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스케줄표도 뭔가 빽빽이 적혀 있다. 특히 일본스케줄이 진짜 장난이 아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이벤트 행사가 있다. 아무리 작년에 팬들을 기다리게 한 만큼, 올해는 열심히 달리자, 라고 말은 했지만, 이건 진짜 인간적으로 좀 아닌 것 같다.

"와, 진짜. 어떻게 쉬는 날이 하루도 없지?"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찬이가 내 생각을 말로 표현한다. 아무래도 다섯명이 거의 10년째 같이 있다보니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비슷해지고 있다. 물론 이 스케줄표를 본다면 생판 모르는 남도 똑같은 말을 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자주 못 가니까."
"그래도 그렇지, 저건 너무하지 않아요? 산들이 형 요즘 목도 안 좋은데."

아이구, 우리 똥개. 제일 먼저 하는 게 형들 걱정이다. 기특해서 엉덩이를 토닥여준다. 녀석이 앙앙 거리며 치대다 간다. 가끔 찬이를 보면 진짜 강아지 꼬리가 살랑살랑거리는 게 보이는 것 같다. 하는 짓이 예쁜 막내다. 건강이 제일 걱정되는 건 어린 나이에 무리하게 참고 활동하다 신장 적출수술까지 받은 저인데도 형들 걱정을 제일 먼저 하는게 예쁘고, 안쓰럽다. 너무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이런 면에서 너무 빨리 철이 들었다.

그나저나, 진짜 산들이도 목이 안 좋은데, 괜찮으려나... 가수가 성대결절 한 번 오면 회복하기 너무 힘든데, 작년에 진짜 너무 목을 혹사시켜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나름 관리를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애가 잘 먹어야 몸도 빨리 낫는 법인데, 다이어트를 항상 해야 되니까. 녀석도 안쓰럽다. 솔직히 안쓰럽지 않은 녀석이 없다.

작년 예능 프로그램에서 말실수 하고 데뷔 이후 가장 많은 욕과 악플을 받은 뒤 뭔가 다 조심스러워진 차바로 녀석도 안쓰럽고, 드라마 촬영에, 앨범 작업에, 하루하루를 일년처럼 사는 진영이도 안쓰럽고, 다 걱정된다. 이래서 내가 엄마 소리를 듣는 거다.

그나저나... 일본 스케줄이라... 빡센 일정이 아니라도 일본 스케줄은 늘 부담이 된다.

원래 아이돌이라는 게 결국은 직업이다.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해야 할 업무가 있듯이, 우리도 해야 할 일이 있다. 이미지 관리도 해야 하고, 팬 서비스도 해야 하고, 늘 완벽한 공연에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무리 팬들이 우리를 좋아해줘도, 결국 우리의 모습을 100% 보여줄 수는 없다. 적당히 포장하고, 적당히 가리면서, 팬들이 보고 싶어하는 모습만을 보여주는 게 우리 일인 거다. 그 중, 하기 싫은 것도 당연히 있다. 하지만 팬들을 위해서 싫은 것도 참고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게 맞는 거다. 주는 거 없이 받기만 하는 건 이 세상에 없다.

팬 서비스 중 솔직히 제일 좀... 뭐랄까... 부담되고 민망한 건 커플링에 관한 거다. 솔직히 의식하고 하는 건 너무 민망하다. 뭐, 다른 여자에게 뺏기느니 너희끼리 사겨, 라는 게 커플링의 기본이라고 누구한테 들은 기억은 있지만, 그래도, 같은 팀 멤버고, 친동생같은 애들이니까... 그래도 우리 애들이 다 워낙 치대고 앵기고 스킨쉽 하는 거 좋아하는 애들이니까, 팬들 의식 안 하고 지들 마음대로 해도 팬들이 좋아해주니 다행인 것 같긴 한데... 문제는 진영이와 나다.

언제부턴가 둘 사이가 어색해졌다. 뭐, 솔직히 말하면 그 어색함의 이유 중 하나는 나다. 진영이에 대해 약간, 아니, 좀 많이 열등감을 느낀 것 같다. 같은 나이인데, 진영이는 늘 나보다 한 걸음 빨리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게 참 존경스러운 점이지만, 같은 팀 멤버로서, 게다가 동갑내기로서, 늘 비교 당하는 입장에서 뒤에서 따라가는 사람은 참 재미없는 상황이다. 어딜 갈 때마다 나는 맏형인데 진영이가 리더고, 둘 다 곡을 쓰는데 진영이 곡이 타이틀 곡이 되고, 늘 "그게 서운하지 않으세요?"란 질문을 듣는데, 좋은 얘기도 한 두 번이지, 안 서운했어도 서운한 감정이 들겠다. 괜히 그런 얘기들 때문에 더 어색해진 것도 있다. 물론, 그게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어쨌든, 문제는 처음 일본에서 데뷔했을 때, 우리 이미지를 아빠, 엄마, 그리고 아들 셋으로 정했다는 거다. 물론, 원래 성격도 그렇고, 팀 내 역할로 봤을 때도, 지어낸 얘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원인이 되어서, 일본에서는 진영이와 나를 엮는 게 당연시되어 버렸다. 아예 팬들은 우리 둘을 부부라고 부르니까. 그래서, 일본 스태프들한테, 그런 류의 팬 서비스를 해 주면 팬들이 참 좋아할 거다, 라는 얘기를 늘 넌지시 듣는다. 그래서 일본에서 이벤트를 할 때마다, 일부러 다른 애들 시켜서, 아니면 대본으로, 그런 상황을 만든다.

처음엔 괜찮았다. 팬 서비스의 일부분이니까, 이것도 우리 일이니까, 라도 생각한 것도 있고, 어차피 친했으니까 서로 좀 민망해도 나중에 웃어넘기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런데 이게 어색해진 후에도 계속 해야되니,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게 너무 어려운 거다. 요즘은 서로 어깨 한 번 툭 치는 것도 큰 맘 먹고 해야 되는데, 대본대로 다정한 척하는 게, 그것도 연기가 아닌 것처럼 보여져야 하는 게, 쉽지가 않다. 그래서 일본 스케줄이 잡힐 때마다 진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간다.

그런데 거의 열흘동안 하는 스케줄이라니. 하... 벌써부터 걱정이다.

"연습 시작하자."

내가 스케줄표를 보며 고뇌에 빠져 있는 동안, 애들이 다 모였나 보다. 어차피 이미 벌어진 일, 뭐, 걱정해봐야 소용 없으니까. 뒤돌아서다 진영이와 눈이 마추쳤다. 언제 그랬냐는 듯, 둘의 시선이 엇갈린다. 정말, 너무 힘든 일정이 될 것 같다.








역시, 일정이 너무 빡빡하다. 매일매일, 어디를 가도, 똑같은 루틴을 따르고, 똑같은 말을 하고, 똑같이 미소지어 보인다. 그래도 팬들에게는 항상 진심을 담아 대하도록 노력하는데, 이게 매일매일 계속되니 이 상태로 얼굴이 굳어질 것 같다. 그래도, 멀리서 우릴 보러 적지 않는 돈을 내고 온 팬들인데, 게다가 자주 오지도 못하고, 말도 통하지 않는데도 늘 항상 기다려준 고마운 팬들인데, 내가 더 노력해야지, 하고 계속 마음을 다잡는다.

토크이벤트를 하면 늘 연애에 관련된 얘기가 나오길 마련이다. 멤버 중 여자친구로 누가 좋아요? 라는 질문... 항상 듣는 질문에 항상 다른 대답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일본에서 진영이와 내 대답은 정해져 있다. 우리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팬들이 내 차례 때는 진영이 이름을, 진영이 차례 때는 내 이름을 외치곤 한다. 그런 팬들의 마음에 맞춰주는 것도 팬 서비스니까, 최대한 진영이와 다정한 모습을 연출해 낸다. 팬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위안을 삼는다.

결국, 일본에서의 마지막 스케줄까지 다 끝났다. 내일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마지막 생방송에서 맥주 한 모금씩 마신 녀석들이 뭔가 아쉬운가 보다. 하긴... 일주일 넘게 이어지는 고된 스케줄이 드디어 끝났다는 해방감에, 맥주 맛까지 봤는데, 여기서 끝내긴 아쉽겠지. 결국, 새벽 2시가 다 돼가는 시간에 찬이 호텔방에 모여 다 같이 한 잔 더 하기로 했다.

이끄는 대로 스케줄을 하러 다니는 우리보다는 우릴 챙겨야 하는 스태프들이 더 힘든 법이다. "너희는 피곤하지도 않냐?" 면서 다들 자러 갔다. 결국, 우리 다섯만 남았다. 어차피 술을 못 하는 나라서, 나도 먼저 자러 가려 했는데, 졸지에 우리 멤버들만 남으니까 빠지기 좀 그렇다. 가뜩이나 애들 술자리에는 자주 끼지 못해서, 좀 아쉬울 때가 있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오늘은 그냥 회포를 푸는 자리니까, 나도 결국 그 자리에 꼈다. 편의점에서 급하게 공수해 온 맥주캔과 치킨을 앞에 두고, 우리만의 조촐한 파티를 시작했다.

어차피 몇 시간 후면 비행기를 타야 하니까, 아예 밤을 새고 가자며 동생 셋은 제대로 신났다. 다들 솔직히 무리한 스케줄이 걱정됐을 거다. 게다가 찬이는 아프고, 산들이도 기침이 심한 상태에서 시작된 일본 스케줄이라 다들 겉으로는 표현 안 해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속으로는 불안했을 거다. 그런데 아무 탈 없이 끝났으니, 비행기고 뭐고, 다음날 또 해외스케줄을 가기 위해 출국해야 하는 사실도 잊고, 조금은 풀어지고 싶은 거다. 그런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나라, 평소 때처럼 잔소리하지 않고 즐겁게 노는 애들을 내버려두었다.

빈 맥주캔과 치킨 뼈가 점점 쌓인다. 다들 웃고 즐겁게 떠드는 가운데, 조금 전부터 진영이가 조용하다. 진영이 쪽을 보니 어느새 잠들어 있다. 술이 센 진영인데, 역시 피곤함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내 시선을 따라 애들도 진영이를 본다.

"아이고, 우리 형 많이 늙은가 봅네, 이거 몇 개 마셨다고 뻗었노?"
"역시 세월은 못 이기는 거야."
"저렇게 쭈그리고 자는 거 보니 안쓰럽다."

애들의 장난섞인 말에 나도 모르게 진영이 편부터 든다.

"너네도 일 년만 더 살아봐라, 체력이 이만큼 버티는 것도 기적이다."
"형들이 해마다 그 얘기 하는데, 해마다 우린 괜찮거든요? 그냥 형들이 둘 다 할배인 걸로."
"이것들을 그냥..."

아프지 않게 주먹질을 몇 번 하니 다람쥐랑 오리가 엄살을 부린다. 물론 우리 똥개는 때리지 않는다. 우리 예쁜 막내, 때릴 데가 어딨다고?

진영이 옆으로 다가가 애를 일으키려는데 동생들이 말린다.

"에이, 그냥 여기 재워요, 형."
"그래요, 몇 시간 후면 일어나야 하는데, 뭐."
"우리도 밤새 놀 거니까 침대 하나 내줘도 상관없어요."
"그래도, 괜히 너네도 신경 쓰일 거고, 얘도 시끄러워서 깰까 봐... 그냥 내가 방까지 데려다 줄게. 어차피 나도 피곤하니까 내 방 가서 자려고."

역시 형들이 늙어서 그런다고, 서로에게 우린 저렇게 늙지 말자고 하는 다람쥐와 오리에게 결국 주먹질을 한두 번 더 하고 진영이를 부축해 찬이 방을 나섰다. 애가 축 처졌는데도, 가볍다. 이번 앨범 활동하면서 살이 더 빠진 것 같다.

몇 걸음 떼지 않아 진영이와 산들이 방에 다다랐다. 산들이에게 받은 카드키로 문을 열고, 진영이를 조심스레 부축해 침대까지 데려간다. 침대 둘 다 어지러져 있어서, 뭐가 누구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가까운 침대에 진영이를 눕혔다. 옷이 불편할까 봐 단추를 풀어줄까, 생각하지만, 막상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자는 얼굴을 잠시 들여다보다, 그런 나에게 화들짝 놀라 서둘러 이불을 잘 덮어주고 뒤돌아선다.

"동우야."

나지막히 부르는, 저 입에서 나오는 내 이름이 낯설다. 언제부턴가 인간 정진영, 신동우가 아닌 B1A4 진영, 신우로만 살아왔다. 저 이름을 부르는 거 보니, 진짜 많이 취했나 보다. 잠꼬대하는 것 같다. 다시 나오려는데, 진영이가 또 부른다.

"동우야."
"왜."
"우리, 잘 하고 있지?"

돌아설 수가 없다. 진영이 얼굴을 볼 수가 없다.

"그래."
"우린 아직 갈 길이 머니까."
"그래."
"우린 날아야 하니까. 이제 겨우 땅에서 발을 떼고 날기 시작한 거니까."
"그래."

따로 할 말이 없다. 어차피 내일이면 진영이도 이런 말 한 걸 잊어버릴 거다.

"아직 하늘 끝까지 날아오르려면 갈 길이 먼데, 있는 짐을 다 내려놓고 날아야 더 빨리, 더 높이 날 수 있는 거잖아."

내가 몇 년 전에 했던 말들을 나에게 고대로 돌려주고 있다. 진짜, 취한 게 맞는지 순간 의심스럽다.

"그러니까, 나중에, 아주 먼 나중에,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가 포기한 거, 우리가 희생한 거, 다 그만큼 가치가 있을 거야. 그렇지?"

내게 하는 말인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인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진영이 목소리가 작아진다. 그렇게, 진영이는 더 이상 말이 없다. 한참을 그 자리에 못박힌 듯 서 있던 난 도망치듯 내 방으로 돌아갔다. 문을 닫고, 문에 기대 서서 눈을 감았다. 어느 누구에게도, 내 자신조차에게도 차마 꺼낼 수 없는 마음 속 내 진심을, 창고 한 구석에 처박아놓은 앨범 마냥 잠시 꺼내 들여다본다.

처음엔 다 좋았고, 다 신기했다. 우릴 좋아해주는 팬들이 생기는 게 좋았고, 점점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게 뿌듯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1위를 하고부터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 높이, 더 멀리 날고 싶다는 생각. 처음에는 그저 날아보자, 하는 마음으로 만든 우리 팀의 구호가, 진짜 마법의 주문인 양, 마치 우리 모두 최면에 걸린 것처럼, 정말로 날고 싶어졌다. 그래서, 개인의 감정은, 어차피 어떻게 뭘 할 수도 없는 사사로운 감정들은 다 무거운 짐을 덜어내는 것마냥 묻어버리고, 땅에 버려두고 날아보기로 했다. 온전히 B1A4의 진영, 신우로만 살아보기로 했다.

원래 아이돌이라는 게 괜찮지 않을 때도 괜찮은 척하는 데는 선수인지라, 대부분 그 변화를 잘 몰랐을 거다. 하지만, 같이 활동하는 멤버들을 속이는 건 또다른 얘기다. "형들 왜 이렇게 어색해요?"란 질문이 애들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지만, 절대 그런 거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우리도 사람인지라, 늘, 항상,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 우리 둘 사이가 어색한 게 팬들한테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팬들과 소통을 제일 잘하는 찬이가 팬들이 하는 얘기를 전해준 것도 있다. 그래서 이번 앨범 활동부터는 좀 더 자연스럽게, 좀 덜 어색하게 행동하자, 하며 스스로에게 매일매일 되뇌이며 활동했다. 완전히 예전처럼은 돌아가지 못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편해진 것 같다. 아니, 적어도 남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래서 일본에서 하는 스케줄이 부담스럽다. 일본에서는, 팬 서비스라는 명목 하에, 진영이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으니까. 좀 더 다정하게 대해도, 좀 더 손을 뻗어보아도,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곳이니까. 그런 내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내 마음이, 슬프고, 아프니까, 결국 여기 오는 게 부담스러운 거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오는 걸 기다리게 된다. 모순적이다.

하지만, 우린 아직 갈 길이 머니까. 아직 더 높이 날아야 하니까. 우릴 날지 못하게 땅에 묶어버리는 족쇄가 있다면, 어떻게든 풀어버리고, 어떻게든 던져버리고 날아야 하는 게 맞는 거겠지. 더 높이 날아오를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 따윈 잠시 접어두는 게 맞는 거다. 그러니까, 우린 지금 잘하고 있는 거다. 그렇지? 그런 거지? 우리가 맞는 거겠지?






이슬실비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