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에 벌어진 마지막 살인에 대한 자백까지 받았다. 이제, 마주보고 앉은 두 사람 사이에 할 말은 남아있지 않다. 홍빈은 이제는 섬뜩하게 느껴지는 찬식의 미소어린 얼굴을 바라본다.

"그래서, 만족하냐?"
"뭘?"
"사람을 죽여서, 내 얼굴을 보게 되서, 만족하냐고."
"그야 물론이지. 이제 다시는 못 볼 텐데, 이렇게 마지막으로 보게 되니 얼마나 좋아."

문이 열리고 형사 둘이 들어와 찬식을 양옆에서 잡아 일으킨다. 찬식은 별 저항 없이 일어나 몇 걸음 떼다, 문 앞에서 홍빈을 돌아본다.

"넌, 내 첫사랑이니까."

문이 닫히고, 홍빈은 앞에 놓인 랩탑을 세게 닫는다. 검은 눈동자가,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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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찬식이 몇 줄을 남기고 홍빈을 돌아본다.

"왜?"
"뭐냐, 너? 나한테 이것저것 실험하더니, 왜 야한 얘기가 하나도 없어?"
"내가 인간적으로 그런 얘기를 두 번은 못 쓸 거 같아서, 네 거에 올인했다. 됐냐?"
"야, 그런 걸 써야 점수 잘 받는다며."
"나보다 네가 더 A+이 필요하니까."

새삼 감동한 표정이다. 이제 속이는 것도 미안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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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홍빈은 홀로 어두운 거리에 서 있다. 홍빈의 발 밑에는 무참하게 찢겨진 시체 하나가 나뒹굴고 있다. 홍빈은 싸늘한 웃음을 짓는다. 그 미소가, 왠지 찬식의 그것과 닮아 있다.

"이제, 나도 널 만날 수 있게 됐다, 찬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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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 이게 뭐야? 이게 끝이야?"
"응."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홍빈도 미친 거지. 그래서 감옥 안에 있는 공찬식 만나러 가려고 사람 죽인 거고."
"으아... 완전 소름."
"결국 그거야. 사실은 이홍빈도 공찬식을 사랑했는데, 아무래도 같은 남자고, 하니까 장난한 거라고 하면서 헤어졌는데, 잊지 못하고 있다가, 이렇게 공찬식을 만나니까 자기도 미쳐버린 거지."
"헐... 그게 뭐야."

왠지 한기가 드는지 찬식이 팔을 벅벅 문지른다.

"너 정말 무슨 이런 쪽으로는 천재 같아. 전혀 생각도 못한 반전이야."
"그러게. 나 이런 쪽으로 소질 있나 봐. 하나도 안 고맙게."

말은 그리 해도 홍빈은 칭찬 받아 기분 좋은 표정이다. 찬식은 파일을 닫고 이번엔 열려 있는 본인의 과제 파일을 읽는다. 홍빈의 말대로 정말, 엄청, 야하게 정사씬이 표현되어 있다. 읽으면서 얼굴이 불타오른다.

"야,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냐?"
"내가 영혼을 갈아넣어 쓴 거거든? 이게 고마워하기는 커녕."
"아니, 고마워. 고마운데, 이걸 읽고 조교가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
"너 완전 A+은 따놓은 당상이라니까."

그 말에 조금은 위로가 된다. 어차피, 자기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런 글은 못 썼을 거다. 이메일을 열고 파일을 첨부하려는데, 홍빈이 갑자기 손을 잡는다.

"어허, 거래를 먼저 마쳐야지."
"무슨 거래?"
"너 나 알바자리 알아봐주기로 한 거."
"아... 담달에 알바하는 형 한 명이 관두기로 해서 내가 너 써달라고 사장님께 잘 말해놨어."
"오~ 웬일로 까먹지 않았대."
"야, 그래도 내가 약속했는데 까먹었겠냐?"

툭하면 까먹고 수업도 안 가고 과제도 안 내는 녀석이, 그래도 자기 일은 신경 써 준 게 고맙다. 홍빈은 찬식을 속인 게 미안할 것 같다. 특히 다음 수업날에 관해서는... 그래도, 이렇게 장난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순 없지. 그래서, 손을 놓고, 이메일을 보내게 놔두었다.








사흘 뒤, 강의실은 불만에 가득찬 학생들로 차 있었다. 시험 대신 소설로 대체하기로 해 놓고, 왜 굳이 시험기간에 불러내는지 모르겠다. 조교가 정말, 마지막까지 권력을 휘두를 생각인 것 같다.

오늘도 수업이 있다는 말에 짜증을 내며 홍빈에게 끌려온 찬식 역시 불만이 가득하다. 이미 과제는 끝났는데, 왜 굳이 또 불러내냔 말이다. 조교는 학생들의 그런 불평은 무시한 채, 수업 끝까지 남아 있어야 출석이 인정된다는 말로 또 한 번 학생들의 분노에 불을 지핀다. 이어서 조교는 일일이 채점이 된 소설들을 나눠주며 다른 학생들에게 소설 내용과 점수를 상세하게 알려준다. 아주, 끝까지 고문하기로 작정한 거다. 당사자는 창피함에 몸부림치고, 다른 학생들은 비웃으며 수업이 점점 끝을 향해 간다. 드디어 조교의 손에 단 하나의 레포트만 남아 있고, 아직 안 돌려받은 학생은 찬식 한 명이다.

"자, 그럼... 내 손에 있는 이 소설이 제일 잘 쓴 소설로, A+을 받았습니다. 공찬식 학생!"

찬식이 웃으며 일어난다. 하지만 조교의 입에서 청천벽력같은 말이 떨어진다.

"앞으로 나와서 읽어주세요."

찬식의 얼굴이 핏기를 잃는다. 홍빈은 웃겨 죽을 것 같다. 굳어진 찬식 뒤에서 소리죽여 웃는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소설은 다른 학생들 앞에서 읽을 거라고 처음부터 얘기했었죠? 자, 공찬식 학생, 나오세요."

찬식은 홍빈을 내려보며 이를 간다. 당연히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는 찬식은 그런 얘기를 못 들었고, 홍빈은 들었을 거다. 저 녀석에게 휘말린 거다. 홍빈은 이제 대놓고 웃고 있다. 아, 진짜 저걸 확!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다짐한다.

"공찬식 학생, 앞으로 나와서 읽지 않으면 점수고 뭐고 없어요."

찬식의 불행을 끝까지 즐기려는 듯, 조교가 잔인하게 말한다. 결국, 찬식은 앞에 나와 40여 명 되는 학생들 앞에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얼굴이 점점 붉어져, 나중엔 불에 타 재만 남을 것 같다. 학생들은 다 키득거리면서 듣고 있다.

좀 심했다, 생각하지만 홍빈은 얼굴이 빨갛게 익은 찬식도 너무 귀엽다. 어차피, 맛있는 거 한 번 사주면 풀어질 녀석이다. 게다가, 약속한 대로 A+ 받아줬으니까, 찬식도 오래 화내진 못 할 거다. 그렇게 조금 풀리면, 밤에 방에 가서 '실험'을 계속 해야지. 과제는 끝났지만, '실험'을 끝낼 생각은 전혀 없다. 홍빈의 얼굴에 띤 미소가 홍빈의 얘기 속의 이홍빈이 마지막에 지은 미소만큼이나 섬뜩하다. 찬식은 이제 절대로 홍빈에게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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