십시오. 저희는 항상 박사님을 100퍼센트 서포트 해 드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럼, 다음 실험체를 준비해 주세요."

연구소의 실질적인 주인인 회사의 CEO가 연구실을 나간 뒤, 동우는 지끈거리는 눈을 한 손으로 마사지 한다. 다시 노크소리가 들린다.

"네."

문이 열리고 여자 연구원 두 명이 들어온다.

"박사님, 말씀하신 대로 실험체는 잘 처리했습니다."
"고마워요. 나가봐요."

둘이 나간 뒤 동우는 스크린을 띄우고, 다시 연구에 몰두한다.








"와, 대단하다. 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잖아."

동우의 연구실에서 나온 연구원들이 혀를 내두른다.

"괜히 천재겠어? 주변에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림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니까 이런 큰 프로젝트를 맡아서 진행하지."
"그래도 아쉽다, 며칠 후면 실험은 성공이었을 텐데."
"그래도 이 정도면 성공 아닌가?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가는 데도 자기가 안드로이드라고 생각하고 있었대잖아."
"그러고보니 그 세뇌 프로그램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사람을 안드로이드라고 감쪽같이 생각하게 만들지?"
"그게 세뇌의 무서운 점이지. 링거로 영양제 투입하면서 충전하는 거라고 그러고, 그때마다 수면제도 같이 넣어서 재우면서 안드로이드니까 꺼 놓은 거라고 하고, 그걸 다 믿으니까 그게 세뇌인 거지."
"와, 이 프로그램 생각할수록 너무 무서워. 이걸로 누구에게든 뭐든 시킬 수 있게 되는 거잖아."

한 연구원이 목소리를 낮춘다.

"이건 그냥 파생품일 뿐이야."
"뭐?"

다른 연구원 역시 목소리를 낮춘다.

"신 박사님이 지금 개발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얼마나 대단한 건데. 이건 그것의 일부분일 뿐이야. 그런데 이것도 돈이 되니까 위쪽에서 이것도 아예 따로 실험하라고 지시한 거지."
"그럼 그 진짜 프로젝트가 뭔데?"
"뭐, 넌 들어온지 얼마 안 됐으니 모를 수도 있겠네. 다들 쉬쉬해도 이미 연구소 사람들은 다 아는 걸."
"그러니까 뜸들이지 말고 빨리 얘기하라고."

목소리를 더 낮춰 거의 속삭인다.

"신 박사님이 개발하고 있는 게 뭐냐면, 사람의 뇌에 있는 모든 정보를 디지털 데이터로 바꾸는 거야."
"그건 이미 딴데서 하지 않았어?"
"아, 말 좀 끊지 말고 들어. 그 디지털 데이터를, 다른 사람 뇌에 집어넣는 거지."
"뭐?"
"그 받는 사람의 뇌를, 뭐라고 해야 되지, 일종의 포맷을 해서 깨끗이 만들고, 디지털 데이터를 그 뇌 안에 집어넣는 거야. 그리고 그 세뇌 프로그램을 쓰는 거지. 그럼 그 사람은 깨어나서 자기가 그 원래 뇌 정보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며 살게 되는 거야, 평생을. 세뇌가 됐으니 외모가 달라도, 목소리가 달라도, 전혀 의심하지 않고 그 사람으로 살아가는 거야."

듣고 있던 연구원은 소름이 돋는지 팔을 문지른다.

"윽, 너무 무서운데?"
"하지만 생각을 해 봐. 이 프로그램이 완성되면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있어. 몸이 늙어가면 뇌의 정보를 디지털 데이터로 백업해 놨다가, 죽을 때가 되면 다른 몸으로 옮기고, 그런 식으로 영원히 살 수 있는 거야."
"하지만 그 다른 몸을 구해야 되잖아."
"야, 요즘 세상에 그런 건 식은 죽 먹기지. 이 연구소에 들어오는 실험체들도 다 자기가 원해서, 아니면 팔려서 오는 거야. 다 죽을 각오 하고 오는 거야. 그만큼 돈을 많이 주니까. 그러니까 어제 그 여자가 웃기는 거야. 자기 아들이 실험당하러 오기 전에 말렸어야지. 그 돈 받아서 잘 쓰고 이제 와 아들이 이상해져서 돌아왔다고 감히 박사님을 해치려고 들어? 그 실험체가 옆에 있었으니 망정이지."
"그 실험체 나이도 어리던데."
"그러게. 부모가 팔아먹었겠지. 죽었다고 연락했는데 오지도 않잖아. 박사님이 좋은 분이셔서 그래도 화장해서 연구소 정원에 잘 뿌려주라고 하시더라, 꽃 많이 피어있는 곳에."

소곤거리는 둘 옆을 누가 지나가 잠시 말을 멈춘다. 새로 들어온 연구원이 다시 속삭인다.

"박사님 그런데 진짜 대단한 분이시다. 어떻게 그런 프로젝트를 할 생각을 하셨지?"

다른 연구원이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아예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간다.

"넌 어떻게 아무것도 모르냐? 너 정 박사님 얘기도 몰라?"
"누구?"
"정진영 박사님."
"아, 뇌신경 과학자인가? 꽤 유명했는데. 근데 그 사람 죽지 않았어?"
"그래, 그 사람이 신 박사님 애인이었잖아."
"뭐? 말도 안 돼."

이제 목소리가 들리는 게 용할 정도로 작게 속삭인다.

"두 사람이 그런 사이였던 거, 이 연구소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 어쨌든, 그 둘이 뇌 정보를 디지털화 하는 연구를 같이 시작했는데, 그 실험을 정 박사님 본인에게 한 거지. 그래서, 정 박사님의 뇌 정보의 많은 부분이 이미 디지털화 됐는데, 그러다 교통사고 나서 죽었잖아. 그래서 신 박사님이 지금 이 프로젝트에 매달리는 거고."
"아... 이 프로그램만 성공하면 새로운 몸에 그 정보를 넣으면 되니까."
"그래. 아무리 신 박사님이 천재라도, 그런 목표가 없으면 이렇게 빨리 이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겠어?"
"와, 죽은 연인을 위해 이런 일을 하다니, 완전 로맨틱하다."

둘은 잠시 그 로맨틱함을 온 몸으로 느낀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폰이 울린다. 메세지를 확인한 연구원이 정신을 차린다.

"다음 실험체 준비하라시네. 이번 번호가 뭐지?"
"잠깐, 확인하고. 아, 어제 죽은 실험체가 423번이니까, 424번이네."
"와, 벌써 400명이 넘었단 말야?"

두 연구원은 계속 수다를 떨며 업무를 보러 간다.








실험 결과를 정리하던 동우는 피곤이 몰려와 잠시 의자에 깊숙히 앉아 눈을 감는다. 하지만 잠이 오지는 않는다. 아무리 목표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는 동우라도, 어제같은 일에 놀라지 않았을 리 없다. 게다가, 그 실험체는 약간 진영이 어렸을 때를 닮아서, 더 마음썼던 것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역시 목표점에 다다르기 위해 건너는 징검다리의 한 작은 부분일 뿐이다. 중요한 건, 진짜 진영이다.

핸드폰을 꺼내 마지막으로 같이 찍은 사진을 본다. 밝게 웃고 있는 얼굴을 보며 힘을 얻는다.

"조금만 기다려. 곧 내가 다시 살게 해 줄 테니까. 널 되살리기 위해, 내가 못 할 게 뭐가 있겠어?"

핸드폰 스크린의 얼굴을 손으로 쓸어본다. 피곤함이 조금은 가신 것도 같다. 다시 스크린을 띄워 다음 실험 준비를 시작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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