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우는 그 후로 매일 와 주었다. 늘 같은 시간에, 늘 같은 샴푸향을 동반한 채. 그리고, 그 보드랍고 포근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었다.

일주일 쯤 지나자 루틴이 생겼다. 6시쯤 되면 집 안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내가 이 어둠만이 가득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더듬거리지 않으며 다닐 수 있는 내 집. 어디에 뭐가 있는지,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는 유일한 공간. 사실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은 거의 없다. 지팡이 하나에 내 모든 걸 의지하고 나간다는 게 무서워 섣불리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사고 전에는 칠칠맞고 뭘 잘 흘리고 제대로 방 청소 한 번 한 적 없던 내가 이제는 매일매일 집을 깔끔하게 유지한다. 처음, 이 집에 익숙해지기 전에 몇 번 여기저기 걸려 넘어지고 했던 쓰라린 기억이 있어서. 그렇게 깔끔한 집인데도 왠지 모르게 6시만 되면 긴장이 돼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동우가 절대로 들여다보지 않을 키친 옆 창고방까지 정리를 한다.

그러다 7시 반쯤 되면 서둘러 샤워를 한다. 올 때마다 향긋한 샴푸향을 풍기는 동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 시간에 맞춰 샤워를 하고, 그렇게 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린다. 그리고, 7시 55분이 되면, 소파에 앉아 동우의 발소리를 기다린다. 그리고, 발소리가 들려도, 일어나지 않는다. 초인종이 울리면 그제서야 느릿느릿하게 걸어가 문을 연다. 동우는 늘 같은 "안녕하세요"란 말로 들어오고, 난 "네, 들어요세요"란 말로 맞이한다. 동우가 소파의 늘 같은 자리에 앉으면 난 냉장고에서 음료수캔 두 개를 꺼내와 한 개를 동우 앞에 놓고, 내 자리로 가 몸을 파묻고 앉는다. 동우가 내가 미리 준비해 놓은 책을 펴 읽기 시작하면, 눈을 감으나 뜨나 달라지는 건 없는데도,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그 목소리에 집중한다.

처음 며칠은 동우나 나나 서로 어색해서, 그리고 둘 다 약간 낯가리는 성격이어서, 그냥 인사만 하고, 바로 책을 읽어주고, 책 읽어주는 걸 듣고, 그러다 한 시간 반 후에 동우가 이제 가야한다며 책을 내려놓고 일어나면, 나 역시 일어나 잘 가라고 인사해주고, 그렇게 우리가 같이 있는 시간은 끝이 났다. 하지만, 점점 그 목소리의 주인공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어떻게 저렇게 부드럽고 포근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줄 수 있지? 하고 그 목소리를 듣는 내내 생각했다. 솔직히 책의 내용은 거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첫 만남 후 일주일쯤 되었을 때, 음료수캔을 동우 앞에 놓으며 용기를 내 말을 걸었다.

"매일 오느라 번거로우시죠?"

그 날 내내 연습했던 질문이었다. 동우는 잠시 말이 없었다. 괜히 물어봤나, 싶어 서둘러 내 자리에 앉았는데, 잠시 후 동우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가까이에서 밤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요."
"아... 그럼 이 다음에 그쪽으로 가세요?"
"네."

그렇구나. 다행이다. 나 때문에 번거로운 건 싫으니까.

"집은 멀지 않아요? 저 책 읽어주시고, 밤에 일하고 집에 가려면 피곤하실 텐데..."
"일 끝나고... 다른 일 하러 가요."
"네?"
"낮에, 공사장에서 일해요."

밤에는 편의점에서, 낮에는 공사장에서 일한다니... 그럼 도대체 잠은 언제 자는 걸까? 궁금해졌지만 동우는 더 이상 말하기 싫은지 책을 펴 읽기 시작했다. 그게 우리가 나눈 첫 대화였다.

처음 한 번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쉬워질 줄 알았는데, 다음날 하루종일 이번엔 어떤 질문을 어떻게 물어봐야 할까, 하고 고민했다. 결국 그날 동우가 왔을 때도 전날만큼의 용기를 끌어내야 했다.

"낮에도 일하고 밤에도 일하고, 힘들겠어요."
"뭐, 돈 벌어야 되니까."
"그런데 저한테 책도 읽어주러 오시잖아요. 많이 피곤하실까 봐..."
"할만 하니까 하는 거예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목소리가 듬직하다.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동우는 자기 얘기를 하는 걸 썩 내켜하지 않는지, 아니면 진짜 봉사활동만 하고 싶어서 그러는지, 저렇게 질문을 한 두 개 대답해주면 바로 책을 열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매일매일 점점 더 동우가 궁금해진 난, 조금 더 뻔뻔해지기로 했다.

세 번째 날, 이번에는 음료수캔을 가지러 가며 말을 꺼냈다.

"대학교 3학년이면 어린 나이인데, 스스로 등록금을 벌면서 공부하다니, 동우 씨 정말 대단한 사람 같아요."

내가 뭔가 말을 꺼내면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다. 매번 대답을 해 줘야 하나, 고민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늘 대답을 해 주니까 내가 이리 뻔뻔해질 수 있는 거다.

"3학년이어도 휴학을 몇 번 해서... 그리고 부모님 없이 나 혼자라..."

아... 음료수캔을 꺼내는 손이 약간 떨린다. 동우도 부모님이 없었구나... 나와의 공통점을 찾아 기쁜데도, 이런 공통점이라니 슬프다.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왠일로 동우가 먼저 말을 덧붙였다.

"24살이에요. 어리지 않아요."

나와 동갑이다. 또다른 공통점이다.

"저도 24살인데."
"그래요?"
"네, 우리 친구네요..."

기쁜 마음에 말을 했는데 역시 대답이 없다. 약간 뻘쭘해진 난 조용히 음료수캔을 동우 앞에 놓고 내 자리로 가 앉았다. 잠시의 정적 후 동우가 캔을 따 한 모금을 마시더니 말했다.

"그럼 말 놓을까?"

그 날, 책을 다 읽어주고 일어난 동우는 "갈게, 내일 보자"란 말을 남기고 갔다. 어색하지만, 친구가 되었다.








동갑이란 사실에 내가 더 편해졌는지, 다음날부터 동우가 대답하기 전의 정적이 짧아졌다. 그래서 더 용기를 내 사적인 질문까지 하게 되었다. 뻔뻔함의 대가로 알게 된 사실은, 동우의 어머니는 어렸을 때, 아버지는 고3때 돌아가셨다는 것, 그 후로 혼자 힘으로 살았고, 한 학기 휴학해서 등록금 벌고 한 학기 다니고, 하는 식으로 다녔기 때문에 아직 3학년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우에게서 나는 샴푸향은 공사장에서 일하고 난 후 우리 집을 더럽힐까 봐 찜질방에 들려 씻고 오기 때문이라는 것까지도...

동우가 오기 시작한 지 3주가 채 안 되었을 때, 동우가 들어오는데 샴푸 향 외에 뭔가 다른 냄새가 났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의약품 냄새와 피 냄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직 그런 질문을 할 용기는 없었다. 그래도, 너무 궁금했다. 혹시 어디 다친 건 아닌지, 공사장이라는 게 참 위험한 곳일 텐데 사고라도 난 건 아닌지... 너무 걱정이 됐다.

말없이 음료수캔을 동우의 앞에 놓고 늘 같은 자리에 앉으려는데, 동우가 "윽"하는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 나도 모르게 동우에게 다가갔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아, 손을 좀... 미안한데, 이 캔 좀 열어줄래?"
"손? 많이 다친거야?"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동우 팔을 잡고 더듬더듬 거리며 손을 찾아 만졌다. 왼손에 뭔가가 감겨있다. 속상하다.

"나 목마른데..."

동우의 목소리에 내가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동우의 왼손을 잡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순간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 고개를 숙이며 캔을 찾아 앞의 테이블 위를 더듬었다. 책밖에 잡히는 게 없다.

"여기."

동우가 내 손에 캔을 쥐어주었다. 차가운 음료수캔을 잡고 있는 동우의 따뜻한 손이 느껴져 순간 놓칠 뻔했다. 정신을 차리고, 캔을 따 내밀었다.

"고마워."

그 따뜻한 손이 다시 스치며 캔을 받아간다. 차가운 캔을 들고 있던 손이 불에 타는 것처럼 뜨겁다.

"내가 책을 못 잡고 있을 것 같은데..."

오늘 자꾸 정신을 놓고 있다. 동우 목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린다.

"괜찮아. 당분간 안 와도 돼. 다쳤으면 오늘도 오지 말고 집에 가서 좀 쉬지..."
"연락처를 모르니까... 기다릴까 봐."

감동이다. 다친 와중에도 나를 생각해줬다는 게 너무 고맙다.

"네가 책을 펴 들어주면 읽을 수 있어."
"응? 으...응."

테이블 위에 놓인 책에서 책갈피를 빼고 양손으로 어색하게 펴 들었다.

"멀어서 잘 안 보이는데..."

떨리는 심장을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동우에게 더 붙어 앉았다. 어떻게 해도 편한 자세가 안 나오는지 결국 동우는 왼팔을 들어 소파 등받이 위에 걸치고, 나를 더 끌어당겼다. 약간, 안긴 폼이 됐다. 책을 들어 동우의 눈높이에 맞춰 주려는데 손이 덜덜 떨린다. 어떻게 해도 진정이 되지 않는다. 이래서 읽을 수나 있을까, 싶은데 동우가 오른손으로 내 오른손을 감싸며 책을 고정시켰다.

"내가 말하면 책장 넘겨줘."
"으... 응."

그렇게 책을 읽는 한 시간 반 동안 진짜 단 한 단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들리는 거라고는 미친 듯이 빨리 뛰는 내 심장소리와, 바로 옆 귓가에서 들리는 동우의 숨소리와 가끔 침 삼키는 소리, 그리고 나지막히 책을 읽어주는 동우의 목소리뿐이었다. 그리고 동우의 따뜻한 손에 감싸진 내 오른손은 전기라도 통한 듯 계속 찌릿, 찌릿, 했다. 그 한 시간 반이 영원처럼 길었고, 한 순간처럼 짧게 느껴졌다. 빨리 그 시간이 끝나길 빌었고, 동시에 그 순간이 영원하길 빌었다. 그런 느낌, 그런 감정은 내 생에 처음이었다. 그렇게, 내 어둠만으로 가득 차 있던 세상에 한줄기 빛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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