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의 일기: 2013년 11월 17일

한 시간 후면 내 생일이다. 하지만 그래서 뭐? 싶은게 동우도 없이 생일 챙겨봐야 뭐하나 싶다. 그래서 늘 하던 것과 같이, 알바를 끝내고 11시가 넘어서 기숙사 방으로 향했다.

동우가 군대를 가버리고, 나도 진짜 될 대로 되란 심정으로 입대신청을 했는데, 운 좋게 바로 가게 되어서 현역으로 다녀왔다. 군대에 가 있는 2년 동안, 동우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 녀석이 진짜 나를 다시는 안 보겠다는 의지를 온 몸으로 피력하고 있는 거다. 나도, 그런 녀석을 굳이 보기 싫어서, 최대한 신경 끄고 살도록 노력했다. 군대의 좋은 점은 몸이 너무 피곤해 별다른 생각 없이 바로 잠들 수 있다는 거다. 어쩌다 보니 휴가도 한 번도 녀석과 겹치지 않아서, 고향에서도 녀석을 못 봤다. 오죽하면 어머니가 "너네 휴가 번갈아 나오기로 한 거니?" 하셨다. 그 정도로 진짜 그 녀석을 코빼기도 못 봤다.

이번 학기에 복학했는데, 그 녀석도 복학했다고 들었다. 역시 그 녀석을 본 적은 거의 없다. 기숙사 신청을 한 나와 달리 녀석은 자취방을 얻었다. 기숙사 안에서도 나와 마주치기 싫은 거다. 그렇게 날 만나기 싫어하는 애를 내가 억지로 뭘 어떻게 할 건 아니니까. 뭐, 듣는 수업도 겹치는 게 하나도 없고. 그래서 지금까지 캠퍼스에서 녀석을 멀리서 한 두 번 본 게 다였다.

방문을 열자 낯익은 게임기 소리가 나를 반긴다. 이번 학기에 룸메이트가 된, 나보다 2년 후배인 공찬식이는 정말 게임하러 학교 온 건지 하루종일 게임만 하고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녀석 전공이 게임공학과니까. 하지만 찬식이는 그렇다 치고, 매일 찬식이와 같이 게임을 하고 있는 이홍빈이는 수학과면서 왜 매일 여기 죽치고 있는지 모르겠다. 둘 다 수업 가는 걸 본 적이 없다.

"너네는 게임 하는 게 지겹지도 않냐?"
"어, 선배 오셨어요?"

홍빈이가 인사한다. 찬식이는 게임에 빠져 내가 온 줄도 모르고 있다. 녀석의 뒤통수를 아프지 않게 갈겼다.

"아이씨" 하며 돌아본 찬식이 때린 사람이 홍빈이 아니라 나이자 당황한다.

"어, 선배 왔어요? 빨리 왔네요."
"벌써 11시 넘었거든?"
"잉? 아까 다섯시였는데."

말하는 걸 보니 저녁도 안 먹고 게임했나 보다. 뭐, 게임기 주변에 널려진 과자봉지며, 책상 위에 놓인 붕어빵 봉지를 보니 배가 안 고플만도 하구나.

"선배, 찬식이 얘, 내가 알바 가기 전에 이 모습 보고 갔는데 돌아와 보니 그 자세 고대로 계속 게임하고 있더라구요."

홍빈이가 이른다. 하지만 뭐 혼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감탄사가 먼저 나온다. 대단한 녀석이다. 찬식이는 이번엔 홍빈을 보며 "넌 또 언제 왔냐?" 하고는 홍빈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게임에 집중하고 있다. 홍빈이가 어깨를 으쓱거리고 나를 쳐다보다 문득 생각난 듯 말한다.

"아, 선배, 내일 생일이라면서요. 미리 축하드려요."

그래도 후배라고 말이라도 저렇게 하니 기특하다.

"됐어. 이 나이에 생일은 무슨. 근데 어떻게 알았냐?"
"아, 어디서 들었어요."
"그래?"

그 때 갑자기 찬식이가 게임기를 끈다.

"야, 이홍빈, 너 네 방 가."
"와, 이거, 지가 오는 길에 붕어빵 사오래놓고. 이제 볼일 다 봤다, 이거지?"

하고 투덜거리면서 홍빈이가 나간다. 저래놓고 내일 또 올 거면서. 하여튼, 이 녀석들 관계도 참, 미스테리하다.

슬슬 씻고 자야지, 생각하면서 옷을 갈아 입으려는데 찬식이가 날 부른다.

"선배, 잠깐만 얘기 좀 할 수 있어요?"
"내일 하면 안 돼? 나 좀 피곤한데."
"지금 해요."

쟤는 가끔 참 종잡을 수 없다. 예의바른 것 같으면서도 가끔 이렇게 제멋대로 굴기도 한다. 고집도 센 녀석이라, 포기하고 녀석 옆 홍빈이가 앉아있던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할 얘기가 뭔데?"
"선배랑 동우 선배 혹시 사귀다 헤어졌어요?"

너무 놀라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다. 생각도 못 했던 질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뭐?"
"홍빈이는 둘이 사귀다 헤어진 거 같다는데, 난 아닌 것 같거든요? 그래서 물어보는 거에요."
"이거 웃기는 놈들이네. 내 뒤에서 뒷담화 했냐, 너네?"

생각하니까 열받는다. 둘이 나 몰래 내 얘기를 했다는 것도 열받는데, 그게 동우와 관련된 거라 더 화난다.

"우리 학교에 선배들 완전 유명하잖아요. 2학년 1학기까지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다니다가 갑자기 둘 다 군대가더니 이번 학기에 둘 다 복학해서 서로 내외한다고. 다들 부부싸움 했다, 사귀다 헤어졌다, 아니면 권태기다, 뭐 여러가지 얘기가 많아요."

어디서부터 화내야 될지 모르겠다. 저런 얘기가 나도는 것도 화나고, 그걸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고 있는 이 녀석도 정말 어이가 없다.

"홍빈이가 요즘 플스 4 사겠다고 열심히 알바하고 있는데요, 거기서 동우 선배도 알바한대요. 그래서 꽤 친해졌나 봐요."

뭐라 한소리 하려던 난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동우 얘기만 나오면 사고가 정지된다.

"홍빈이가 나랑 친구고, 내가 선배 룸메인 거 안 다음부터 동우 선배가 맨날 홍빈이만 보면 선배 어떻게 지내냐고, 잘 지내냐고 걱정을 그렇게 한대요. 오늘도 내일이 선배 생일인데 못 챙겨줘서 마음이 좀 그렇다고, 그래서 홍빈이한테 케익이라도 사서 갖다주라고 돈도 줬대요. 근데 케익가게 문이 다 닫혀서 오늘 못 사왔다고, 홍빈이가 담번에 그 돈으로 뭐 쏘겠다고 하더라구요. 동우 선배가 절대로 자기가 준 거라고 말하지 말랬다고."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지금 내가 무슨 얘기를 듣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그런데 전 선배가 동우 선배 얘기하는 걸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홍빈이는 둘이 사귀다 선배가 동우 선배 찬 거다, 그런데 동우 선배가 아직도 질척대고 있는 거다, 그러고, 내가 보기엔 동우 선배가 선배한테 고백했다가 차인 거 같거든요? 그래서 사실이 뭔지 궁금해서요."

점점 화가 치밀어오른다. 내가 왜 이 놈한테 이런 얘기를 들어야 되지? 지까짓 게 뭔데 저런 소리를 지껄이는 거지?

"그래서, 나랑 동우 관계가 너랑 홍빈이 안주거리냐? 그게 그렇게 재밌디?"
"아뇨. 하나도 재미 없어요. 홍빈이가 그러는데 동우 선배가 선배 너무 많이 좋아해서 불쌍하다고 하더라구요. 뭐만 해도 이거 진영이가 좋아할 텐데, 뭐만 먹어도 이거 진영이가 좋아하는 건데, 아주 눈물 나도록 안쓰럽대요. 선배 그렇게 다른 사람한테 상처주고 그러는 거 아니에요. 내가 지금 완전 오지랖 부리는 거 아는데요, 선배한테 이런 말 하는 거 진짜 싸가지 없는 일인 거 아는데, 오늘 선배한테 한 대 맞을 각오 하고 얘기하는 거에요."

진짜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다 날 것 같다. 상처받은 사람이 누군데 아무것도 모르는 이 어린 놈이 이렇게 쉽게 얘기하는 거지? 난 내가 12년동안 좋아했던 애를 포기하고 지금 진짜 죽지 못 해 살고 있는데, 어떻게 얘는 저런 표정으로 저런 말투로 나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있는 거지?

나도 모르게 의자에서 일어나 녀석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녀석은 별다른 표정변화 없이 나를 올려다본다.

"이 새끼가 오냐오냐 해주니까 아주 머리끝까지 기어오르네. 진짜 한 대 맞기 전에 입 다물어, 새꺄."

말을 내뱉고 돌아서는데, 도저히 억울해서 안 되겠다. 결국, 절대로 어느 누구에게도 하지 않기로 했던 말까지 해버렸다.

"그리고 거절 당한 건 내 쪽이거든? 그러니까 모르면 닥치고 가만히 있어."

갑자기 피곤이 밀려와 화장실로 씻으려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찬식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선배 혼자뿐인 거 같은데요? 진짜 동우 선배한테 거절당한 거 맞아요?"

저 새끼 진짜 오늘 죽지 않을 만큼만 팬다, 생각하고 돌아서는데 멈칫, 한다. 내가 그 때 동우한테 들었던 얘기가 뭐였는지 토씨 하나 안 틀리게 다 기억하는데, 분명히 거절당한 거 맞는데... 그런데... 갑자기 확신이 서지 않는다. 뭔가... 어딘가 이상하다. 뭔가가 어그러져 있는 느낌이다. 만약에 내가 그때 잘못 들은 거라면? 잘못 이해한 거라면? 갑자기 생각 못 했던 곳에 내려가는 계단이 있어서 허공에 발을 헛디딘 느낌이다. 뭔가 확실한 대답이 필요하다.

"홍빈이한테 동우 집 어디냐고 물어봐, 지금 당장."




동우의 일기: 2013년 11월 17일

피곤해 죽겠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이제 몇 분 후면 진영이 생일이라서 그렇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진영이 혼자 생일을 보냈을 텐데... 케익이라도 어디서 먹었으려나? 홍빈이가 잘 사다 줬겠지. 그런데 알바가 10시에 끝나서, 가게가 안 열려있었으면 어떡하지? 차라리 내가 아까 사다놓고 홍빈이한테 갖다주라고 할 걸. 이 생각이 왜 지금 났는지 모르겠다. 아... 이 멍청이.

자취방 침대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한 지 벌써 한 시간째다. 그냥 일어나서 레포트라도 쓸까? 그런데 그러기는 너무 귀찮다. 그냥 누워있다 보면 알아서 잠이 오겠지.

다시 뒹굴거리는데 갑자기 누가 쾅, 쾅, 세게 문을 친다.

"야, 신동우, 문 열어."

헉. 진영이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지? 벌떡 일어나 문 쪽으로 가려다 말성였다. 왜 온 거지? 혹시 나보고 눈에 띄지 말라고 뭐라고 하러 온 건가? 내가 지난번에 몰래 보던 거 들켰나? 아니면 뭐지?

"문 안 열어?"

혹시 홍빈이한테 무슨 얘기 들었나? 아니지, 아무 얘기 안 하기로 약속했는데 걔가 얘기했을 리가 없지. 그럼 도대체 뭐지?

"야, 나 추워."

진영이가 춥다는 말에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달려가 문을 열었다. 녀석이 별다른 말 없이 날 밀치고 들어왔다. 진영이가 방 전등 스위치를 켜서 눈이 부시다. 눈을 비비며 진영이가 자켓을 벗어 침대 위에 던져놓고, 방 안을 훑어보는 걸 아무 말 없이 쳐다봤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거, 진짜 오랜만이다. 심장이 다시 뛴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보다. 아, 진짜 위험하다.

진영이가 날 계속 쳐다본다. 아니, 거의 노려보고 있다. 손짓으로 나를 부른다. 나도 모르게 느릿느릿 녀석 앞으로 걸어갔다. 진짜, 여기 아닌 어디에라도 도망가고 싶다.

"너, 아주 동네방네 내 얘기를 하고 다닌다면서?"
"뭐?"

이홍빈이다. 아이씨, 이 의리 없는 녀석. 내가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것도 완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다닌다며?"
"응? 뭔 코스프레?"

진짜 모르겠다, 무슨 말인지. 진영이가 한 발짝 나한테 다가와 손가락으로 가슴을 찔렀다.

"네가 나한테 고백했다 차였다며? 내가 아주 몰인정하게 널 차버린 인간쓰레기라고 소문이 다 났다며?"
"뭐? 아냐. 무슨 얘기야. 절대로 그런 말 한 적 없어."

손사레까지 치며 아니라고 부정했다.

"그럼 너랑 나 사이에 진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네가 말해 봐."

아, 진짜 울고 싶다. 저 눈빛이 너무 무섭다.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날 밤 네가 나한테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 보라고. 지금 당장."
"나는... 난..."

그래, 까짓 거 한 번 차이나 두 번 차이나 그게 그거겠지. 아니, 오히려 아예 대놓고 싫다는 말을 들으면 단념이 더 쉽게 되겠지.

"네가... 내가 너 좋아하는 거 눈치챌까 봐... 그래서... 난... 내가 널 좋아하는데... 자꾸 그런 마음이 생기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너랑 계속 같이 있다가는 진짜 후회할 일 할 거 같아서... 그래서 같이 못 있겠다고... 그랬더니 네가 나가라고... 그래서... 난... 네가 내 마음 눈치채서... 나보고 나가라고 그래서... 내가... 그게..."

진영이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핸드폰이 "12시!"라고 친절히 알려준다. 진영이 생일이다.




진영의 일기: 2013년 11월 18일

동우네 집으로 가는 내내 머릿속에 온갖 생각들이 휘몰아쳤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지? 부터 시작해서, 동우가 날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에 대한 걱정, 아주 내가 내 무덤을 파고 있구나, 란 스스로에 대한 책망 등등, 머리가 터질 것처럼 오만가지 생각이 다 뒤엉키고 있다.

홍빈이가 알려준 주소에 다다르자 심호흡을 하고 문을 두드렸다. 분명히 안에 있는데 문을 열지 않는다. 그냥 갈까, 하다가 혹시나 해서 춥다고 하니 바로 열어준다. 역시 착한 녀석이다.

어두운 방 안으로 들어가 불을 켜고, 자켓을 벗어 침대 위에 던지고, 방 안을 훑어보았다. 역시 깔끔한 녀석이다. 정작 방 주인은 내가 그러고 있는 동안 날 쳐다보고만 있다. 날 보는 눈이, 저 표정이 이상하다. 당황한 거야 이해되지만, 저 표정은 당황을 넘어선 무언가다. 도대체 뭐지? 무슨 상황인 거지? 그 날 내가 들은 건 뭐였지?

녀석이 내게 다가오는데, 내 눈을 피하고 있는데, 뭔가 위화감이 느껴진다.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다.

일부러 농담섞어 녀석에게 따지는데, 녀석은 얼어붙어 있다. 내가 진심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우물쭈물, 자기가 나를 좋아하는데, 내가 눈치를 채고 저보고 나가랬다는 헛소리를 하고 있다.

힘이 빠진다. 허탈하다. 지난 2년 반 동안 갈가리 찢겨진 내 심장은 뭐고, 가슴앓이 하며 잠 못 든 밤들은 뭐고, 녀석이 보고 싶어 속으로 울며 지낸 날들은 뭐냔 말이다. 아주 둘이서 쌍으로 삽질을 한 거다.

아니, 이건 순전히 내 탓이다. 저 곰이야 워낙 눈치 없는 새끼니까, 저러는 게 십분 이해된다. 문제는 나다. 진짜로 눈새는 나였던 거다. 헛웃음이 난다.

더듬더듬 거리며 말을 끝내고 방바닥을 쳐다보던 녀석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갔다. 녀석이 뒷걸음질친다.

"너, 언제부터 나 좋아했는데?"

뭐라뭐라 웅얼거린다.

"크게 말해."
"언제부턴지는 잘 모르겠고... 확실히 안 건 대학교 와서..."
"대학교 와서 언제."
"그... 환영회 다음날... 잠에서 깼는데 네가... 내 팔 베고 자고 있었을 때..."

아... 그날... 녀석이 깨는 인기척에 자는 척하고 있었다. 녀석이 일어나서 자기 품에 잠든 날 보면 뭐라도 할까 봐. 그런데 아주 고이 베개를 머리 밑에 놔주고, 이불을 덮어주고 씻으러 가더라. 차려줘도 못 먹는다고 궁시렁거린 게 생각났다.

내 눈을 피하는 녀석에게 또 한 발짝 다가갔다. 녀석이 또 뒷걸음질친다. 결국, 녀석이 벽에 다다라 더 이상 갈 수 없을 때까지 녀석에게 다가갔다. 눈치 없고 둔한 곰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말을 안 하면 하나도 모르는 녀석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는데, 말하지 않은 내가 제일 잘못이 크다.

그걸 속죄하기 위해, 지난 2년 반 동안 결국엔 내 잘못으로 떨어져 있었던 우리에게 사죄하기 위해, 오늘은 한 번, 자존심 따윈 버리고 솔직해져 볼까.

한 발짝 더 다가가 내 눈을 피하고 있는 녀석의 고개를 잡고, 밑으로 잡아당겨 짧게 입맞췄다. 녀석의 눈이 동그래졌다. 녀석의 눈을 보며 나직히 말을 꺼냈다.

"난, 널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좋아했어. 네가 나 전학 온 첫날, 같이 교과서 보자고, 집에 같이 가자고 한 날, 그 날부터 널 좋아했어. 처음엔 이게 뭐지, 싶었거든? 우리 둘 다 남잔데... 그런데, 너무 좋아하니까, 그런 건 상관 없어지더라. 중학교 때, 너한테 관심 있는 여자애들 다 내 선에서 정리했어. 널 뺏기기 싫었거든. 고등학교 때 네가 사귄 여자애도, 너랑 친했던 주영이도, 다 질투나서 진짜 미치는 줄 알았어."

녀석의 눈이 점점 커진다. 입을 뻥긋거리는데,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귀여워 죽겠다.

"대학교에 와서, 널 어떻게든 꼬시려고 별짓을 다 했는데 네가 반응이 없는 거야. 그래서 점점 더 강도를 높여갔는데, 하루는 네가 방에 오더니 나와 있기 힘들다고, 네 마음이 안 되겠다고, 그러는 거야. 그 상황에서 내가 뭐라고 생각했겠어? 난 네가 내 마음을 눈치채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너보고 나가라고 한 거야. 정말 그런 거야. 너도 날 좋아할 거란 건 생각조차 못 했어."

손을 들어 녀석의 머리를 쓸어올렸다.

"미안하다. 네가 눈치 없고 둔한 걸 누구보다도 내가 제일 잘 아는데, 내가 차라리 솔직하게 다 말해버렸으면 되는데, 내가 자존심 세운다고, 어떻게든 네가 먼저 고백하게 하려고, 네가 먼저 나 좋아한 것처럼 만들려고, 내가 결국 일을 이 지경까지 만들었어. 그러니까, 용서해 줘."

지금까지 한 마디도 못하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두 팔로 날 꽉 안았다.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며 녀석이 작게 중얼거린다.

"고마워. 그렇게 오랫동안 나 좋아해 줘서. 내가 그만큼 더 너 많이 좋아할게. 그러니까, 나 눈치 없다고, 둔하다고 버리면 안돼."

동우의 품 안에 갇혔던 팔을 빼 허리에 둘러 꽉 마주 안았다. 귀여운 녀석. 내가 어떻게 널 버려. 네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심장을 이렇게 뒤흔드는데. 내 평생을 너를 좋아했고, 앞으로도 그럴 건데. 어차피, 너처럼 둔하고 눈치 없는 곰을 거둬줄 사람이 나 말고 누가 있겠어. 그러니까, 내가 평생 너 거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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