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읽는 눈이 설명할 수 없는 빛을 띤다. 스크롤 다운 하는 손가락 끝이 떨린다. 애들의 시선이 느껴져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이런 얼굴을 보여줄 수 없다.

진영은 한참 후에야 핸드폰 스크린에 떠 있던 기사 창을 닫고 고개를 들었다. 옆에 앉아 있는 애들이 유난히 조용하다. 평소 같았으면 누군가 하나는 웃고 있고, 하나는 장난 치고 있고, 하나는 뭔가 억울하다며 소리치고 있어야 하는데, 다들 약속이나 한 듯 입을 꾹 다물고 시선을 허공에 두고 있다. 처음 겪는 상황에 다들 얼떨떨한 분위기다.

연습실 안의 정적을 깬 건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온 신우였다. 애들이 슬금슬금 신우의 눈치를 본다. 신우의 표정 역시 굳어 있다.

"형, 괜찮아요?"

결국 처음 말을 꺼낸 건 공찬이다. 공찬의 말이 얼어붙었던 공기를 깨트린 건지 나머지 둘도 갑자기 시끄러워진다.

"사장님이 뭐래요? 혼났어요?"
"에이, 우리가 연애 한다고 혼날 짬밥이냐?"
"그래, 이제 연애금지도 아닌데, 공주님이 뭐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그쵸?"

어지간히도 사장실에 불려간 큰 형이 걱정된 모양이다. 신우는 옆으로 다다다 달려와 둘러싸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하는 세 동생들에게 피곤한 웃음을 지어보인다. 진영의 시선은 느끼지를 못 한 듯, 아니면 못 본 척 하는 듯 진영 쪽으로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진영 역시 신우를 흘깃, 쳐다본 뒤 시선을 거둔다. 나머지 셋은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듯 두 큰 형의 눈치를 본다.

다시 조용해진 연습실 안에 신우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린다.

"미안하다. 팀에 폐를 끼쳐서."

딱히 누구를 향하는 말은 아니지만 세 동생이 진영 쪽을 쳐다본다. 아무리 장난칠 때는 하찮은 형이라도 팀의 리더니까. 이렇게 팀에 영향을 끼치는 일에는 다 진영의 눈치를 보게 된다. 신우 역시 그런지 목소리가 살짝 떨린다.

"뭐,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진영의 목소리는 오히려 차갑다. 세 동생은 형들 사이에서 다시 눈치를 보다 연습실 한 구석에 모여 소근거리고 있다. 어색했던 형들 사이가 요즘 들어 좀 친해진 것 같아 좋아했더니, 이러다 전보다 더 멀어질까 봐 셋 다 걱정이다. 항상 끈끈했던 팀이 무너질까 봐, 가뜩이나 7년차 징크스다 뭐다 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속으로는 다들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러다 진짜 팀이 깨져버리기라도 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공찬이 슬쩍 고개를 들어 큰 형들의 눈치를 다시 살핀다. 진영은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핸드폰 스크린을 보고 있고, 신우는 진영에게서 최대한 멀찍이 앉아 팬카페에 사과글을 올리고 있다. 집중해서 글을 쓰고 있는 신우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린다. 공찬은 괜히 신우가 원망스럽다.

"저 미련 곰탱이. 연애를 할 거면 들키지를 말던가. 아주 대놓고 사진까지 찍히면서도 몰랐단 말야?"
"에혀, 그러게 말이다."
"그렇게 눈치가 빠르면 여우지, 곰이겠어?"

셋이 대놓고 앞담화를 하는 걸 들었는지 신우가 아예 몸을 틀어 셋에게서 등을 돌린다. 어깨가 약간 떨리는 듯도 싶다. 혹시 우나? 세 동생은 괜히 미안해진다. 잘못은 자기가 해놓고, 왜 그래, 우리만 죄책감 들게? 하고 따지고 싶지만, 그러다 진짜 울까 봐 차마 그렇게까지는 말 못하는 A2와 만만치 않게 소심해진 B1이다.








사건의 시작은 아침에 뜬 기사였다. B1A4 신우의 열애설. 어떤 여자와 데이트하는 사진이 버젓이 찍혔다. 그것도 꽤 많이. 저렇게 대놓고 찍었는데 진짜 몰랐다니, 저리 둔해서야 원. 곰이라는 별명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결국 신우는 회사에 나오자마자 사장실로 불려갔고, 연습하러 모인 세 동생은 마치 자기들이 죄지은 마냥 마음 졸이며 연습실에서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연습실에 나타난 진영은 밤새 곡 작업을 했는지 약간 초췌한 모습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듯해 동생들은 알려줘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했지만, 그 와중에 진영이 기사를 먼저 봐버렸다. 하긴, 신우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으니 무슨 일인지 궁금했겠지.

여자는 일반인이었는지 모자이크 처리 되어 있었다. 하지만 신우의 얼굴은 그대로 다 나왔다. 다정한 얼굴, 다정한 미소, 다정한 손길, 꽤나 다정해 보이는 사진들이다. 거의 저녁 내내 같이 커피 마시고, 밥 먹고, 했는지 여러 시간대에 여러 각도에서, 여러 장소에서 참 사진을 많이도 찍혔다.  이건 참, 수습하기도 애매하다.

결국, 열애설은 인정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컴백이 얼마 남지 않은 이 때,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뭐, 나쁜 홍보란 없다니까 이렇게라도 홍보가 되는 게 좋을지도, 라고 세 동생들은 스스로 위로해 본다. 회사에서 짧은 인정한다는 내용의 글을 언론사들에 배포하고, 신우는 팬들에게 사과글을 올리고, 그렇게 이 사건은 일단락 지어졌다. 그리고 다섯 멤버들은 약간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연습을 시작했다.








잠옷을 입고 젖은 머리를 타월로 털며 방에서 나오던 신우는 소파에 앉은 사람을 보고 멈칫한다. 진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신우를 올려다본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둘은 진정할 수 있었다. 거의 거실 바닥에 주저앉았던 신우는 겨우 일어나 진영 옆에 털썩 앉았다. 진영이 젖은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괜찮아?"
"당연히 괜찮지. 나 아까 연기 완전 잘하지 않았어?"
"뭐, 잘했다고 해줄게."

절대로 아니었지만, 이란 뉘앙스가 풍기는 말투다. 신우는 슬쩍 웃으며 몸을 옆으로 돌려 앉아 진영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왜, 배우님 성에는 차지 않는 연기였어?"
"나중엔 완전 대놓고 웃었잖아, 너."
"너도 웃고 있는 거 봤어."
"난 그래도 최대한 손으로 얼굴 가렸어."
"나도 애들한테 안 보이게 등 돌리고 있었는데?"
"거울이 한쪽 빼고 다 블라인드 쳐져 있었길래 망정이지, 비치기라도 했으면 어떡하려구."
"못 참겠는 걸 어떡해? 처음 연습실에 들어갈 때부터 위태위태하긴 했는데, 네가 너무 차가운 표정으로 무섭게 있으니까 너무 웃긴 거야. 아, 진짜 참느라 죽는 줄 알았네. 나중엔 막 입에 경련까지 왔다니까. 그래도 애들이 눈치 못 챘잖아."

"그러니까 나 칭찬해줘"라는 눈빛을 쏘는 신우가 귀여워 진영은 신우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그래, 잘 했어."
"한번 잡아보더니 맛들렸나 봐, 정말."

투덜거리며 볼에서 손을 떼어냈지만 싫지 않은 표정이다. 진영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신우는 몸을 옆으로 살짝 옮겨 진영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뭐야, 머리도 다 안 말랐는데. 바지 다 젖잖아."

진영은 무릎 위의 머리를 툭 치며 투덜거렸지만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그럼 마를 때까지 여기 있으면 되겠네."
"아직 편곡 다 안 끝난 거 알잖아."
"어제도 밤 샜잖아. 좀 쉬다 가."
"안 돼. 너네 집은 너무 편해서 한 번 잠들면 아침까지 자버리니까."
"그럼 아침까지 자고 가던가."

정작 졸린 건 본인인지 점점 웅얼거리는 동그란 볼이 귀엽다. 젖은 머리를 살살 쓸어주니 기분이 좋은지 미소짓는다. 그런 표정도 너무 귀엽다. 아, 콩깍지가 아주 단단히 씌인 것 같다.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들릴 듯 말 듯한 조용한 목소리에 한 쪽 눈을 슬쩍 떠 위를 보더니 다시 미소지으며 눈을 감는다.

둘 중에 스캔들이 나야 한다면 너보다는 내가 낫지, 하고 망설임 없이 말해줘서 고맙고, 미안하다. 조심한다고 했는데 결국 기침과 사랑은 숨길 수 없다는 말이 맞았다. 점점 더 사람들의 의심하는 눈초리가 느껴지고, 점점 더 "둘이 사귀지?"란 질문이 농담같지 않게 들리기 시작하자 무서워졌다. 이러다 진짜 들킬까 봐. 이러다 헤어지게 될까 봐. 결국 생각해낸 게 여자와의 열애설이었다. 가장 확실하게 소문을 잠재울 방법. 다른 모두에게 미안하지만, 처음으로 다른 멤버들보다, 팀보다, 팬들보다, 서로를 먼저 생각하기로 했다. 일부러 말을 흘리고, 대놓고 여자와 돌아다녔다. 사진이나 왕창 찍히라고. 이제 기사까지 났으니 한동안은 잠잠해지겠지.

그 여자가 누구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묻지 않는다. 그 여자를 보는 표정이 너무 다정해서, 연기인 걸 알면서도 질투가 났다고 말하고 싶지만, 착한 신우가 그 말에 미안해할까 봐 그것도 못 하겠다. 그냥, 고맙고 미안하다.

진영의 마음의 소리가 들렸는지 신우가 갑자기 눈을 떠 진영을 올려다본다. 그 눈빛이 아까 사진에서 본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다정해서 진영은 괜스레 걱정한 자신이 우스워진다. 신우가 다시 눈을 감더니 입술을 쭉 내민다. 저 큰 덩치로 저런 애교를 부리는데 그것까지도 귀여워서 큰일이다. 진짜, 오늘밤은 작업실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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