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이후, 책 읽는 진도가 느려졌다. 같이 붙어 앉아 책을 읽다가도, 어느 순간 동우가 나를 눕혀놓고 키스하고, 애무하고 있었다. 때로는 부드럽고 포근하게, 때로는 거칠고 뜨겁게, 내가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로 입술로, 손으로, 혀로 나를 어루만졌다. 왼손이 다 낫자 이제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가슴을, 등을, 팔을 구석구석 어루만졌다. 그 거친 손길이, 동우의 부드러운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그 군살 박히고 투박한 손길이 너무 좋아서, 나도 동우에게 어떻게든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내 작은 손으로 동우를 마주 쓰다듬었다.

하지만 선을 그어놓고 그 이상은 하지 않았다. 아직도 내가 무서워하는 거라 생각하는지, 아니면 내게 첫날 거절당했다 생각했는지, 절대 옷을 벗기려고도 하지 않았고, 허리 밑으로는 만지려고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 무서워했던 게 우스워질 정도로 이제 내가 그 손길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차마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사고 전에는 꽤나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이었다. 물론, 이것저것 잘 흘리고 다닌다고 헐랭이 소리를 많이 들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거나 기대는 걸 싫어하는, 독립적인 성향이 강했다. 그래서 친구들이 길고양이 같다고 놀리곤 했다.

하지만, 사고 후에, 눈이 보이지 않게 되자 소심해졌다. 나 혼자서는 밥도 챙겨먹을 수 없어서 하루 세끼 누가 배달해 줘야 하고, 청소나 빨래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도우미 아주머니가 와줘야 하고, 나 혼자서는 길거리도 제대로 걸어다닐 수 없어 지팡이에 내 몸을 맡겨야 한다. 결국, 사회복지사나 자원봉사자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항상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기대야 되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내가 먼저 뭔가를 해달라고 하는 게 어려워졌다. 사실 사회복지사에게 책 읽을 사람을 찾아달라고 부탁한 것도 오랜 시간의 망설임 끝에 꺼낸 말이었다.

그리고... 이미 한 번 혼자 남겨진 나여서,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모두를 한 순간에 잃어버린 나여서, 누군가를 내 마음에 들이고 싶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게 얼마나 무섭고 처절한 일인지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나니까. 하지만, 그렇게 곁에 아무도 없는 나여서 외로웠고, 결국 그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곁을 내주었다. 그 누군가가 동우였기 때문에, 결국 내 마음속에까지 들여버린 것이다. 그래서 늘 동우를 잃을까 봐 불안했고, 동우를 다시는 못 만날까 봐 걱정했다.








동우와 그런 사이가 되고 나서 얼마 후, 왼손의 붕대를 푼 지 삼 일 정도 지난 어느 날, 동우가 청천벽력 같은 말을 했다.

그날도 평소처럼 소파에 누워 키스하고 있었다. 이제 나도 꽤 대담해져서, 동우의 셔츠 안에 손을 넣고 그 넓은 등을 매만지고 있었고, 동우 역시 아직 남아있는 흉터 때문에 더 거친 왼손과 오른손을 내 셔츠 속에 넣고 내 허리와 가슴을 쓰다듬으며 내 입술을 빨고 있었다. 내 치열을 더듬던 혀가 내 혀와 얽히고, 정신이 몽롱해질 때쯤 갑자기 동우가 몸을 일으키고, 내 옷매무새를 고쳐주었다. 벌써 가야 하는 시간인가, 아쉬워져 일어서려는 동우의 손을 잡았다. 동우가 다시 앉아 내 손을 마주 잡아주었다.

"나... 내일부터 못 와."
"응?"

처음엔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했다.

"나, 내일부터 여기 못 온다고."

그 말을 이해한 후에도 나는 계속 굳어 있었다. 동우가 내 이마에 짧게 입맞췄다.

"미안해."
"왜... 왜 그러는데? 혹시 내가 무슨..."
"아냐, 그런 거..."
"그러면 왜..."

창피하게도 눈물이 고였다. 늘 걱정했던 일이 막상 현실로 닥치니까, 숨이 쉬어지질 않고,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동우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이번엔 내 눈물 어린 눈에 살짝 키스했다.

"일을 다시 구했는데, 거리도 꽤 멀고, 시간이 전보다 길어. 거기 일 끝나고 편의점 가는 것도 솔직히 좀 빠듯해. 여기까지 올 시간이 안 돼."

동우를 매일 만날 수 없다니. 이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이 입술을 느낄 수 없고, 이 손길에 닿을 수 없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절대로, 그렇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동우야..."
"매일은 못 와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내가 돈 줄게."

말하는 순간에도 잘못 말했다는 걸 알았다. 잠시 굳었던 동우가 거칠게 날 밀치고 일어섰다. 이대로 놓치면 안 될 것 같아서, 동우의 손을 다시 잡았다.

"미안해, 그런 뜻으로..."
"날 뭐라고 생각한 거지? 내가 여기 몸 팔러 온다고 생각한 거야?"

동우한테 한 대 세게 맞았어도 이렇게 아프진 않았을 거다. 정신이 멍한데도, 손을 빼내려는 동우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놓칠 수 없었다.

"그런 거 아냐. 절대로, 절대로 아냐."
"그럼 뭔데?"
"사랑해."

잡힌 손을 빼내려 다른 손으로 내 손을 떼어내려던 동우의 손이 멈췄다.

"널 사랑해. 너와 늘 같이 있고 싶어. 너와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는 게 싫어. 네가 다른 데 가는 것도 싫어. 너와 보내는 한 시간 반이 내겐 전부인데, 내 하루의 나머지 시간을 그 한 시간 반을 기다리며 살아가는데, 제발, 그걸 뺏지 말아줘. 제발, 내 옆에 있어줘. 동우야, 제발."

눈물이 흐른다. 이런 내가 꼴사납다. 하지만, 동우를 잃을 수는 없다.

잠시 말이 없던 동우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내 옆에 앉았다.

"나도 너와 함께 있고 싶어. 하지만 나도 살려면 돈을 벌어야 해."
"그러니까, 내가 그 돈 줄게. 난 너만 있으면 돼."
"난 네 도움 받으려고 여기 온 게 아냐."
"내가 네 도움을 받는 거야. 난 너 없으면 안되니까, 그러니까, 여기에서, 나랑 같이 살자. 네가 정 뭣하면 내 간병인이라고 생각해도 돼. 난 너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니까, 네가 여기 살면서 나 돌봐준다고 생각하면 돼. 네가 날 도와줘서, 내게 네 시간과 관심을 주는 거라서, 내가 그런 너에게 보답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 줘. 다른 뜻 없어. 정말이야. 그게 다야."
"정말, 그게 다야?"

무슨 의미의 질문인지 모르겠다. 표정을 살필 수가 없어서, 어떤 마음으로 묻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화가 누그러진 거 같아서, 다행이다.

"넌 간병인이 필요하다는 거야?"

뭘 묻는 거지?

"응, 맞아. 그런 거야."
"내가 이 집에 네 간병인으로 들어와 살면, 너한테 손끝 하나도 대지 않고 살아야겠네. 환자를 건드리는 건 잘못된 거니까. 안 그래?"

아... 그런 말이었구나.

"네가... 그걸 원한다면..."

우물쭈물 대답하는 내 작은 목소리에 동우가 갑자기 낮게 웃었다. 아, 농담한 거구나. 이제 가지 않을 것 같아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난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말야. 너와 함께 살게 되면."

날 소파에 다시 밀어눕히고 키스하기 시작했다. 아주 거칠게, 입술을 물어뜯을 듯이, 입술을 빨고 혀를 빨아들였다. 몽롱한 정신에 동우의 목에 팔을 두르려는데, 동우가 내 팔을 잡아 내리고, 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처음 있는 일이라 긴장했지만, 또 지난번처럼 내가 굳으면 동우가 여기서 멈출까 봐, 동우의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나도 원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동우의 입술이 목을 타고 가슴께로 내려갔다. 천천히, 깨물으며, 핥으며, 빨아들이며, 점점 내 이성까지 잠식해갔다. 모든 걱정과 불안함을 날리고 동우에게 내 모든 걸 맡겼다. 그렇게, 동우로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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