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났다! 드디어!!! 진짜 몇 달 동안 붙잡고 있던 곡을 드디어 끝냈다. 물론 활동 스케줄 때문에 제대로 된 여유시간이 없는 탓도 있었지만, 진영이 형이나 신우 형은 그래도 노래 잘만 만들던데, 진짜 못 끝내는 줄 알았다. 게다가 내가 내 입으로 다음 앨범에 내 곡 넣겠다고 큰소리쳐 놓고 진짜 이거 하나라도 못 끝내면 형들이 입만 살았다고 놀렸을 텐데, 드디어 마음에 드는, 우리 팀에게 어울리는 곡을 만들어냈다. 진영이 형도 신우 형도 아닌 내 손으로 직접. 아... 너무 감격스럽다.

이 순간을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데, 하필 한밤중이라 회사에 사람들도 없을 테고, 누굴 불러다 자랑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고... 어쩐다... 그냥 내일까지 기다려야 하나? 지금 너무 흥분돼서 어차피 집에 가도 잠도 안 올 거 같고, 아무한테라도 자랑하고 싶은데... 아니, 아무한테라도가 아니라 진영이 형이랑 신우 형한테 제일 먼저 자랑하고 싶다. 그리고... 잘했다고 칭찬받고 싶다.

그런데... 이 형들이 둘 다 전화를 안 받는다. 카톡도 씹고... 뭐야, 벌써 자는 거야? 신우 형은 그렇다 치고, 잠도 없는 할배가 벌써 잘 리가 없는데... 오랜만에 스케줄 없는 밤이라 어디 친구라도 만나러 갔나? 아... 당장 만나서 자랑하고 싶은데...

결국 포기하고 회사 건물을 나섰다. 집이랑 회사의 거리가 애매해서, 낮에는 걸어다니지만 이렇게 늦은 밤에는 걸어가기 좀 멀다. 그렇다고 택시가 잘 잡히는 곳도 아니고, 콜 부르기엔 가는 거리가 너무 짧고... 아, 그냥 차 가져올 걸... 오랜만에 날씨 좋아서 그냥 무작정 걸어 왔었다. 이렇게 늦게까지 회사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그런데 오늘따라 곡 작업이 너무 잘 돼서, 그동안 막혔던 부분이 갑자기 술술 풀려서, 마침내 다 끝내고 보니 한밤중이었다. 그래서 결국 이렇게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된 거다.

그냥 욕 먹더라도 콜 불러야지, 하고 경비실을 찾았다. 매번 콜택시 번호 저장해야지, 생각만 하고 결국 경비 아저씨한테 물어보게 된다. 졸고 계시던 아저씨가 내 인사에 화들짝 깬다.

"이제 가는 거야? 늦었네."
"네, 뭐 작업하느라구요. 아저씨, 콜택시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응? 아, 그래, 잠깐만..."

책상 위 종이들을 뒤적거리며 아저씨가 거의 혼잣말하듯 말한다.

"그럼 이제 건물에 진영 청년하고 동우 청년만 남았구먼."

오? 오늘 형들 회사 온다는 말 없었는데...

"형들 아직 여기 있어요?"
"둘 다 아까 저녁 늦게 왔어. 오늘 밤새 작업할 거라던데?"

와, 이게 웬 횡재냐. 형들 곡 작업하느라 핸드폰 꺼놨었구만...

아저씨한테 인사하고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진영이 형 작업실로 갔다. 응? 불이 꺼 있다. 뭐지? 화장실 갔나? 그럼, 뭐, 신우 형한테 먼저 들려주는 수밖에... 형한테 예전에 들려준 노래가 6분 넘는다고,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냐고, 돌림노래냐고 형이 놀린 후로 좀 삐쳐 있었는데, 그래서 먼저 들려주기 싫었는데,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지.

다행히 형 방에는 불이 켜 있는 것 같다. 약간 벌어진 문틈 사이로 불빛이 보인다.

오랜만에 형 좀 놀래켜 볼까? 살금살금 문에 다가가 왁, 하며 뛰어들어가야지, 생각했는데, 안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뭐지? 나도 모르게 문으로 한 발짝 더 다가섰다.

"이 부분이 좀 어색한 거 같은데? 흐름이 매끄럽지 않아."
"나도 그런 느낌이 있는데, 좀 바꿔봤더니 어디서 들어본 멜로디 같아서... 아... 답답해. 이 한 마디 가지고 지금 몇 시간째 씨름 중이야."

진영이 형과 신우 형이다. 뭐야, 둘이 우리랑 같이 있을 때는 완전 어색한 척 내외하더니 단 둘이 있을 때는 꽤 다정하네. 하긴, 팀에서 노래를 만드는 두 사람인데, 곡 작업하다 막히면 서로에게 제일 먼저 물어보겠지. 나도 막히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형들이니까.

그냥 그런 형들의 모습이 좋아서, 우리랑 있으면 왜 그러는지 모르지만 어색해지는 두 사람이 이렇게 다정하게 얘기하고 있는 게 좋아서, 진짜, 그것 외에는 다른 이유 없이, 두 사람을 문틈 사이로 바라보았다. 신우 형이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있고, 진영이 형이 책상에 기대 서서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다. 서로 쳐다보는 눈이 왠지 너무 따뜻해서, 보는 내가 다 간질간질하다. 으이구, 둘만 있을 때는 저렇게 꽁냥꽁냥거리면서, 왜 우리 앞에서는 서로 말도 안 섞는 건데... 팀내 큰 형들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무거운 자리인지는 모르지만, 굳이 그렇게 우리 앞에서까지 센 척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나저나, 둘이 같이 있으니 잘 됐다. 같이 들려주면 되겠네, 라고 생각하며 문을 열려다가, 다음 순간 얼었다. 문 쪽으로 뻗은 손 끝에서부터 한 발 앞으로 디디려던 발 끝까지, 진짜 얼음 동상처럼 얼어버렸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거지? 무슨 이런 헛것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지? 혹시,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형들이, 우리 팀 큰 형들이, 우리 앞에서는 서로 말도 제대로 하지 않는 두 형들이, 지금 내 눈앞에서 키스하고 있다. 형들은 둘 다 남자인데... 이게 지금 무슨 일인 거지?

몇 초간 얼어 있다가 뒷걸음질쳐서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절대, 절대, 절대, 내가 본 걸 형들이 알게 하면 안 된다.








아, 미치겠다. 우리끼리 몰카 하면 내가 발연기해서 제일 먼저 들키는데, 지금 상황도 예외가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평소처럼 할 수가 없다. 형들 얼굴만 봐도 어제 일이 떠올라 미쳐버릴 것 같다. 진짜, 부모님이 그... 밤에 그거... 아무튼, 그러고 있는 상황을 본 어린아이의 심정이 지금 나와 다르지 않을 거다. 아니, 내가 더 심하다. 완전 100% 멘붕의 상태.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진짜 머리가 터져버릴 듯이 아프고 심장이 터져버릴 듯이 두근거린다.

"야, 이산들, 너 뭐하냐?"
"으아악!!!!!!"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신우 형 얼굴에 나도 모르게 소리질렀다. 형도 나만큼 놀랐는지, 가슴을 쓸어내리며 "얘 미쳤나 봐", 한다. 차라리 미친 거면 좋겠다. 연습하는 동안 내내, 정신줄이 왔다갔다 한다. 무슨 정신으로 연습을 했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결국, 안무선생님한테 계속 지적당하고, 매니저 형한테 혼나고, 나중에는 진영이 형한테까지 정신을 얻다 팔아먹은 거냐고 혼났다. 그런데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차라리 누가 제발 나 깨우면서 이건 꿈이라고 얘기해 줬으면 좋겠다.

"이 자식 이거 왜 이러냐, 오늘?"

결국 연습실 한쪽 구석에 널부러져 버린 나를 보며 신우 형이 다른 애들한테 물어보지만 쟤네가 알 리가 있나... 신우 형이 내 쪽으로 다가오자 슬금슬금 뒤로 움직였지만, 결국 형이 나를 잡아 누르고, 얼굴을 내 얼굴 가까이 대며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너 왜 그래, 이산들? 어제 뭐 잘못 먹었어?"

으아... 형 얼굴이 가까이 오니 또 어제 생각이 난다... 머리를 도리질치며 형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형이 진짜 놀란 듯이 나를 놔준다.

"얘 진짜 스케줄 너무 힘들어서 정신 나간 거 아냐?"
"산들이 아직도 그러고 있어?"

진영이 형이 가까이 다가온다. 형들 둘이 옆에 있으니까 어제 본 게 더 선명해져 버렸다.

"으악!!!!!"

결국 다시 소리지르며 일어나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화장실로 달려가 얼굴에 차가운 물을 수십 번 끼얹고 나서야 조금 정신이 들었다. 아... 연습실로 돌아가기 싫다...

"형, 괜찮아요?"

거울에 찬이의 모습이 비친다. 진짜, 찬이라도 붙잡고 울고 싶다. 그래도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해 본다.

"괜찮아. 금방 다시 연습실로 갈게."
"아녜요. 어차피 형 오늘 상태 너무 안 좋다고, 차라리 다들 일찍 들어가서 쉬고 내일 아침 일찍부터 다시 연습하자고 그래서 형한테 알려주러 왔어요. 형, 진짜 어디 아파요? 스케줄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 거예요?"

다정하게 이마를 짚어주며 "열도 좀 있네"하는 찬이가 너무 고마워서, 갑자기 내가 아는 세상이 다 뒤집어진 것 같은데 찬이는 예전과 똑같아서, 눈물이 날 만큼 안도했다.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찬이가 어깨에 팔을 두르고 토닥여 준다.

"형, 오늘 오랜만에 한 잔 할까? 우리 맛있는 것도 먹고, 소맥도 한 잔 하고, 그래요. 어때요?"

고분고분한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찬이가 있어서 너무 고맙다.








오랜만에 다이어트고 뭐고 삼겹살을 원없이 먹으니 좀 살 것 같다. 내가 가뜩이나 요즘 잘 못 먹어서 예민한데 엄청난 쇼크까지 받아서 오늘 더 멘붕 상태였던 거다. 소맥까지 몇 잔 걸치니 아무려면 어때? 라는 마음으로 다 놓게 된다. 물론 내일 다시 멘붕이 와 또 오늘 같은 하루를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려면 어때?

말없이 고기를 구워주던 찬이가 내 빈 잔을 다시 채운다. 그러고 보니, 내가 몇 잔을 마셨지? 좀 어질어질한 것 같기도... 아, 취하면 안 되는데... 취해서 내가 하면 안 될 말까지도 해버리면 안 되는데... 아무리 찬이라도 어제 본 얘기를 해서는 안 되는데... 그런데... 술이 들어가니까 너무 기분이 좋다.

"형, 이제 말해봐요. 무슨 일 있었어요?"

아... 말하고 싶다. 그래도 말하면 안 돼.

"아니? 아무 일도 없었는데?"
"내가 형을 안 지가 몇 년인데 그런 거짓말을... 무슨 일인데요? 나한테 말하면 안 되는 거예요?"

내가 이걸 어느 누구한테 말 할 수 있겠냐? 아직도 눈만 감으면 그 생각이 나서 미치겠는데... 의자에 앉아 있는 신우 형이 갑자기 옆에 서 있던 진영이 형의 허리에 팔을 감아 끌어당기더니, 진영이 형이 신우 형의 목에 팔을 감고 고개를 숙여서... 으아... 정말... 무슨 고장난 필름처럼 눈만 감으면 그 장면이 계속 리플레이된다.

서둘러 다시 원샷하고 소주병 쪽으로 손을 뻗었다. 찬이가 내 손을 치우고 내가 좋아하는 비율로 소맥을 다시 만들어준다.

"형, 내가 지금 뭔가 알 거 같기도 한데,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게 아니면 괜히 형한테 안 해도 될 소리 하는 거라서 말 꺼내기도 참 애매하고... 그러니까 형이 그냥 얘기해 주면 좋겠는데..."

저런 말에 넘어가면 안 된다. 지금 유도신문하고 있는 거다. 불판에서 삼겹살 몇 점을 더 집어서 한꺼번에 입에 쑤셔넣었다.

"형이 말 안하겠다면, 뭐, 어쩔 수 없지.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는 얘기할 수 있어요? 신우 형 불러요?"

컥. 안 돼. 절대 안 돼.

"으억. 우어 우어어."
"뭐라구요?"

눈은 순진한 양을 하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데, 와, 저 천사 같은 녀석이 저렇게 사악해 보일 수도 있구나, 싶어 새삼 찬이가 무서워졌다.

"흠... 무슨 일 있었는지 알았어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형."

뭐? 내가 뭘? 뭘 알려줬다는 거야?








어제 겪은 멘붕에, 오늘 하루종일 두근거리던 심장에, 오랜만에 마신 술까지 겹쳐서 평소보다 훨씬 빨리 취해버렸다. 결국,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날 찬이가 집까지 부축해 데려왔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숙취해소 음료까지 한 병 먹여줬다.

그래도 결국, 너무 급하게 먹고 마신 탓에, 아까운 삼겹살을 다 쏟아내고야 말았다. 그래도 그러고 나니 속이 좀 편해졌고, 머리도 좀 맑아졌다. 찬물로 입 안을 헹구고 나와, 다시 소파에 쓰러지듯 앉았다.

"속은 좀 괜찮아요?"
"너 아직 안 갔어?"
"형한테 할 말이 있어서."

또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는 거다. 다시 토할 것처럼 하면 그냥 가겠지, 싶어 헛구역질을 하며 일어서려는데, 찬이의 말에 다시 주저앉았다.

"형들 사이 알게 된 거죠?"

놀란 눈으로 찬이를 쳐다봤다. 쟤가 가끔 신내린 것처럼 저렇게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일을 알아낼 때가 있는데, 지금은 진짜 솔직히 좀 무서워졌다. 그래서 부정할 생각도 못 했다.

"어... 어떻게 알았어?"
"형이 오늘 신우 형이랑 진영이 형만 보면 으악 거리며 도망다니길래, 설마, 형도 알게 됐나? 생각했는데, 아까 신우 형 부른다는 얘기에 삼겹살 튀겨가며 싫다고 그러는 거 보고 확신했어요."

진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하는데 찬이가 점점 더 무서워진다.

"너도 알고 있었어?"
"나 안 지 한참 됐는데... 한, 3년?"
"뭐?"

어질거리는 머리를 양손으로 잡으며 머릿속을 정리하려 애썼다.

"넌 어떻게...?"
"그 때 신우 형이랑 나랑 방 같이 썼잖아요. 분명히 형 잠든 거 보고 나도 자다가 한밤중에 깨어보면 방에 없고, 다음날 어디 갔다왔냐고 그러면 드라이브 갔다고 그러는데, 왠지 의심쩍고, 뭐, 좀 그런 게 있었어요. 형은 몰랐어요? 진영이 형이 한밤중에 어디 가고 그러는 거?"
"전혀 몰랐는데?"

찬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뭐, 그러다가 하루는 신우 형 차를 얻어탔는데, 음류수칸에 마시다 남은 음료수병이 있더라구요. 그거 신우 형이 싫어하는 거라서, 이거 뭐예요, 하고 물으니까 형이 완전 허둥대면서 그냥 한 번 먹어본 거라고 얼버무리더라구요. 그런데 다음날 진영이 형이 그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 거예요. 요즘 그거에 완전 꽂혔다고, 매일 그것만 마신다고. 뭐, 그런 작은 일들이 여럿 겹치니까, 그냥 알겠더라구요. 솔직히 형들 자세히 보면 완전 허술해요. 아직까지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한테 안 들킨 게 용할 정도로."

찬이가 너무 차분해서 오늘 하루 생난리를 치고 다닌 내가 왠지 멋쩍어진다. 그래도... 난... 좀...

"넌... 형들이 그런 게... 아무렇지도 않아?"
"나도 형이 겪은 멘붕 3년 전에 다 겪었고, 바로 형도 일 년 전에 다 겪었고, 뭐, 지금은 해탈한 상태랄까."

두번째 쇼크다. 진짜, 오늘 내 심장이 남아나질 않는구나.

"뭐야, 차바로도 알아?"
"내가 그랬잖아요, 아직 다른 사람들한테 안 들킨 게 용하다고. 그런데 형들이 약간 우리랑 있을 땐 경계심을 풀어서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 다른 사람들한테서 이상한 얘기는 안 나오는 거 보니까."

덤덤한 찬이 때문에, 나도 모르게 용기를 내 솔직한 내 마음을 말했다.

"난... 솔직히... 좀... 뭐랄까... 이상해."
"꼭 엄마 아빠가 애정행각 하는 거 본 것처럼 막 오글거리고 그러지 않아요?"
"그것도 그거지만... 형들 둘 다... 남자잖아... 뭔가... 이상해... 부자연스럽고... 좀... 그래..."

찬이가 날 빤히 쳐다본다.

"나도 솔직히 처음엔 좀 그랬는데, 생각해 보니까 형들이 너무 불쌍한 거예요. 맨날 우린 한 가족이라고, 우린 서로에게 비밀 없이 모든 걸 말하자고 얘기하는데 정작 형들은 우리한테 이런 얘기 못 털어놓잖아요. 형들은 지금 서로 말고는 기댈 데도 없어요. 그래서 불쌍해요."

저렇게 말하는 찬이가 다시 보인다. 나는 형들의 모습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이 이상하다, 남자끼리 왜 저러냐, 였고, 두번째로 든 생각은, 그래, 이기적이지만, 이게 알려지면 우리 팀은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리 팀에게 피해가 가는 거 아냐, 하는 걱정이었다. 가끔 찬이는 우리 중에 가장 어른스럽다.

"그리고 우리 말고 형들 편 해 줄 사람이 없잖아. 부모님은 이해 못 하실 거고, 우리가 뭘 해도 좋아해주는 팬들도 정작 이게 알려지면 과연 형들 편 들어줄까요? 결국, 형들한테는 우리밖에 없어요. 난 우리 형들 다 너무 사랑하니까, 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해도 형들 편 해주려고. 그냥, 내 마음은 그래요."

내 마음은 어떤 거지? 난, 지금 뭘 어떻게 하고 싶은 거지?

"선우는 뭐래?"
"형도 뭐, 처음에는 좀 그랬지만, 지금은 형들 둘이 귀엽다고, 막 둘이 그런 사이인데 아닌 척하는 게 귀엽대요. 그래서 요즘 툭하면 놀리잖아요. 뭐 그럴 상황만 생기만 둘 엮고, 형들이 어색하게 굴면 왜 그러냐고 놀리고. 우리한테 먼저 말 안 해준 게 괘씸하다고."
"걔는 어떻게 알았대?"
"형은 신우 형네 집에 놀러갔다가 뭘 봤다나? 그래서 요즘 신우 형이 우리들 다 형 집에 못 놀러오게 하잖아요. 예전엔 안 놀러온다고 뭐라고 하더니. 하여튼, 둘이 점점 닮아가는지, 둘 다 완전 헐랭해."

한꺼번에 너무 많은 걸 알게 되니, 가뜩이나 아까 술 마신 것 때문에 머리가 울리는데, 이제 어질거린다.

"난... 모르겠어... 이제 뭘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그냥 계속 모르는 척해주면 되죠, 형들이 말해 줄 때까지. 만약 형들이 평생 비밀 하겠다면, 뭐, 계속 모르는 척하면 되고. 그냥, 평소처럼만 하면 되요, 형. 다 괜찮을 거예요. 걱정 마요."

찬이의 말에, 진짜 다 괜찮아질 것 같아서 생각하는 걸 그만두었다. 솔직히, 골이 너무 울려서 더 이상 뭘 하고 싶지 않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해야 되는지 확실하진 않지만, 형들이 이해되지도 않고 마음 한구석엔 조금 께름칙한 느낌도 있지만, 그래도 형들이 우리 팀 멤버들이고, 내가 제일 믿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우선, 거기부터 시작하면 된다.

찬이가 집에 돌아간 뒤 침대에 누웠지만, 머리가 아프고 졸리고 속이 쓰린데도 정작 잠이 오질 않는다. 내일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 잘 모르겠어서, 내가 이렇게 속좁고 이기적인 인간인 데 대해 실망스러워서, 앞으로 어떤 미래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지 불안해서, 그렇게 한참을 잠들지 못했다.








나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연습을 하기로 했는데, 결국 나 때문에 또 늦춰지게 됐다. 아침에 도착하자마자 한 번 더 쏟아내고, 연습실 한쪽 소파에 내가 퍼져버렸기 때문이다. 이게 아주 군기가 빠졌다고, 매니저 형한테 진짜 제대로 혼날 뻔한 걸 신우 형이 구해준다.

"애가 오죽하면 그러겠어요? 올해 들어 쉰 날이 손에 꼽을 정도인데, 애들도 스트레스는 풀고 살아야죠. 형도 맨날 힘들다고 그러면서 애들은 안 힘들겠냐구요. 오늘은 그냥 연습만 하는 날이니까 좀 쉬고 이따가 다시 해요, 형."

갑자기 눈물날 만큼 고마워진다. 난 어제 형에 대해 안 좋은 생각 참 많이 했던 거 같은데, 이렇게 내 편 들어주는 형을 보니까 너무 감동이다.

찬이가 자판기에서 뽑아온 차가운 음료수캔을 이마에 대고, 눈을 감은 채 잠시 쉬다가 어느새 잠들었나 보다. 눈을 떠보니 연습실이 비어 있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넘었다. 나 빼놓고 다 점심 먹으러 간 것 같다. 배신감에 몸을 일으키는데, 다시 어질거린다. 그냥 안 일어나는 게 낫겠다. 다이어트도 되고, 좋지, 뭐.

다시 눈을 감고 쉬는데 연습실 문이 열린다. 실눈을 뜨고 보는데 신우 형이다. 형도 요즘 다이어트 중이라 닭가슴살만 먹는다더니,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안 갔나 보다. 형이 내가 누워있는 소파 쪽을 힐끔, 보더니 방 한쪽 구석 거울에 기대 앉는다. 이 소파가 평소에 형이 누워있는 데라서, 딴 때 같았으면 바로 날 내쫓고 형이 와서 누웠을 거다. 오늘 그래도 내가 상태 안 좋다고 배려해주는 게 고마웠다.

형이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기 시작하는데 다시 연습실 문이 열리고 이번엔 진영이 형이 들어왔다. 형 역시 내 쪽을 쳐다보길래, 눈을 질끈 감고 자는 척했다. 내가 자는 걸 확인하고 진영이 형이 신우 형 옆에 앉는다. 둘이 살짝 기대 앉아 이어폰을 나눠끼고 노래를 들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다. 그러고 보니, 둘이 앉은 자리가 딱 연습실 들어왔을 때 사각지대에 걸리는 곳이다. 누가 들어오면 서둘러 떨어지려고 일부러 저렇게 자리잡고 앉았나 보다. 둘이 얘기를 나누면서도 계속 문 쪽을 확인한다.

그러는 형들이 찬이 말처럼 불쌍하고, 선우 말처럼 귀엽다. 서로 저렇게 좋아 죽으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어색한 척, 안 친한 척을 하고 있는 게 불쌍하고, 그게 허술해서 이렇게 결국 우리 셋한테 다 들킨 것도 귀엽고, 정작 우리들은 모를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도 귀엽다. 찬이 말대로 형들이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은 우리밖에 없으니까, 우리라도 든든한 기둥이 되어줘야지, 하고 생각한다. 나도 좀 더 철이 들었나보다.

그래도, 형들이 직접 말해준 게 아니니까, 내가 받은 쇼크에 이자까지 붙여서 갚아줘야지. 큰 소리로 기지개를 켜며 몸을 뒤척였다. 형들이 화들짝 놀라서 떨어지더니, 내 쪽을 보고 내가 다시 잠든 것 같아 보이자 다시 붙어앉는다. 오리 뭐라고 궁시렁대면서. 흥. 그러시겠다 이거지? 다시 한번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이번엔 옆으로 틀었다. 형들이 또 화들짝 놀라서 아예 일어났다가 앉는다. 왜 차바로가 형들을 놀리는지 이제 알겠다. 아, 이거 재미들리면 큰일인데. 한 번 더 하려다 참는다. 뭐, 형들 놀릴 시간은 많이 있으니까, 어차피 평생 볼 사람들이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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