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을 볼 수 없는데도 신체리듬 때문인지 늘 아침 7시 쯤이면 눈이 떠진다. 동우와 같이 살기 시작한 지 벌써 3개월. 이제 이렇게 동우 품에서 깨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잠이 많은 동우가 깰세라 내 허리를 감싸고 있던 팔을 조심히 내려놓고, 그 품안에서 빠져나왔다. 역시 동우가 깰까 봐 일부러 방에 딸려 있는 화장실이 아닌 거실 쪽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샤워가운을 걸치고 나왔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냉장고 쪽으로 향했다. 동우가 어제 만들어놓은 샌드위치를 찾아 꺼내고, 음료수캔을 하나 꺼내 땄다. 이렇게, 내 하루가 시작된다.

내가 어떻게든 동우를 잡으려고 꺼낸 간병인이라는 말을 동우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다음날 당장 내 집으로 이사 온 동우는 편의점 일도 관두고 왔다고 했다. 당장 그날부터 식사 배달을 오는 사람이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며 바로 자르게 하고, 매일 날 위해 요리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침잠이 많은 동우라 처음 몇 번 힘들게 일어나 몽롱한 상태에서 요리하다 불 낼 뻔하더니, 그냥 전날 뭔가 간단한 요깃거리를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놓는 걸로 합의를 봤다. 도우미 아주머니도 오지 말라고 하고, 매일매일 청소도 한다.

같이 살면서 알게 된 사실은, 동우가 참 꼼꼼하고 깔끔한 사람이라는 거다. 동우가 이사온 첫날, 내가 집에 뭐가 어디에 있는지 다 외워서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뭔가 자기의 물건이 더해진 곳을 일일히 날 데려다니며 알려줬다. 생각보다 짐이 많지 않아서, 동우가 어디 다른 갈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들었지만, 동우는 내 말대로 방을 뺐다고 했다.

요리도 잘 하고, 먹고 난 뒤에도 바로 치우고 설거지하고 정리해 놓고,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도 매일 빨래 돌리고 장보러 가고, 이런 말 동우가 들으면 화내겠지만, 약간 엄마 같은 데가 있었다. 내가 좀 놀렸더니, 날파리 없는 집에서 사는 게 꿈이라고, 이번 기회에 그 꿈을 현실로 만들겠다고 말하는데 너무 귀여웠다. 이게 같이 살면서 알게 된 또다른 사실이다.

덩치도 나보다 크고, 손도 크고 두껍고 거칠고, 어깨가 넓어서 품안에 내가 쏙 들어가는데도 동우는 참 귀여운 데가 많았다. 그동안 귀여워해 줄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걸 꾹꾹 누르고 살아온 것 같아, 이제는 내가 원없이 귀여워해 줘야지, 하고 다짐했다. 물론 귀엽단 말에 정색하고 기분 나빠하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절대 입 밖으로 그렇게 표현하지는 않았다.

또 한가지 알게 된 사실은... 약간 곰 같다는 것? 그동안 치열하게 살아서 그런지 조금 편하게 있게 되자 느긋한 본래 성격이 나오는 듯했다. 잠도 많아서, 점심 때쯤에 일어나면서도 아침 일찍 깨는 나와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내가 낮잠 잘 때도, 깨어보면 어느새 동우의 따뜻한 팔이 날 안고 있고, 고른 숨소리가 귀 바로 옆에서 들리곤 했다. 겨울이 다가와서 그런지, 약간 겨울잠 자는 것 같기도... 그것마저도 귀여웠다.

그런 동우가 정작 밤에는 꽤 거칠었다. 내가 힘들어 해도 잡고 놔주질 않거나, 가끔 거칠게 목을 물어뜯거나 할 때면 솔직히 조금 무서운 것도 있었다. 하지만 평소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의 갭까지도 너무 좋았다. 완전 콩깍지가 씌인 모양이다.

어쨌든, 24시간을 동우와 함께 지내며, 더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더 사랑하게 되었다. 이제는 동우 없는 삶이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제발 동우가 내 옆에서 계속 있어주기를, 날 떠나지 않기를, 매일매일 빌고 또 빌었다.








"정진영 씨."

은행 창구 앞 의자에 앉아 동우 생각에 빠져 있던 난 날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네?"
"적금 해약 처리 되었습니다. 다른 볼일 있으신가요?"
"아니요. 제 일반 계좌에 넣어주신 거 맞죠?"
"네."
"그럼 됐어요.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앞의 목소리가 날 다시 불렀다.

"저... 정진영 씨."
"네?"

무슨 일인가 싶어 보이지 않는 목소리의 주인 쪽을 쳐다보자 약간 헛기침을 하며 말을 잇는다.

"지금 신동우 씨 계좌로 매달 300만원씩 보내시고 계신데, 이게 맞는지 확인하려구요."
"네, 맞는데요?"
"저... 전산 조회 결과 신동우 씨가 신용등급이... 그... 혹시 누군지 알고 보내시는 것 맞나요?"

저 여자의 말이 무슨 뜻인지 한참을 생각해 보고서야 알았다. 내가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이라 어디서 사기 당했다고 생각하는 거다. 순간 화가 났다. 나 때문에 동우가 이런 오해를 받는 게 기분 나빴다. 날 은행에 데려다주고 동우가 장보러 가서 이런 소리를 듣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동우는 제 가장 친한 친구에요. 제가 동우에게 빚진 게 있어서, 지금 이렇게 갚고 있는 거구요. 또 다른 용건이?"
"아, 아닙니다. 저는 그냥 걱정이 돼서..."
"감사합니다."

여자의 말을 자르며 일어났다. 기분이 나빠 확, 돌아서는 바람에 방향감각을 잃었다. 이런, 문까지 어떻게 가야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곳에서 지팡이를 꺼내고 싶지 않은데. 보이진 않아도 느껴지는 사람들의 동정 어린 시선을 받기 싫은데...

망설이며 한 발짝 앞으로 디디려는데, 익숙한 팔이 내 허리를 감쌌다.

"볼일 다 끝났어?"

동우의 목소리에 안도했다. 동우의 안내를 받으며 은행을 나섰다.

집에 돌아와 동우가 요리를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계속 그 여자의 말이 떠올라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도대체 우리 동우를 뭘로 보고? 내가 처음에 계좌번호를 달라고 했을 때도 괜찮다며 한사코 거절하는 걸 내가 억지로 받아냈었고, 300만원도 내가 정한 금액이었다. 동우에게는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맘 같아서는 동우의 등록금, 아니, 동우가 평생 필요한 걸 다 내가 내주고 싶었다. 그런 말을 꺼냈다가 동우가 불같이 화내는 바람에 다시는 입 밖에 꺼내지 않은 마음이지만... 내가 이런 마음이라서 그런 오해를 받은 것 같아 죄책감도 느꼈다. 어차피 가진 게 돈밖에 없는 나라, 돈으로라도 동우를 묶어둘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한켠에, 나도 모르는 깊숙한 곳에, 있었던 것도 같다.








그날도 늘 같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동우의 품에서 깼고, 동우가 깨지 않게 조심히 일어나 샤워를 하고, 동우가 만들어 놓은 샌드위치로 아침식사를 했다. 은행에 다녀온 지 한 2주쯤 지난 후였다.

식사를 마치고, 양치를 하고, 왠지 나른해서 다시 침대에서 좀 더 잘까? 하고 생각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동우가 깰까 봐 방문을 닫고 거실로 나왔다.

"여보세요?"
"아, 진영아, 나야, 차우빈."

아, 사회복지사다. 동우와 함께 살게 된 후로 딱히 연락할 일이 없었다. 그도 워낙 맡은 사람이 많은지라 나 하나가 덜어져서 편했을 거다. 실로, 몇 주만에 처음으로 온 전화였다.

"네, 안녕하셨어요."
"응... 아... 저... 이런 말하긴 내가 좀 그런데... 내가 저지른 일이니 내가 수습해야 할 것 같아서."
"네?"

원래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나지만, 이번엔 도저히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혹시 그, 신동우, 아직도 책 읽으러 와?"

아... 동우와 같이 산다는 말은 일부러 하지 않았었다. 워낙 바쁜 사람이라 뭐, 굳이 일부러 알려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네, 매일요."
"아, 내가 그 신동우에 대해 어제 무슨 소리를 들어가지고, 내가 확인은 해 볼 건데 만약 이게 사실이면 아... 어떡해야 되지? 이게 불법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얘긴지 하나도 모르겠다.

"저... 무슨 말씀이신지..."
"아, 그게... 우리 센터에서 며칠 전에 연탄봉사를 했는데, 자원봉사자가 모자라서 여기저기 연락해보다, 신동우가 생각나서, 걔 서류에 있는 전화번호로 연락해보니 없는 번호라고... 그래서 전화번호 바뀌었나, 하고 서류에서 학교 이름 찾아서 연락해보니까 그 학교엔 사회복지과가 없다고, 신동우란 학생도 없고..."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말에 정신이 없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지금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는데, 왜 자원봉사 하려고 그런 거짓말까지 해가며 우리 센터에 왔는지 모르니까, 혹시나 해서, 진영이 걱정되서... 진짜 별일 아니겠지만, 그래도... 만약 오늘 오면 문 열어주지 말고, 그냥 어디 아프다고 둘러대고 보내. 내가 더 자세히 알게 되면 연락해줄 테니까, 알았지?"

언제나같이 자기 말만 하고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 난 핸드폰을 손에 쥔 채 그 자리에 그렇게 계속 서 있었다. 사회복지사의 말을 이해할 때까지 한참이 걸렸고, 이해한 후에도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서, 내가 잠시 잠이 들어 꿈을 꾼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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