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진영에게 미소지어 보이며 동우가 메뉴판을 내민다.

"손님, 뭐로 주문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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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삼겹살 집에 무슨 메뉴판이 있어."
"없어?"
"벽에 큰 거 하나 걸려 있어."
"아씨, 복잡해지네. 이따가 고칠 테니까 계속 읽어봐."

찬식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계속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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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이 메뉴판을 가리킨다. 주문하는 메뉴를 읽기 위해 동우는 몸을 숙인다. 가까워진 진영에게서 자스민 향이 풍긴다. 동우가 좋아하는 향수 냄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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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삼겹살 집인데 향수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못 맡나?"
"고기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향수 냄새을 어떻게 맡아?"
"으아... 그러네... 그것도 이따가 고칠게."

이제 조금은 못미더운 표정으로 찬식이 더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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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서며 동우는 다시 슬며시 미소짓는다. 자스민 향은 오늘 밤, 만나자는 암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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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톡하면 안 돼? 아님 문자 보내던가."
"아오 진짜. 네가 거지같은 주제어들만 뽑아서 그렇잖아. 그렇게 잘 하면 네가 쓰던가!"

결국 홍빈이 짜증낸다. 찬식은 바로 비굴해진다.

"아냐, 정말 재밌어. 그냥 좀 여기저기 고치기만 하면 될 거 같아."

조금 누그러진 홍빈이 찬식을 밀어내고 랩탑 앞에 앉는다.

"그래, 그럼 고쳐보자. 아오, 메뉴판 주는 게 없으면 어떻게 향수 냄새를 맡지?"
"엄청 많이 뿌리면 냄새가 나지 않을까?"
"하... '진영은 냄새가 나도록 하기 위해 향수를 엄청 많이 뿌렸다', 이렇게 쓰라는 거냐? 완전 무드 없게."
"아이씨, 나도 몰라. 상상력이 쥐똥만큼도 없어서 그런다, 됐냐?"

뒤끝 한 번 진짜 징하게 길다.

"둘이 최대한 가깝게 붙을 수 있는 데가 어디지?"
"흠... 아, 나중에 계산할 때."
"오! 그럼 계산할 때 카드 내밀면서 슬쩍 손목을 손에 스치면 되겠다."
"손목을 왜?"
"향수를 손목에 뿌리잖아."
"그래? 너 진짜 아는 거 많다."

네가 드럽게 모르는 거다, 라고 쏘아주고 싶지만 참는다. 이따가 계속될 실험을 위해.

"그런데, 이렇게 '암호'랑 '자스민'은 썼는데, '악몽'은 어디다 집어넣을 거야?"
"둘이 만나서 그, 그니까, 그, 밤의 운동을 한 다음에, 같이 잠드는데, 동우가 악몽을 꾸는 거지. 진영이 결국 연예인을 계속하기 위해 자기를 버리는 꿈. 그래서 꿈 속에서 진영을 죽여. 그러면서 깨는 거야."
"너 어디 검사 받아봐야 하는 거 아냐? 왜 네 얘기에선 다 누군가 죽고, 죽이고 그래?"
"하... 이 초딩아. 원래 너무 많이 사랑하면, 그 사람이 나 버릴까 봐, 차라리 죽여서라도 내 곁에 두고 싶고 그러는 거야."
"그건 미친놈들이나 하는 생각 같은데."
"그래, 나 미친놈이다, 됐냐? 미친놈이 써주는 과제는 필요 없겠네."

홍빈이 화를 내며 랩탑을 밀치고 일어난다. 찬식은 바로 다시 비굴해진다.

"아냐, 진짜 얘기 재밌어. 정말이야, 완전 최고. 그런데 반전이 뭐야?"

나도 참 쉽게 풀린다, 라고 생각하며 홍빈은 다시 앉는다.

"반전은 그거지. 이게 다 꿈인 거. 현실은 동우가 감옥에서 자다 깨는 거야. 실제로 진영을 죽여버렸거든."
"으아, 소름."

정말 소름 돋았는지 찬식이 양팔을 손으로 비빈다.

"자, 그럼, 고칠 건 고치고 쓸 건 더 쓰고 해 볼까?"

한참동안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들리고 방 안이 조용하다. 쉬지 않고 써내려가던 홍빈은 옆의 찬식을 힐끗 본다. 찬식은 어느새 잠들어 있다. 자기 과제를 써 주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자고 있다니. 잠든 찬식이 괘씸하다. 홍빈은 저장을 누르고 일어나 어제와 같은 자세로 누워있는 찬식을 결박한다. 감은 눈 옆에 보이는 점이, 살짝 벌린 입술이, 셔츠 사이로 보이는 가는 목이 다 섹시하다. 이건 벌을 주는 거다, 라고 생각하며 홍빈은 주저없이 찬식의 목과 어깨의 경계선을 물었다.

"악! 뭐야!"

잠에서 깬 찬식이 버둥거리지만, 이미 어제 이 상태로는 결박을 풀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홍빈은 여유롭다.

"그러게, 나한테 과제 맡겨 놓고 누가 의리 없이 자래?"
"어차피 나 깨어있어 봤자 할 것도 없는데, 왜!"

눈물이 살짝 맺힌 게 좀 세게 물었나 보다.

"네가 왜 할 게 없어. 저거 쓰는 거 도와줘야 될 거 아냐."
"내가 뭘 어떻게 도와줘?"
"어제 말했잖아. 야한 얘기를 써야 조교가 좋아할 거라니까. 네 스토리야말로 진짜 야하게 쓸 수 있는 건데. 둘이 아예 하룻밤을 보내잖아. 그걸 제대로 쓰려면 실험을 해야지."
"으엑! 너 도대체 뭐하려는 건데!"

홍빈이 진짜로 덮치기라도 할까 봐 찬식이 기겁한다. 홍빈이 살짝 웃는다.

"그냥, 어제처럼 자세, 이런 거 좀 같이 연구해 보자는 거지."
"네가 그냥 상상해서 쓰면 안 돼? 너 그런 거 잘 안다며."
"야, 조교가 그랬잖아. 경험에서 우러나와야 더 잘 써진다고."
"그런 말도 했어?"

당연히 안 했다. 어차피 수업 시간에 교수 말은 전혀 안 듣는 찬식이라, 아무 말이나 지어내도 다 믿는다.

"그래. 야, 내가 너 A+ 받게 해 주려고 이렇게 노력하는 건데, 넌 전혀 고마워할 생각을 안 한다?"

뭔가 속는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고 이 A+을 놓칠 순 없으니, 찬식은 결국 고맙다는 말을 한다. 정말로, 속이기 쉬운 녀석이다.

결국 실험을 핑계삼아 홍빈이 찬식 옆에 눕는다. 경직된 찬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그냥 자세 좀 보고, 이것저것 실험만 해 볼 거라고, 내가 너한테 설마 진짜 그런 짓을 하겠냐고, 다독여준다. 그 말을 또 믿는다. 아... 쉬워도 너무 쉽다.

얼굴을 살짝 쓰다듬어 본다. 무슨 남자 피부가 이렇게 부드럽냐, 생각하며 홍빈은 자기도 모르게 볼에 뽀뽀를 하고 있다. 찬식이 흠칫, 놀라지만 지금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애정행각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놀라거나 거부하면 안 된다, 라고 홍빈이 미리 못을 박아놔서 그 이상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놈의 학사경고가 웬수다.

입술 쪽으로 옮겨가며 얼굴에 살짝, 살짝 입을 맞추던 홍빈은 찬식이 두 눈을 꼭 감은 채 가만히 있자 찬식의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다. 찬식이 또 소스라치게 놀란다. 모쏠이라더니, 진짜인가 보다. 어제도 느꼈지만, 스킨쉽에 대한 면역이 전혀 없다. 그것도 귀엽다. 어제보다는 더 천천히, 부드럽게, 혀로 입 안을 훑고, 치열을 느끼고, 혀를 감아올린다. 찬식은 완전히 굳어있다가, 점점 몸이 나른해진다.

그러다 이번에는 홍빈의 손이 허리를 쓰다듬는다. 다시 놀라 경직된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거, 조금만 더 해보고 싶다. 입술을 떼고, 이번엔 목에 서서히 키스하며 내려간다. 아까 물린 데가 자국이 선명하다. 물린 곳을 핥자 찬식이 이제 너무 놀라 바들바들 떨고 있다. 이 이상 했다가는 울 거 같다. 어차피, 실험은 내일 계속하면 되니까,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볼까, 생각한다. 하지만, 일어나는 홍빈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찬식이 조금은 얄미워서, 내일은 좀 더 괴롭혀줘야지,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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