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밑이 간질간질하다. 눈꺼풀이 무거워 잘 떠지지 않는 걸 억지로 눈을 뜨고 무엇 때문인지 확인했다. 진영이 머리카락 몇 개가 더듬이처럼 서서 내가 숨 쉴 때마다 살랑살랑 움직이고 있다. 잠결에도 웃음이 나 품안에 잠든 진영이를 더 꼭 껴안았다. 가슴께에서 들리는 숨소리가 너무 사랑스럽다.

진짜 오랜만에 스케줄 없는 날이었다. 거의 한 달 넘게 단둘이 제대로 얘기도 해보지 못 하고 지냈다. 그래도, 매일매일 얼굴이라도 보고,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같은 팀인 게, 같이 활동을 하는 게, 그래서 좋고, 그래서 나쁘다. 둘 사이가 어떻든 매일매일 함께 있으니까.

밤 늦게 스케줄을 마치고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서둘러 집 청소부터 했다. 딱히 약속을 안 했어도, 다음날 스케줄이 없으면 진영이가 우리 집에 오는 게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으니까. 바쁜 스케줄에 며칠 내버려둔 집을 대충 정리하고, 샤워도 서둘러 하고 나왔다. 아니, 서두른다고 했는데 역시 그닥 행동이 빠른 사람이 아니라, 진영이가 이미 와 있었다. 소파에 앉아 날 기다리던 진영이가 일어나 다가온다. 내가 좋아하는 향수향이 난다. 진영이 역시 서둘러 씻고 왔는지, 머리가 젖어있다. 이렇게, 뭔가 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때, 무의식적으로 그냥 있을 때, 진영이는 진짜 너무 섹시해서 나도 모르게 이성이 날아가버린다. 별다른 말 없이 서로의 입술을 찾았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우리라서.








곤히 잠든 진영이를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10년 가까이 알아왔는데도, 거의 그 정도의 시간을 친구 이상의 관계로 지내왔는데도 볼 때마다 너무 사랑스럽다. 방송에서 시키면 절대로 안 그런 애가, 이렇게 무방비로 있을 땐 눈꼬리도, 입술도, 살며시 그림자 지는 속눈썹도, 다 너무 섹시하고, 예쁘다. 마음 같아서는 하나 하나 다 키스해주고 싶지만, 깰까 봐 약간 저리는 팔도 움직이지 못한 채, 그냥 바라만 보고 있다. 평소때는 나보다 잠이 없는 애라 거의 항상 먼저 깨는데, 이렇게 잠들어 있는 걸 보니 요즘 스케줄이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너무 오랜만이라 어젯밤에 좀... 무리를 시킨 것도 있다. 어차피 오늘은 진짜 오랜만에 받은 휴가니까 더 자도 되겠지. 나도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보지만, 평소때는 눈만 감아도 잘 수 있는 내가 잠이 오지 않는다. 이미 너무 많이 자버렸다.

두꺼운 커튼 때문에 밖에 해가 떠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지만 오후가 지난 것 같다. 아... 오늘 작업하던 곡 마저 끝내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은 아무데도 가지 않고 진영이와 있고 싶지만, 다음 앨범에 꼭 싣고 싶은 곡이다. 꼭, 진영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곡이다.

다시 진영이를 내려다본다. 잠버릇도 심한 애가 미동도 없이 자는 걸 보니 진짜 많이 피곤했나 보다. 좀 답답했는지 고개를 조금 젖히고 입을 살짝 벌리고 자는 것도 섹시하다. 모든 게 다 섹시해 보이니 정말 미치겠다. 하지만, 뭐, 처음부터 그랬으니까.

언제부터 좋아하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첫눈에 반했을 수도... 그 때는 어린 치기에 깊게 생각하지 않고 좋아한다 말해버렸고, 진영이도 같은 마음이었다. 다른 아무 생각 없이, 다른 아무 걱정 없이, 그냥 서로만 좋아했던 때였다. 하지만, 데뷔하고,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점점 생각할 게 많아졌다. 점점 이 세상이, 현실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깨닫게 됐다. 그래도 그 시간 동안, 많은 시행착오도 겪고, 둘 다 그런 성격이 아닌데도 소리지르며 싸우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화해하고, 하면서 점점 서로에 대한 마음은 깊어갔다. 여러가지 이유로 몇 번 헤어진 적도 있었지만, 그것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서로를 너무 사랑하니까.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서, 서로를 좀 더 배려하고, 위해주고 아껴주는 법을 배웠다. 조금 더 조심스러워지고, 상처주지 않도록 노력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서로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웬만큼은 알게 되었다.

아까부터 살짝 살짝 파르르, 떨리던 속눈썹이 움직인다. 눈꺼풀이 올라간다. 누가 깨우지 않았는데 일어나는 진영이는 좀 진귀한 광경이라서, 거의 구경하듯이 보고 있다. 몇 번 떴다 감았다 하던 눈꺼풀을 비비려 손을 올리려 하지만, 내가 워낙 꽉 껴안고 있어서 한 쪽 팔은 아예 갇혀 있고, 내 허리에 두르고 있는 팔 역시 내 팔 아래에서 움직일 수 없다. 내가 자는지 확인하려고 올려다보길래 빨리 눈 감고 자는 척을 했다. 날 깨우지 않으려 조심조심 팔을 빼려고 미세하게 몸부림치고 있다. 그게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요즘들어 더 야윈 몸을 좀 더 꽉 끌어안고 약간 부은 입술에 입술을 포개 진하게 키스했다. 아, 정말, 너무 사랑스럽다.

한참 후에야 입술을 떼고 서로를 바라본다.

"뭐야, 깨 있었어?"
"조금 전부터."
"몇 시야?"
"아직 확인 안 했는데?"

안고 있던 팔을 풀고 손을 뻗어 핸드폰을 찾는다. 시간은 벌써 오후 5시가 넘었다.

"5시가 넘었네."
"벌써?"

진영이가 놀라 일어나 앉았다. 약간 아쉽지만, 나 역시 일어났다.

"왜, 뭐 해야 될 거 있어?"
"편곡하던 거, 오늘까지 끝내기로 했는데..."
"아, 그거? 급한 거였어?"
"의뢰받은 거니까..."

아직도 잠이 덜 깼는지 몽롱한 상태에서도 일 걱정부터 한다. 안쓰럽다.

"그럼 같이 저녁 먹고 회사로 가자. 나도 작업하던 곡 끝내야 돼."
"그래?"

얼굴이 밝아진다. 헤어지기 아쉬운 건 나뿐만이 아니다.

"같이 샤워할래?"
"아... 위험할 거 같은데..."
"왜, 샤워하다 덮치기라도 할까 봐?"
"응."
"뭐, 싫음 말고."
"싫다고 한 건 아닌데..."

오랜만에 같이 보낸 밤에, 오랜만에 같이 맞은 아침...이 아닌 오후에, 오랜만에 둘이서만 함께 있을 수 있는 이 시간이 고마워 괜히 장난을 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작은 행복에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벌써 새벽 2시다. 오후 늦게 일어나서 졸리진 않지만, 딱 한 소절만 더 하면 끝나는 노래를 저녁 내내 붙잡고 있었더니 피곤하다. 하...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끝내려고 했는데... 헤드폰을 빼 내던지듯이 책상에 놓았다.

"아직 안 끝났어?"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놀라 뒤돌아보았다. 진영이가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들이밀고 있다.

"딱 한 마디만 하면 되는데... 이 한 마디가 자꾸 튀어."
"내가 들어봐 줄까?"
"아... 아직 들려주기 좀 그런데..."
"왜? 다른 건 작업중에도 다 들려주잖아."

결국 진영이가 들어왔다.

"그럼 딱 여기만 들어봐 줘."
"왜, 내가 들으면 안 되는 노래야?"
"아직은 안 돼."

유난스럽다는 표정으로 헤드폰을 받아들고 책상에 살짝 기대 노래를 들어본다. 얼굴의 옆선도, 집중하는 표정도 너무 예쁘다. 아, 무슨 콩깍지가 10년이 되도 벗겨지질 않는 거지?

"이 부분이 좀 어색한 거 같은데? 흐름이 매끄럽지 않아."
"나도 그런 느낌이 있는데, 좀 바꿔봤더니 어디서 들어본 멜로디 같아서... 아... 답답해. 이 한 마디 가지고 지금 몇 시간째 씨름 중이야."

진영이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노래를 들었다. 구간반복을 하며 계속 들어봐 주는 게, 내 노래를 같이 고민해 주는 게 너무 고맙고, 예쁘다. 나도 모르게 허리에 팔을 두르고 진영이를 끌어당겼다.

"왜 그래?"
"예뻐서."
"그게 뭐야."

푸스스, 웃는 것도 예쁘다. 내려보는 얼굴도 사랑스럽다. 내 목에 팔을 두르고 입술을 포개오는 진영이가 사랑스럽다. 허리에 두른 팔에 힘을 주어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안고 있는 이 사랑스러운 사람을 절대로 놓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드디어 곡이 완성됐다. 어제 이산들이가 뭘 잘못 먹었는지 거의 발작을 해서 연습이 일찍 끝나, 바로 작업실로 돌아와 곡 작업에 다시 매달린 결과, 드디어 속썩이던 소절이 마음에 들게 고쳐졌다. 원래는 이산들이한테 가이드 녹음을 부탁할 생각이었지만, 애 상태가 영 안 좋아서 결국 내가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담은 노래라서 그런지, 내 목소리로 하는 게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어제에 이어 오늘은 숙취로 뻗어버린 이산들이가 누워있는 연습실 한쪽에 앉아 이어폰으로 노래를 계속 들어보았다. 내가 만든 노래라서가 아니라, 정말 괜찮다. 꽤 흡족한 결과물이다. 이제 들려줄 사람만 오면 되는데...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진영이가 들어왔다. 점심을 닭가슴살 샐러드로 때운 나와 달리 진영이는 다른 사람들과 점심을 먹으러 갔었다. 잠시 보자는 말에 꽤나 서둘러 먹고 왔는지,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다.

"무슨 일이야?"

내 옆에 앉으며 물어보는 진영이에게 이어폰 한 쪽을 건넸다. 진영이가 좀 더 가까이 다가와 앉았다.

"들어봐."

그렇게 길지 않은 노래라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그 짧은 시간 안에 내 마음을 가득 담아내느라 고생했지만, 노래를 다 듣고 날 보는 진영이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

"어때?"
"진짜, 정말 너무 좋아."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줘."
"포근하고, 따뜻하고, 넓은 품에 폭 안겨 있는 느낌?"
"마음에 들어?"
"응."

널 위한 노래야, 라는 얘기를 안 해도 안다.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았어, 라는 말을 안 해도 이미 알고 있다. 10년이라는 세월이, 그렇게 우리 둘에게 녹아들어 있다.

갑자기 자던 산들이가 몸을 뒤척이는 소리에 놀라 잠시 떨어졌다 다시 붙어앉았다. 아, 저놈의 오리, 진짜. 깜짝 놀랐네. 애들에게 들킬까 조마조마하다. 우리 둘 사이가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닐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어쩌면 평생을 비밀로 해야 하는 거라서, 그래서, 늘 마음 한켠이 아린다. 다행히 애들은 전혀 모르는 눈치다. 그 눈치 빠르고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 찬이마저 모르니, 우리가 그래도 잘 숨기고 있는 것 같다. 워낙 뭐를 잘 흘리고 다니는 진영이라, 내 차나 집에 뭔가 잘 놓고 다녀서 다른 애들이 우연히 봤을 때 정말 심장이 쿵, 내려앉을 정도로 놀랐지만, 그래도 눈치 못 챈 것 같아 다행이다.

어느 누구 하나에게도 축복받지 못할 관계. 아니, 알려지게 되면 영원히 사회에서 매장당할 수도 있는 관계. 그게 진영이와 나 사이의 관계다. 하지만... 많이 다투고, 힘들어 하고, 헤어져도 봤지만, 결국 우린 지금 함께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같이 있는 순간 순간이 행복하고, 이렇게 같이 앉아 이어폰을 나눠 끼고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게 행복하고, 날 보며 웃어주는 진영이를 마주보며 웃어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 행복한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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