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 오디션 도대체 보기는 하는 거야? 거의 두 달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연습' 중이다. 뭔가 안 맞아서 자꾸 일정이 밀리고 있다나? 그러다 영화 엎어지는 거 아냐? 하고 물었더니 그건 또 아니란다. 주인공으로 캐스팅 된 배우가 거물급이라나. 근데 왜 기사 하나 안 나는데? 란 질문에 무슨 일급비밀이라나 뭐라나. 약간 얘가 희망고문 당하고 있는 것 같은데 차마 그렇게 말해주지는 못 하겠다. 이 영화에 캐스팅 되려고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안 되면 불쌍하잖아. 나중에 엎어지면 위로주나 한 잔 사줘야지.

어쨌든 그래서 오늘도 녀석과 나는 내 집에서 '연습' 중이었다. 처음 몇 번은 민망함에 진짜 몸둘 바를 몰랐는데 이제 익숙해졌는지 그런것도 별로 없다. 가끔 가슴 언저리께가 약간 간질거리는 건 있는데, 이건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얘가 요즘 스킨쉽이 늘어서 이러저리 더듬어서 그러는 것 같기도. 한 번 하지 말라고 했더니 형들한테는 시도 때도 없이 앵기면서 이거 하나 갖고 뭐라고 하냐고 계속 투덜대길래 "그래, 해라, 해!" 했더니 진짜 원없이 만져대고 있다.

키스라는 것에도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진짜 처음엔 뭐가 뭔지 몰라서 막 부끄럽고 민망해 죽을 것 같고 했는데, 이제 그런 건 없다. 대신, 뭔가 좀... 흠... 뭐라고 해야 하나. 약간 정신이 아득해질 때가 있다.

오늘도 그랬다. 분명히 둘이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소파에 누워 있다. 뭐지? 내가 언제 누웠지? 빈이는 내 위에서 한 팔에 몸을 지탱한 채 정신없이 입술을 빨고 있다. 그러다 허리를 더듬고 있던 다른 손이 갑자기 셔츠 안으로 들어왔다.

힉, 하고 내가 놀라자 빈이는 입술은 맞댄 채 슬쩍 웃었다. 갑자기 짜증이 나서 확 입술을 물어버렸는데, 뭐가 좋다고 슬쩍 다시 웃더니, 다시 키스한다. 약간 입에서 피맛이 난다. 너무 세게 물었나? 조금 미안해지려고 하는데, 셔츠 안의 손이 다시 신경 쓰인다. 딱히 간지럼 타지는 않지만 자꾸 뭔가 간질거려서 이상하다. 결국 녀석을 밀어내었다.

"하지마, 간지러워."
"간지럼도 안 타면서, 무슨."

아, 이 녀석은 날 너무 잘 알아.

"그래도, 좀 이상해. 하지마."
"뭐가 어떻게 이상한데?"

내가 그걸 설명할 수 있으면 이러고 있겠냐? 갑자기 또 짜증이 밀려와서 또 한 번 물어버릴까, 생각하고 있는데 내가 미는 대로 고분고분하게 밀려났던 녀석이 다시 다가왔다. 이번엔 진짜 세게 물어버릴 준비를 하고 있는데 녀석의 입술이 갑자기 내 목 쪽으로 향했다. 처음 느껴보는 촉감에 또 한 번 힉, 하고 놀랐다.

"뭐하는 거야, 하지마."
"원래 애정신에서는 이런 것도 하는 거야. 영화 본 거 기억 안 나?"

목에 입술을 댄 채로 웅얼거리는 녀석의 말이 더 얄밉다. 갑자기 같이 본 야한 영화가 생각났다. 뭐야, 로맨틱 코미디라더니, 그 정도로 야한 영화 오디션인 거야? 그런 영화 찍으면 팬들이 퍽이나 좋아하겠다. 이 녀석 생각이 있는 거야?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녀석의 입술은 점점 목을 타고 내려가고 있었다. 가슴 한켠이 아니라 몸 전체가 전기가 통한 것처럼 찌릿했다. 이러는 내가 너무 이상해서, 손에 힘을 주어 녀석을 다시 밀어냈다.

"하지 말랬잖아. 그만해."

화가 난 목소리에 녀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지금 이 상황에 당황해야 하는 건 난데 네가 왜 놀라는데? 따져 묻고 싶지만 언제부턴가 이 녀석에게 할 수 없는 말들이 늘어나고 있다. 뭔가, 둘이 하고 있는 이 '연습'에 대해 말하기가 껄끄럽다.

녀석은 몸을 일으켰다.

"미안해. 내가 너무 밀어붙였나 보다. 오늘은 그만하자."

아오, 재수 없는 자식. 네가 그렇게 말하면 또 내가 나쁜 놈이 되잖아. 결국 또 내 입에서 "아니야, 괜찮아"란 말을 듣고 녀석은 집으로 돌아갔다. 점점 녀석에게 휘둘리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다. 뭔가, 나도 모른 채 무언가에 휘말리고 있는 느낌이다. 이상하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진짜 오랜만에 켄 형과 산들이 형과 빈이와 나, 이렇게 넷이 같이 저녁을 먹었다. 야외 화보 촬영이 갑작스런 비에 다음 날로 미뤄져 산들이 형과 같이 비도 오는 김에 파전에 동동주나 먹으러 가자, 하고 나왔는데, 켄 형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내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켄 형이 빈이도 오늘 저녁 시간 된다고, 같이 데리고 오겠다고 해서, 결국 넷이 파전 집에 모였다. 오랜만에 몸에 알콜이 들어가니 기분이 좋다. 산들이 형과 켄 형도 동동주가 맛있다며 연신 따라 마시고 있다. 빈이만 동동주 대신에 사이다를 마시고 있었다.

"야, 너 혼자 뭐냐?"
"나 차 가져왔어."
"이거 완전 웃기는 놈이네. 술자린 거 뻔히 알면서 차는 왜 가져왔는데? 대리 불러라, 마."
"내 차 아무한테나 못 맡겨요, 형."
"야, 냅둬. 쟤 그 놈의 차가 뭐라고 지 멤버들도 안 태워주는 놈이야."

형들과 빈이의 대화를 들으며 동동주를 홀짝 거리던 내가 한마디 보탰다.

"난 콩이가 차 자주 태워주는데?"

그 말에 분개한 켄 형이 침 튀겨가며 빈이에게 의리도 없는 놈이라고 뭐라뭐라 하는데 하나도 안 미안하다. 옆에서 산들이 형은 그 와중에 내 걱정이다.

"빈이 운전 서툴지 않아?"

둘러 말하는 거지만 쟤가 운전하는 차 타지 말라는 말이다. 그래도 친구니까 편들어 줬다.

"그래도 얘 운전 많이 늘었어요, 형."
"얘 요즘 툭하면 드라이브 간다고 차 끌고 나가거든."

옆에서 켄 형도 한마디 거든다. 산들이 형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그래도 친구라고 같이 다녀주는 거야? 착하네, 찬이. 드라이브 하는 거 싫어하면서."
"뭐야, 너 드라이브 가는 거 싫어해?"

내가 말 안 했던가? 빈이한테 형들이랑 드라이브 간 얘길 여러 번 해서 내가 좋아한다고 착각했나 보다.

"신우 형이랑 차바로가 드라이브 하는 거 좋아해서 얘 툭하면 끌고 가거든. 찬이가 애가 착해서 싫어도 다 따라다니니까."

뭐, 예쁨 받는 막내의 고충이랄까. 어떨 땐 혼자 있는 거 좋아하면서 어떨 땐 외로움을 너무 타는 형들 덕에 진짜 차는 원없이 타고 있으니까.

내가 드라이브 가는 걸 싫어한다는 말이 쇼크였는지 빈이가 조용해졌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얼굴이 좀 뜨거운 게, 오랜만에 마신 동동주에 취기가 빨리 오르고 있는 듯하다. 갑자기 파전을 찢어 입에 넣는 것도 귀찮아졌다.

"산들이 형, 나 아~"

산들이 형이 자기 입에 넣으려던 파전 한 조각을 입에 넣어준다. "내가 아무나 먹는 거 안 나눠주는 거 알지?"하고 생색내며. "당연히 알지" 하며 형의 팔짱을 끼고 팔에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형이 엉덩이를 토닥여준다.

"아, 남자끼리 뭐하는 거야."

빈이의 짜증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빈이를 쳐다보았다. 저거 완전 웃기는 놈이네, 진짜. 지는 남자랑 무슨 별의별 짓도 다 하면서. 큰 소리로 얘기해 버리고 싶지만 둘이 하는 '연습'에 대해 다른 사람 아무도 모르니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결국 녀석을 한 번 째려보고 형에게서 떨어졌다. 산들이 형이랑 켄 형이야, 뭐, 오글거리는 거 못 참는 녀석이니까 오글거려서 그러나 보다, 하고 넘어갔고.

어느덧 새로 주문한 동동주도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파전도 파 몇 쪼가리만 남은 채 접시가 비워졌다. 어디 2차 갈까? 하고 산들이 형이 얘기하자 켄 형이 아쉬운 듯 말했다.

"여기서 더 마시면 안 될 거 같은데? 내일 녹음이야."
"무슨 녹음?"
"우리 다음 앨범."
"무슨 컴백을 두 세 달에 한 번씩 하냐? 너네도 참, 세계 신기록 세우려고 그러는 거야?"
"낸들 좋겠냐?"

형들의 대화를 듣다가 그래도 친구라고 빈이가 걱정이 되었다.

"너 영화 되면 컴백이랑 겹쳐서 스케줄 장난 아니겠다."
"무슨 영화?"
"너 영화 찍어?"

아니, 산들이 형은 그렇다 치고 켄 형도 몰랐단 말야? 저 팀은 이런 얘기도 같이 안 나누나? 뭔가 이상하다 싶어 빈이를 쳐다보니 빈이의 얼굴이 빨갛다. 술도 안 마신 녀석이 왜?

"아, 뭐 그런 게 있어요."
"뭔데? 난 처음 듣는 얘긴데?"
"아니, 형이 내 스케줄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건 아니잖아."

쟤가 갑자기 왜 짜증이래. 빈이의 말투에 켄 형이 입을 다물었다. 저런 걸로 짜증 내는 애가 아닌데. 쟤가 왜 저러지? 싶어 녀석을 쳐다보자 녀석이 눈을 피한다. 뭔가, 이상하다.

결국 분위기가 약간 냉랭해진 채 자리를 마무리 했다. 형들은 각자 택시를 잡아 탔고 난 빈이가 데려다 준다는 말에 빈이의 차에 올라탔다. 달리는 차 안에서 빈이는 말이 없었다. 나도 취기가 올라 약간 몽롱한 상태여서 생각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잠이 깨니 빈이 차는 늘 주차하는 자리에 주차되어 있고, 빈이가 조수석 문을 열고 날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다 왔어, 찬아. 일어나."

약간 비틀거리며 차에서 내리자 빈이가 부축해 준다. 결국 그렇게 문 앞까지 갔다. 녀석은 비밀번호를 아무렇지도 않게 누르고 날 부축해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내 아파트는 그렇다 치고, 주차장 출입구 번호까지 언제 알았대? 궁금해졌지만 물어보기는 귀찮았다. 아, 막걸리 종류는 진짜 순식간에 취한다니까. 뭔가 생각할 게 있었던 것 같은데. 빈이에게 뭔가 물어봐야 겠다, 생각했던 것 같았는데.

집에 다다라 소파에 날 눕히고 돌아서는 빈이의 등을 보며 겨우 그 질문을 생각해냈다. 아직도 약간 몽롱한 상태에서 몸을 일으켜 소파에 비스듬히 앉았다.

"너, 영화 오디션 있다는 거, 거짓말이지?"

취한 것 치고는 꽤 멀쩡하게 말이 나온다.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빈이가 발을 멈췄다. 대답을 하지 않는데 그 자체가 대답이 되었다. 아, 난 진짜 멍청한 놈이구나.

"왜 거짓말한 거야?"

여전히 말이 없다.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른다.

"뭐냐, 너? 재밌었냐? 사람 가지고 장난치는 게?"
"장난친 거 아냐."

"그럼 뭔데?"하고 따지려는데 녀석이 뒤돌아서서 다시 내게로 다가왔다. 어둠에 그림자 지는 녀석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무슨 표정인지 궁금하다. 어떤 변명을 할 건지도...

"좋아해, 너를. 내가."

하지만 저런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이슬실비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