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의 취조로 초췌해진 얼굴에 비릿한 웃음은 여전하다. 그런 찬식을 한 대 쳐버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으며 홍빈은 역시 피곤한 눈을 손으로 마사지한다. 벌써 똑같은 말을 며칠째 되풀이하고 있다.

"2015년 3월 31일, 김 XX 죽였어 안 죽였어?"

비릿한 웃음이 더 큰 미소로 번진다.

"네가 죽였어, 안 죽였어, 이 새꺄!"
"죽였어."

홍빈은 잠시 얼어붙는다. 며칠 동안 위 질문에 생글거리며 사람 속 긁는 말만 하던 녀석이 갑자기 자백을 하고 있다.

"2015년 3월 31일이라... 아마도 술집에서 술 한 잔 한 후 집으로 가던 그 사람을 뒤따라 가서 뒤에서 목을 졸랐지? 그리고 난 후..."

시체 처리를 어떻게 했는지 자세히도 얘기해 준다. 진짜 범인이 아니면 전혀 모를 얘기를.

"그럼 2016년..."
"2016년 5월 3일엔 아마도 어디 평범한 회사원을 죽인 것 같은데..."
"너 지금 뭐하자는 수작이야?"
"응? 나 지금 자백하는 건데?"
"며칠을 사람을 앞에 앉혀놓고 살살 약 올리더니 갑자기 왜 마음을 바꾼 건데?"
"며칠 동안 네 얼굴 원없이 봤으니, 이제 보내주려고. 너 피곤해 보여서."

갑자기 온순한 양이 된 찬식이 오히려 더 못미더워 홍빈은 그를 노려본다. 찬식은 웃음을 지어보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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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 이게 뭐야?"
"뭐가?"
"갑자기 얘기가 어떻게 되는 거냐고?"
"그러니까 공찬식이 이홍빈을 사랑하는 거지."
"내 이름으로 그렇게 설명하지 말아줄래?"

경악하고 있는 찬식 앞에서 홍빈은 당당하다.

"반전이 있어야 된다고 했잖아. 이게 첫 반전이야."
"그럼 둘 중에 하나가 여자야?"
"아니, 둘 다 남자."
"그런데 어떻게 사랑하는 사이야?"
"야, 너 남자끼리는 사랑할 수 없다는 거냐?"

뭐 이런 쌍팔년도식 사고방식이냐, 라는 표정으로 찬식을 쳐다본다. 찬식은 머리가 아파온다.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갑자기, 놀랐잖아."
"놀라야 반전이지."
"아, 그런가?"

찬식은 랩탑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조교가 뭐라고 하지 않을까?"
"야, 최대한 자극적으로, 파격적으로 쓰라고 한 건 조교야. 그리고 조교 여자잖아. 여자들은 이런 거 완전 좋아해."
"그래?"
"내가 누나가 둘이잖아. 어렸을 때 누나 방에 있던 만화책 아무 생각 없이 읽었다가... 하... 아무튼, 여자들은 이렇게 남자끼리 사랑하는 얘기 완전 좋아하거든? 야, 이 정도는 써 줘야 조교가 좋아하지."

뭐, 자극적이고 파격적인 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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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 집어쳐."
"헛소리 아니야. 너 내 첫사랑이잖아."
"입 닥치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그래. 네가 하는 질문 다 대답해 줄게. 그러려고 너한테 잡힌 거니까."

홍빈은 찬식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지금?"
"일부러 너한테 잡히고 싶어서 네 관할구역에서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게 허술하게 사람 죽인 거야. 내가 범인이라는 증거를 그대로 남겨둔 채."
"이 미친 새끼가 뭐라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너한테 잡혀서, 며칠을 얼굴을 봤으니, 이제 됐어."

비릿한 웃음이 아닌 진짜 행복해 보이는 미소를 짓는 얼굴이 끔찍하다.

"너, 도대체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거야?"
"뭐, 처음에는 네가 너무 그리워서 너 닮은 사람을 찾아 죽였고, 마지막에는 네가 보고 싶어서 죽였고. 이 핑계로 널 만났잖아? 그럼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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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완전 미친놈 아냐?"
"너 지금까지 뭐 읽었냐? 처음부터 미친놈이었거든?"
"아, 맞다. 그래도 내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어서 놀랐어."
"응, 제대로 미친놈이지, 이 공찬식이."
"아오, 진짜, 내 이름으로 자꾸 그렇게 얘기하지 마!"

찬식은 또다시 홍빈을 노려본다. 기껏 시간 내서 다음 부분을 읽어주고 있는데, 자꾸 이런 식으로 기어오른다.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잖아. 네가 아니라."
"그래도, 내 이름 이렇게 쓰이는 거 기분 나빠."
"뭐, 어쩔 수 없지. 이미 너한테 사용료도 냈잖아."
"사용료?"
"어제 너 곱창 사줬잖아! 소주까지."
"아, 그랬지?"
"너 붕어냐? 무슨 기억력이 3초도 안 돼?"
"아, 좀 까먹을 수도 있지."

약간 머쓱해진 찬식은 다시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홍빈을 쳐다본다.

"그런데, 이해가 안 돼."
"또 뭐가."
"공찬식이 이홍빈이 보고 싶어서 사람을 죽였다고 그랬잖아."
"응."
"그냥 가서 얼굴 보고 '안녕?' 하면 안 돼? 왜 사람을 죽여?"
"왜 그런지 뒤에 나올 거야."
"그냥 쉽게 미리 설명해 주면 안 돼?"

하... 기억력은 붕어인데, 집중력은 더 형편없다. 홍빈은 결국 찬식에게 설명해 준다.

"그러니까 이런 거야. 얘네 둘이 고등학교 때 사귀었는데, 공찬식은 진심이었는데 이홍빈은 그냥 불장난이었던 거지. 그래서 나중에 이홍빈이 찬 거야. 공찬식은 그것 때문에 미쳐버린 거고. 그래서 이홍빈을 닮은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데, 이홍빈이 경찰이 됐다는 얘기를 들은 거지. 그래서 이걸 핑계 삼아 얼굴 보려고 일부러 허술하게 사람을 죽이고 이홍빈한테 잡힌 거고."
"으아... 스토리 완전 암울하네."
"원래 이런 얘기는 이렇게 풀어야 재밌는 거야."
"그래도, 차라리 그냥 얼굴 보러 가지, 사람을 왜 죽여?"
"넌 너 차버린 사람한테 가서 잘도 해맑게 '안녕?' 할 수 있냐?"
"왜 못 해? 상처야 받았겠지만 보고 싶으면 가서 얼굴 보면 되는 거지."
"하... 단순한 녀석. 이 세상엔 너처럼 단순한 사람만 있는 게 아냐. 그리고 이 공찬식은 사이코패스야. 사이코패스는 원래 제대로 미친놈이라고."
"아, 자꾸 내 이름으로 그런 말 하니까 진짜 기분 이상해."

찬식은 이야기를 더 읽어내려간다. 홍빈이 설명한 내용이 나온다. 약간 소름이 돋는 전개라, 설명을 듣고 읽는데도 좀 무섭기까지 하다. 다 읽은 찬식의 표정이 약간 회의적이다.

"아무리 그래도 얼굴 한 번 보려고 사람 죽이는 게 좀..."
"야, 사이코패스들은 원래 별거 아닌 이유로 사람 죽이고 그래. 넌 미드도 안 보냐?"
"응. 자막 읽기 귀찮아."
"오죽하겠냐."

랩탑을 돌려주며 찬식이 말을 돌린다.

"그런데 너, 생각보다 재밌게 잘 쓴다."
"뭐, A 받아야 하니까."
"아니, 그래도, 어떻게 이런 얘기를 생각해 내냐?"
"아마도... 내가 좀 소질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찬식은 곰곰히 생각에 잠긴다.

"그런데 여자들이 진짜 이런 거 좋아해?"
"완전 좋아한다니까. 내 말 믿어."
"그럼 이렇게 남자끼리 좋아하는 얘기 쓰면 높은 학점 받을 수 있는 거야?"
"아마도... 왜, 너도 그렇게 쓰게?"
"나 이거 F 뜨면 이번 학기도 학고란 말야."
"너 지난 학기에도 학고 맞았냐?"
"응."
"세 번 받으면 퇴학 아냐?"
"으아... 세 번이야?"

찬식은 머리를 쥐어뜯는다. 이러다가는 머리가 남아나질 않겠다.

"너, 어쩌려고 그러냐?"
"으아... 나도 몰라. 그래서 이 수업 목숨 걸고 수강신청 한 건데. 이렇게 뒤통수 맞을 줄이야."
"으이구... 그러게 수업 좀 제대로 듣고 하지 그랬냐?"
"와, 저도 학점은 개판인 게."
"난 그래도 간당간당하게 학고는 면했거든."
"자랑이다."

찬식은 우울한 얼굴로 본인의 랩탑을 연다. 벌써부터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의 잔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너도 쓰는데, 나라고 못 쓸까 봐?"
"어디 한 번 잘 해 봐라."

찬식은 이를 악물고 글을 써내려간다. 어떻게든 A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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