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학교를 지을 때 전기 시설에 돈을 너무 안 들였다.
G: 지금 나는 메이드 복을 입고 삼겹살 집에서 주문을 받고 있다.

도대체 이 인과는 뭐냔 말이다. 주변의 키득거리는 웃음을 무시하며 굳은 얼굴로 선배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앞에 섰다.

"네, 주문하시겠습니까?"
"에이, 찬식아, 얼굴 마담이 그렇게 정색을 하면 쓰나, 웃어야지, 인마."

와, 정환 선배 진짜 선배만 아니면 한 대 치고 싶다. 억지웃음을 지으며 선배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조커처럼 말고, 봄햇살처럼 화사하게. 자, 다시."

저 오리처럼 생긴 주둥이를 나무젓가락으로 꽉 잡아 봉해버리고 싶다. 하... 오늘 하루가 너무 길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낸, 2년 위였던 진영 선배가 들어간 대학교에 나도 붙었을 땐,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늘 나를 예뻐해주고 게임도 같이 곧잘 해주던 선배니까, 이래저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선배가 "너 게임 동아리 들지 않을래?" 했을 때도 냉큼 들겠다고 했다. 나야 뭐 게임에 살고 게임에 죽는 사람이니까. 동아리 들면 같이 게임할 사람도 많고 좋겠지, 했다.

그런데 동아리 방도 학교 건물 한쪽 구석에 있는 작은 방이었고, 낡은 PC와 게임기 몇 대 있는 게 다였다. 많이 실망했지만 그래도 뭐, 동아리는 활동비라는 게 나오니까, 사면 되겠지, 싶었다.

그런데 우리 동아리 방이 있는 학교 건물을 처음 지을 때 전기 시설에 너무 돈을 안 들여서, 전기가 툭하면 끊기거나, 아니면 갑자기 전류가 급증하거나 한다는 거다. 뭔가 불안했지만, 그래도 설마 그런 일이 있겠어? 했는데, 설마가 사람 잡았다. 가뜩이나 작은 방에 전기 콘센트가 하나밖에 없어서, 여러 갈래로 나눠서 쓰고 있었는데, 갑작스런 전류 급증 현상으로 게임기들이 다 타버렸다. 게임 동아리인데, 게임기가 없어졌다.

나는 당연히 활동비를 써서 새로 살 줄 알았다. 그런데 진영 선배가, 모든 일에 긍정적이라 별명이 정긍정인 진영 선배가 활동비를 미리 써버렸단다. 이거 횡령 아니냐고 따졌더니, 친구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우선 활동비를 빌려주고 나중에 자기 알바비 들어오면 채워넣으려고 했는데, 편의점 사장님이 야반도주를 했다나 뭐라나. 그리고 그 친구는 돈도 안 갚고 군대 갔단다. 그 덕분에, 현재 우리 게임 동아리에는 게임기도 없고, 활동비도 없단다. 진영 선배가 우선 열심히 알바해서 돈을 모으고 있다지만 그걸 언제 다 채워넣으려고?

그런 와중에 갑자기 학생회 측에서 검사를 나온다는 거다. 여러 동아리가 새로 생겼는데, 동아리 방이 모자라서, 현재 활동하는 동아리 중에 활동이 가장 저조한 동아리를 없애겠단다. 뭐, 나야 이 동아리 없어져도 상관 없지만, 검사 나오면 진영 선배가 횡령한 사실이 드러날 것 아닌가? 그래도 고등학교 때 나 많이 챙겨줬던 선배였는데, 아무리 지금 선배가 저런 뻘짓을 하고 다녀도 내가 여기서 배신 때리고 나몰라라 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래서 우선 이번 학교 축제 때 어떻게든 제대로 벌어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가장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건 술장사니까, 학교 근처 여러 가게들을 알아보았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진영 선배가 이리 저리 부탁하고 다닌 결과, 신우 선배네 삼겹살 집을 하루 싸게 빌릴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게임 동아리의 멤버가 다 소위 말하는 오덕들이다. 그래서 대부분 낯도 엄청 가리고, 사람들 앞에 나서지도 못한다. 결국, 서빙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나랑 진영 선배 뿐인데, 진영 선배는 그 와중에 알바하다 손목을 다쳐 와서 결국 나 하나밖에 없는 거다. 도대체 나 혼자 그걸 다 어떻게 하라고? 그러자 진영 선배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다. 한 명을 얼굴 마담으로 내세워 주문을 받고, 나머지 멤버들이 손님들과 말 섞을 일 없이 주문받은 걸 갖다 나르면 되지 않겠냐는 거다.

그래도 너무 낯을 가리는 멤버들을 위해 나중에는 가면을 쓰고 서빙하자는 말까지 나왔다. 다른 멤버들도 얼굴 가리고 말 안 해도 되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단다. 결국, 웨이터가 가면쓰고 서빙하는 해괴한 컨셉의 일일술집이 되었다. 그런데... 다른 웨이터들이 그러고 있는데 내가 혼자 멀쩡하니까 너무 튀는 거다. 이왕 컨셉을 이렇게 잡은 거, 얼굴 마담인 내가 코스프레를 하란다. 이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얘기냐고. 그 와중에 멤버 선배 한 명이 집에 메이드 복이 있단다. 아니, 그런 건 왜 또 집에 있어? 그리고 그런 게 나한테 맞겠냐고! 맞는단다. 모든 동아리 멤버들이 나를 기대에 가득찬 얼굴로 쳐다본다. 와, 진짜, 선배만 아니면 다 정말 줘패버리고 싶다.

이거, 말로만 듣던 신입생 괴롭히기인가? 싶지만 선배들이 나쁜 사람들은 아니다. 그냥, 진짜 나한테 저걸 시켜보고 싶은 거다. 다 나를 둘러싸고 애걸복걸한다. 찬식이 넌 완전 잘 소화할 거라고, 넌 워낙에 잘생겼으니까 메이드 복도 잘 어울릴 거라고, 이걸 지금 칭찬이라고 하고 있는 거야? 계속 싫다고 거절했지만, 선배들의 말을 안 들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현재, 이 삼겹살 집 안에서, 나, 공찬식, 건장한 20살 남자가 동아리 멤버 중 하나가 예전에 구입해 갖고 있었다는, 나에게 딱 맞는 의심스러운 핫핑크색 메이드 복을 입고, 화관을 머리에 쓰고 주문을 받고 있다.

진짜 딱, 죽고 싶다.








도대체 무슨 소문이 어디까지 퍼진 건지, 장사가 잘 되도 너무 잘 된다. 진영 선배가 우선 충당한 알바비로 고기며 술이며 사왔는데, 벌써 신우 선배가 세 번째 가서 고기와 술을 새로 구해왔다. 나중에는 팔 게 없어서 별다를 거 없는 계란말이를 비싸게 팔았는데, 계란 10판이 금세 동이 났다. 고향 친구 한 명 잘못 둔 죄로 신우 선배가 결국 오늘 하루 키친에서 무상 알바를 하고 있다. 나중에는 착하고 우직한 신우 선배가 "내가 저 녀석 만나기 전에 서울로 이사 왔어야 했는데 2년 늦게 오는 바람에 지금 이 생고생이야"라며 울부짖었다. 같이 중학교 다닐 때도 한없이 헐랭하고 사람 좋은 진영 선배 뒤치다꺼리를 다 자기가 했다고 했다. 왠지 동료애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가게는 미어터지고, 주문은 쉴 새도 없이 들어와서, 거의 세 시간째 다리 한 번 못 펴보고 주문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손님이 너무 많으니까, 나중에는 내가 접시 치우는 것까지 도와야 했다. 당연히 짜증은 머리 끝까지 솟구쳤고. 그러니까, 다음 일어난 일은 내 탓이 아니란 얘기다.

선배들과 동기들에게 온갖 놀림이란 놀림은 다 받은 후여서, 진짜 다음에 입 여는 사람은 치마고 뭐고 니킥을 날려줄 거야, 다짐하고 있었는데, 빈 접시를 치우려 쟁반을 들고 테이블 사이를 지나가던 내 손목을 누군가 확, 잡아버렸다. 놀라 그 손의 주인을 쳐다보았다. 올해 나랑 같이 입학한, 꽤나 잘생긴 얼굴로 학교에서 유명해져, 나도 이름을 아는 이홍빈이었다. 얘는 뭐지? 싶어서 쳐다보는데 녀석이 입을 열었다.

"너, 예쁘다. 나랑 사귈래?"

주변은 웃음바다가 됐고, 난 그 잘생긴 면상을 쟁반으로 내려쳤다. 테이블까지 엎으려는 걸, 주위에서 아주 발광을 하는 날 붙잡아 억지로 가게 뒤편까지 끌고 갔다. 내 평생 그렇게 꼭지가 돈 건 처음이었다.

다행히 대부분 웃어넘기는 분위기였고, 이홍빈도 그 외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어차피 곧 가게도 닫을 시간이 되어서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나중에 가게 매상을 정리해 보니, 목표치의 두 배 이상을 벌었다. 우리 학교 역사상 최고로 잘된 일일술집이라고 한다. 내 희생으로 학교의 새로운 역사를 쓴 거라고, 동아리 멤버들이 위로했다. 아, 진짜 다 선배들만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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