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Let Him Get Used to Your Presence: 당신의 존재에 익숙해지게 만들어라

MT 이후 홍빈과 찬식은 어울리기 시작했다. 물론, MT 때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고 때문에 처음엔 좀 껄끄러웠지만, 말 그대로 사고였으니까. 대학교에 다니기 위해 순천에서 올라온 찬식은 서울에 남자사람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유일하게 처음으로 다가와 준 홍빈이 고마웠고, 점점 같이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홍빈 역시, 과제 하는데 요령이 생긴 건지, 전보다는 여유시간이 많아져서 찬식과 PC방에 같이 게임하러 가거나, 아니면 수업 끝나고 저녁에 만나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하거나, 하는 날들이 늘었다.

둘이 같이 듣는 수업도 없고, 딱히 접점도 없지만, MT 때 생각보다 많은 cc들이 생겨나 자연스레 이웃하고 있는 두 학과의 신입생들이 같이 어울리기 시작해서, 어느덧 둘은 매일 붙어다니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되자, 역시 자연스레 같은 곳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홍빈은 본인 자취방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찬식의 옆방으로 이사왔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학기가 시작될 무렵, 둘은 하루의 대부분을 같이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역시 자연스럽게, 교양 수업은 최대한 같이 듣도록 수강신청을 했다. 첫 수업 시간도, 점심시간도 최대한 맞췄다. 그래서, 가을학기에는, 거의 매일 같이 등교하고, 점심 먹고, 수업을 같이 혹은 따로 들은 뒤, 다시 만나 저녁을 먹고, 알바를 하거나 게임을 하는, 그런 새로운 일상에 적응해 나갔다. 이제, 찬식은 홍빈과 만나기 전을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홍빈과 함께하는 게 익숙해졌다.



7. Keep Some Distance, to Train Him to Come to You: 거리를 둬 스스로 다가오게 훈련하라

처음에는 먼저 만나자 연락하는 건 늘 홍빈이었다. 같이 밥 먹자, 같이 게임하자, 같이 술먹으러 가자, 등등, 먼저 연락해 불러내곤 했다. 하지만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엔 이미 둘이 이웃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연락 없이 서로의 방에 놀러가거나, 같이 아르바이트 갔다 돌아오면서 PC방이나 당구장 등에 들렸다 왔다. 그리고 가을학기가 시작된 후에는 찬식이 먼저 연락하는 일이 잦아졌다. 아무래도, 과제다, 뭐다 해서 더 바쁜 건 홍빈이었기에, 어쩌면 그런 게 당연했다.

하지만... 요즘들어 홍빈이 너무 바쁘다. 연락해도 전화를 안 받기 일쑤고, 연락이 닿아도 바빠서 만나지 못한다는 말이 전부다. 일주일에 얼굴을 보는 날이 하루 이틀 정도다. 많이 바쁜 건 알지만, 그래도 서운하다. 가뜩이나 남자사람친구는 홍빈이 전부인 찬식인데, 홍빈이 없으니 예전보다 더 외로워진 것 같다. 차라리 친해지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하고 생각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기들 중 몇 명이 컴공과 남친들하고 깨져서, 이제 그쪽 건물만 봐도 이를 간다. 같이 어울릴 기회가 줄어드니, 더 만날 수가 없다. 바로 옆 방에 사는데도, 지구 반대편에 사는 것처럼 멀게 느껴진다. 우울하다.

그러기를 한 달, 드디어 중간고사가 끝나고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홍빈은 핸드폰에 뜨는 끝없는 찬식의 부재중전화 기록을 보며 약간은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그만큼 기분이 좋다. 전화를 할까, 하다가 잠시 기다려보기로 한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전화가 울린다.

"여보세요."
"오? 웬일로 전화를 받네."

약간 토라진 말투다.

"시험 끝났잖아. 너도 다 끝났어?"
"나야 뭐, 어제 수업은 레포트로 대체돼서, 그저께 끝났지."
"그럼 게임이나 하러 갈래?"
"와, 너 시간 돼?"

금세 목소리가 밝아진다. 이렇게 감정을 숨기질 못하다니. 많이 보고싶었나 보다.

"시험도 끝났고, 과제도 당장 낼 건 없고, 내일 주말이고, 밤새 놀자."
"콜!"

별다른 준비 없이 자켓 하나 걸치고 방에서 나온다. 옆방에서 찬식이 뒤따라 나온다. 밝게 웃는 찬식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본다."
"그러니까. 이게 얼마만에 같이 PC방 가는 거야. 완전 좋아."

홍빈의 목에 팔을 두르고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기는 찬식 옆에서 홍빈이 슬쩍 웃는다. 물론 찬식은 보지 못한다.



8. Pet Him and Cuddle Him, until He Gets Used to Your Touch: 당신의 손길에 익숙해질 때까지 쓰다듬어주고 안아주어라

찬식은 추위를 많이 탄다. 아직 늦가을인데 벌써 두꺼운 패딩을 꺼내 입기 시작했다. 둘이 사는 원룸빌딩은 약간 날림으로 지은 건지, 웃풍이 좀 심하다. 보일러를 세게 틀어야 그나마 따뜻해지는데, 가스비가 만만찮다. 그래서, 홍빈은 결국 홈쇼핑으로 보온매트를 질렀다. 출혈이 좀 심했지만, 매트가 온 첫날부터 절대로 후회가 없다.

"우와, 이게 뭐야!"

보자마자 탄성을 지른 찬식은 아예 매트 위에 배를 깔고 누웠다.

"와, 대박 따뜻해."

자기 집인 마냥 매트 위에 누워 침대 위 두꺼운 이불까지 끌어내려 덮는다. 폭, 덮힌 모습이 꼭 동굴 속에 있는 공룡 같아서 웃기다.

"나 오늘 여기서 자도 돼?"

속으로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홍빈이 이불을 뺐는다.

"네 집 놔두고 무슨 소리야. 그리고 이거 나도 추워서 밤에 잘 때 쓰려고 산 건데."
"완전 치사하네. 야, 나도 알바비 들어오면 살 거야."
"무슨, 너 지난주에 현질하고 돈 하나도 없는 거 아는데, 알바비 들어오면 카드값 내야될 거 아냐."
"쳇, 넌 날 너무 잘 알아."

절대 일어날 생각이 없는지 매트 위에서 계속 뒹굴거린다.

"그럼 너 나 뭐 해 줄 거야?"
"뭐?"
"내가 여기서 재워주면 너 뭐 해 줄 거냐고."
"와, 너 이렇게 치사한 놈이였냐? 됐다, 치."

진짜 삐친 듯 일어나려는 찬식에 홍빈이 다시 이불을 덮어준다.

"그래, 자라, 자."
"진작 그럴 것이지."

홍빈은 불을 끄고 옆에 눕는다.

"뭐, 뭐야?"
"나도 여기서 잘 거야."
"넌 침대 올라가."
"싫어. 추워. 내가 추워서 산 거야."
"둘이 자긴 너무 좁잖아."
"그럼 네가 네 방 가던가."
"와, 내가 추위 완전 많이 타는 거 알면서."
"그러니까 같이 자자니까."
"난 여기서 잘 테니까 넌 침대 올라가라니까."
"싫어. 추워."

돌림노래마냥 계속 똑같은 얘기를 반복하다 결국 찬식이 포기한다. 사실, 이 매트가 홍빈의 소유물인 건 사실이니까, 빌붙은 자신이 굽혀야 되는 게 맞는 거 같다. 이걸 포기하고 방으로 돌아가기엔, 매트가 너무 따뜻하고, 방은 너무 춥다. 둘은 1인용 매트에 꼭 붙어 누워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홍빈의 품안에서 눈을 뜬 찬식은 코 앞에 바로 보이는 홍빈의 얼굴에 경악을 하며 일어나 도망갔다. 하지만, 저녁이 되고, 쌀쌀해지자 결국 다시 돌아왔다. 유난히 추운 날들이 이어지고, 이제 매트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돈은 쓸 데가 너무 많고, 계좌는 늘 마이너스되기 일보 직전이고, 알바비도 입금 되자마자 눈 녹듯이 사라져, 매트를 살 돈이 없다. 결국, 찬식은 매일 밤 홍빈의 매트 위에서 잠들고, 매일 아침 홍빈의 품안에서 깨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9. Smother Him with Love, until He Cannot Live Without You: 당신 없이는 살 수 없게 될 때까지 사랑을 퍼부어라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방세에 비해 웃풍이며, 약한 수압이며, 해서 집에 불만이 커진다. 결국, 어차피 요즘은 찬식이 매일 홍빈의 방에 자러 오니까, 차라리 돈을 모아 좀 더 괜찮고 넓은 방으로 이사가는 게 어떠냐며 홍빈이 말을 꺼낸다. 왠지 그럴싸하다. 결국, 둘은 그렇게 룸메이트가 되었다.

일상은 여름방학과 비슷하다. 같은 곳에서 같은 시간에 알바를 하기 때문에, 같이 일어나고, 같이 밥 먹고, 같이 나가고, 같이 게임하러 가거나 술 마시러 가고, 같이 들어온다. 다만, 여름방학과 다른 게 있다면, 이제 같이 살기 때문에, 잠도 같이 잔다는 것. 게다가 역시 가스비가 무서워 보일러는 최소한만 틀고 보안매트를 켜 놓는다. 이제 찬식은 거의 따뜻함에 중독이 되고 있다. 바닥은 따뜻한 매트, 옆에는 따뜻한 홍빈, 위에는 따뜻한 이불, 따뜻함에 둘러싸여 잠든다. 이렇게 따뜻하게 겨울을 나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게다가, 홍빈은 오글거리는 건 딱 질색이라더니 낯간지러운 짓은 잘 한다. 크리스마스라고 케익을 사오질 않나, 새해라고 서툴게나마 떡국을 끓여주질 않나, 목 시리면 감기 걸린다고 나갈 때 목도리를 매주고, 찬식이 장갑을 까먹고 나오면 손 시리지 말라고 하나씩 나눠끼고 다른 손을 꼭 잡아 주머니에 넣어 따뜻하게 데워준다. 버스 기다릴 때 춥지 말라고 어깨를 안아주고, 알바 끝내고 돌아올 때, 정류장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도중 편의점에 들려 따뜻하게 데워진 유자차캔을 손에 쥐어준다. 집에 돌아오면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따뜻하게 데워진 매트에 나란히 누워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만화를 읽고, 그러다 잠이 든다. 따뜻함이 가득한 일상이다.

2월, 구정이 되어 둘은 설을 쇠러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찬식은 왠지 너무 춥다. 순천 고향집은 따뜻하게 보일러도 하루종일 켜 있고, 전기장판도 따뜻하게 켜 놓았는데, 그래도 왠지 춥다.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헛헛하다. 홍빈이 보고 싶다. 전화를 해 보지만 받지 않는다. 가족끼리 있느라 그런 거겠지, 생각하지만 서운하다. 찬식 역시 가족들과 윷놀이도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하지만 계속 뭔가가 모자라다. 빨리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

결국, 연휴의 마지막 날이 오고, 기쁜 마음으로 서울로 돌아왔다. 며칠 비어 있던 방은 싸늘하다. 혼자 있는데 보일러를 켜기도 그래서, 홍빈에게 언제 오냐고 톡을 보내 본다. 청천벽력같은 말이 돌아온다. 사흘 후에나 올 거라니. 3일 동안 이 방에서 혼자 지내야 한다니. 너무 추운데... 결국 가스비고 뭐고 보일러를 세게 튼다. 보온매트도 켜서, 따뜻해지자 위에 눕고 따뜻한 이불을 푹 뒤집어쓴다. 그래도 춥다. 도대체 왜 이렇게 추운 거지? 사람 한 명의 온기가 이렇게 방 온도에 영향을 미치나? 처음엔 돌아오지 않는 홍빈이 보고 싶고, 다음엔 아직도 안 돌아와서 화가 나고, 그 다음엔 이렇게 기다리는데도 안 돌아와서 서운하고 서럽다. 방에 들어오기만 해 봐, 한 대 세게 때려줄 거야, 라고 다짐한다.

하지만 정작, 홍빈이 하루 일찍 양손에 뭘 가득 들고 돌아오자, 다짐은 잊혀지고, 짐을 내려놓기도 전에 뛰어가 꼭 안는다. 정말, 너무 반갑다. 손에 든 걸 방바닥에 떨기고, 마주 안아주는 홍빈의 품이 너무 따뜻하다. 맞대오는 입술이 밖의 공기에 식어 차가운데도, 따뜻하다. MT 때의 사고가 아니라, 제대로 된 키스다. 순간 놀라 얼어붙지만, 밀어내지 않는다. 싫지 않다. 아니, 오히려 뭔가 헛헛했던 뱃속이 간질간질하다. 이 따뜻함에 이제 너무도 중독되어서, 금단현상이 얼마나 힘든 건지 겪어봐서, 절대로 떨어지고 싶지가 않다.



10. He is Trained Now, so Don't Let Him Get Away: 이제 길들여졌으니 절대 놓치지 마라

홍빈은 품안에 잠든 찬식을 내려다본다. 이제 겨우 마음을 전했는데, 이 이상 밀어붙일 생각은 없다. 그냥 따뜻한 키스로 마음을 표현하고, 찬식을 품안에 가둬 잠을 재웠다. "따뜻해"라고 속삭이며 찬식은 홍빈의 허리에 팔을 둘러 꽉 끌어안고 잠들었다. 방이 더울 정도로 보일러가 틀어져 있는데도, 많이 추웠나 보다. 찬식을 더 가까이 끌어당겨, 더 힘을 주어 안는다.

거의 일 년이란 시간 동안 정성을 들여 이 전설의 동물을 길들였다.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드디어 손 안에 들어왔다. 홍빈은 찬식의 이마에 가볍게 입 맞춰주고 잠을 청한다. 이제 길들임은 끝났다. 이제, 이 길들여진 전설의 동물을 원없이 사랑해 줄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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