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의 일기: 2007년 5월 1일

동우와 다른 고등학교를 다닌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다. 나는 부모님이 원해서 외고로 왔고, 녀석은 그냥 집과 가장 가까운 고등학교를 갔다. 가뜩이나 야자다, 뭐다 해서 서로 얼굴 볼 시간도 없는데, 그래도 등교는 늘 같이 하자고 먼저 말해놓고 이 녀석이 지금 3일째 나를 피하고 있다. 도대체 뭐지? 오늘은 무슨 일인지 반드시 알아낼 거다. 그럴려고 내가 귀한 아침잠을 포기하면서 이 녀석을 지금 이 꼭두새벽부터 기다리고 있다.

아침 7시도 안 됐는데 녀석네 집 문이 열린다. 와, 날 피하려고 아주 발악을 하는구나.

녀석이 나오다 나를 보더니 멈칫한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이미 녀석이 감추려던 게 내 눈에 들어온 후였다. 녀석에게 뛰어가 얼굴을 잡았다.

"너 얼굴이 왜 그래?"

한 쪽 눈이 완전 밤탱이가 됐다. 멍이 좀 색이 빠진 게, 며칠 전에 맞은 건가 보다. 그래서 날 피했었구만, 이 녀석이.

"아... 그게..."

눈을 피한다. 거짓말을 잘 못하는 녀석이다. 특히 나한테는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당장 말해, 무슨 일인지."

결국 녀석이 다 털어놓았다. 덩치 좋은 녀석이라서 미리 밟아버리려고 하는지 일진들이 괴롭히고 있다는 거다. 뭐, 그렇게 말은 안 했지만 결국 그 얘기다.

"그걸 맞고만 있냐?"
"싸우는 거 싫어."

하, 저 녀석이 평화주의자인 걸 잊고 있었다. 이래서 이 녀석과 다른 학교로 가는 게 싫었는데.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녀석이라.

"너 고등학교 3년 내내 그렇게 괴롭힘 당하고 싶어?"
"아니."
"그럼 한 번 제대로 붙어서 애들 밟아. 그래야 3년 편하게 다닐 수 있어."
"진짜 싸우기 싫은데..."

지금 니 눈 꼬라지를 보고 그 소리를 해라,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너가 안 하면, 내가 한다."
"뭐?"
"내가 너 맞고 다니는 거 그냥 앉아서 보고만 있을 거 같아?"
"넌 싸움도 못 하잖아."
"그래도 가만히 맞고만 있는 너보다야 낫겠지, 이 미련곰탱이야."

녀석이 풀이 죽었다. 그래도, 저런 거에 맘 약해지면 안된다.

"명심해. 네가 안 하면 내가 할 거야. 알았어?"
"응."

약간 못미더웠지만 그래도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동우의 일기: 2007년 5월 4일

"어이, 청주불곰!"

방문이 덜컥 열리고, 진영이가 씩 웃으며 들어온다. 침대에 누워 랩탑으로 드라마를 보던 난 뻐근한 몸을 일으켰다.

"뭐야, 너 그 말 어디서 들었어?"
"청주에 사는 고딩 중에 그 이름 모르는 애 하나도 없을 걸?"

아... 설마 설마 했지만...

"청주불곰이래..."하며 녀석이 키득거린다. 얄밉다. 랩탑을 책상 위에 놓고 다시 누웠다.

"야, 좀 비켜봐."

녀석이 옆으로 와 어깨를 툭툭 친다. 아오, 나 여기저기 쑤시는 거 잘 알면서... 그래도 고분고분하게 침대 한 쪽으로 몸을 움직인다. 녀석이 침대 머리맡에 기대 편하게 앉는다.

"그래서, 형님 학교 다녀오는 동안 혼자 집에서 잘 놀았냐? 사고는 안 쳤고?"

아오, 진짜.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내가 애들 밟으랬지 반쯤 죽이랬냐?"
"전혀 그런 거 아니거든? 그냥 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한 명은 전치 3주 나왔다며. 괜히 청주불곰이 아니지."
"그 입 다물랬다."

녀석이 이제 대놓고 웃고 있다. 아, 진짜... 너무 얄밉다.

솔직히 애들이 뭐 돈 내놔라, 빵 사와라 할 때도 짜증나고 기분 나빴지만, 저러다 말겠지 싶어서 참았던 건데, 진영이가 너가 안 나서면 내가 나설 거야, 하니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졌다. 결국, 진영이에게 그 말을 들은 다음 날 일진 애들 셋이 한쪽 골목으로 끌고 갔을 때, 좀, 그냥 좀, 크게 싸웠다. 솔직히 사람 뼈가 그렇게 쉽게 부러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일부러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한꺼번에 세 명이 덤비니까, 나도 눈에 뵈는 게 없어서 그런 거다. 진짜다.

결국 그날 네 명 다 병원에 입원하고, 경찰서 조사에 선생님 상담에, 난리도 아니었다. 그래도, 애들이 워낙 유명한 일진이고, 내가 두 달 동안 애들한테 괴롭힘 당한 걸 다른 애들이 증언해 주고, 게다가 3대 1이었는데 걔네는 다 전치 1주 이상 나오고, 나는 다음날 바로 퇴원하고, 해서 걔네들도 어떻게든 이 일을 빨리 무마하고 싶어했었다. 다행히 우리가 싸운 골목 한쪽 3층에 사는 옆 학교 애가 그걸 다 핸드폰으로 찍어서, 내가 먼저 시비건 게 아니라 순전히 정당방위였다는 게 인정됐다.

그래도 학폭위에서 결국 정학 일주일을 받았다. 아 진짜, 그 세 명 중 한 명이 각목 들고 설치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심하진 않았을 거다. 나도 모르게 그걸 뺏다가 애 팔을 부러트렸다. 진짜 일부러 그런 거 아니다.

문제는, 그 동영상을 찍은 애가 인터넷에 올렸다는 거다. 며칠 사이에, '청주불곰이 화나면'이라고 올라온 동영상 조회수가 백만이 넘었다. 졸지에 나는 청주불곰으로 낙인 찍혔다. 아... 이제 얼굴 들고 다닐 수가 없다.

게다가 제일 열받는 건 이 녀석이다. 자기가 먼저 싸우라고 부추겨놓고, 매일 학교 끝나면 내 방에 와서 놀리고 있는 거다. 제발 청주불곰이란 별명은 못 듣길 바랐는데, 결국 저거까지 알았으니, 이거 진짜 평생 우려먹을 것 같다.

그래도, 녀석이 의리는 있어서, 퇴원하고 돌아온 날 멍든 데 달걀찜질도 해주고, 뻐근한 데 안마도 해줘서 진짜 눈물나게 고마웠는데, 고맙다는 말 취소다. 쳇. 그래도 엄마한테 집 밖으로 나가면 알아서 하라는 말에 며칠째 집에만 갇혀 있는데, 매일 늦은 밤에라도 찾아와 주니 고맙긴 하다.

"야, 내일 노는 날인데 어디 놀러 가자."
"나 외출금지인거 알잖아."
"아줌마가 내 말은 다 들어주시잖아. 내일 놀이공원 가자."
"그런 데 싫어하는 거 알면서."

사람들이 왜 돈 주고 그런 고문기계를 타는지 진짜 이해가 안 된다. 녀석이 잠시 조용하더니 갑자기 헤드락을 걸었다.

"어쭈, 이게 청주불곰이라고 지금 반항하는 거야?"
"아, 아파. 이거 놔."
"그래서, 갈 거야, 말 거야?"
"알았어, 갈게."

녀석이 이겼다, 라는 표정으로 팔을 푼다. 청주불곰이고 뭐고, 이 녀석한테는 평생 못 이길 것 같다. 아, 내일이 벌써부터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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