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에서 누군가 끝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못에 손을 긁혔다고, 별거 아닌 상처라고 했다. 하지만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손은 생각보다 낫는 데 오래 걸렸다.

손이 다쳤어도 일은 쉴 수 없다고 했다. 한 번 일을 쉬면 다시 일을 구하기도 힘들고, 이제 겨우 밀린 방세를 해결했는데, 며칠도 쉬면 안 된다고 했다. 왼손을 다친 게 다행이라고 동우는 말했지만, 난 너무나 속상했다. 난 돈이 넘치게 많이 있는데, 이렇게 착하고 좋은 사람이 돈이 없어서 고생하고 있다는 게 마음이 아팠다. 늘 가난에 찌들어 살던 부모님 생각도 났고,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다. 모든 걸 남에게 의지해야 하는 나였기에,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기뻤다.

하지만... 무턱대고 내가 돈을 줄 테니 좀 쉬어라, 하는 말을 해도 될까?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혼자 힘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동우의 자존심을 다치게 하지 않을까? 만약, 상처받아서, 다시는 오지 않는다면? 동우의 목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가 없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혔다.

동우가 손을 다치고 온 날부터 매일 그렇게 꼭 붙어앉아 책을 읽었다. 늘 따뜻한 오른손으로 내 오른손을 감싼 채 책을 잡고, 내게 중간중간 "책장 넘겨줘"라고 속삭이며, 내 귓가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책을 천천히 읽어갔다. 당연히 단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이젠 새로운 내 자리가 되어버린 동우 옆에 앉아 책을 펴려는데, 동우에게서 나는 샴푸향이 평소와는 달랐다. 아니, 샴푸향이 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익숙하면서도 낯선 동우의 체취를 맡았다. 보이지 않게 된 후로 후각이 제일 발달했는지, 냄새에 제일 민감해졌다. 전에는 참을 만하던 냄새도 이젠 역겹게 느껴질 때가 있고, 전에는 괜찮다, 정도로만 생각했던 향이 지금은 눈물나게 좋을 때도 있었다. 그런 내게, 동우의 체취는, 뭔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향이었다. 동우의 목소리처럼, 부드럽고 포근한 냄새.

책을 펴 들어올리며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냄새..."
"응?"
"아, 아냐..."
"아... 미안, 나 냄새 나?"

뭔가 킁킁거리는 게 본인 냄새를 맡아보는 것 같다. 그 모습이 상상되어 귀여웠다.

"아냐."
"오늘부터 공사장에 안 나가서, 집에서 그냥 와서..."
"다친 거 때문에 관둔 거야?"
"잘렸어. 손 하나 못 쓰는 일꾼은 쓸모 없으니까."

아... 손에 감은 붕대가 신경쓰여도 공사장 흙먼지를 우리 집에 끌고 들어올 수 없다며 매일 씻고 오던 동우였다. 그런 동우가 익숙한 샴푸향을 풍기지 않는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을 텐데, 나도 참 바보였다.

그나저나, 일 관두면 다음 학기 등록금이 빠듯할 거라고 했었는데... 동우, 괜찮을까?

동우 걱정에 말이 없어진 나를 동우가 오해한 듯 말했다.

"요즘 빨래도 제대로 안 했는데, 냄새 나지? 미안."

내 옆에서 조금이라도 떨어지려는지 동우가 늘 소파 등받이에 걸쳐 놓던 왼팔을 내리는 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그 팔을 잡았다.

"아냐, 절대 아냐. 괜찮아."
"신경 쓰이는 것 같아서..."
"아냐, 절대로. 네 냄새 좋아."

말을 뱉자마자 아차, 싶었다. 순간 얼굴이 달아올랐다. 잠시의 정적 뒤 동우가 낮게 웃었다.

"내 냄새가 좋아?"
"아... 그게... 내 말은..."

동우의 낮은 웃음소리가 다시 들렸다. 한편으론 너무 좋았고, 너무 가슴이 떨렸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창피했다. 타오르는 것처럼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 고개를 숙였다.

그때, 동우의 오른손이 내 턱을 잡고 위로 올렸다.

"싫으면, 말해."

그 말의 뜻이 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뭔가 입술에 닿았다. 역시, 부드럽고 포근하다. 동우의 모든 게 부드럽고 포근한 게 틀림없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살짝 닿았던 입술이 떨어졌다가, 이번엔 내 아랫입술을 입술 사이에 살짝 물었다. 나도 모르게 입술이 조금 벌어졌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촉촉하고 부드러운 혀가 들어왔다. 동우의 약간은 거칠고 군살 박힌 오른손이 내 볼을 쓰다듬는 게 느껴졌다. 모든 게 다 부드러운 동우의 거친 손이 그동안 살아온 세월의 무게를 말하는 것 같아 가슴 한편이 시렸다. 하지만 곧 다른 건 그 어떠한 것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키스가 진해졌다.

"윽."

동우의 작은 신음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키스에 정신이 아득해진 내가 동우의 왼팔에 기대, 동우가 자기도 모르게 왼손으로 소파를 짚은 모양이었다. 날 조금은 거칠게 잡아당겼다.

"미안해..."

대답이 없다. 그 아픈 손으로 자기 몸과 내 몸무게까지 지탱하게 했으니, 많이 아프고, 화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미안하고 걱정되서 그 자리에 굳은 날 동우가 갑자기 소파로 밀어눕혔다. 동우의 몸이 내 몸 위에서 느껴진다. 오른팔로 몸을 지탱하고 있는지, 동우의 무게가 참지 못할 정도로 무겁지 않다. 오히려, 따뜻하고 기분 좋다. 아까의 오른손 대신 붕대가 감긴 왼손으로 내 턱을 살짝 잡았다. 다시 동우의 입술이 내 입술 위에 닿았다. 아까같이 부드러운 키스가 아니라, 조금은 거칠고 아팠다. 동우의 숨소리도 거칠어졌다. 부드럽던 동우가 아닌 것 같아 한편으론 무서웠지만, 나 때문에 이렇게 흥분하는 동우가 좋았다.

혀를 옭아매고, 입술을 빨고, 깨물었다. 숨이 차올랐다. 키스라고는 고등학교 때 여자친구와 해 본 첫키스가 다였다. 그 키스를 하고 알았었다. 난 여자에게 그런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는 걸. 그냥, 다른 보통 사람처럼 여자친구를 사귀어야 할 것 같아서 만났었는데, 한 번도 지금 동우에게 느껴지는 이런 감정이 느껴진 적이 없었다. 그래서 입술이 아프고, 혀가 얼얼해도 절대 싫다고 거부하지 않았다.

드디어 동우가 내 입술을 놔주었다. 숨을 몰아쉬는데, 동우의 입술이 이번엔 내 목으로 타고 내려갔다. 아까 키스할 때처럼, 핥고, 빨고, 깨물었다. 가뜩이나 시력을 잃고 난 후 모든 감각이 더 예민해졌는데, 동우의 입술이 닿은 곳이 다 뜨거워졌다. 정신이 조금 몽롱해지는데, 동우의 왼손이 내 셔츠 안으로 들어왔다. 동우의 손가락과 손에 감겨진 붕대의 감촉에 모든 세포가 반응했다. 아픈 왼손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지, 손이 다시 빠져나갔다.

조금 아쉬워 하려는데, 동우가 오른손으로 날 옆으로 밀었다. 소파에서 떨어질 것 같은데, 동우가 뭘 하려는 건지 보이지 않아 답답했고, 무서웠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었다. 동우가 바로 오른손으로 내 허리를 단단히 잡았다. 동우는 내 옆에 누워 다친 왼손이 아프지 않게 왼팔을 펴고 내 머리를 팔 위에 올려놓았다. 그제서야 내가 동우의 팔을 베고 옆으로 눕게 하려 했다는 걸 알았다. 자세가 다시 편해지자 동우가 날 다시 끌어당겨 키스하기 시작했다. 자유로워진 오른손을 내 셔츠 속으로 넣어 처음엔 허리를 어루만지다, 점점 손을 앞으로 움직여 내 가슴으로 옮겼다.

동우가 나를 이렇게 원한다는 사실이 기뻤다. 하지만... 점점 키스가 길어지고, 내 몸을 쓰다듬는 손길이 뜨거워지면서 무서워졌다. 이런 건 처음이라서, 동우를 많이 좋아하지만 여기서 더 가는 건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거절했다가는 동우가 다시는 오지 않을까 봐, 아니면 다시는 나를 원하지 않을까 봐, 그게 더 무서워서 동우의 입술을, 손길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동우의 손이 속옷 속으로 들어와 엉덩이를 움켜쥐자, 순간 얼어버렸다. 긴장을 풀으려 했지만 굳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동우 역시 그런 나를 느꼈는지 잠시 멈칫했다가 손을 뺐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안도감과 함께 불안감과, 그래, 솔직하게 말하면 약간의 아쉬움도 밀려왔다. 혹시 이런 내게 정 떨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과, 절제할 수 없을 정도로 날 원하지 않는다는 아쉬움.

동우가 몸을 일으켰다. 아무런 미련 없이, 마지막 키스 한 번 없이 일어나려는 동우가 야속해, 나도 모르게 동우의 셔츠 앞섬을 잡았다. 어떻게든, 무서워서 그러는 거지 싫어서 거절하는 건 아니라는 걸 표현하고 싶었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동우가 다시 몸을 뉘었다. 그리고, 다시 아까 처음처럼 부드럽게, 포근하게 키스하기 시작했다. 그 부드러움에 용기를 얻어 나도 동우 허리에 팔을 둘렀다.

"오늘은 이 이상 안 해."

입술을 내 입술에 댄 채 동우가 속삭였다. 대답하려던 내게 동우는 다시 키스했다. 동우를 안은 팔에 힘이 좀 더 들어갔다.

"네가 싫어하는 건 안 할 거니까. 싫으면 말해줘."

하지만 싫은 게 아닌 걸. 지금같은 부드러운 키스도 좋지만, 아까같은 격정적인 키스도 좋았고, 날 원하는 손길도 좋았고, 이렇게 지금 날 안심시켜주는 것도 좋은 걸. 싫은 게 아니라 무서워서 그러는 거라고 말하고 싶은데, 점점 정신이 아득해져서,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도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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