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상은 어둠이다. 그것도, 불이 켜지기 직전의, 어둠 속에 뭐가 숨겨 있을까, 하고 기대하게 되는 그런 어둠이 아닌, 칠흑같은 암흑이다. 어떠한 것도 없는, 공허함만이 가득한 그런 세상이다.

5년 전, 가족 소풍을 나섰다. 기분 좋게 출발한 것도 아니었다. 부모님은 늘 싸웠고, 누나는 등록금이 없어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 해 늘 불만이었다. 가난이란 것 때문에 가족 어느 누구 하나 행복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 역시, 하고 싶었던 건 음악공부였지만, 부모님이 음대에 보내 줄 형편이 되지 않았었기에, 그저 그런 인생 밖에 내게 주지 못하는 부모님이 싫었었다.

그래서, 가족 소풍을 가자는 말에 어느 누구 하나 반가워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우리의 의사는 묻지도 않은 채, 아버지는 불평하는 어머니와 누나, 나를 차에 태우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그것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을씨년스러운 날에, 우리가 서울로 이사오기 전에 살았던 청주로 놀러가자는 말 한마디만 하고, 아버지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나는 그 상황이 화가 나고 짜증나 아무하고도 말 섞기 싫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최대한 음악을 크게 틀고 있었다.

그러다 잠들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비명소리에 눈을 떴고, 운전하시는 아버지 뒷자리에 앉아있던 난, 차 앞유리를 통해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바깥을 보기 위해 고개를 옆으로 뺐다. 그 순간 앞에서 뭔가 검은 물체가 우릴 향해 달려왔고, 검은 어둠이 우리 차를 순식간에 삼켰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내 세상은 검게 변해 있었다.

졸음운전을 하던 트럭 운전사가 몰던 트럭이 우리 차를 깔아뭉갰다고 한다. 그 사고로, 난 약간의 뇌손상을 입었다. 그 외에는 가벼운 외상 뿐, 신기할 정도로 다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약간의 뇌손상으로, 시력을 잃었다. 그리고, 부모님과 누나는 목숨을 잃었다. 졸지에 난, 검은 세상 속에 혼자 남겨졌다.

물려줄 게 가난밖에 없었던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꽤 큰 액수의 생명보험금을 남기셨다. 돈을 얻었지만, 가족을 잃었고, 시력을 잃었다. 예전에는 돈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이제 내게는 돈밖에 없다. 내 인생은, 이런 아이러니만이 남겨진 검은 세상이다.








어차피 눈을 감으나 뜨나 늘 검은 세상이여서, 전보다 눈을 감고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예전에는 할아버지 같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잠이 없었는데, 사고 이후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도 모르게 잠이 들 때가 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초인종 소리에 잠에서 깼다. 하루 세 번, 식사 배달을 오는 사람인가? 핸드폰을 찾아 버튼을 눌러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4시 23분. 아직 저녁식사를 배달하기엔 이른 시간이다.

도대체 누구지? 누워있던 소파에서 일어나 앉았다. 다시 초인종이 울리고, 낯익은 목소리가 문 밖에서 들렸다.

"진영씨, 나야, 차우빈. 문 좀 열어줘."

아, 내 사회복지사이다. 예정 없는 방문에 얼떨떨했지만, 서둘러 문을 열었다. 눈이 보이지 않게 된 후로 그 외에 감각들이 더 예민해졌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뭔가 느낌이 평소와 다르다. 약간 불안해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런 나의 불안함이 느껴지는지 사회복지사가 서둘러 설명을 한다.

"아, 자원봉사자 한 명하고 같이 왔어. 내가 지금 오다가 급한 전화를 받아서, 정신이 다 없네... 그 왜, 진영씨가 지난번에 부탁한 거, 있잖아. 그거 해 줄 만한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딱 맞는 사람을 찾아서 바로 데려왔어. 들어가도 괜찮아?"

아... 괜히 불안해 한 게 미안해서 미소지으며 들어오라고 했다. 두 사람이 들어올 수 있게 한 쪽으로 비켜서는데, 사회복지사 뒤로 들어온 사람이 나보다 큰지 나를 지나갈 때 약간의 위압감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자원봉사자 역시 남자인가 보다.

뭔가 급한 일이 있는 듯 사회복지사님은 문가에 서서 바로 얘기를 계속했다.

"동우 씨가 오늘 우리 센터에 찾아왔어. 대학교 3학년인데, 사회복지 전공이라서 우리 센터에서 봉사활동 해보고 싶다고 말을 꺼내는데, 목소리가 너무 좋은 거야. 당장 진영 씨가 지난번에 한 얘기가 생각나더라고. 그래서 지금 시간 괜찮다고 해서, 내가 바로 데려왔어. 그런데 나 지금 당장 가봐야 되거든? 내가 맡은 애 하나가 제대로 사고쳐서 지금 경찰서에 있다고, 아까부터 전화에 불이 나. 그러니까 인사는 둘이 알아서 천천히 하고, 내가 이따가 전화할 테니까, 알았지, 진영 씨?"

거의 숨쉴 틈도 없이 속사포로 얘기하고 사회복지사가 나갔다. 얼떨떨해져서 잠시 그 자리에 얼어있는데, 나와 꽤 가까운 거리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파에 앉아도 될까요?"
"아, 네."

정신을 차리고 소파 쪽으로 손짓을 했다. 목소리가 듣기 좋다. 기분이 좋아지는 목소리다. 다행이다.

"뭐 마실 거 좀 드릴까요?"
"네? 뭐... 네."

냉장고에서 음료수캔을 두 개 꺼내왔다. 뭐를 따라마시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집에 있는 음료수는 대부분 이렇게 캔이거나 작은 병에 들어있다. 소파 쪽으로 돌아오는데 잠시 망설였다. 어디에 앉아있는 지 가늠이 잘 안 된다.

"음료수 고마워요."

내가 망설이는 이유를 아는지, 먼저 말을 해 준다.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캔을 내밀자 따뜻한 손이 받아간다. 그 손에 닿았던 손가락 끝이 따뜻해진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 반대편 소파 끝 쪽에 앉았다. 뭐라도 내 소개를 해야 할 것 같아 망설이다 말을 꺼냈다.

"아... 저... 저는 정진영이라고 합니다."
"신동우입니다."
"아, 네..."

뭔가 더 물어보고 싶은데, 어디까지가 사적인 질문인지 모르겠다. 어떻게 봉사활동을 하게 됐는지, 물어봐도 될까?

"저... 어떻게..."

우물쭈물 꺼내는 말의 의미를 알아챘는지 잠시의 정적 후 목소리를 들려준다.

"지금 휴학 중인데, 그냥,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서..."
"혹시... 제가 어떤 상황인지 알고 오셨나요?"
"아, 뭔가 도움을 필요로 하신다고..."

이런 말 하는 게 조금 부끄럽지만, 그래도 눈이 안 보여서 좋은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철판 깔고 말을 꺼냈다.

"저... 책 좀 읽어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 책하고는 담쌓고 살았다. 공부를 잘하지도,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매일 음악만 듣고 지냈다. 그런데 사고가 난 이후, 검은 세상 속에 소리만이 내 유일한 즐거움이 된 지금, 뭔가 다른 걸 갈망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그런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하지만 "저와 대화해 주세요"라는 부탁은 너무 이상하니까, 생각해 낸 게 책이었다. 사회복지사에게 누군가 책을 읽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달라고 부탁을 했었지만, 진짜 이렇게 빨리 누군가를, 그것도 이렇게 목소리가 좋은 사람을 찾아줄 줄은 몰랐다.

내가 쭈뼛거리며 내민 책을 보고 속으로는 뭐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겉으로는 별다른 반응 없이 책을 받아들고 읽기 시작했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이 나이에 읽고 싶어하는 게 이상해 보일까? 싶었지만, 어렸을 때 어머니와 같이 가서 영화를 본 기억이 나서, 늘 바쁘던 어머니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러 갔던 영화여서, 그 생각에 일주일에 두 번 청소하러 와 주시는 아주머니께 책을 사다 주십사 부탁드렸었다. 미리 준비해 놓길 정말 다행이다.

소파에 편히 기대 앉아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에 몸을 맡겼다. 한 단어 한 단어 또박또박 읽어나가는 목소리, 가끔 침을 삼키는 소리, 음료수를 마시는 소리, 책장을 넘기는 소리, 모든 소리가 다 듣기 좋다. 내 마음까지도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그 목소리에 취해갈 때쯤, 갑자기 책을 덮는 소리가 났다. 부드럽고 포근한 목소리에 잠깐 정신을 놓고 있던 난, 현실로 돌아왔다.

"내가 지금 갈 데가 있어서..."
"네? 아, 네. 첫날부터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고마워요."

옆에서 일어나는 인기척이 느껴진다. 나도 같이 일어섰다.

"내일... 다시 올게요. 몇 시가 괜찮으세요?"
"저야 뭐, 하루종일 집에 있으니까요. 아무때나 괜찮아요."
"그럼... 저녁 8시쯤 올게요."
"네, 좋아요."

다행이다. 어차피 낮이나 밤이나 나에겐 어둠 뿐인데 왜 그러는지 몰라도 저녁이 되면 더 외로워진다. 저녁 때 와준다는 말이 너무 고맙다. 내일 저녁엔 혼자가 아니어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다. 사람의 온기를 내가 참 많이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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