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거기 그러고 서 있어? 무슨 일 있어?"

동우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계속 그렇게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나 보다. 동우가 "잘잤어?"란 말과 함께 이마에 살짝 뽀뽀하고 키친 쪽으로 걸어갔다. 동우에게서 샴푸향이 났다. 동우를 처음 만난 날과는 다른, 그러나 여전히 달콤한 그런 샴푸향...

동우가 요리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계속 서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이상한 상황이 아니다. 동우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 뭔가 오해가 있는 거야, 라고 속으로 혼자 되뇌이고, 또 되뇌었다. 하지만, 늘 느끼는 불안감에 불씨가 당겨져, 다른 어떠한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말을 꺼내면 후회할 걸 알면서도, 입을 열었다.

"동우야."
"응?"
"너... 누구야?"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멈췄다.

"뭐?"
"너, 사회복지과 학생도 아니고, 센터에 준 전화번호도 없는 번호라 그러고, 너... 진짜 누구야?"

우리 둘이 있는 이 공간이 고요해졌다. 너무나도 조용해져서, 동우가 서서히 내 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울리는 듯했다. 동우가 내 앞에 섰다.

"하...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해하지 못하는 내 얼굴에 동우가 웃었다. 내가 좋아하는 웃음소리가 아닌, 비웃음이다.

"왜, 그런 거 있잖아. 돈 많고 병든 노인 병수발 하다, 돈 뜯어내는, 그런 거? 내가 하도 돈이 필요해서 말야. 그런데 차마 늙은이들 상대는 못 하겠더라구. 그런데 얘기를 들은 거지. 가족 다 죽고 눈 병신이 된 돈 많은 남자 이야기. 뭐, 나야 여자든 남자든 상관 없으니까, 좀 꼬셔서 돈 좀 뜯어내 볼려고 아주 쌩쑈를 다 했는데 너무 쉽게 넘어오대? 아, 다음달쯤에 돈 필요하다고 질질 짜고 몇 천 정도 더 뜯어낸 후에 없어지려고 했는데, 아쉽네."

그 부드럽고 포근한 목소리로 칼같이 아픈 말을 내뱉는다. 그런데... 저건 동우의 목소리가 아니다. 저렇게 아픈 말을 해서가 아니다. 저건, 진짜가 아니다.

"부자라 집에 뭐 귀중품이라도 있을 줄 알았더니 뭣도 없고, 어차피 조만간 떠야지, 했는데 잘 됐네. 내가..."
"왜 거짓말 해?"

내 말에 동우가 갑자기 입을 다문다.

"지금 네가 하는 말, 하나도 진심이 담겨있지 않아. 왜 그런 거짓말을 해, 동우야."

동우가 말이 없다. 마치 외운 대사가 중간에 끊겨 장면을 이어갈 수 없는 배우처럼, 동우는 그렇게 말없이 서 있었다.

"사실을 말해줘, 동우야. 응?"
"네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진심이다 아니다 지껄이는 거야?"

낮은 목소리. 지금까지 가볍게 떠들던 목소리가 아니다. 부드럽고 포근하진 않지만, 진짜 동우 목소리다.

"동우야..."

갑자기 멱살이 잡혔다. 무서운 힘으로 날 밀친다. 등이 벽에 부딪혀 아프다. 한 손으로 멱살을 잡고, 다른 한 팔로 내 목을 누른다. 숨이 막힌다.

"컥, 커헉..."
"내 아버지가 말야. 졸음운전을 하다 한 가족을 몰살시켰대. 내가 고3때."

나도 모르게 눈이 커진다. 그렇다고 동우의 얼굴이 보일 것도 아닌데.

"일가족이 죽었다는 거야, 장님이 된 아들 하나를 남기고. 그런데 말야. 우리 아버지는 졸음운전을 하실 분이 아니었어. 우리 엄마가 나 어렸을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셔서, 누구보다 운전할 때는 조심, 또 조심 하셨던 분이었어.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졸음운전을 해 세 명을 죽였다는 거야. 하루아침에 아버지는 죽일 놈이 되었고, 나는 그런 사람 아들이 되었어. 아버지는 그 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졌는데, 병원비로 가진 돈을 다 쏟아붓고 빚까지 져가며 어떻게든 살려보려 했는데, 결국 돌아가셨어."

숨이 쉬어지지 않아 버둥거렸다. 목을 죄는 팔이 좀 느슨해졌다. 숨을 몰아쉬었다.

"억울했어. 세상 사람들이 다 우리 아버지를 욕하는데, 가족 하나를 몰살시킨 죽일 놈이라고 떠드는데,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거야. 그래서 학교도 때려치고 사실을 밝히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는데,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 아무리 나 혼자 아등바등 거려도 아무것도 바뀌는 것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어. 그래서 결국 포기했어. 빚 독촉에, 뭐에, 현실이 발목을 잡았거든. 그 때부터 노가다판에서 일하고 돈 모아서 빚 갚고, 그렇게 살다가, 아버지 기일에 아버지를 뵈러 갔는데,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더라고. 내가 진짜 할 수 있는 걸 다 했었나? 싶어서..."

내 멱살을 잡고 있는 손이 떨리고 있다. 잡아주고 싶은데,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그래서 이번엔 사람을 고용했어. 내가 뭣도 모르면서 날뛰는 것보다야 낫겠지, 싶어서. 한참 후에야 그 사람이 나타나서, 영상 하나를 주더라고. 사고지점에는 cctv가 없었는데, 최대한 가까운 곳에 있는 cctv 영상을 다 확인해서 그 날 도로에 보였던 차들을 다 추적한 거야. 시간도 오래 걸리고, 돈도 많이 들었지만, 결국 찾아냈어. 사고 장면을 찍은 블랙박스를. 그것도 아주 우연히. 오래전 일이라 영상도 뭐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사고난 며칠 후 블랙박스를 바꾼 사람이더라고. 옛날 건 버리지도 않고 영상도 지우지 않고 그냥 집에 처박아두고. 하늘이 도운 거지. 그래서 그 영상을 확인했는데, 뭘 봤을 것 같아?"

아... 동우가 무슨 말을 할지 왠지 알 것 같다.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뒤에서 찍힌 영상이었어.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고, 차들도 쌩쌩 달리고 있고, 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확실히 보였어. 우리 아버지가 졸음운전을 한 게 아니라는 걸. 승용차가 갑자기 아버지 쪽으로 위험하게 가까이 왔고, 아버지는 놀라 핸들을 틀고, 젖은 도로에 무거운 트럭이 흔들리고, 결국 트럭이 옆으로 넘어지면서 승용차를 덮쳤어. 우리 아버지가 잘못한 게 아냐. 그 승용차를 운전한 사람이 일부러 그런 거야.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핸들을 튼 건 네 아버지야."

동우의 입을 막고 싶다. 내가 이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저런 말을 하게 해서 미안해서다. 동우의 목소리가 너무 아파서, 그 목소리에 묻어나오는 눈물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서, 닦아주고 싶다.

"우리 아버지가 너네 가족을 죽인 게 아냐. 너네 아버지가 자살하려고 우리 아버지를 이용한 거야. 이게 진실이야. 네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를 죽인 것도 모자라, 씻지 못할 누명까지 씌웠어. 알아?!"

나직히 말하던 동우가 갑자기 소리치며 다시 목을 조였다. 하지만 그 팔 역시 파르르 떨리고 있어서 목보다는 가슴이 더 아팠다.

"진실을 아니까 허탈해지더라고. 정작 내 아버지를 죽인 사람은 죽어 없어지고, 그걸로 다 끝나버린 것 같아서. 뭐라도 해야 되겠는데, 뭐라도 해야 아버지 앞에 얼굴을 들 수 있겠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 처음엔 경찰한테 갈까, 생각했는데 어차피 처음부터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믿을 것 같지도 않고, 자기네가 처음에 잘못 수사했다고 밝히는 것보다는 내가 찾은 영상을 묻어버리고도 남을 사람들이어서. 그런데 갑자기 생각이 나더라고. 그 아들이 아직 살아있다는 걸. 그래서 널 찾았어. 눈만 안 보인다 뿐이지 보험금 타서 편하게 잘 살고 있더라고. 나는 빚에 쪼들리며 몇 년을 잠도 제대로 못 자가며 뼈빠지게 일만 하고 살았는데. 그래서 다시 억울해졌어."

갑자기 동우가 팔을 풀었다. 지탱하던 힘이 없어져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콜록거렸다. 동우가 내 옆에 쭈그리고 앉아 낮은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어차피, 너도 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남겨준 돈,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겨준 빚 좀 청산하는 데 써도 되지 않을까, 싶더라고. 목숨값이라는 게 있잖아. 우리 아버지 살리진 못했어도 살리려고 쓴 돈인데, 그 정도는 네가 내 줄 수 있겠다, 싶었어. 처음엔 당장 찾아와서 이 얘길 다 하고 경찰에 알리겠다 협박해서 돈 좀 뜯어내려고 했는데, 나도 양심이란 게 있어서 막상 눈도 안 보이는 사람한테 그러려고 하니까 좀 그렇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할까, 생각하면서 널 지켜봤는데 집에서도 잘 나오지 않고, 만나는 사람이라고는 사회복지사, 청소도우미, 식사배달부, 정도밖에 없고, 원래 너처럼 혼자 있는 사람들은 외로움을 많이 타니까, 차라리 그렇게 접근하는 게 더 나을 것도 같더라고. 그래서 너네 사회복지사를 찾아갔는데, 마침 또 네가 사람이 필요하다네? 하늘이 계속 날 도와주고 있었어. 그렇게 여길 출입하게 됐지."

거친 손으로, 내가 좋아하는 그 손으로 내 턱을 잡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생긴 것도 괜찮고, 뭐, 저 정도면 나쁘지 않겠다, 싶더라고. 나도 나쁜 놈은 아니니까, 공짜로 돈을 달라기는 좀 그러니까. 외로운 사람한테 봉사 좀 해주고 돈 받아가는 게, 너나 나나 좋을 것 같아서 말야. 너도 딱히 불평할 건 없잖아?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있는데? 뭐, 이제 슬슬 질려가던 참이니 차라리 잘 됐어."

동우의 발소리가 멀어진다. 뭔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자기 짐을 챙기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멍해진 채로, 생각이 되지 않는 머리로 동우의 얘기를 듣고 있던 난 천천히 일어섰다. 이 상황에 내가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아는 사실은 단 하나다. 난 동우를 사랑한다.

동우의 발걸음을 쫓아갔다. 방에서 나오려던 동우와 마주쳤다. 동우의 팔을 꼭 잡았다.

"난, 다 상관없어. 내 돈, 다 너 줄게. 그냥 나와 함께 있어줘, 제발. 사랑해, 동우야."

잠시의 정적이 흘렀다. 가만히 서 있던 동우가 갑자기 거칠게 내 손을 떼어내고, 내 목을 한 손으로 잡았다. 숨이 다시 막혔다.

"이 새끼가 끝까지 사람 질리게 하네. 돈 준다고 하면 내가 네 옆에 있을까 봐? 네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한테 한 일을 생각하면 네 얼굴만 봐도 치가 떨려, 알아? 그동안 나도 받아낼 게 있으니까 그런 거 꾹 참고 여기 있었던 거야. 이제 나도 할만큼 했고, 받을 만큼 받은 거 같고. 몇억을 준다 해도 너와 같은 공간 안에 일 초라도 더 있기 싫어. 그러니, 좋게 좋게 말할 때 그만둬, 역겨우니까."

동우가 날 거의 내팽개쳤다. 다시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머리가 아찔했다. 동우의 발걸음이 멀어지는 소리에, 따라가고 싶은데,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문 앞에서 잠시 동우의 걸음이 멈췄다.

"차라리 내가 사기꾼인 척할 때 내 말 믿고 쫓아내지 그랬어. 그러면 나한테 이런 말까지는 안 들어도 됐잖아. 네 아버지에 대해서 평생 모르고 살아도 됐잖아. 원망... 안하고 살아도 됐잖아."

문이 닫히는 소리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서둘러 동우를 쫓아갔다. 걸려서 넘어지고, 구르고, 하면서도 쫓아갔다. 하지만 동우는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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