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찾아도 동우가 없다. 사람을 사 흔적을 찾아봐도, 어디에도 없다. 내게 받은 돈으로 남은 빚을 청산하고, 이제 동우는 아무것도 없을 텐데. 그래서, 마음의 짐과 어깨의 짐을 다 덜어내고, 어디 내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도망가버린 거라면 차라리 나을 텐데. 혹시, 이제 이 세상에 묶어두는 게 없어서, 혹시라도 나쁜 생각을 할까 봐 걱정되고 불안했다.

동우를 원망하지 않았다. 동우가 날 사랑했다는 걸 확신했기 때문에, 그래서 그만큼 동우도 힘들고 아팠을 거란 걸 믿었기에, 절대 원망하지 않았다. 내가 사랑에 눈이 멀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처음엔 어땠을지 몰라도, 날 안아주는 손길, 따뜻한 손, 달콤한 입술 다 가짜가 아니었다. 아무리 동우가 연기를 잘 하더라도, 아무리 내가 눈이 보이지 않아도, 사람이 진심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 수 있다. 동우가 내게 한 얘기 중 아버지 얘기는 진심어었어도, 그 후에 내게 한 말은 다 어떻게든 날 상처입히고, 스스로도 상처 받아서 다시는 못 돌아오도록 만들려 한 거짓말이다. 난 그렇게 믿는다.

동우의 얘기를 듣고 생각해 보니 모든 게 다 이해되었다. 비가 오는 날 가족 소풍을 가자는 아버지가 이상했다. 여행 가기 며칠 전부터 마치 뭔가 끝을 준비하듯 이것저것 정리해 놓는 게 수상했다. 일부러 차가 별로 안 다니는, 그리고 카메라가 별로 없는 길로 가는 것도 뭔가 의심쩍었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나 외에는 그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전혀 몰랐다.

집에 빚이 상당하다는 것도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알았다. 그리고, 어머니가 아버지 이름으로 거액의 생명보험을 들어놓은 것도... 혹시 어머니도 뭔가 알고 계셨나? 뭔가, 예상하셨었나? 하지만, 아버지가 가족을 다 끌고 가리란 건 모르셨겠지. 그리고, 내가 혼자 살아남으리라는 것도.

트럭운전사의 졸음운전으로 한 가족이 죽고 유일한 생존자는 눈이 먼 아들. 흥미로운 뉴스거리였다. 기사가 쏟아졌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내내 동정의 말과, 트럭운전사를 탓하는 소리를 들었다. 사고로 처리돼 큰 액수의 보험금을 탈 수 있었다. 그 돈으로 빚도 갚고,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도 사고, 평생 일 안하고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동우의 마음을, 현실을 짓밟은 대가였다.

그래서 동우를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사실을 알고서도 내게 잘 해 준 동우가 고마웠다. 내 암흑으로 가득한 세상을, 어둠 외에는 황량한 세상을, 빛으로, 사랑으로 채워주웠다. 동우가 진짜 나쁜 놈이었어도 고마워 했을 거다. 하지만 동우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내가 돈까지 다 주겠다고 하는데도, 차라리 내 옆에서 사랑하는 척, 좋아하는 척 조금 더 해주다가 내 돈을 다 가져갈 수 있었는데도, 그냥 떠났다. 그게 동우가 날 사랑한다는 증거다. 그렇게 믿는다.








동우가 없어지고, 나 혼자서는 진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사고가 난 후로 난 스스로를 동정하면서, 난 눈이 보이지 않으니까, 아무것도 못하는 게 당연해, 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 놓인 동우는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는데, 난 편안한 삶을 살면서도 눈이 안 보이는 사실을 방패 삼아 사람들의 동정을 샀다. 그런 내가 역겨워졌다.

일부러 매일매일 나갔다. 지팡이를 짚는 게 창피해서, 절대로 안 나갔었는데, 일부러라도 나갔다. 그리고 점자를 배웠다. 어렵고, 힘들고, 공부머리가 없는 내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지만, 책을 읽어줄 동우가 없는 지금, 나를 위해 배웠다. 힘이 없는 팔다리가 싫어서, 동우를 잡을 힘이 없는 팔이, 동우를 따라갈 힘이 없는 다리가 싫어서, 운동도 시작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깨달았다. 내 세상의 어둠은 결국 내가 만들어 낸 거라는 걸. 내가 다른 모든 걸 다 밖으로 밀어내고, 어둠으로만 채우고 있었다는 걸. 세상은 어둡지 않았다. 다만, 동우가 없어 외로운 곳이었다.

시간은 흘러갔고,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점점 내 세상은 커지고, 밝아져갔다. 하지만, 동우 없이는 그만큼 더 황량한 곳일 뿐이었다.

27살이 되던 해, 동우와 헤어진 지 2년이 좀 넘었을 때, 날 보는 시선을 느끼기 시작했다.








눈이 안 보여도, 아니면 눈이 안 보이기 때문에, 누군가 날 보는 시선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시선에 담긴 게 악의인지 선의인지 알 수 있을 때도 있다. 내가 느낀 시선은, 분명히, 동우였다. 어떻게 확신하냐고 물으면 분명히 대답할 수 없지만, 동우인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처음엔 긴가민가 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확신이 들었다. 누군가, 며칠째,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운동하러 갈 때도, 그냥 산책을 하러 나왔을 때도, 계속 그 시선이 날 따라다녔다. 분명 동우다.

아니, 사실 동우인지는 모른다. 그냥 내가 너무 동우를 그리워해서, 내가 혼자 상상해낸 것일 수도 있다. 내 세상이, 이렇게 밝아진 내 세상이 여전히 공허하고 외로워서, 이렇게라도 동우로 채우려는 내 마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맞을지도 모르니까, 만약에 동우인데 내가 용기를 내지 못해 못 잡게 되는 건 죽어도 싫으니까, 그래서 모험을 하기로 했다.

시선이 느껴지는 어느 날 오후, 난 산책을 하고 있었다. 잠시 서서 쉬는 척을 했다. 그리고, 도로로 뛰어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나쁜 짓이다. 결국 아버지같이, 나 하나를 위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칠 뻔했다. 하지만 그때는 다른 어떠한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동우를 만나고 싶었다.

차바퀴가 끽, 하고 서는 소리가 들렸다. 바퀴가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리고, 나를 안고 있는 품에서 익숙한 냄새가 났다.

"미쳤어? 죽으려고 환장한 거야?"
"잡았다."

동우의 허리를 꽉 안았다. 동우가 나를 뒤따라 뛰어왔다는 것, 나를 안고 옆으로 굴러 날 살려줬다는 것,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동우를 잡고 있다는 거다. 난, 틀리지 않았다.








손 아래에 느껴지는 얼굴이 너무 초췌하다. 예전에 동우가 참 귀엽다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가 얼굴에 만져지는 볼살 때문이었다. 말랑말랑한 게, 애기 젖살 같아서, 너무 귀여웠다. 하지만 지금은 볼이 움푹 패였다. 부드럽던 피부도 까칠해졌다. 부드럽던 입술이 말라서 갈라지고 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동우의 지난 2년이, 너무 아프다.

동우는 별말 하지 않았다. 그냥 2년 동안 새우잡이 배를 탔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배를 타기 전, 잠깐 보러 온 거라고. 그게 다였다. 사과도, 변명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필요 없었다.

그 얘기도 결국 나중에 들은 거다. 내가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차 주인은 오히려 미안하다며 내게 사과하고 그 일은 일단락되었다. 뭐, 차가 망가지거나 누가 다친 것도 아니어서, 곧바로 집으로 같이 돌아왔다. 내내 동우 손을 꼭 잡고 절대로 놓지 않았다. 어디 가지 않는다고 말해도, 절대로 놓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동우를 껴안고 입술을 맞췄다. 처음엔 하지 말라고, 이러지 말라고 나를 밀어내던 동우도 결국엔 날 이기지 못했다. 늘 우리가 같이 누웠던 소파에, 이번엔 내가 동우를 밀어눕히고, 그 위에 올라타, 말라서 갈라지고 있는 입술을 핥았다. 약간 피맛이 났다. 며칠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했는지, 동우의 체취가 너무 강하게 나서, 이성이 반쯤 날아가버린 것 같다. 그냥 빨리, 당장 동우를 내 안에 품고 싶었다.

내가 보채는 와중에도 동우는 천천히 날 어루만졌다.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해, 예전보다 더 까칠해지고 딱딱해진 손이 내 몸 구석구석을 만질 때마다, 열이 나는 것 같이 몸이 달아올랐다. 동우의 모든 게, 쉰 목소리도, 거친 손길도, 피맛 나는 입술도, 다 좋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침대엔 나 혼자 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이리저리 더듬어 어제 벗어놓은 옷가지 중 아무거나 하나를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키친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안도감과 불안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아직 동우가 있다는 안도감과,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키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우의 목소리가 물었다.

"깼어?"

대답없이 다가가 손을 더듬어 팔을 꽉 잡았다. 동우가 돌아서서 안고 등을 토닥여줬다.

"오랜만에 아침 해 주려고."
"난... 난 간 줄 알고..."

넓은 가슴에 대고 웅얼거리는 내게 동우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말없이 가지 않는다고 했잖아."

그래도 계속 꽉 껴안고 있었다. 동우의 넓은 품이, 동우에게서 나는 체취가 너무 좋았다.

"나, 밉지 않아?"

물어보는 동우의 목소리가 떨린다.

"널 사랑해."
"그래도, 너한테 상처 많이 줬잖아. 나, 밉지 않아?"
"널 사랑해."
"계속 똑같은 소리."

동우가 다시 낮게 웃는다.

"날 찾아준 널 사랑하고, 내게 책을 읽어준 널 사랑하고, 내게 먼저 손 내밀어 준 널 사랑하고, 이렇게 돌아와준 널 사랑하고, 도로에 뛰어든 날 구해줄 정도로 날 사랑하는 널 사랑해."

고개 숙여 내가 읊조리는 말을 들어주던 동우가 날 더 꽉 안아주며 입술을 겹쳐왔다. 그 입술이 너무 거칠고 아픈데도, 너무 부드럽고 포근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입술을 댄 채 속삭였다.

"그러니까, 이제 가면 안 돼."
"아무 데도 안 가."

바닷바람에 쉰 목소리지만, 여전히 부드럽고 포근한 목소리로 마주 속삭여준다. 내가 너무 사랑하는 목소리다. 내가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다. 드디어, 내 세상이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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